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제12화
히든 퀘스트가 생성된 것이다.
선우의 눈앞에 퀘스트 화면이 나타났다.
-오크 성을 되찾아라.
뿔뿔이 흩어진 오크 부족들을 통합시켜 안정적인 영토를 제공하려면 오크 족들의 성이 필요합니다.
오크 성을 지배하는 인간 세력을 몰아내고 오크 족의 조상들이 세웠던 성을 되찾아 주세요.
등급: 메인 스토리
제한: 오크 족장 라누의 요청을 받을 것.
보상: 오크 족들의 모든 후원을 받게 된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족을 막론하고 오크 족들에게 요청을 할 수 있는 권능 부여.
진행률: 0%
선우의 동공이 떨려왔다.
‘미친, 이게 말이 돼?’
히든 퀘스트라고 다 같은 히든 퀘스트가 아니었다.
인피니티 로드에 히든 클래스들이 극히 드물게 나오는 것처럼 히든 퀘스트 역시 제각각 내용과 등급에 따라 플레이어가 얻을 이득이 달라졌다.
지금 선우가 받은 히든 퀘스트 등급은 무려 메인 스토리.
인피니티 로드를 관통하고 있는 대서사의 한 조각에 해당되는 격이란 뜻.
라누의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았는데 선우에게 먼저 퀘스트가 나타난 건 그만큼 특별한 퀘스트였기 때문이었다.
“자네에게 원하는 것이 있기는 하네. 단, 이것을 자네가 들어줄 지는 의문이로군.”
라누가 뒤늦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선우가 자신의 요청을 어떻게 받을지 알 수 없단 표정을 지으며 약간 망설였다.
선우가 이걸 놓칠 리 없었다.
“뭐든지 상관없습니다. 제가 기필코 들어드리겠습니다.”
퀘스트가 먼저 뜬 것도 이 때문이었다.
만약 히든 퀘스트 알림이 먼저 나타나지 않고 라누의 이야기만 기다렸다면?
망설이는 라누의 마음을 확실히 잡아줄 수 있는 대답을 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저 라누가 먼저 말을 꺼내기만 기다리다가 혹시나 라누가 말을 꺼내지 않을 확률도 있었다.
인피니티 로드에는 모든 경우의 수가 퀘스트에 있었으니까.
선우의 자신 있는 대답에 라누가 안심한 듯 말문을 열었다.
“자네에겐 무언가 알 수 없는 신뢰가 생기는군. 그렇다면 자네를 믿고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겠네.”
라누는 자신들의 부족과 오크 족들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선우가 받은 히든 퀘스트의 골자인 오크 성으로 이어졌다.
“이렇듯 오크 성은 나와 형제들에게 있어 반드시 되찾아야 할 곳이라네. 하지만 인간들의 공격으로 인해 오래 전 나의 조상들은 오크 성을 빠져나와 형제들을 데리고 뿔뿔이 흩어졌지. 서로 다른 대륙으로 흩어지기도 했고 각자 영토를 세워 동족간의 전쟁도 벌였고 생존을 위한 싸움을 계속해왔네. 이 모든 것은 오크 족들의 정신을 하나로 통합시켜둘 오크들의 고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지.”
라누의 이야기를 들으며 선우는 감정이 벅차올랐다.
‘지금까지 그저 단순한 몬스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역사가 있을 줄이야… 이건 엄청난 수확이다. 인피니티 로드 커뮤니티에서도 이렇게 자세한 스토리를 본 적이 없었는데.’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정보들은 인피니티 로드 세계관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NPC들마다 숨겨진 이야기들을 알아내느냐에 따라 플레이어들끼리 정보력의 차이가 결정되고 있었다.
지금 선우가 아무도 알지 못하는 히든 퀘스트의 자세한 스토리를 알게 된 것처럼.
“그렇다면 지금 오크 성을 지배하고 있는 인간들은 누군가요?”
오크 성에 대해서는 의외로 알려진 것이 적었다.
성을 차지해도 누릴 수 있는 영토가 적었고 대부분 협소한 사냥터 한 군데와 오크 NPC들이 거래하는 오크 마을 한 곳뿐이었다.
선우 역시 오크 성은 그저 돈값 못하는 폐성급에 해당되는 성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오크 성을 차지한 길드는 사실 성을 운영해서 나오는 세금이 얼마 되지 않아 방치하고 있었다.
팔아봤자 돈이 안 되는 성이었고 성을 먹은 길드라고 해봤자 오크 성은 대접도 못 받았으니까.
