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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면 레벨업-27화 (2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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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선우는 강 팀장을 만나 청담동의 고깃집으로 갔다.

청담동에서 고급 한우만 판매하는 집이었다.

“많이 드십쇼.”

강 팀장이 물수건으로 손을 만지작거렸다.

‘계약만 할 수 있다면야 이까짓 고기쯤은 냄새만 맡아도 물릴 때까지 사주겠어.’

선우는 강 팀장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아니지, 황금알만 낳는 거위 농장주?

그만큼 선우의 콘텐츠는 특별했다.

업로드 된 방송의 내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직 공개한 것보다 공개하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선우가 갖고 있는 콘텐츠들이 궁금했기에 강 팀장은 더더욱 선우를 데려오고 싶었다.

‘오늘 당장 계약 하자고 하면 경계심을 가질 거야. 일단 한 발씩 다가가는 걸로 호흡을 다듬자고. 할 수 있다. 대어 아니지 새끼 고래를 낚는 거야.’

에이플러스 미디어는 소속 플레이어들을 향한 대우가 좋기로 유명했다.

선우는 노릇노릇 익어가는 꽃등심을 보면서 넋을 놓고 있었다.

“으… 어… 진짜 기가 막힌 고기네.”

“선우 님. 이런 퀄리티의 한우는 처음 보셨죠? 저도 안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이 집이 연예인들도 많이 오고 네임드급 플레이어들도 단골이거든요. 엄청 비싸도 맛이 완전 이거예요.”

강 팀장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선우는 고기가 대충 익어간 걸 보더니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불판 위의 고기들이 사라졌다.

“부족하시죠? 제가 이미 2인분 더 시켰습니다.”

강 팀장은 선우가 고기만 먹을 수 있도록 열심히 구워댔다.

“선우 님. 에이플러스 미디어의 플레이어님들께서 어떻게 살고 계신지 혹시 아십니까?”

“몰라요.”

선우는 고기만 계속 먹어댔다.

“제가 이런 말 꺼내긴 좀 민망하지만 에이플러스 미디어에서 플레이어들을 한 번 케어해주면 인피니티 로드 안에서는 그냥 고속도로를 편안하게 가시는 겁니다. 그냥 가는 것도 아니에요. 운전사가 앞에서 운전해주고 플레이어님들은 뒤에서 아주 편히 주무시고 딴 거 하시면서 가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강 팀장이 오늘 꺼낸 얘기 중 유일하게 선우의 귀에 들어오는 얘기였다.

“진짜요?”

“물론입니다. 저는 계약 하고 싶은 플레이어님들께는 오직 사실만 전달하는 버릇이 있어서요. 하하.”

강 팀장의 얘기에 선우는 잠깐 머릿속을 정리했다.

‘케어가 빵빵하단 얘기는 나도 많이 들었는데…. 계약 조건이나 한번 들어볼까?’

에이전시마다 다양한 조건들을 플레이어에게 제시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들어봐야만 알 수 있었다.

해당 플레이어의 잠재력, 가능성을 따져서 파격적인 계약 조건이 오가는 것이 현실.

선우는 지금 시점에서 자신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로 평가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인피니티 로드에서 플레이어들에게 가장 높이 평가되는 것이 잠재력이었으니까.

“만약 제가 에이플러스 미디어랑 계약을 하게 되면 회사에서는 저에게 해줄 게 뭐가 있어요?”

강 팀장의 눈빛이 번쩍였다.

기회가 온 걸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킨 강 팀장이 말문을 열었다.

“먼저 김선우 님께서 저희 에이플러스 미디어와 계약을 하시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는지 설명을 좀 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커험.”

강 팀장이 물을 한 잔 마셨다.

선우는 계속 고기를 입에 넣고 있었다.

“김선우 님께서 저희 에이플러스 미디어의 가족이 되시면 먼저 계약금을 받으실 겁니다.”

“계약금?”

돈 얘기에 선우의 눈이 처음으로 강 팀장의 눈을 바라봤다.

“이 계약금은 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저 회사와 계약을 했으니 플레이어님을 대접해주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플레이어님들이 대개 돈이 필요하시다거나 뭐 여러 사정들이 많으시더라고요. 그만큼 앞으로 회사와 같이 열심히 비즈니스를 해 보자는 뜻으로 드리는 일종의 선물 같은 거죠.”

“계약금은 얼마씩 주는데요?”

선우의 반응에 강 팀장이 물을 한 잔 더 마셨다.

‘반응을 보이는군. 역시 관심을 끄는 건 돈인가?’

