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다리면 레벨업-13화 (13/200)

# 13

제13화

선우는 블랙 스콜피온 길드원을 따라 알굴이 있는 곳으로 갔다.

“쟤야. 난 잠깐 할 게 있으니까 뭐 촬영 실컷 하라고.”

플레이어가 나가고 난 뒤 선우와 알굴 단 둘만이 방에 남아 있었다.

오크 성의 마법사 알굴은 갈색의 피부에 주름진 얼굴로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알굴의 지팡이 끝에는 새끼 원숭이 해골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흑갈색의 가죽 로브를 누더기처럼 걸치고 있는 알굴은 선우를 말없이 노려봤다.

짤그락, 짤그락.

지팡이를 짚으며 알굴이 선우에게 다가왔다.

“나를 찾아온 인간이 있을 거라곤… 자넨 무슨 볼일로 여기까지 온 겐가?”

때마침 방에는 길드원들이 없었다.

오크 성은 블랙 스콜피온 길드에겐 방치되고 있는 성인 탓에 성을 지키고 관리해야 되는 플레이어들마저 관리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이건 기회다. 오크 성은 블랙 스콜피온 길드에겐 이득은커녕 폐성 취급받고 있다더니 이 정도일 줄은… 굳이 정보를 가져갈 필요 없이 오크 부족들이 당장 쳐들어와도 되겠어.’

플레이어들은 선우를 그저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짜로만 여겼다.

선우는 생각보다 퀘스트 클리어가 단순하게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는 라누 부족의 족장이신 라누님의 요청으로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알굴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라누? 정말 자네가 라누가 보내서 온 인간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여기 제 귀에 달린 귀걸이를 보십쇼. 이건 라누 족장님께 받은 겁니다. 알굴 님을 만나거든 꼭 보여드리라고 했거든요.”

알굴이 주름 속에 덮여있던 눈을 번쩍 뜨며 다가왔다.

선우가 한 발 물러나자 알굴의 지팡이 끝의 해골이 부르르 떨었다.

“놀라지 말게. 자넬 해칠 의도는 없으니. 라누가 내게 보낸 사람이라면 믿을 만하지. 무엇 때문에 위험한 이곳까지 혼자 온 건가?”

“라누 족장님께서 오크 성을 되찾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이곳을 지배하는 인간 세력에 대해 정보를 알아와 달라 하셨습니다.”

“으음… 그러면 공성전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일세. 자네도 보다시피 이곳 성에는 처음과 달리 인간 세력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네. 라누 족이라면 틀림없이 이곳 성을 공략할 수 있을 거야.”

알굴의 말대로였다.

선우는 처음 오크 성문을 들어오며 블랙 스콜피온 길드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소홀하게 오크 성을 관리하고 있단 생각을 했었다.

‘대개 성을 먹으면 해당 영토 내의 마을들에서 세금이 매달 들어오지. 근데 여기는 마을 개수도 적고 영토가 좁아서 확실히 돈을 만지기엔 알맞은 곳이 아니야. 블랙 스콜피온 길드가 소속 플레이어들을 대부분 빼 버린 게 틀림없어.’

지금 오크 성은 사실상 주인 없는 빈 성과 동급이었다.

‘속전속결로 해치우자.’

“알굴 님. 지금 오크 성에 남아있는 인간들의 숫자는 얼만가요?”

“10명이 지키고 있네만 그마저도 낮과 밤에 따라 보이는 얼굴들이 달라지고 있네.”

10명이 오크 성을 교대로 관리하고 있군.

선우는 다음 정보를 물었다.

“그러면 인간들이 오크 성에서 주로 어디에 많이 머물러 있죠?”

“여기에서 북동쪽으로 가면 고기와 먹을 것을 잔뜩 쌓아둔 창고가 있네. 인간들은 주로 거기에 몰려 있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 더. 이곳 오크 성을 되찾으려면 꼭 해야 할 게 뭐가 있죠?”

“이곳에 오면서 복도 중앙에 서 있던 석상을 봤는가?”

“봤습니다. 엄청 크던데요.”

“그 석상 아래에 보면 마법진이 그려져 있지. 내가 그 마법진 위에서 오크 성의 새로운 왕이 나왔다는 걸 알려주는 마법을 펼쳐야 하네. 이 성을 세웠던 조상들에게 알려야 할 수단이지.”

