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제16화
선우는 먼저 어제 업로드 했던 영상의 조회수를 확인했다.
“미친… 조회수가 왜 이렇게 높아졌지?”
선우의 영상은 인피니티 로드 영상 공성전 분야 베스트 랭킹 20위에 진입한 상태였다.
인피니티 유저들의 영상은 인피니티 로드 개발사가 운영하는 통합 서버에 등록되어 날마다 조회수로 랭킹이 뒤바뀌었다.
고작 하루만에 초보의 영상이 공성전 분야에서 랭킹 20위에 올라버린 것은 극히 이례적인 케이스.
“조회수가 백만? 하루만에? 진짠가?”
선우는 오크 성 공성전 영상의 조회수를 뒤에서 다시 헤아렸다.
“진짜네… 미친….”
인피니티 로드의 영상들은 날마다 국내, 해외의 플레이어들과 팬들이 보기 때문에 인기를 끌면 하루에 백만 명 단위로 조회수가 따라붙는 건 흔했다.
하드코어 유저부터 라이트한 팬층까지 전 세계 1억 가량이 스마트폰만 있으면 인피니티 로드의 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특히 상위 랭커들이 펼치는 화려한 퍼포먼스 혹은 대형 길드간의 전쟁 같은 스케일 넘치는 영상들은 조회수가 이미 억 단위를 가볍게 넘어가는 건 기본.
반면 선우는 이제 고작 레벨 5.
인피니티 로드 역사상 전무후무한 케이스였다.
“우와… 내 방송 구독자 수가… 하루만에 10만 명이 붙었어…. 미쳤다…. 자고 일어나니 10만 명이 생겼어…. 대박….”
구독자는 인피니티 플레이어들이 올리는 방송 채널을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사람들이었다.
조회수가 100만 명이 넘었는데 구독자수가 10만 명인 건 아직 선우가 올린 영상들의 개수가 극히 적었고 사람들의 인기를 끌 만한 영상은 오크 성 공략 외엔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우의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이 사람 뭔데 조회수가 이렇게 많이 붙었지? 네임드 랭커인가?
-오크 성 공략 영상 이거 방 주인장이 한 거 맞아요? 답글 부탁요.
-쩐다. 영상 개수는 몇 개 안 되는데 그중 하나가 조회수 100만이 넘어 ㅋㅋㅋㅋㅋㅋ
-이거 조회수 매크로 돌린 거 아님?
-주작 냄새가 난다. 신고 ㄱㄱ
정상적인 반응들이었다.
선우의 방송 채널에는 초보 플레이어들이라고 쓰여 있는 것 같은 영상 몇 개만 있었으니까.
하지만 선우는 일일이 대꾸하지 않았다.
오직 영상으로 보여주면 되니까.
“오크 성 공략 영상은 확실히 어그로는 잘 끌었네. 이 정도면 게시글 반응이 이해가 되는걸.”
선우가 커뮤니티에 올렸던 게시글에 자신의 방송 채널 주소를 링크시켰기 때문에 영상의 조회수가 더 빨리 불어난 것이었다.
오크 성 공략 영상의 내용은 사실 크게 특별한 게 없었다.
선우가 데리고 온 오크 전사들이 성 내부에 뿔뿔이 흩어진 플레이어들을 각개 격파한 것.
그리고 성을 되찾은 것들이 영상 콘텐츠의 골자였다.
특별한 내용이 아닌데 선우가 올린 영상의 조회수가 폭발한 건 커뮤니티에 올린 게시글 때문이었다.
선우는 인피니티 로드 커뮤니티로 들어가 자신이 올리고 잤던 게시글을 확인했다.
“댓글이… 1천 개가 넘었네?”
자고 일어났더니 선우가 올린 게시글은 커뮤니티 전체 조회수 베스트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댓글 수와 추천 수까지 압도적.
선우가 올린 게시글의 제목부터가 자극적이었다.
<블랙 스콜피온 길드가 버린 성 주워먹는 법>
단순한 제목을 붙였는데 커뮤니티 유저들의 반응은 엄청났다.
선우는 댓글들을 하나씩 확인해봤다.
-미친 나 저거 어제 생방송 떡밥인 줄 알고 개쌍욕했는데 진짜였네 ㄷㄷㄷㄷ
-어이없네. 블랙 스콜 이 병신들 오크 성 그냥 버린 거였구만. 그래놓고 무슨 겉으로 오크 성은 길드의 주요 영역 입 턴 거였군.
-전갈 새끼들 꼬시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성 먹은 분, 블랙 스콜피온에서 척살령 1호 당첨요. 다른 캐릭터 알아보셔야겠네요.
