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다리면 레벨업-24화 (24/200)

# 24

제24화

I-로드 커뮤니티.

인피니티 로드의 모든 영상과 관련 정보를 올리고 유저들끼리 의견개진을 하는 초대형 커뮤니티였다.

이곳에는 하루에도 쉬지 않고 새로운 영상과 게시글들이 올라왔다.

24시간 동안 가장 높은 조회수를 차지하는 게시글 제목 앞에 주어지는 반짝이는 별 이모티콘.

금색, 은색, 동색 순으로 1, 2, 3 위를 나누는 글에서 선우의 글은 금색을 차지하고 있었다.

제목부터가 자극적이었다.

반면 댓글들의 반응은 폭발적.

-짜장 전갈 치사한 새끼들 몹 잡고 있는데 뒤치기를 하네. 인성 갑 ㄷㄷ

-완빵칼 쟤한테 저번에 죽고 내 흉갑 드랍됨. 물론 쟤가 처먹음. ㅇㅇ

-이거 혹시 완빵칼 캐삭빵으로 처발린 거? 영상 링크 주소 타고 가 보니까 캐삭빵으로 완빵칼 발린 거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랙 스콜 망조가 들었네. 니들은 길드 해체가 답이다.

-와, 블랙 스콜 치사한 게 아니고 개 졸렬하다. 진짜. 공성전 앞두고 사냥터마다 피케이 뜨라고 척살령 내린 거 실화였네.

한결같은 블랙 스콜피온 길드를 향한 욕설과 비난이 난무했다.

동시에 선우의 플레이에는 감탄일색.

선우는 블랙 스콜피온의 PK 영상을 발판으로 또 한 번 인피니티 로드 커뮤니티를 뒤집어놓고 있었다.

오크 성 공성전 콘텐츠와 엮어서 블랙 스콜피온 길드의 이미지를 구겨버린 것.

이것을 지켜본 에이전시에서는 저마다의 결론을 내리기 시작했다.

“대표님. 김선우 플레이어 피케이 영상 보셨죠? 우리가 지금 잡지 않으면 놓칩니다. 이 친구 틀림없이 대어예요. 아니지. 그냥 대어가 아닙니다. 고래가 될 잠재력이 있다구요.”

에이플러스 미디어 강 팀장은 대표에게 연락을 한 뒤 선우를 영입하기 위해 어떤 제한 없이 전폭적 지지를 해주겠단 허락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휴우… 이제 영입을 시작해볼까? 아, 그런데 이 사람은 어떻게 된 게 에이전시 계약엔 전혀 관심 없는 거 같다니까….”

강 팀장은 고민이었다.

선우를 영입하기 위해 슬쩍 떠본 적 있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지금쯤이면 다른 에이전시들도 한 번쯤 영입 하려고 찔러보고 있을 건데… 무조건 파격적인 조건을 제안해야겠어.”

선우는 이미 영상 몇 개로 커뮤니티 안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가끔 운 좋게 반짝 인기를 끄는 플레이어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원 히트 원더로 사라지는 플레이어들이 많다는 건 강 팀장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친구는 달라… 뭔가 있다고….”

강 팀장의 직감이 알려주고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플레이어들과 계약을 했던 강 팀장이었다.

경험이 쌓이다 보면 직관이 생기기 마련.

그런 강 팀장에게 선우는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

“기필코 계약하고 만다.”

오늘도 강 팀장은 선우를 향해 구애의 쪽지를 정성스레 작성하고 있었다.

* * *

선우가 찍은 영상이 일파만파 퍼져버리자 블랙 스콜피온 길드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길드장 이강철은 며칠 사이 담배가 엄청나게 늘었다.

“야, 빵칼이 어디 갔냐?”

“빵칼이 행님 지금 충격 먹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가지가지 한다. 지금 내가 시킨 거 제대로 하지도 않고 캐삭빵이나 당한 주제에 잠이 와?”

“이해해주시죠. 빵칼이 형이 캐릭터 얼마나 열심히 키웠는지 행님도 잘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인마! 내가 피케이 할 땐 기습으로 해치우라고 몇 번 말해! 김선우 이 새끼는 딱 보면 틈을 주면 안 된다는 거 감이 안 오냐? 왜 거기서 캐삭빵 하고 지랄이야, 지랄이.”

이강철은 길드원들이 답답했다.

‘내 밑에 있는 것들이 하나같이 멍청하니… 후우… 김선우 이 새끼 반만 따라가도 걱정이 없겠는데.’

비록 자신의 길드를 향해 도전을 한 애송이었지만 탐이 났다.

그렇지만 길드원으로 받을 수는 없는 법.

“다들 앞으로 피케이는 하지 말고 공성전 준비만 철저히 하도록.”