강 팀장은 선우가 좀 더 솔깃할 내용들로 말을 이었다.

“플레이어님들마다 달라서 정해진 건 없습니다. 플레이어님들의 실력, 현재 위치, 인피니티 로드의 랭킹, 네임드 여부, 잠재력 등 여러 가지를 따져보면서 계약금을 드리죠.”

“그렇다면 높은 가치를 지닐수록 계약금도 많이 주겠군요?”

“물론입니다.”

“지금까지 에이플러스 미디어에서 가장 많은 계약금은 얼마를 줬어요?”

“음… 예? 아 그러니까 계약금을 받은 플레이어님을….”

“아뇨. 플레이어 말구요. 계약금. 에이플러스 미디어에서 계약한 플레이어들 중 가장 많이 줬던 플레이어가 있을 거잖아요. 얼마를 줬는지 액수만 알려줘요.”

강 팀장은 잠깐이지만 긴장감이 느껴졌다.

“아, 이건 솔직히 기업 비밀이지만.… 그래도 김선우 님이니 제가 특별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가장 많은 계약금을 받으신 분은 100억부터 시작하신다는 것까지만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자세한 내용을 막 발설하면 안 되거든요.”

“저도 100억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선우의 말은 강 팀장의 뒤통수, 아니 앞통수를 쳐버렸다.

동시에 강 팀장은 물을 마시다 사례가 걸렸다.

“콜록, 콜록. 예?”

“저도 계약금 100억부터 시작할 수 있냐고요.”

강 팀장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봤다.

‘뭐, 뭐라고? 지금 제 정신인가?’

선우가 제시한 금액은 강 팀장의 예상을 아득히 초월해버렸다.

갑작스런 충격에 말문이 막힌 강 팀장.

동시에 선우는 자연스럽게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다.

‘역시 충격 좀 받았나보군.’

강 팀장은 선우의 예상대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준비했던 모든 예상 답안지들이 강 팀장 머릿속에서 삭제되고 있었다.

‘무슨 꿍꿍이지? 무슨 뜻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그것도 초보 플레이어가… 아무리 스트리밍으로 관심 좀 받는다고 해봤자 스타플레이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인데….’

강 팀장은 당황스러웠다.

이미 표정 관리가 안 되는 걸 선우에게 들켜버렸다.

‘젠장, 망했다. 뭐냐 이거. 당황하면 안 돼. 쫄면 안 된다고. 이건 날 떠보는 거다.’

강 팀장은 에이플러스 미디어의 가치를 선우가 떠보는 거라고 느꼈다.

정말 계약하고 싶은 플레이어에게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는지 회사의 반응을 강 팀장으로부터 확인하려는 것.

“하, 하하…. 갑자기 너무 큰 액수를 들으니 제가 좀 당황해서…. 죄송합니다. 그만한 액수는 제 위치에서 함부로 정하긴 어렵구요. 대표님과 상의를 해본 뒤에 결정해야 할 문제라서요.”

“그렇다면 에이플러스 미디어 대표와 얘기를 해 보면 가능하다는 뜻인가요?”

선우의 2차 공격이 들어왔다.

강 팀장은 심장이 움푹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예?”

눈을 동그랗게 뜬 강 팀장은 그저 ‘예?’라는 말밖에 꺼내지 못했다.

선우는 고기를 구워먹으면서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대표님과 상의를 하고 결정해야 한다면서요. 그러면 제가 대표님하고 얘기를 해 보면 가능하다는 뜻인거 같아서요. 아니에요?”

“그, 그게. 그러니까… 가능은 하죠. 물론 대표님께서 주시겠다고 하면 가능합니다. 하하.”

강 팀장은 아직도 머릿속이 하얬다.

하지만 선우의 공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러면 대표님과 미팅 날짜 잡아주시죠.”

“예?”

강 팀장은 다시 얼빠진 표정으로 선우에게 되물었다.

이미 준비해뒀던 예상 답안과 각본은 안드로메다 여행을 시작.

텅 빈 머릿속에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가능하다면서요? 그러면 에이플러스 미디어 대표님을 제가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해봐야 하잖아요. 날짜 잡아달라니까요. 언제 가능해요?”

“어…아… 그게… 저기….”

“고기 좀 더 시켜도 되죠?”

생각을 급히 정리하던 강 팀장은 다시 넋이 나가고 있었다.

“예?”

“고기 더 시켜도 되냐고요.”

“아, 예! 그러십쇼. 얼마든지요.”

“저기요, 여기 치맛살 2인분 하고 갈비살 2인분 더 주세요.”

