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제19화
난데없이 목검을 가져오란 말에 선우는 더 의아해했다.
‘웬 목검? 뭐하자는 거지? 설마 이 와중에 목검 대결이라도 하자는 건가?’
라인하르트는 켄트 왕국에 소속된 귀족이지만 그 이전 고위급 기사이기도 했다.
그는 기사로서 전장을 꽤 누비고 다닌 경험이 있었기에 철혈산맥과 가까운 곳의 땅을 영지로 삼고 가끔 마을을 위협하는 몬스터 토벌에 나섰다.
“자네가 내가 원하는 걸 들어준다고 했으니 난 그럴만한 실력이 되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뿐이라네. 황금망치를 발론에게 돌려주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황금망치는 내가 갖고 있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원하는 걸 자네가 들어줘야 돼. 그러면 나 역시 자네가 원하는 황금망치를 내어주지. 어떤가? 하겠는가?”
“물론입니다.”
“그러면 거기 있는 목검을 들게. 자네의 실력이 궁금해졌으니까.”
라인하르트는 선우의 배짱을 보면서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기사들이 가져온 목검을 든 선우는 라인하르트와 마주 섰다.
“정말 여기서 대결을 펼치시겠습니까?”
“기사가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전투를 할 수 있는가? 적들은 어디서든 나타나는 법이지.”
라인하르트가 목검을 들자 선우 역시 목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제법 기본기는 잘 잡혀있군. 어디 실력도 그런지 확인해보지.”
파앗!
라인하르트가 매섭게 돌격해왔다.
선우가 목검으로 빠르게 방어하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타각! 타각!
목검과 목검이 서로 충돌했다.
‘굉장하군. 배짱을 부릴 만한 실력인 걸?’
라인하르트는 선우의 검술에 짐짓 놀라워했다.
혼자서 자신의 영지에 들어와 다짜고짜 황금망치를 내놓으란 말을 할 만한 실력이었다.
‘이 정도 실력이면 내가 원하는 걸 들어줄 수 있겠군.’
반면 선우는 라인하르트의 검을 어렵지 않게 막아내고 있었다.
‘고위 기사 출신이라더니 실력이 장난 아니야. 하지만 전력을 다하지 않는 거 같은데?’
선우의 직감은 사실이었다.
라인하르트가 갑자기 목검을 멈췄다.
“이만하면 됐군. 자네라면 틀림없이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 거 같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지.”
라인하르트 뒤에 있던 기사들이 목검을 회수해갔다.
“내가 사는 곳에서 북서쪽으로 가다 보면 협곡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네. 그 안쪽에는 동굴이 있는데 그 동굴이 던전 입구라는 사실이 얼마 전 확인됐어.”
라인하르트는 던전이 발견된 뒤로 몬스터 토벌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던전에서는 지금도 몬스터들이 계속 출몰하고 있네. 이제는 마을 근처로 몬스터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지. 결국 내 영지에 소속된 마을에 찾아오는 여행객이나 모험가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내 평판 또한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네.”
“그렇다면 제가 던전을 토벌해 달라 이거군요.”
라인하르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백작님께서는 기사들도 많이 있는데 몬스터 토벌을 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나요?”
“이제 머지않아 켄트 왕국에서 전쟁을 시작할 걸세. 나는 켄트 왕국에 소속된 몸으로 기사들을 더는 몬스터 토벌에 허비할 수는 없네.”
켄트 왕국이 전쟁을 시작한다고?
아마도 어떤 길드에서 켄트 성에 공성전을 신청한 것 같았다.
“그러면 제가 던전에 가서 몬스터를 모두 처치하면 황금망치를 주시겠습니까?”
“물론이네. 그렇게 해준다면 떨어진 민심이 회복될 것이고 나는 기사들을 전쟁터로 데려갈 수 있을 테니까.”
라인하르트의 말이 끝나자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라인하르트 영지 북서쪽의 던전으로 가 몬스터를 토벌하라.]
철혈산맥과 마주하고 있는 라인하르트 영지와 가까운 곳에 던전이 발견되었습니다.
몬스터 토벌을 위해 여러 차례 기사들이 파견되었지만 마땅한 소득이 없었습니다.
기사들의 토벌이 중단되었고 지금은 몬스터들의 개체 수가 번성하여 던전 밖으로 출몰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몬스터들로 인해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지금 라인하르트 영지를 구할 사람은 당신입니다. 던전으로 가 몬스터를 모두 토벌하세요.
등급: 노멀
제한: 없음
조건: 던전 내의 모든 몬스터를 처치할 것
보상: 라인하르트 가문의 징표
연계 퀘스트가 나타났다.
‘발론의 황금망치를 가져오라는 퀘스트에 또 다른 퀘스트가 나올 줄은 생각 못했는걸. 이건 영상 콘텐츠로 올리기엔 딱이다.’