“길드장님. 그래도 저 새끼 보복은 해줘야죠. 빵칼이 형 캐삭빵까지 당하고 우리 쪽 애들 죄다 몰살당한 게 지금 커뮤니티에서 놀림감 되고 있다구요. 이거 놔두면 길드 자존심 구겨지고 다른 놈들도 블랙 스콜피온 한물갔다 생각하고 찔러볼 겁니다.”

“야, 누군 하기 싫어서 안 하는 줄 아냐? 이미 우리 길드가 척살령으로 양아치 짓거리 했다는 거 불만 토하는 애들은 안 보이냐? 저 와중에 또 척살하러 다니면 우리 이미지는 완전 엉망진창 되는 거야.”

이강철은 길드원들에게 공성전에 필요한 자금과 아이템 모으는 데 주력하라고 했다.

* * *

한편 선우는 블랙 스콜피온 길드원들과 결투 영상을 올린 뒤 또 다른 길드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켈리 누나. 오늘 영상 보셨죠? 지금 여기 나오는 애가 쟤가 말한 걔예요. 김선우 라고. 요즘 신인 유저들 중 한참 라이징으로 뜨기 시작한 놈입니다. 예? 아 레벨은 저도 아직 잘… 정확한 레벨은 알려진 게 없는데요. 저렙은 확실해요. 들고 다니는 아이템도 그렇고… 그러면 누나가 직접 만나볼래요?”

라이온 팽 길드의 부 길드장 켈리.

야생마녀라고 불리는 그녀는 600레벨이 넘는 상위 랭커였다.

블러드 스컬 길드장 이강철은 250레벨, 블랙 스콜피온의 황철영은 200레벨이었으니 라이온 팽 길드의 수준을 짐작할 만했다.

켈리의 친오빠가 라이온 팽 길드장이었기에 그녀는 여러 모로 길드 내부의 특혜가 많았다.

그중 하나는 자신만의 파벌을 만드는 것.

언젠가 라이온 팽 길드로부터 독립하여 자신만의 길드를 만들겠다던 그녀의 포부는 남매관계였기 때문에 인정받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인피니티 로드의 길드들은 간부급의 플레이어가 독립하여 자신만의 길드를 만드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곧 잠재적인 경쟁자가 생기는 것이었으니까.

뿐만 아니라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고 있던 길드의 세부 정보를 모두 파악하고 있다면?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 되는 셈이니 길드에서 플레이어 유출은 철저히 단속하고 있었다.

선우는 블랙 스콜피온 길드원들이 또 나타날 걸 대비하여 사냥터 외진 곳을 골라 다녔다.

“으음… 이렇게 보는 눈들이 없는 곳을 다녀도 블랙 스콜 애들이 안 나타나네.”

길드장 이강철이 척살령을 비공식적으로 거둔 상태.

선우가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혹시 척살령을 거둔 걸까? 그럴 리 없을 텐데.”

선우는 블랙 스콜피온 길드의 척살을 오히려 바라고 있었다.

조금 전 켄트 마을 경매장에서 완빵칼을 비롯한 척살대원들의 아이템을 모조리 경매에 붙여 팔아버렸으니까.

선우가 올린 영상의 홍보 효과 때문이었을까?

완빵칼의 양손대검부터 건틀렛, 중장갑, 부츠 등 착용 아이템 모두는 선우에게 꽤 많은 돈을 안겨줬다.

여기에 다른 척살대원들의 모든 아이템들까지 선우가 엄마의 빚을 갚는데 꽤 도움이 될 거라고 자신을 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선우는 다시 자신을 척살하러 나타날 블랙 스콜피온의 먹잇감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계속 날 치러올 줄 알았는데 어째 코빼기도 안 보이냐?”

선우는 잠깐 고민 끝에 다시 메시지 영상 하나를 미끼로 던져보기로 했다.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을 켠 뒤에 선우가 시청자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갑작스런 방송임에도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안녕하세요? 김선우입니다. 오늘 다름 아니라 제가 시청자님들께 한 가지 재미있는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이렇게 방송을 켰습니다. 다들 우려해주신 것과 달리 블랙 스콜피온 길드에서 저를 치려고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일부러 블랙 스콜피온 길드의 주요 사냥터 위주로 몰래 다녀봤거든요? 그런데 한 놈도 보이지가 않아요.”

선우의 말에 시청자들이 흥미를 나타내고 있었다.

-블랙 스콜 애들 쫄았나보네. ㄷㄷㄷㄷㄷㄷ

-와, 님 진짜 짱인 듯. 블랙 스콜피온이 척살령 내리면 정신 나갈 때까지 피케이 해대는 놈들인데 영상 올린 거 한방으로 길드 아닥시키는 클라스 ㄷㄷㄷ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짜장 전갈이 쫄아서 이제 나타나지도 못하고 반박 영상 올리지도 못하고 강철아 보고 있냐? 게임 접어야 할 건 넌 거 같다.

