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제18화
선우는 철혈산맥으로 가려고 중간 마을에 들렀다.
라인하르트 영지.
켄트 성과 친분을 맺고 있는 라인하르트 백작의 땅이었다.
“멈춰라. 이곳은 라인하르트 백작가의 땅. 무슨 일로 왔느냐?”
백작의 영지는 경비가 삼엄했다.
“저는 철혈산맥으로 가고 있는 모험가입니다. 잠깐 물품을 살 게 있어서 이곳 영지의 마을에 들렀습니다.”
“모험가?”
경비병들은 선우의 차림새를 위 아래로 살폈다. 이들은 여전히 의심스런 눈빛으로 선우를 경계했다.
“뭐 때문에 철혈산맥으로 가려는 것이냐?”
“드워프 족들과 거래를 하려고요. 저는 산 속의 천연자원들을 구해다 켄트 마을에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겸업으로요. 하하.”
선우의 말에 경비병들은 의심을 거뒀다.
“저쪽으로 가면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을 거다. 이곳에서 소란 피지 말고 얌전히 나가거라.”
“예, 고맙습니다.”
선우는 재빨리 경비병들에게 벗어났다.
마을 상점으로 가서 물약 몇 병과 식량을 조금 샀다.
선우는 마을을 벗어나 철혈산맥 근처 오크의 숲으로 향했다.
숲을 가로질러 철혈산맥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구워억!”
“으아악!”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선우는 재빨리 뛰어갔다.
일반 오크 한 마리가 누군가를 쫓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드워프였다.
“일단 구해줘야지.”
선우는 재빨리 오크를 향해 돌격했다.
하이 오크가 아닌 일반 오크라서 지능은 포식자 그 자체.
드워프는 맨손으로 돌을 던지면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오크가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들려던 찰나.
퍼억! 퍼퍽!
선우가 체력 강탈 스킬로 오크를 공격했다.
오크는 갑작스런 공격에 뒤를 돌았다.
퍼퍼퍽!
오크의 공격에도 선우는 체력이 계속 올랐다.
선우가 공격할 때마다 오크의 체력이 깎였고 선우의 체력으로 들어왔으니까.
“퀘엑!”
[오크를 처치하였습니다.]
알림을 들으며 선우는 드워프에게 갔다.
“고맙습니다. 저를 구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드워프가 넙죽 인사를 하면서 일어났다.
선우가 구한 드워프는 NPC였다.
‘혹시 퀘스트 같은 게 있을까?’
대장장이 발론을 찾아야 하는 선우로서는 드워프에게 물어볼 게 많았다.
“저 혹시 드워프 대장장이 발론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나요?”
선우는 대뜸 본론부터 들어갔다.
“예? 발론 영감을 어떻게 알고….”
드워프의 대답에 선우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렇지! 이럴 줄 알았어! 행운이 따른다.’
선우는 발론을 찾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드워프가 말문을 열었다.
“오크 족장 라누. 발론 영감과 같이 만난 적이 있었죠. 저 역시 라누 님께서 고향을 되찾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크의 숲에 들어왔다가 죽을 뻔한 겁니다. 발론 영감님을 찾으시는 분이라니 제가 직접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따라 오시죠.”
선우는 생각보다 일이 빠르게 풀리고 있단 느낌을 받았다.
드워프를 따라 선우는 오크의 숲을 빠져나와 철혈산맥으로 들어갔다.
철혈산맥은 철혈산이라 불리는 산을 둘러싸고 있는 수십 개의 봉우리들이었다.
그야말로 산세가 험하고 사나운 몬스터들로 가득한 죽음의 산.
이곳에 드워프 족들이 터를 잡고 산성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한참을 철혈산을 올라간 선우의 눈앞에 산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이런 곳에 산성을 짓고 살줄은….”
“발론 영감님께서 지으신 산성입니다. 이곳을 철혈산성이라고 부르죠. 황금방패 가문의 후계자이신 발론 영감님이 아니셨다면 우린 모두 옛날에 죽었을 겁니다. 이곳 대장간 사람들은 모두 발론 영감님을 존경하고 있죠.”
드워프가 선우는 산성 안으로 안내했다.
철혈산성은 성벽 전체가 모두 날카로운 창검으로 박혀 있었다.
창검 사이로는 오래 전 격렬한 전투를 암시하는 것처럼 검게 변색된 피로 얼룩져 있었다.
“이보게, 발론 영감님께선 어디 계시는가?”
“집으로 들어가셨어. 오늘 피곤하시다고.”
“그렇군. 이보슈, 이쪽으로.”
