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제21화
선우는 오크 성으로 발론을 데려왔다. 발론을 본 라누와 알굴이 반가워했다.
이들은 오랜 시간 보지 못한 사이였던 만큼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라누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발론을 데리고 올 줄은 생각조차 못 했었네. 자넨 정말 특별한 인간 같군.”
“족장님께서 제게 해주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선우는 열심히 라누 족장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혀를 놀렸다.
갑자기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황금 안개 부족의 족장 라누가 플레이어 ‘김선우’ 님께 크게 감동하였습니다.]
[라누의 신뢰가 이전에 비해 훨씬 높아졌습니다.]
[황금 안개 부족의 권속이 강화되었습니다.]
선우는 알림을 들으면서 궁금한 것이 생겼다.
‘황금 안개 부족의 권속. 이거 아까부터 강화됐다고 나오는데 뭘까?’
라누 족장이 발론과 이야기를 마쳤다.
발론은 마법사 알굴과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족장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황금 안개 부족과 권속이 강화되면 제게 뭐가 도움이 되죠?”
“나의 부족의 군사력을 자네가 원하는 만큼 부릴 수 있게 되네. 아, 자네 혹시 알굴 님에게 권속의 룬을 받지 않았던가?”
“그게 뭐예요?”
“아아… 이거 미안하네. 자네가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군.”
라누는 서둘러 알굴을 불렀다.
“알굴님. 형제에게 권속의 룬을 주시지 않으셨는지요?”
“으응? 아직 내가 주지 않았던가?”
라누와 알굴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선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는 그게 뭔지 잘….”
“내 정신 좀 보게… 이제 늙다 보니… 미안하네.”
알굴이 서둘러 무언가를 소매 안에서 꺼냈다.
뼈와 같은 재질로 만든 둥근 상자였다.
상자의 겉면에는 황금 안개 부족을 상징하는 금빛 안개가 대륙에 깔려 있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 상자 위에 자네의 손을 얹게나.”
“이렇게요?”
“이제 움직이지 말게.”
선우는 알굴이 내민 둥근 상자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위이이잉!
갑자기 상자에서 황금빛 안개가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했다.
안개는 선우의 손등을 타고 손목, 팔뚝으로 이어졌다.
온몸을 감싸 안은 황금빛 안개는 마침내 사방으로 번져갔다.
황금빛 안개가 오크 성 곳곳에 번지자 오크 전사들이 모두 무릎을 꿇으며 경이로운 눈으로 황금안개를 올려다봤다.
황금안개는 오크 전사들에게만 선우와 같이 감싸고 있었다.
선우는 새로운 알림을 들었다.
[황금안개 부족의 권속이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진행률 …%]
[황금안개 부족의 권속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황금안개 부족의 오크 전사들이 플레이어 ‘김선우’ 님을 향해 부족의 서약을 맹세합니다.]
[플레이어 ‘김선우’ 님께 황금안개 부족의 오크 전사들의 소환권이 부여되었습니다.]
‘우와… 대박….’
인피니티 로드는 다른 게임들과 달리 퀘스트 관련 보상을 받을 시 디테일하게 확인해야 되는 것들이 많았다.
특히 퀘스트의 가치가 높을수록 보상이 단순하게 지급되는 것이 아니었다.
선우가 만약 라누에게 권속의 강화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틀림없이 황금안개 부족의 권속이 강화되었단 메시지만 들었을 것이다.
겉으로 사소해보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것이 선우에게 보상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게 만들었다.
‘대박이다… 난 권속이 강화되고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보상이 진행되는 건 줄 알았는데, 설마 이렇게 디테일한 면이 숨어 있을 줄은…. 휴우… 안 물어봤으면 말짱 도루묵 될 뻔했네.’
인피니티 로드의 퀘스트는 선우가 경험한 것처럼 사소한 디테일로 인해 결과가 달라졌다.
고급 퀘스트를 클리어해도 퀘스트의 디테일한 면을 선우처럼 확인을 해보는 플레이어들은 퀘스트의 보상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고 아닌 플레이어들은 보상을 제대로 누리질 못하는 케이스가 많았다.
“라누 님. 정말 고맙습니다.”
선우를 감싸고 있던 황금안개가 어느덧 사라졌다.
“이제 자네는 황금안개 전사들을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권능이 주어졌네. 자네가 어딜 가든 황금안개 부족이 있다는 걸 잊지 마시게.”