선우는 직감적으로 라인하르트의 몬스터 토벌 퀘스트를 영상 촬영으로 방송해야 한다고 느꼈다.
던전의 몬스터 토벌.
그리고 백작가문의 퀘스트.
모든 것이 지금 선우가 주목받고 있는 대중들의 관심을 증폭시킬 만한 소재였다.
‘이건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해야지.’
선우는 라인하르트 백작에게 몬스터 토벌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 자신감 마음에 드네. 따라오게. 자네에게 무기를 제공하겠네.”
백작을 따라간 곳은 무기 창고.
“이곳에서 원하는 무기를 마음껏 고르시게.”
선우는 가장 먼저 철검을 들었다.
견고하고 그립감이 좋고 가벼웠다.
“안목이 좋군. 그 철검은 발론에게 배웠다던 드워프 대장장이가 만들었던 작품이지. 꽤 오래 됐음에도 여전히 튼튼하고 날이 서려 있어 몬스터 사냥엔 제격이라네.”
철검을 들고 선우는 감탄했다.
‘발론 영감에게 배워서 만든 게 이 정도라고? 그러면 발론이 직접 만든 무기들은 어느 정도일까?’
선우는 기필코 황금망치를 발론에게 가져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철검으로 하겠습니다.”
철검과 가벼운 경장갑 수준의 갑옷과 부츠, 투구를 갖고 무기 창고에서 나왔다.
선우는 완전무장을 한 뒤에 라인하르트 백작에게 받은 지도를 갖고 던전으로 향했다.
“일단 스트리밍 방송부터 켜둘까?”
선우가 방송을 시작했다.
얼마 안 가 사람들이 몰려왔다.
-오! 이분 오크 성 주인이네.
-님 이번에 어디 가요? 성 안 지키고 뭐하시는 거임?
-저번엔 못 보던 무기들로 중무장하셨네. ㄷㄷㄷㄷㄷㄷ 사냥 가시는 건가?
-님 조회수로 돈 좀 버셨나보네요. 얼마 주고 산거임?
-방장님. 짜장 전갈 애들이 안부 전해달래요. 오크 성 30일 뒤에 압도적으로 발라먹겠다고. 님도 안부 전해드릴 건 없음?
-이분 여유 장난 아니시네. 혼자서 오크 성 빈집털이 하고 공성전 준비 안 하고 어딜 싸돌아다니는 거임?
-어차피 30일 남았는데 빨리 렙업 해야지 그러면 오크 성에서 노냐?
백작 가문의 무기로 중무장하니 선우의 외모가 달라보였다.
시청자들은 선우에게 궁금한 게 많았는지 채팅창은 끝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아, 관심 갖고 지켜봐주시는 구독자님들, 그리고 오늘 처음 들어오신 시청자 여러분 모두 반갑습니다. 저는 이번에 퀘스트를 받고 던전으로 가고 있거든요. 던전에 가서 몬스터 토벌을 모두 하는 게 이번 퀘스트의 골자입니다.”
선우의 말에 채팅방이 들썩거렸다.
-지존. 몬스터 토벌 혼자 하러 가시는 거임? 저분 렙 정확히 몇인지 궁금하네.
-무기를 보니까 돈 좀 바르셨나봄. 후원금 좀 시원하게 받으신 거 같은데 얼마 받으셨는지 공개 좀 하시죠.
-후원금이 아니라 계약하신 거 아님? 요즘 에이전시들 유망주급 플레이어들 엄청 밀어준다고 하던데.
-렙이 낮아도 템빨로 몬스터 토벌 가능할 정돈지 궁금하다.
-방장님. 달풍선은 몇 개든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빨리 던전 가서 몹들 다 쓸어버리시죠. 그러면 달풍선을 난사해드리겠음. ㅇㅇ
-ㅋㅋㅋㅋㅋㅋㅋ 템빨 자신감 보솤ㅋㅋㅋㅋㅋㅋㅋㅋ
선우는 채팅방 반응을 살펴가면서 던전으로 계속 가고 있었다.
아직 던전까지 가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다보니 선우는 계속 여러 가지 썰을 풀어대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시청자님들 제가 한 가지 정보를 알려드릴까요? 저는 지금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보니 여러 정보를 주워듣게 되거든요. 이번 퀘스트를 받다가 우연찮게 알게 된 건데 켄트 성이 지금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켄트 성을 먹고 있는 길드가 누구랑 공성전을 하려는 건가? 아니면 길드전? 혹시 아시는 분 계세요?”
선우의 말에 갑자기 채팅방이 또 한 번 뒤집혔다.
-미친. 켄트 성 전쟁 준비 실화임?
-켄트 성 지금 블러드 스컬이 먹고 있는데 여기 애들 전쟁 준비한단 소린 못 들어봤는데. 님 어디서 들었어요?