-미친 ㅋㅋㅋㅋㅋ 저거 실화임? 오크 성을 지키는 애들이 몇 명 되지도 않어. 그마저도 죄다 처놀고 자빠졌고. 하긴 오크 NPC들 있으나마나한 상태로 버린 성이었으니까 이해는 된다.
-블랙 스콜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네. 지금 일개 플레이어 하나한테 털린 거 아냐?
-혼자 턴 건 아니지. 오크 전사들 숫자를 봐라. 저 정도로 밀어붙였는데 버린 성 털리는 건 당연한 거임.
-쨌든 전갈 애들 이번에 개망신 당한 건 팩트임. 저 새끼들 초보 애들 막 피케이하고 템 주워 먹고 배 째라 하고 순 양아치 새끼들이었는데 시원하네 ㅋㅋㅋㅋ
-블랙 스콜피온은 당하고도 남죠. 더 당해야 할 새끼들인데 이거 올리신 분 담번엔 블랙 스콜 메인 성까지 털어주시면 달풍선 매달 후원해드릴게요.
반응들은 제각각 달랐다.
하지만 모든 유저들이 한 가지 의견엔 공감하고 있었다.
블랙 스콜피온 길드에 대해 쌓여있던 것을 선우가 해소시켜줬다는 것.
선우는 게시글을 확인하면서 채널에 업로드 된 영상의 댓글을 확인했다.
-여기가 그곳인가? 블랙 스콜 애들 오크 전사들에게 밟혀 죽었다는 곳 ㅋㅋㅋㅋㅋㅋ
-블랙 스콜피온 길드 간판 떼라. 내가 지어줄게. 짜장 전갈 어떠냐?
-야, 니들 이거 주작된 거 알고 있냐?
-님들 이거 주작이니 속지 마요. 내가 아는 애가 블랙 스콜피온 길드원인데 이거 구라라던데.
선우의 게시글과 영상을 보는 사람들은 꽤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건 블랙 스콜피온 길드 역시 마찬가지.
“야, 중수야. 이거 뭐냐?”
“지금 알아보는 중입니다.”
“알아봐? 오크 성 먹혔는데 이제 와서 뭘 알아보는데?”
블랙 스콜피온 길드장 이강철은 강중수를 흘겨보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선우가 올린 오크 성 공략 영상은 하루아침에 블랙 스콜피온 길드를 뒤집어놨다.
“오크 성 관리하는 거 내가 신경 쓰라고 했냐? 안 했냐?”
“나름 신경은 썼습니다만….”
“아, 신경 쓰셨어요? 그러면 신경 써가지고 오크 성이 먹혔구나. 저딴 초짜 새끼한테.”
강중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시발 길드장이란 새끼가 신경 안 쓰는데 우린들 신경 쓰고 싶냐? 이제 와서 신경 쓰는 척은… 병신 같은 새끼.’
이강철은 한숨을 뱉으면서 강중수에게 물었다.
“중수야. 여기 지금 이 새끼 올린 글에 달린 댓글 베스트 1위가 뭔 줄 아냐? 짜장 바른 전갈이래. 블랙 스콜피온이 오늘 부로 짜장 전갈 길드가 됐어. 중수는 이걸 어떻게 생각해?”
강중수는 입술을 깨물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후우… 나 지금 에이전시랑 이 문제 좀 얘기하러 나가봐야 되니까 그 전에 저거 오크 성 가져와라.”
* * *
선우가 올린 영상은 에이전시들 모두 지켜보는 중이었다.
특히 업계 1위로 평가받는 에이플러스 미디어.
영업 1팀 강 팀장은 커피샵 테이블 위에 올린 태블릿 PC로 선우의 영상을 노려보며 휴대폰만 초조하게 확인했다.
마주 앉은 영업 사원 김지영은 아이스커피를 마시면서 물었다.
“팀장님. 이 사람 영입해야 되지 않을까요?”
“기다려봐. 이거 진짠지 가짠지 확인하고 해야지. 지금 대표님이 블랙 스콜피온 소속된 에이전시랑 얘기 중이니까 일단 대기해.”
“그 사이 다른 곳에서 데려가면요?”
“1시간 사이에 데려가냐?”
“블랙 스콜피온이랑 계약한 에이전시면 둠 컴퍼니인데 여기에서 확인 안 해줄걸요. 지금 완전 블랙 스콜피온 엿 먹은 꼴인데….”
“그러니까 지금 대표님이 엿 주고 계시잖아. 이 새끼들 그동안 우리들이랑 계약 예정이던 플레이어를 얼마나 빼갔냐? 기다려. 대표님 연락 오면 쪽지 보내. 만약 진짜면 무조건 얘 데려와야 돼.”
“근데요. 팀장님. 이 사람 만약 계약 안 한다고 하면요?”