선우는 드워프를 따라 발론의 집으로 갔다.
발론의 집은 드워프들의 집과 다를 건 없었다.
다만 대문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강철로 만든 방패를 반으로 갈라 만든 것처럼 대문이 아주 튼튼해 보였다.
“영감님!! 접니다! 실리요!”
“으응? 실리가 왔는가?”
부스스한 눈으로 수염을 만지며 드워프 영감 발론이 나왔다.
드워프 특유의 몸통과 굵은 팔뚝, 짧은 목에 하얀 수염이 덥수룩한 대장장이.
한 손에는 대장간에서 얻은 흉터가 팔뚝까지 이어져 있었다.
눈빛은 완강한 성품을 나타내듯 강렬했다.
한 손에는 럼주를 들고 발론이 실리에게 물었다.
“저자는 누군가?”
“이분은 저를 구해주신 인간입니다. 이름이…?”
“김선우입니다.”
“기…기므?”
“됐고, 무슨 볼일로 날 찾아오셨는가? 인간이 이곳을 찾아온 건 오래 전 라인하르트 놈의 기사단 외엔 여태껏 없었는데.”
발론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선우는 직감적으로 드워프 발론이 인간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다는 걸 느꼈다.
“아, 저는 오크 성의 소유주로서 황금 안개 부족의 족장 라누의 말을 전하러 왔습니다.”
“라누?”
선우의 말에 발론이 눈을 치켜떴다.
“잠깐만. 오크 성의 소유주? 자네가? 인간이 어떻게? 오크 성은 내가 듣기론 인간 세력들로 인해 황폐해졌다고 하던데.”
“아닙니다. 제가 오크 성을 되찾아 황금 안개 부족의 터전으로 만들어 줬습니다.”
“무어라…?”
선우의 말에 발론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입니다. 저를 따라 오크 성에 오셔서 확인해보시면 됩니다. 라누 족장님께서 발론 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시거든요.”
“으음….”
발론이 갑자기 팔짱을 끼며 근엄한 눈빛으로 선우를 노려봤다.
“나는 아직 자네를 믿을 수 없네. 인간들이란 언제나 나의 능력을 원했었지. 이곳 성을 들어오면서 성벽에 붙어있던 창검을 봤을 테지? 거기에는 내 능력으로 자신들의 이득만 생각하던 인간들의 후회가 서려 있지. 나는 인간 놈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믿을 수 없어!”
생각보다 인간을 향한 불신이 강하게 느껴졌다.
선우는 여기서 물러날 수 없었다.
30일 남은 오크 성의 공성전.
대장장이 드워프 발론의 능력을 황금 안개 부족이 원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어떻게든 이 뚱땡이 영감을 데려가야 한다.’
선우는 먼저 발론의 감정을 풀어보기로 했다.
“발론 영감님. 저는 다른 인간들과 다릅니다. 라누 족장님이 이건 보증해줄 수 있습니다.”
“하! 인간들의 번드르르 한 거짓말 따위는 이젠 듣기도 지겹다네.”
“아닙니다. 발론님께서 원하시는 게 있다면 제가 뭐든 해드리겠습니다.”
선우의 말을 들은 발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으음… 진짜로 내가 원하는 걸 뭐든 해 주겠다?”
“물론입니다.”
선우를 다시 흘겨보던 발론이 코웃음을 쳤다.
“하! 누가 또 속을 것 같으냐?”
“진짜라니까요. 원하시는 게 뭔데요?”
“으음….”
발론은 다시 팔짱을 끼고 의심 섞인 눈으로 선우를 노려봤다.
“정말로 자네가 내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겠다 이거지?”
“예.”
“좋다. 그러면 지금 당장 라인하르트 놈이 가져간 내 황금망치를 갖고 오게. 그러면 내 자네를 믿도록 하지.”
“황금망치요?”
“내가 쓰던 대장간의 물건이다. 그걸 빌어먹을 라인하르트 놈이 가져갔으니 당장 그걸 내게 갖고 와. 그러면 자네가 무슨 말을 해도 믿고 따르겠다.”
발론의 말이 끝나자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대장장이 드워프 발론의 황금망치를 찾아라.]
드워프 족들을 지키기 위해 철혈산맥에 산성을 세웠던 대장장이 드워프 발론.
그는 황금방패 가문의 후계자로서 지니고 있어야 할 가문의 상징인 황금망치를 잃어버렸습니다.
황금망치는 철혈산맥과 마주한 영지의 주인이자 켄트 왕국의 귀족 라인하르트 백작의 손에 있습니다.
