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제20화
선우는 이미 던전의 몬스터들을 싹쓸이 해버렸다.
크게 어렵지 않은 사냥이었다.
“템빨, 템빨 하는 걸 제가 솔직히 이해를 못 했는데. 이거 써 보니까 장난 아니네요. 저도 이러다가 템빨에 중독될 거 같습니다. 하하.”
선우의 몬스터 사냥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스트리밍 방송 시청자들은 선우의 플레이에 반했는지 달풍선을 계속 쏘고 있었다.
-님, 진짜 개멋있음. 달풍선 남은 거 다 쏴드렸음.
-이분 진짜 신기하네. 아까 그 전쟁 준비 썰 좀만 더 풀어줘요.
-방장님. 지금 님이 얘기한 전쟁 썰 그거 커뮤니티 게시글 실시간 베스트 1위 먹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 이거 블러드 스컬 길드 애들 완전 난리 났는데 혹시 거기 애들 중 누가 스파이인지 알고 있어요? 알면 대답 좀요.
-와… 블러드 스컬 애들 전쟁 준비 하느라고 돈 꽤 썼던 거 같은데 한방에 망해버렸네.
선우는 채팅방의 반응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응? 웬 난리? 블러드 스컬이 전쟁 준비하고 있던 거 진짜였나요? 누구랑 할 거래요?”
시청자들은 선우의 천진난만한 대답에 빵 터져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치겠닼ㅋㅋㅋㅋㅋㅋㅋ 이분 순진한 건지 순수한 건지
-님 확실하게 알고 얘기한 거 아니었어요? 지금 블러드 스컬 길드 완전 난리 났어요.
-이따가 로그아웃하고 커뮤니티 들어가보셈.
-난 이거 왜 이리 웃기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러드 스컬 애들은 지금 스파이 누구냐고 찾고 있는데 당사자는 존나 아무 생각도 없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랙 스콜피온 애들이 아주 벼르고 있던데 이 기회에 블러드 스컬까지 이분 잡아 족치려고 나설 각 ㄷㄷㄷㄷㄷ
-속 시원한 건 나 혼자임? 블러드 스컬도 병신짓 많이 한 양아치 새끼들이라서 꼬시기만 한데.
블러드 스컬 길드는 켄트 왕국과 대립하고 있는 레온베르거 왕국의 영지를 공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온베르거 왕국은 블러드 스컬보다 규모가 큰 대형 길드가 차지하고 있었기에 신중하게 준비를 해왔었다.
블러드 스컬은 벨론 대륙 안에서는 네임드에 속했지만 규모는 중형 길드였다.
반면 레온베르거 왕국을 지배하는 라이온 팽 길드는 인피니티 로드 국내 길드 랭킹 10위 안에 들어가는 대형 길드.
블러드 스컬 길드가 레온베르거 왕국의 핵심 영지 중 한 곳을 공략하려면 기습밖에 없었다.
기습을 하더라도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의 평균 레벨 차이를 감안하면 템빨로 공략하는 것이 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블러드 스컬 길드는 기존의 자금을 모았고 계약한 소속 에이전시 아이콘미디어 역시 꽤 많은 돈을 투자한 상태였다.
모두 템빨로 중무장시키기 위해 아이템을 사들였던 것.
그 모든 것이 고작 선우의 방송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선우는 채팅방의 반응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하아… 뭐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힌 거면 죄송하게 됐네요. 혹시 이 방송을 블러드 스컬 길드원들도 보시고 계실 것 같아서 미리 사과를 드립니다. 맛있게 드십쇼.”
사실 선우는 블러드 스컬 길드와 감정이 좋지 않았다.
길드 소속 오기환과의 결투 이전 길드 지망생이라고 들이대는 양아치 플레이어들까지.
모두 선우의 기억에는 양아치 길드일 뿐 딱히 미안한 감정 따윈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선우의 행동을 지켜보던 블러드 길드원들은 선우의 인사말에 폭발해버렸다.
-야, 나 블러드 스컬 소속인데. 넌 뒈졌어. 이 새끼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감도 못 잡고 있구만?
-우리 행님이 이번 전쟁 준비하려고 쓴 돈이 얼만지나 알아? 이 와중에 달풍선은 오질라게 받던데 아주 배 터지겠다. 어떤 놈한테 들은 정보인지 사실대로 말하면 척살령까진 면하게 해주마. 누가 정보를 줬냐?