선우의 고기 주문을 구경하던 강 팀장.

“팀장님. 언제 대표님 만나러 가면 되요?”

선우의 공격은 거칠 것이 없었다.

충격적인 금액으로 강 팀장을 앞에서 한 방 먹인 뒤에 계속 자신이 궁금한 내용만 물어볼 뿐인데 강 팀장은 말을 버벅거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넋이 나갔지?’

선우는 의아해하면서 주문했던 치마살을 먼저 불판 위에 올렸다.

“대, 대표님은… 그러니까 제가 대표님 스케줄을 확인해봐야 돼서….”

“그러면 확인하시고 저한테 다시 연락 주세요.”

“예?”

“왜 자꾸 아까부터 예라고만 하고 대답을 못 해요?”

“아, 예. 죄송합니다. 제가 그러니까… 아닙니다. 대표님 스케쥴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대표님하고 상의하고 계약을 결정하도록 하죠.”

“예, 그러십쇼. 언제든지 선우 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맞춰드리겠습니다.”

강 팀장은 이미 넋이 나가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진짜죠?”

“예? 아!!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대표님과 상의를 하시고 계약하시는 걸로 결정되면 원하시는 조건을 다 들어드릴 수 있단 거죠. 아하하하.”

“마음에 드네요. 이제 먹죠. 드세요. 고기 타요.”

“예, 예. 드십쇼. 하하.”

선우는 다시 고기를 먹었고 강 팀장은 젓가락으로 파 무침만 깨작거렸다.

‘뭐지? 이 기분은? 내가 계약을 따낸 거야? 아니면… 당한 거야?’

강 팀장은 젓가락으로 뒤적거리던 파 무침을 입에 넣었다.

맵고 쓴맛이 났다.

선우와 강 팀장은 각자 다른 맛을 느끼면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 * *

“잘 먹었습니다.”

선우가 박하사탕을 입에 넣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강 팀장은 여전히 혼이 나간 상태에서 법인 카드로 결제를 했다.

오늘 선우가 먹어치운 고기값은 60만 원이 넘게 나왔다.

1인분 130g에 8만 원이나 하는 고급 한우 메뉴로만 8인분을 시켜먹었으니까.

“강 팀장님, 오늘 고기 진짜 맛있었습니다. 에이플러스 미디어가 조금 마음에 드네요. 하하.”

선우의 천진난만한 웃음에 강 팀장이 멋쩍게 대답했다.

“계약을 하신다면 더 마음에 드실 겁니다. 하하하.”

선우와 강 팀장이 고기집 앞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라이온 팽 길드의 부 길드장 이소영이 나타났다.

‘응? 저건 에이플러스 미디어 강 팀장이잖아. 왜 앞에서 얼쩡거리지?’

이소영은 강 팀장을 힐끔 보다가 다시 고기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순간 들리는 목소리.

“그러면 김선우 님. 조만간 대표님과 미팅 날짜 잡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그래요. 또 봐요. 들어가시고요.”

이소영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김선우? 혹시 오크 성 먹은 걔? 잠깐. 대표랑 미팅 날짜를 잡는다고? 혹시 에이플러스랑 계약하려는 건가?’

이소영은 강 팀장이 손을 흔드는 걸 보면서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밖에 있던 강 팀장은 멀리 사라져가는 선우를 보면서 한숨을 뱉었다.

“후아… 내가 오늘 뭐한 거지? 대표님께 뭐라고 말해야 되냐…. 하아….”

선우는 본의 아니게 강 팀장으로부터 대표와의 미팅 약속을 받아내버렸다.

물론 선우는 그저 궁금해서 물어봤을 뿐인데 얼떨결에 강 팀장이 대답한 것뿐이지만.

“오늘 운빨 좋구나. 비싼 고기도 얻어먹고 에이플러스 미디어랑 계약금 미팅도 하게 됐고 역시 뭐든 크게 질러야 크게 얻는 거야.”

선우는 자신이 질러버린 계약금을 순순히 받고 계약할 거란 생각은 안 하고 있었다.

단순히 영업팀장과의 계약이 아닌 대표와의 계약을 진행하는 것이 얻을 게 더 많아졌다.

다른 초보 플레이어들과는 다르다는 걸 확실하게 어필했고 크게 제안한 만큼 새롭게 조건을 정하면서 선우가 원하는 걸 더 많이 가질 수 있을 테니까.

“이제 빨리 집에 가서 히든 퀘스트 깨러 가야겠다.”

집으로 향하는 선우의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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