“오크 성을 지배하는 인간 세력들은 검은 전갈이 새겨진 깃발을 꽂아 두었다네.”
선우는 라누의 말을 듣자마자 어떤 길드인지 알 수 있었다.
‘블랙 스콜피온 길드군. 근데 블랙 스콜피온이면 블러드 스컬과 비슷한 규모인데 오크 성을 관리한단 말은 처음 듣네.’
선우는 라누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기로 했다.
“오크 성을 지배하는 인간들은 사실 성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그렇지만 형제들이 성 안으로 들어가는 건 철저히 막고 있네. 그러니 자네가 능력이 있다면 이들을 쫓아내고 우리들이 성을 차지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겠는가?”
선우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오크 성에는 아마 사실상 방치되고 있기 때문에 길드의 전력이 많지 않을 거야. 그런데 성의 주인을 바꾸려면 공성전을 해야 할 건데…. 난 솔플러라서 공성전을 하는 건 불가능하고 어떻게 해야 되지? 차라리 캐삭빵 걸고 릴레이 결투로 다 없애버릴까?’
릴레이 결투를 생각하던 선우가 다시 생각을 바꿨다.
‘아니야. 릴레이 결투를 신청해버리면 블랙 스콜피온 길드에서 내가 누군지 알 수밖에 없어. 그러면 척살령을 내리고 날 죽일 거고… 나중이라면 상관없지만 지금은 위험해.’
지금 선우의 레벨로는 블랙 스콜피온 길드의 척살령을 감당하기엔 부담이 조금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저, 족장님. 도와드리기 전에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제가 오크 성을 되찾아 드리려면 뭐를 해야 할지 좀 알려주십쇼. 저에겐 어떤 세력도 없거든요.”
“오크 성 안에는 오랫동안 성의 내부를 관리해오던 늙은 마법사 알굴이 있다네. 가장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마법사 형제이자 오크 족들의 마법을 지켜온 자일세.”
오크 마법사 알굴.
지금의 오크 성을 관리하는 NPC일 확률이 높았다.
“오크 성의 내부와 외부의 모든 곳을 알굴이 파악하고 있을 테니 자네가 알굴을 만나 오크 성을 지키는 인간들의 숫자와 무기, 위치 등 정보를 가져와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내가 근처에 사는 부족 형제들에게 뜻을 전하여 가능한 많은 형제들을 모아 전쟁을 준비하겠네.”
선우가 스파이가 돼서 오크 성 NPC 알굴로부터 정보를 가져와달라는 것이었다.
오크 성은 인간들의 성과 달리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성은 아니었다.
단지 철혈산맥을 뒤로 하고 양 옆으로는 듀란칼의 강이 흘러가고 있었기에 천혜의 요새 같은 위치에 놓여 방어하기에 편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알굴 님을 만나 오크 성의 정보를 빼오도록 하겠습니다. 알굴 님은 오크 성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십쇼.”
“아마 평소에는 오크 성 왕실에 있을 걸세. 인간들이 필요할 때마다 알굴을 데려가 오크 성의 관리를 맡겨왔다고 들었네. 오래 전 엘프 족으로부터 도움을 요청하여 알굴의 위치를 파악해 뒀었지. 여기 이걸 가져가게. 알굴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야.”
라누는 품 안에서 낡은 두루마리를 꺼냈다.
“오크 성의 지도일세.”
선우가 두루마리를 펼쳐보니 오크 성의 지도가 나왔다.
지도의 성 안에는 노란색 빛이 반짝이는 곳이 있었다.
“나와 친분을 다져온 어느 엘프 마법사가 만들어준 지도일세. 언젠가 필요할 날이 올 거라 싶어 이렇게 보관해뒀지. 여기 보이는 노란색 빛이 알굴의 위치라네. 알굴이 어느 곳으로 가든지 항상 노란 빛을 따라가면 알굴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아, 그리고 이것도 전해주게.”
라누가 무언가를 또 꺼냈다.
“이게 뭐죠?”
“오래 전 알굴이 라누 부족의 초대 족장님께 전해줬던 귀걸이일세. 이걸 착용하고 알굴을 만나면 틀림없이 내가 보낸 사람이라는 걸 알 걸세.”
“알겠습니다. 제가 빨리 가서 알굴님을 만나고 정보를 가져오겠습니다.”
“고맙네. 정말로 고맙네. 만약 자네가 오크 성을 되찾아준다면 나와 형제들은 자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네.”