황금망치를 되찾아 발론의 신뢰를 얻으세요.
등급: 노멀
제한: 없음
조건: 황금망치를 가져올 것
보상: 발론에게 무기 제작 요청 1회
퀘스트를 받은 선우는 발론에게 물었다.
“라인하르트 백작이 황금망치를 어디에 숨겨놓았는지 알 수 있나요?”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해야 할 거 아닌가!”
럼주를 계속 마시던 발론이 혀가 꼬부라진 말투로 웅얼거렸다.
“그러면 곧 황금망치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선우가 발론의 집을 나왔다.
“라인하르트 백작이면… 아까 내가 오면서 들렀던 마을로 가면 될 건데… 거긴 너무 멀잖아.”
“이보슈!”
뒤따라 실리가 나오면서 선우를 불렀다.
“왜요?”
“자네, 라인하르트 백작의 집이 어딘 줄 알고 가는 건가?”
“아까 들렀던 마을로 가서 물어보려고요.”
“이 사람 참. 따라와 내가 안내해주지.”
“고맙습니다.”
실리는 꽤 친절하게 선우를 대했다.
선우는 실리를 따라서 철혈산에서 내려왔다.
한참을 따라가니 멀리 웅장한 저택이 보였다.
“저곳이 라인하르트 백작의 집이라네. 부디 몸조심하시게. 난 자네가 꼭 영감님의 황금망치를 되찾아줄 거라고 믿으니까.”
“고맙습니다. 꼭 황금망치를 가져올게요.”
실리는 다시 철혈산으로 올라갔다.
선우는 라인하르트 백작의 집으로 갔다.
1시간쯤 걸었을까.
갑자기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24시간이 완료되어 레벨업 하였습니다.]
[모든 스텟이 1씩 올랐습니다.]
[보상으로 스킬 사용권 1장이 지급되었습니다.]
[사용 중이던 체력 강탈과 맹독의 진 스킬의 시간이 완료되었습니다.]
[체력 강탈 스킬과 맹독의 진 스킬이 소멸되었습니다.]
가는 길에 레벨업이 되자 선우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상태창]
이름: 김선우
레벨: 6
직업: 인피니티 마스터(Only one)
칭호: 없음
근력: 6
민첩: 6
체력: 6
마력: 6
스킬: 없음
스킬 사용권 : 1장
“일단 사용권은 조금 있다 써야지.”
선우는 다시 라인하르트의 집으로 향했다.
“멈춰라.”
“백작님께 볼일이 있어 왔습니다.”
“네놈이 누구라고 감히 백작님을 보러 왔다는 것이냐?”
영지를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이 선우를 가로막았다.
“백작님께 안내해주시면 자세히 설명을 드릴 것입니다.”
경비병들은 모두 NPC들.
지금 선우는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비병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경비병들이 의심스런 눈으로 선우를 백작의 집으로 데려갔다.
“나를 찾아 왔다고? 자네는 누군가?”
“라인하르트 경께 드릴 말이 있습니다. 황금망치는 어디 있습니까?”
선우는 쓸데없는 말을 돌려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황금망치를 가지러 왔으면 어디 있는지 물어보는 게 가장 편하고 빠른 길.
갑작스런 물음에 당황한 건 라인하르트 백작이었다.
“그걸 자네가 왜 궁금해하지?”
“그 물건은 백작님의 것이 아니니까요. 저는 그걸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온 것입니다.”
라인하르트는 선우를 한참 노려보다가 갑자기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 배짱 한 번 두둑하군. 여기가 어디인 줄 아는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누군지 알겠군.”
“물론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혼자 이곳에 찾아와 대뜸 황금망치를 내놓으라고? 그것도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한다? 그 말은 내가 황금망치 도둑이라는 뜻으로 들리네만?”
“저는 백작님을 도둑이라고 한 적 없습니다. 사실을 전달할 뿐입니다. 황금망치는 대장장이 드워프 발론의 손에 있어야만 가치가 있으니까요.”
선우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라인하르트 백작이 말문을 열었다.
“좋다. 자네의 말대로 황금망치를 드워프 발론에게 돌려줘야한다고 치자. 그러면 난 뭘 얻게 되지?”
라인하르트의 말에 선우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라? 이건 뭐지? 혹시 연계 퀘스트인가?’
아직 확실하지 않았기에 선우가 슬쩍 미끼를 던졌다.
“백작님께서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말해보시죠.”
선우의 대답에 라인하르트가 무언가 만족한 듯이 물었다.
“그 전에 내가 자네 실력을 좀 확인해야겠군. 이봐. 목검을 가져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