“그러면 알굴 님이 지금 하셔도 되지 않아요?”

“그 마법진을 펼치고 나면 오랫동안 나는 무방비 상태에 노출되네. 인간 놈들이 오크 성을 허술하게 관리하는 것 같아도 날 감시하는 건 아주 철저해. 틀림없이 들키고 말게야.”

선우는 오크 성을 차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일단 라누 부족장님께 정보를 전달하겠습니다. 곧 성을 되찾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선우의 말에 알굴은 무언가 벅차오르는 감정을 삼켰다.

“인간들은 언제나 우릴 혐오하는 줄 알았는데… 자네 같은 인간이 있다는 건 참으로 놀랍군. 고맙네.”

알굴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오크 마법사 알굴이 플레이어 ‘김선우’ 님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곧 다시 오겠습니다.”

선우는 알굴에게 라누 족장이 건넨 귀걸이를 줬다.

“이건 제가 다시 오겠다는 증거입니다. 라누 족장님이 이곳에 오면 다시 전해주십쇼.”

알굴에게 귀걸이를 건넨 선우는 방을 빠져나왔다.

“하, 이것들 아무리 돈값 못하는 성이라지만….”

선우가 방에서 나와도 플레이어들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가만 있자… 이것들이 어디에서 주로 시간을 죽이는지 한 번 둘러볼까?”

촬영을 핑계 삼아 오크 성 곳곳을 누비고 다닌 선우는 촬영을 하는 척 스트리밍 방송 하는 척 연기를 했다.

블랙 스콜피온 길드원들은 알굴의 말대로 음식과 술이 가득한 창고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야, 촬영 다 끝났으면 이제 집에나 가지 여긴 또 왜 기웃거려?”

“놔둬라. 4렙짜리가 먹고 살겠다는데 그냥 찍게 해줘.”

“여기 뭐 찍을 게 있다고. 야, 다 찍었지? 이제 나가.”

블랙 스콜피온 길드원들이 선우를 내쫓았다.

선우는 오크 성의 모든 위치와 블랙 스콜피온 길드원들이 있는 곳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이제 남은 건 라누 족을 돕는 건가? 빨리 가야지.”

* * *

선우는 오크의 숲 라누 족의 마을로 왔다.

족장 라누를 만나 알굴을 만났으며 오크 성에서 가져온 모든 정보를 이야기해줬다.

띠링!

[서브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으로 소환 주문서 1장을 받았습니다.]

선우는 인벤토리 안에 든 소환 주문서 1장을 확인했다.

‘이건 뭘 소환하는 거지? 일단 갖고 있자.’

족장 라누는 선우가 가져온 정보를 토대로 부족원들을 불러 모았다.

라누 족은 오크의 숲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부족.

검과 방패, 도끼, 갑옷으로 무장한 오크 전사들의 숫자는 300명은 족히 넘고 있었다.

오크 전사들이 라누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우는 몰래 다른 곳으로 갔다.

“이거 실시간 방송으로 보여주면 조회수 좀 붙겠는걸?”

선우는 오크 전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보며 돈 냄새를 맡고 있었다.

“형제들이여! 이제 드디어 우리들의 고향을 되찾을 순간이 다가왔다. 인간들을 몰아내고 고향을 되찾아 조상들의 혼을 불러오자!”

“구워어어!!”

“쿠웍!”

오크 전사들이 저마다 무기를 하늘로 향해 들어 올리며 포효를 했다.

“잘 나온다. 시청자님들. 보이십니까? 지금부터 제가 오크 족들이 자신들의 성을 되찾으러 가는 걸 생방송으로 보여드릴 겁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선우의 얘기를 들은 시청자들은 갑작스런 공성전에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이분 지금 뭐라시는 거임? 공성전을 촬영하겠다고?

-오크 성이면 그냥 버리는 성 아님? 여기를 누가 공성전 하러 감?

-지금 오크 성 먹고 있는 애들 누군지 기억도 안 나는데 여기를 누가 공성전 한다는 거예요?

-여기 방 들어온 애들 눈깔 상했냐? 오크들이 공성전 한다잖아.

-설마 몬스터들이 자기들 성 되찾으러 가는 거? 그게 말이 됨?

-방장님. 이거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요. 난 오크가 공성전 한다는 거 처음 들어보는데.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공성전은 인피니티 로드에서 지금까지 대부분 길드와 길드간의 전쟁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이젠 어지간한 공성전 콘텐츠는 생각처럼 조회수가 잘 나오지 않았고 매출도 형편없었다.