-우와, 진짠가보네. 저분 지금 방송하고 있는 사냥터 블랙 스콜피온 길드가 독점하고 있는 곳 중 한 곳인데 어떻게 된 거지?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선우는 좀 더 과감한 발언을 해보기로 했다.

“제 생각엔 말이죠. 아무래도 블랙 스콜피온 길드가 척살령을 거둔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아니고서는 이런 반응을 설명할 순 없거든요.”

선우의 말은 또 한 번 파장을 불러오고 말았다.

-님, 그 말 책임질 수 있음? 척살령 거둔 거 사실이면 블랙 스콜피온은 이제 해체만이 답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크 성 빈집털이 당하고 보복 공성전 하려고 준비 중인데 갑자기 덜 떨어진 길드원이 캐삭빵 당하고 척살령 들키고 이젠 척살령 거뒀다는 것까지 이거 다 실화임? 실화면 좋겠드아~~~!

-미친… 진짜로 척살령 거둔 건가? 와, 이러면 블랙 스콜은 진짜 실망이 아니고 절망이다. 절망.

-가능하지. 지금 여론 자체가 블랙 스콜 양아치라고 욕 하고 있는데. 블랙 스콜 지금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거임. 방장님 피케이 하려면 여론만 안 좋아지고 그렇다고 놔두자니 이미지 구긴 거 회복 못 하고 다른 길드한테 뒤에서 개무시 당할 거 뻔한데.

-답 나왔다. 이건 블랙 스콜이 저 분한테 쫀 거임. 오크 성 되찾기 전에 길드 해체 위기에 처한 짜장 전갈러들. 해체를 통해 니들이 갑질한 유저들에게 사과 영상 올려라!

선우의 스트리밍 방송은 결국 이강철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야, 지금 당장 반박 영상 올려! 척살령 거둔 적 없다고. 언제라도 보는 즉시 죽여버릴 준비가 돼있다고 해. 빨리!”

블랙 스콜피온 길드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선우가 방송만 했다 하면 자꾸만 의도치 않게 길드가 데미지를 먹고 있었다.

이미 여론은 더 나빠질 수 없는 상태였고 오크 성 공성전까지 구차한 행동이란 목소리가 커뮤니티 내에 커지고 있었다.

블랙 스콜피온 길드원들은 부랴부랴 반박 영상 메시지를 찍어 올렸다.

“팩트만 전해드리겠습니다. 플레이어 김선우를 향한 척살령은 거둬진 적이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김선우가 나타나는 곳에는 언제나 블랙 스콜피온 길드가 따라붙을 것입니다.”

블랙 스콜피온 길드의 반박 영상이 올라오자 선우는 쾌재를 불렀다.

‘그렇지!!! 그렇게 나와 줘야지! 이거 잘만 하면 공성전 치를 필요도 없이 블랙 스콜을 없애버릴 수도 있겠는데?’

선우는 남은 공성전 기간 전까지 블랙 스콜피온의 정신적 피로감을 극도로 높이고자 마음먹었다.

이미 밑바닥을 다지면서 커뮤니티의 인기를 끌기 시작한 선우였다.

선우가 하는 말은 일단 믿고 보는 팬층마저 조금씩 생기고 있었으니 자신감이 더해졌다.

인피니티 로드에서는 길드와 길드간의 전쟁, 혹은 플레이어간의 전투가 반드시 무력충돌로 정해지는 건 아니었다.

‘이거 그냥 떡밥 한 번 크게 던져보는 거다. 물면 좋고 아님 말고. 어차피 난 손해볼 게 없어.’

선우는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발언을 남겼다.

“블랙 스콜피온 길드의 반박 영상 잘 봤습니다. 정말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남겼더군요. 하지만 그런 건 먹히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알고 있거든요. 블랙 스콜피온 길드가 척살령을 거뒀다는 정보가 있으니까요. 저는 믿을 만한 정보를 갖고 시청자님들께 이야기를 한 겁니다.”

물론 선우에게 확실한 정보는 없었다.

블랙 스콜피온 길드가 척살령을 거뒀는지는 어차피 반반의 확률.

선우는 반박 영상을 본 뒤 자신에게 정보가 있다고 미끼를 던진 것이었다.

결국 또 한 방 먹은 건 블랙 스콜피온 길드였다.

길드장 이강철은 담배꽁초를 재떨이가 아닌 모니터에 집어던지며 외쳤다.

“야!! 누가 저 새끼 입 좀 막아라!! 제발 좀 닥치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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