이거였다.
처음 라누에게 황금안개 부족의 권속 관련 보상을 받을 때 들었던 메시지.
선우가 인피니티 로드 대륙 어느 곳에 있건 황금안개 부족이 함께 할 것이란 내용의 숨은 뜻.
‘소환의 권능을 말하는 거였어. 그러면 내가 원한다면 황금 안개 부족의 오크 전사들을 소환할 수 있단 건가? 죽인다. 이거.’
선우에겐 소환 스킬도 아직 없었고 마법사 관련 아이템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저기… 라누 님. 그러면 제가 만약 오크 전사들을 소환하고 싶다면 뭘로 소환하는 건가요? 저는 마법사가 아니라서….”
“자네의 손등을 확인해보게.”
선우의 손등에는 황금안개 부족의 상징적인 문양이 새겨져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은 황금안개 부족의 상징일세. 자네가 위기 시 손등 위에 그것을 문지른다면 나의 전사들을 불러올 수 있다네.”
선우의 손등 위에 황금안개 문양이 서서히 사라졌다.
퀘스트만 열심히 클리어 했는데 졸지에 소환 권능 하나가 생겨버렸다.
“대박이 줄지어 터지는군.”
선우는 영상 콘텐츠에 오크 전사들을 소환하는 연출을 상상해봤다.
‘생각만 해도 죽이는군. 대박 터질 콘텐츠를 꽤 뽑을 수 있을 거야.’
선우는 다음 레벨업까지 필요한 영상 콘텐츠를 찍으려고 준비를 했다.
“어라?”
갑자기 귓속말이 왔다.
- 오크 성 소유주 맞죠?
선우는 대답했다.
- 예, 누구신지?
- 저는 라이온 팽 길드에 소속된 유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블러드 스컬 길드의 기습 사건에 대해 몇 가지 확인할 것이 있어 이렇게 귓속말을 전해드리게 되었습니다.
라이온 팽 길드.
선우는 갑자기 대형 길드에서 귓속말이 온 것을 두고 짧은 고민에 잠겼다.
‘뭐지? 왜 갑자기 나한테 귓말을 한 걸까?’
블러드 스컬 길드의 기습에 대해 라이온 팽 길드가 알고 있는 건 당연했다.
선우가 방송에서 떠벌린 것이 커뮤니티에 번졌고 이제 인피니티 로드의 유저들은 라이온 팽의 반응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이거 잘만 하면 블러드 스컬 길드를 아예 편하게 치워버릴 수 있겠는 걸?’
선우가 귓속말에 대답했다.
- 예, 물어보시죠.
- 일단 만나서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 켄트 마을에서 뵙죠.
선우는 오크 성을 나와 켄트 마을로 향했다.
* * *
켄트 마을의 술집.
선우는 라이온 팽 길드의 플레이어와 마주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김선우 씨께서는 이 사실을 퀘스트 하다가 알게 되셨다?”
“정확하게는 알게 된 게 아니고 저는 들은 대로만 얘기했을 뿐입니다. NPC가 전쟁 준비를 한다고 하니까 켄트 왕국이 전쟁 준비를 하는군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했고 그걸 방송에다 얘기를 한 거죠.”
선우의 말에 라이온 팽 길드원은 어이가 없었다.
‘나 뭐 이런 황당한 놈이 다 있지?’
말도 안 되는 우연이 겹쳐 지금 같은 사건이 발생한 것.
NPC가 얘기를 한 것도 따지고 보면 블러드 스컬 길드의 기습 정보의 자세한 내용이 아니었다.
그저 전쟁 준비를 한다는 얘기를 했을 뿐이었다.
‘아니, 대부분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하다가 NPC들한테 듣는 얘기를 그냥 대충 흘려버리잖아? 아마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전쟁 준비를 한다는 얘기를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시했을 건데… 흔히 설정된 대사로 여기고 말도 안 꺼냈을 내용을 이 사람은 방송에다 떠벌린 거야?’
라이온 팽 길드원은 선우를 신기한 듯이 쳐다보며 물었다.
“근데 이거를 방송에다 얘기를 하신 거 보면 혹시 뭐 들으신 정보 같은 게 있어서 나름 직감하고 얘기하신 거 아닌가요?”