지금 인피니티 로드의 팬과 시청자들은 좀 더 새로운 공성전과 이야기를 원했다.

선우가 준비하고 있는 오크들의 공성전 같은 이야기를.

“하하, 시청자님들께서 조금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당연히 길드 전쟁이 아니고요. 오크 족들이 자신들의 성을 먹으러 가는 공성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도와주고 있거든요. 아마 어디에서도 이런 영상을 감상하실 순 없으실 거라고 자신합니다. 왜냐면 오크 성을 오크들에게 되찾아주는 공성전 영상은 제가 처음 보여드리는 걸 테니까요.”

선우의 말에 채팅창이 갑자기 들끓기 시작했다.

-방장님. 지금 오크 공성전을 도와주고 있다고 하셨어요?

-미친 스케일 보소 ㄷㄷㄷㄷㄷ 공성전을 혼자서 한다는 건가 ㄷㄷ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오크들이 지들 성 먹으러 가는 걸 방장님이 뒤에서 도와주는 거라잖아. 눈깔 상한 새끼들아.

-이 새끼 아까부터 왜 자꾸 눈깔 타령이여.

-무시하셈. 어그로임.

-와, 나 이런 영상 처음 보는데 ㅋ 방장님 공성전 언제 시작해요?

선우는 오크 전사들 앞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라누를 실시간으로 원거리 촬영을 했다.

“지금 오크 족장 보이시죠? 제가 저 오크를 도와서 오크 성을 되찾아 줄 겁니다.”

선우의 말에 채팅방이 난리가 났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해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기 님 죄송한데 몇 렙이세요? 지금 찾아보니까 오크 성 블랙 스콜피온 길드가 먹고 있다고 나오는뎅… 님 블랙 스콜피온 길드랑 잘 아는 사이?

-이분 채소 300렙이신가 ㄷㄷ 혼자서 먼 능력으로 오크들한테 성 갖다 주신다고 ㄷㄷ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본 방송 중에 이게 젤 웃김 ㅋㅋㅋㅋㅋㅋ

-방장님 제정신이심? 블랙 스콜피온 길드한테 척살령 받으시면 아 이게 실전이구나 하실 분이시네 ㄷㄷ

-혹시 블랙 스콜피온 애들한테 오크 성 구입하셨나요? 가끔 연출하시는 분들 거래 미리 끝내놓고 영상 촬영한다고 들은 적 있는뎅….

채팅방의 반응은 선우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길드가 차지한 성을 노린다는 것은 길드의 표적이 되겠다는 뜻이었으니까.

선우가 인피니티 로드에서 잘 알려진 네임드 랭커였다면 아마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몰렸을 것이다.

오크 성이 모두가 차지하고 싶어 하는 성은 아니지만 솔플로 공성전을 하겠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이벤트이기 때문.

물론 선우 혼자 오크 성을 되찾는다는 건 아니었기에 지금 준비하는 공성전은 사람들의 관심 반 의심 반을 사고 있었다.

선우는 촬영되는 영상 화면의 줌을 바짝 당겨 라누의 얼굴과 목소리가 더 생생하게 들리도록 했다.

라누의 행동과 오크 전사들의 숫자를 본 시청자들은 조금씩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이분 진짜로 오크들과 손잡고 오크 성 치려고 하시네. ㄷㄷ

-난 몬스터들하고 동맹 맺고 공성전 한다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가능한 건가?

-인피니티 로드에 불가능한 게 어디 있음? 창의력 싸움이지.

-만약 진짜 오크들한테 오크 성 갖다 주면 여기 방장 뭐 되는 거임?

-아직 해본 사람이 없으니 무슨 보상 나올진 봐야 알지.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다.

오크 족장 라누의 목소리와 오크 전사들의 패기 있는 결속력이 진짜 공성전을 준비하고 있단 느낌을 들게 했으니까.

선우는 채팅창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향해 인사말을 남겼다.

“모두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 보이시는 오크가 자신들의 고향인 오크 성을 되찾는 걸 꼭 지켜봐주세요. 저도 사실 이번 퀘스트의 보상이 뭐가 될지 정말 궁금하거든요. 시청자님들과 같이 공성전을 한단 생각으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이제 곧 오크 성으로 출발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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