라누의 말이 끝나자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서브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오크 성의 마법사 알굴을 만나서 정보를 가져오세요.
등급: 노멀
제한: 없음
보상: 소환 주문서 1장
메인 스토리 등급의 퀘스트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서브 퀘스트를 받았다.
선우는 오크 성의 지도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라누 족장의 집을 나와 오크 경비병들의 안내를 받아 부족 밖으로 나왔다.
동시에 또 다른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24시간이 완료되어 레벨업 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스킬 사용권 1장이 지급되었습니다.]
[모든 스텟이 1씩 올랐습니다.]
선우는 재빨리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이름: 김선우
레벨: 4
직업: 인피니티 마스터(Only one)
칭호: 없음
근력: 4
민첩: 4
체력: 4
마력: 4
스킬: 없음
스킬 사용권 : 1장
선우는 라누에게 받은 귀걸이를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라누 부족 특유의 노란색으로 염색된 갈고리 형태의 귀걸이였다.
“이제 오크 성으로 가볼까?”
* * *
선우는 지도를 확인하며 오크 성문 앞에서 경비병과 맞닥뜨렸다.
오크 경비병들은 허리에 정글도 같이 생긴 검을 차고 있었다.
“무슨 일로 온 것이냐?”
“저는 오크 성의 마법사 알굴 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오크 경비병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이놈을 끌고 가라.”
“어라? 저기 잠깐만요.”
오크 성을 지키는 오크 NPC들이 갑자기 선우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꿇어라.”
선우가 졸지에 무릎을 꿇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플레이어들이 나타났다.
가슴에 박혀있는 길드 문양에는 검은 전갈이 그려져 있었다.
‘블랙 스콜피온 길드로군.’
선우는 블랙 스콜피온 길드원들을 보면서 웃었다.
“하하, 안녕하세요? 혹시 블랙 스콜피온 길드 아니에요? 우와,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네요. 저 블랙 스콜피온 길드 팬이거든요.”
선우의 아무 말 대잔치가 열렸다.
물론 플레이어들은 신경도 안 썼다.
“뭐냐? 얘는. 여기에 뭐 때문에 왔냐?”
선우는 빠르게 분위기를 파악했다.
알굴을 만나러 왔다고 하자 갑자기 오크 NPC들이 선우를 끌고 길드원들에게 데려간 것.
아마도 오크 경비병들이 인간들 쪽에 붙었거나 혹은 알굴을 찾으러 온 자들은 모두 데려오란 명을 받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선우는 갑작스런 돌발 상황에도 차분하게 대처했다.
“아, 여기가 오크 성이라고 해서 한 번 구경 와봤어요.”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우를 플레이어 하나가 다가오더니 의심스런 눈빛으로 물었다.
“볼 것도 없는 성인데 왜?”
“그게 그러니까… 커뮤니티엔 오크 성 정보가 잘 없어서 영상 콘텐츠 좀 팔아보려고….”
“아….”
그제야 플레이어들이 의심을 거뒀다.
“몇 렙이냐?”
“저 4렙입니다. 방금 렙업 했거든요.”
선우의 레벨을 들은 플레이어들이 피식 하고 웃었다.
“이거 뭐 완전 초보 중의 초보네. 하긴… 초짜들한테 이런 쓰레기 성이 궁금할 순 있지. 영상을 촬영하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라. 야, 누가 안내 좀 해줘라.”
선우는 일단 블랙 스콜피온 길드원들의 의심을 벗었다.
“고맙습니다. 먹고 살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흙수저 애들 뭐라도 풀칠하려면 열심히 해야지. 볼 건 없지만 찍어서 올려봐. 아, 그리고 영상 콘텐츠 올리면 거기서 발생하는 수입의 반은 블랙 스콜피온 길드로 보내야 돼.”
“예? 그게 무슨….”
“하, 이거 초보들은 이래서 피곤하다니까. 야, 인마. 수수료를 줘야지. 이 성이 니 꺼야? 남의 성 촬영해서 돈 벌면 혼자 꿀꺽하려고 했어?”
“아, 그렇죠. 제가 초보라서 잘… 하하. 드리겠습니다. 드려야죠.”
“어디부터 촬영하고 싶냐?”
“먼저 이 성을 지키고 있다던 오크 마법사 알굴을 만나고 싶습니다.”
“풉, 지키긴 누가 지킨다고… 하긴 뭐 NPC니까 게임 설정으로는 틀린 말도 아니지. 따라와. 이쪽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