“직감은요 무슨.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저는 NPC인 라인하르트 백작이 얘기해준 거 사실대로 얘기만 한 건데요. 내가 전쟁 준비가 블러드 스컬 애들 기습인 줄 알고 있었던 건 절대 아닙니다.”
선우의 이야기를 들은 라이온 팽 길드원은 더는 말문을 열지 않았다.
한참 생각하더니 짧게 인사를 하며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도움 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젠가 길드에서 이 사건에 대해 보상을 드릴 겁니다. 일단 지금은 블러드 스컬 애들을 좀 정리해야 돼서요.”
“아, 저기 혹시나 해서 그러는데 블러드 스컬을 제가 엿먹이고 싶어서 그런 게 절대로 아니라는 걸 걔들한테 좀 전해주세요. 들을 리는 없겠지만요.”
라이온 팽 길드원은 선우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언가 짐작하듯이 피식 웃었다.
‘역시… 이 사람은 정보를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어. NPC의 이야기만 듣고 그런 사건을 만들 리는 없지. 확실한 정보를 갖고 방송에 터뜨린 거야. 그저 지금은 숨기는 게 있으니 NPC 타령 하면서 핑계를 댈 뿐. 뭔가 더 있는 게 확실해.’
선우는 라이온 팽 길드원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리 없었다.
“저… 그러면 이제 가도 되죠?”
“아, 물론입니다. 혹시 다음에 또 연락할 일이 있으면 귓속말을 하겠습니다.”
“예, 그러십시오. 저는 이만.”
선우가 후다닥 사라졌다.
라이온 팽 길드원은 재빨리 로그아웃을 했다.
캡슐에서 나온 길드원이 어딘가로 연락을 했다.
“야, 길드장님께 전해. 기습 정보 알고 있는 놈 좀 더 파헤쳐봐야겠어. 얘 아무래도 수상쩍으니까 잘 봐뒀다가 쓸 만한 놈이면 라이온 팽 길드에서 영입을 해야 할 거 같다.”
* * *
한편 블러드 스컬 길드는 라이온 팽 길드와의 전면전에 대해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행님. 이러지 말고 지금 당장 엎드려야 한다니까요. 라이온 팽 애들 얼마나 센 놈들이 많은데요. 템빨도 장난 아니고 지금 우리가 기습하려던 영지는 장난이에요. 장난.”
“오빠, 빨리 결정해. 이러다가 우리도 블랙 스콜피온처럼 개망신 당하게 생겼어.”
“아, 시끄러 이것들아. 내가 지금 생각을 하고 있는 거 안 보이냐?”
“행님. 생각할 시간이 없다니까요. 지금 일단 먼저 에이전시 통해서 라이온 팽 길드랑 화해를 먼저 하시죠. 이야기부터 한 다음에 우린 그런 의도가 아니었고 오해였다. 오해로 인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벌어진 거다. 누군가 우릴 작업하려고 함정을 설치한 거라고.”
“아, 길드장님. 그 새끼 있잖습니까. 김선우던가? 이 사건을 저지른 새끼요. 이 새끼한테 뒤집어씌우죠.”
“뭐라고 뒤집어씌울 건데?”
“이 새끼가 우릴 작업하려고 라이온 팽 길드를 이용해 먹은 거라고 그럴싸하게 지어내면 되죠.”
“행님, 행님. 지금 이거 방송 보십쇼.”
“야, 이 새꺄. 나더러 생각할 시간이 있냐고 할 땐 언제고 방송 볼 시간은 있냐?”
“아니요. 그 새끼가 지금 방송을 하고 있잖아요.”
“뭐?”
블러드 스컬 길드원들은 일제히 스마트폰을 켜고 선우의 스트리밍 방송 채널로 들어갔다.
방송에는 선우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떠들고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 제가 진짜 흥미진진한 정보를 갖고 왔습니다. 라이온 팽 길드에서 블러드 스컬 길드를 손봐주기로 결정했대요. 지금 제가 라이온 팽 길드원을 직접 만나서 들은 얘기거든요. 구독자 여러분, 시청자 여러분. 그동안 블러드 스컬의 양아치 짓거리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켜오셨습니까? 이젠 걱정 마세요. 라이온 팽 길드가 블러드 스컬을 정리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실 거니까요.”
선우의 방송을 본 블러드 스컬 길드장은 손가락이 덜덜 떨려왔다.
“이, 이 새끼. 지금 공개적으로 라이온 팽 길드가 우리 치라고 여론 몰이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