-ㄷㄷㄷㄷㄷㄷㄷ 이건 또 먼 소리냐 ㄷㄷㄷㄷㄷ 켄트 성은 언제 또 전쟁 한다는 거임?
-와, 이 방장님 정보력 장난 아니시네. 초보인 걸로 아는데 어디서 이런 정보력을 갖고 계신건지 진짜 부럽다.
-님, 그거 확실한 정보 맞아요? 제가 블러드 스컬 길드 애들 좀 아는데 확인해볼 거임.
선우는 채팅방의 반응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 저도 들은 거라서 정확한 건 아닐 걸요. 근데 이거 뭐 알려지면 안 되는 정보였나 보죠? 어차피 켄트 성은 내 꺼 아니라서. 하하하.”
선우는 자신이 시간 때우려고 풀어대는 이야기가 인피니티 로드 커뮤니티를 또 한 번 뒤집었다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했다.
“야, 이거 지금 어떻게 된 거야? 왜 이 정보가 새나가고 있는 건데?”
난리가 난 건 블러드 스컬 길드였다.
캡슐에서 나와 잠깐 머리를 식히며 간식을 먹고 있던 블러드 스컬 길드 간부가 커뮤니티에서 실시간 베스트로 올라오는 글을 봤기 때문이었다.
글의 제목은 하나같이 짧고 내용은 단순했다.
-야, 켄트 성에서 전쟁 준비한다고 하는데 아는 사람?
-블러드 스컬 애들 누구랑 전쟁 한다던데 이거 사실임?
-전쟁 준비 밖에 안 알리고 하는 거면 기밀 정보 같은데 이거 누설 된 거 아닌가 ㄷㄷㄷㄷ
-블러드 스컬 누구랑 길드 전 뜰 준비한다고 들었음. 진짠가 보네. 근데 이거 어떻게 새어 나간 거지? 누가 알고 유출시킨 거면 블러드 스컬에 스파이 있는 건가?
블러드 스컬 길드와 계약한 업계 상위 에이전시 중 하나인 아이콘미디어 역시 발칵 뒤집혔다.
“아니 시발, 이거 왜 터진 거야? 야, 이거 누가 떠벌렸냐?”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길드장한테 빨리 연락해봐. 이런 젠장. 레온베르거 왕국하고 영지전 기습 준비하는 거 이렇게 새나가면 준비했던 거 다 물거품이잖아. 길드에 무기 공급하려고 돈을 얼마를 썼는데.”
아이콘미디어의 영업팀에서는 블러드 스컬 길드 간부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팀장님, 지금 확인해 봤는데 일단 길드원 내부에서는 터뜨린 사람이 없다고….”
“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자빠졌어? 그러면 스파이가 안 했다고 하지. 내가 했다고 자랑하고 다닐 거 같냐? 누가 정보를 까발렸는지 확인해보라고 해.”
인피니티 로드 커뮤니티 실시간 베스트 1위는 결국 선우가 아무 생각 없이 떠들어댄 정보 관련글이 차지하고 말았다.
커뮤니티를 모니터링 하던 블러드 스컬 길드장 황철영은 말없이 담배를 물었다.
“후우… 야, 이거 관련글 읽어보니까 어떤 새끼가 스트리밍 방송 하면서 씨부린 거 같은데 누가 했는지 알아봐.”
“행님. 제가 알아보니까 김선우 라는 애 같습니다.”
“걔가 누군데?”
“그 왜 있잖아요. 이번에 오크 성 먹은 애요.”
“아, 그 빈집털이 한 새끼?”
“예, 걔가 지금 스트리밍 방송 하면서 켄트 성에서 전쟁 준비한다고 썰 풀고 있나 봅니다.”
“하, 나 이거 어이가 없네. 이 새끼가 어떻게 그 정보를 안 건데?”
“그건 아직 잘… 지금 애들이 김선우 방송 채팅방 들어가서 확인하고 있는데 사실이라고 합니다. 애들이 그거 때문에 난리 나서 썰 더 풀어보라고 달풍선 난사를 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황철영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아, 이 새끼 봐라. 전쟁 준비는 우리가 다 하고 돈은 엉뚱한 놈이 혼자 빨아먹고 있네?”
“행님, 그 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김선우 스트리밍 방송 조회수가 엄청 올라가고 있어서 이번 달 정산금도 엄청 불어나고 있데요.”
“닥쳐! 이 새끼야. 누가 물어봤어?”
“죄송합니다. 행님.”
“빨리 이 새끼가 어떻게 정보를 알게 된 건지 알아봐.”
선우는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도 없었다.
이미 던전에 들어왔고 채팅방의 구독자들이 보란 듯이 몬스터 사냥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하, 시청자님들. 어떻습니까? 제가 크리티컬 데미지 뜰 거라고 했죠? 달풍선 300개 주시겠다고 하신 분 기억하고 있습니다. 헉!! 고맙습니다. 달풍선 300개 소중하게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