“하게끔 만들어야지. 원하는 거 뭔지 물어보면서 무릎 꿇는 연습도 미리 해두라고.”
“아 뭐예요? 업계 1위는 우린데 그러면 계약에서 지고 들어가는 거잖아요. 이 사람 딱 봐도 초보인데 굳이 이 사람을 꼭 데려와야 할 필요는 없….”
“야. 딱 보면 초보로 보이냐? 그건 네가 아직 이 업계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초보라서 그런 거야. 내 눈엔 뭘로 보이는지 아냐?”
“뭘로 보이는데요?”
“돈, 대박, 초대박, 스타 이런 걸로 보인다고 지금. 야, 잠깐. 대표님 연락 왔다.”
* * *
선우는 자신이 올린 게시글과 영상을 봤다며 온 쪽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쪽지는 선우와 먼저 계약을 하고 싶어 하는 에이전시들이 많았다.
특히 기존 대형 에이전시에서 독립하고 나와서 새로 차린 에이전시들은 더욱 절실하게 쪽지를 보내고 있었다.
오직 선우와 계약을 할 수 있다면 있는 거짓말 없는 거짓말을 쥐어짜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질 정도였다.
<김선우 님 안녕하십니까? 올려주신 글과 영상을 보면서 감동했습니다. 김선우 님이야말로 인피니티 로드의 다음 세대를 책임지고 이끌 슈퍼스타의 잠재력을 지닌 유저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저는 김선우 님의 오크 성 공략 영상을 보면서 그 말이 떠오르더군요. 어떠십니까? 제가 대표로 있는….>
<이렇게 쪽지를 보내드리게 돼서 정말로 기쁩니다. 김선우 님. 저는 오크 성 공략 영상을 보면서 충격을 받은 사람으로서….>
선우는 쪽지를 읽으면서 대충 답장을 해줬다.
“입술에 침은 바르고 쪽지를 보내시는지 궁금하군. 미안하지만 아직 계약은 이릅니다요.”
정확하게는 선우 마음에 쏙 드는 조건을 제시하는 곳이 없었다.
신생 에이전시들은 대부분 유망주라 여기는 플레이어들을 무턱대고 계약한 뒤 단물 빨아먹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계약 한 번 잘못한 걸로 캐릭터 삭제하는 플레이어들은 부지기수.
법정 싸움까지 가는 케이스도 많았다.
선우는 계약을 잘못해서 남의 입에 꿀을 넣어주긴 싫었다.
“내가 황금 안개 부족으로부터 알게 된 이야기들의 가치는 아직 파악 불능 수준이지. 좀 더 퀘스트를 진행해보면 진짜 가치가 어느 정돈지 확실하게 드러날 거야. 이걸 남들하고 나눠먹을 순 없지.”
선우는 자신에게 들어온 메인 스토리 등급의 퀘스트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메인 스토리 등급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었다.
선우의 손에 쥔 스토리는 숨겨진 역사.
이것만으로도 인피니티 로드의 해설서를 다시 써야 하는 수준이었다.
“내가 갑인데 어딜 이딴 침 냄새 나는 거짓말로 계약부터 하려고 들어?”
선우는 쪽지의 답장을 미리 써놓고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했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아직 초보 플레이어이고….>
쪽지 답장을 끝낸 뒤에 선우는 다시 캡슐로 들어갔다.
“이제 슬슬 퀘스트를 진행해볼까?”
* * *
선우는 황금 안개 부족의 오크 성 영지인 오크 마을에 있었다.
켄트 마을에 비해 이용하는 유저들의 수가 거의 없는 빈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선우가 올렸던 영상 때문에 오크 마을에는 엄청난 수의 유저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와… 미쳤네… 이게 조회수 백만의 위력인가….”
오크 마을은 사실상 버려진 마을과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켄트 마을 못지않은 플레이어들로 가득 차있었다.
선우는 오크 마을에서 오크 성으로 향했다.
아직 선우를 알아보는 유저들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반짝 화제가 된 영상으로 궁금해서 들어온 사람들이었으니까.
“가만 있자…. 오크 성에서도 오크 마을 세금을 거둘 건데… 저기서 거래되는 아이템, 경매장 수수료 다 합치면 매달 얼마지?”
선우는 오크 성문 앞에서 잠깐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은 내가 올린 오크 성 영상으로 사람들이 몰려든 것뿐 절대 지속적인 게 아니다. 저 사람들을 잡아두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콘텐츠가 필요해. 그러면 오크 마을에서 아이템 구입부터 거래 등 온갖 세금이 더 많아질 테고 그건 곧 내 돈이다. 미친… 이거 연속 대박이 계속 터지네.”
선우는 웃음을 삼키며 오크 성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