-이 새끼 조회수에 달풍선에 남의 길드 기밀 정보 팔아서 장사 시원하게 하네. 아주 칭찬해~ 개새끼야!!!
채팅방은 블러드 스컬 길드원들의 욕설과 흥분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물론 선우는 그런 거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해야 할 것만 할 뿐.
“자, 시청자님들. 제가 이제 던전의 몬스터를 토벌했으니까 이만 퀘스트 보상을 받으러 가야할 시간이 왔네요. 어떤 보상을 받을지 궁금하시죠? 저도 궁금합니다. 하지만 이걸 생방송으로 보여드릴 순 없어요. 자세한 내용은 제가 오늘 저녁에 영상을 업로드 할 테니까 기대해주세요!”
선우가 자신들을 무시하자 블러드 스컬 길드원들은 더 열이 받았다.
-야, 이 새끼가 우리 말이 안 들리냐? 앙? 새꺄. 대답 해봐. 누가 흘렸냐?
-이 새끼 이거 지금 어디에 있지? 가서 족쳐야 대답할 거 같은데.
블러드 스컬 길드원들의 욕설과 시비를 잠자코 구경하던 선우가 스트리밍 방송을 끄기 전에 말문을 열었다.
“어이, 블러드 스컬. 니들 하는 짓 내가 계속 봐왔는데 그냥 넘어가려다가 이거 하난 알려주려고. 니들 전쟁 준비한다고 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 나야 알 바 아닌데 아까 채팅방에 사람들이 알려줬거든. 레온베르거 왕국의 영토를 쳐들어가려고 했다면서? 내가 알기로 거기 지배하는 길드가 라이온 팽이라고 들었는데. 여기 완전 대형 중의 대형이잖아. 블러드 스컬 같은 중형 길드는 아예 상대가 안 되는 급 아니야? 니들 앞날이나 걱정하지 그래?”
선우의 말에 블러드 스컬 길드원들은 순간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깨닫고 버벅거렸다.
-이, 이 새끼… 너 혹시 라이온 팽에서 돈 받고 작업한 스파이였냐?
-설마 라이온 팽 믿고 이런 짓거리 하고 다니는 거냐?
블러드 스컬 길드원들의 욕설 수위가 급격히 낮아졌다.
말투까지 급 공손해지고 있었다.
커뮤니티 전체가 뒤집어진 선우의 정보 발설.
라이온 팽 길드에게도 이 정보가 들어갈 게 분명했다.
자신들의 핵심 영지 중 한 곳을 중형 길드인 블러드 스컬에서 기습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라이온 팽 길드가 어떻게 나올지도 뻔한 거였다.
“블러드 스컬 길드는 아마 라이온 팽 길드에게 어떤 해명을 해야 할지 고민 좀 하셔야겠습니다.”
선우의 말에 결국 블러드 스컬 길드원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채팅방을 퇴장했다.
-크으… 방장님. 사이다 발언 멋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속이 다 시원해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블러드 스컬 새끼들 맨날 사냥터 독점하고, 던전 통행료 받고 피케이 하고 아이템 강탈하고 순 양아치 새끼들이었는데 사이다 오지게 터뜨리시네요. ㅋㅋㅋㅋㅋㅋ
-이참에 라이온 팽에서 블러드 스컬 다 개박살 내면 좋겠음. ㅋㅋ
-블러드 스컬이 이렇게 사라지게 되는 건가 ㄷㄷㄷㄷㄷ
-이분 진짜 볼수록 재미있음. 정보 터뜨려서 블러드 스컬 망하게 만드는 플레이어는 처음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시청자님들. 블러드 스컬의 양아치 짓은 저도 겪어봐서 잘 알고 있죠. 언제 한번 쟤들 손봐주려고 생각만 해본 적도 있죠. 하하하. 그러면 여기서 방송은 끄고 이따가 저녁에 영상에서 만나요!”
선우는 스트리밍을 끄고 라인하르트 백작의 저택으로 향했다.
* * *
“몬스터 토벌을 혼자서 하고 오다니… 정말 굉장하군.”
라인하르트 백작이 연신 감탄했다.
사실 백작은 속으로는 선우가 혼자서 던전의 몬스터를 모두 해치우고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실력을 확인하면서 가능할 거라는 생각은 했고 그랬기에 백작가의 무기 창고를 열고 원하는 무기를 제공했었다.
발론의 황금망치는 소유한 것만으로도 값어치가 있는 귀중한 물건이었기에 라인하르트 백작은 순순히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던전의 몬스터 토벌이란 어렵고 위험한 임무를 선우에게 제안했던 것.
‘놀랍군. 왜 이런 실력자를 내가 들어본 적이 없던 걸까?’
라인하르트 백작은 선우를 볼수록 놀라웠다.
선우가 몬스터 토벌 제안을 받아들일 때까지만 해도 결국 나타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발론의 황금망치를 노리고 찾아온 자들이 선우가 처음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선우는 정말로 혼자서 몬스터 토벌을 완수하고 온 것이었다.
라인하르트 백작의 웃음이 끝나자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라인하르트 백작이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라인하르트 백작이 플레이어 ‘김선우’ 님을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백작님께서 제게 주셔야 할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걱정 말게. 여기 준비해뒀으니까.”
라인하르트 백작은 뒤에 서 있던 집사에게 손짓했다.
집사는 밖으로 나가더니 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상자를 열자 눈부신 황금빛이 먼저 나왔다.
“이것이 자네가 원하던 것이라네. 대장장이 드워프 발론의 황금망치. 고고한 황금방패 가문의 후계자이자 어떤 물건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는 전설의 대장장이의 물건. 이제 주인에게 돌려주겠네.”
라인하르트 백작이 황금망치를 선우에게 건넸다.
황금망치는 아름다운 순금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자루 끝에는 붉은 루비와 알록달록한 사파이어 등 온갖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보기만 해도 눈부실 만큼 아름다운 물건이었다.
“이렇게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발론님께서도 틀림없이 기뻐하실 겁니다.”
선우는 황금망치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아, 그리고 이걸 가져가게.”
라인하르트 백작이 무언가를 선우에게 건넸다.
“라인하르트 가문의 징표일세. 레온베르거 왕궁에 갈 일이 있다면 이걸 보여주시게.”
“레온베르거 왕국과 백작님과 무슨 관련이 있으신지?”
“아, 내가 비록 지금은 켄트 왕국에 소속되어 있네만 나의 선친들께서는 레온베르거 왕국의 귀족 이셨다네. 모종의 사연으로 인해 왕국을 나와 켄트 왕국에 자리 잡은 지 꽤 시간이 흘렀지. 이 징표는 레온베르거 왕국의 귀족이셨다가 나와서 이곳에 자리 잡으신 내 선친의 유품일세. 레온베르거 왕궁에서는 이것을 알아볼 걸세.”
“고맙습니다.”
라인하르트 가문의 징표는 몸에 붙이는 견장 같은 것이었다.
사자가 사납게 포효하는 것 같은 문양이 새겨진 마크.
선우는 라인하르트 가문의 징표를 받았다.
띠링!
[보상으로 라인하르트 가문의 징표를 받았습니다.]
징표를 인벤토리에 넣은 뒤 선우는 라인하르트 백작과 인사를 하고 저택을 나왔다.
“이제 발론에게 가야지.”
* * *
“발론 영감님. 제가 뭘 가져왔는지 아십니까?”
“서, 설마?”
선우가 인벤토리를 열고 황금망치를 꺼냈다.
“아, 아아….”
발론이 황금망치에서 새어나오는 아름다운 순금의 빛을 보며 감탄했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황금망치를 가져오겠다고 했었죠. 여기 이렇게 가져왔으니 이제는 발론님의 것입니다.”
선우가 황금망치를 발론에게 건네자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발론의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드워프 대장장이 발론이 플레이어 ‘김선우’ 님께 감격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대장장이 발론에게 무기 제작 요청을 1회 할 수 있습니다.]
선우에게 황금망치를 받은 발론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벅차오르는 감동을 더는 삼킬 수 없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정말 내게 황금망치를 되찾아주는 인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네.”
발론이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황금망치를 소중히 껴안은 발론이 말문을 열었다.
“자네가 내게 원하는 걸 가져다줬으니 이제 나도 보상을 해줘야겠군. 말해보게. 자네가 원하는 것이 뭐라고 했었지?”
선우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저와 같이 오크 성으로 와서 무기를 만들어주십쇼. 오크 성을 노리는 적들을 막아낼 무기가 필요합니다. 발론님만이 만들 수 있는 무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