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제11화
라누의 집 안에는 온갖 몬스터들의 가죽이 바닥 깔개로 덮여 있었다.
벽에는 늑대인간의 두개골과 하피의 날개가 장식으로 걸려있었고 오크 전사들이 쓰는 투박한 형태의 도끼와 장검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족장님. 인간이 족장님의 목걸이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부족장 라누가 등을 보이고 앉아있었다.
양 손에는 대검이 들려 있었고 정성스레 갈고 닦고 있었다.
“내 목걸이를?”
라누가 일어났다.
떠돌이 오크였던 게르 못지않은 체격.
오른쪽 팔뚝에는 노란색 염료로 물들였고 가슴에는 라누 부족의 조상들을 기리는 다양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뺨과 목 밑에는 칼자국이 있었고 불독처럼 각진 턱에는 사람 손바닥만 한 어금니가 튀어나와 있었다.
라누의 눈빛이 선우를 내려다봤다.
“후음… 목걸이를 보여라.”
선우가 인벤토리를 열고 라누의 목걸이를 꺼냈다.
띠링!
[라누의 목걸이를 족장 라누에게 건넸습니다.]
[라누가 목걸이가 자신의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알림을 들으며 선우는 저도 몰래 침을 삼켰다.
라누 족의 족장이어서 그럴까?
오크 게르와는 전혀 다른 엄청난 패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라누 족은 오크 부족들 중 꽤 온건한 성격을 지녔다던데 족장은 엄청 터프하게 생겼네.’
선우에게 받은 목걸이를 유심히 살펴보던 라누가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얼마나 큰지 선우는 순간 심장이 덜컹거렸다.
중저음의 웃음이 라누의 집 밖까지 번지고 있었다.
“드디어 내 목걸이를 찾았구나. 위대한 족장들에게 대대로 전해져온 이것은 라누 부족의 상징이자 역사이기도 하지. 고맙다. 인간이여. 내게 이 목걸이를 순수한 마음으로 가져다줘서.”
“아닙니다. 제 것도 아닌데 당연히 돌려 드려야죠.”
선우는 별생각 없이 맞장구치듯 대답했다.
그러자 라누의 눈빛에 흥미가 감돌았다.
터질 듯한 진녹색 목 근육이 꿈틀거리며 라누의 상체가 선우의 눈높이로 숙여졌다.
“내가 보아온 인간들이란 하나같이 자기만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던데… 자네는 좀 다르군?”
동시에 선우의 귀에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부족장 라누가 플레이어 ‘김선우’ 님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크 NPC 라누의 신뢰를 조금 얻었습니다.]
알림이 끝나자 라누가 말을 이었다.
“이 목걸이를 내게 찾아줬으니 나 또한 보답을 해야겠군. 비록 서로 생김새는 다르나 우린 모두 이곳 벨론 대륙이 낳은 혈육이라 여긴다. 혹시 그대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알려다오.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들어주겠다.”
라누의 말에 선우는 잠깐 망설였다.
‘원하는 것? 오크들이 생각하는 거랑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다른데 뭐 들어줄 수 있으려고….’
사실 지금 당장 오크 족장에게 원하는 건 없었다.
그냥 단순하게 연계 퀘스트 보상이 궁금해서 목걸이 갖고 온 거니까.
하지만 상대가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고 했으면 선우에겐 기회.
이걸 잡아야 한다.
“정말 들어주실 건가요?”
일단 되물어서 시간을 좀 더 벌었다.
“물론이다. 인간이 원하는 것이 대충 어떤 것인지 그동안 인간들과의 숱한 전쟁을 통해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말해보라.”
라누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인간과의 전쟁.
인피니티 로드에는 플레이어들끼리만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곳곳에 숨어있는 NPC들을 설득시켜 전쟁 혹은 전투, 사냥에 끼어들게 하는 것도 플레이어의 역량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피니티 로드의 일곱 대륙, 각 대륙마다 존재하는 왕국과 제국들.
이들 왕국과 제국의 성에는 NPC들이 있었고 이들을 설득 혹은 굴복을 시켜야만 성을 소유할 수 있었다.
전쟁은 플레이어들이 소속된 길드간의 길드전부터 성을 차지하기 위한 공성전, 더 나아가 대륙을 통일하기 위한 대륙전 등 다양한 형태와 규모로 나뉘어졌다.
이러한 전쟁 중에 NPC들이 개입된다면 이들을 포섭할지 죽일지에 따라서 전쟁의 승패가 좌우될 때도 많았다.
인피니티 로드의 NPC들은 만약 죽일 시 해당 NPC의 중요도와 가치가 클수록 다시 리젠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렇게 되면 그 시간 동안 NPC를 죽여서 이득을 보는 쪽은 앞서갈 수 있었고 손해를 보는 쪽은 정상에서 몰락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플레이어들은 캐릭터 삭제를 건 결투가 아니라면 죽더라도 다시 로그인하면 게임을 할 수 있지만 NPC들은 그 제한이 넓고 다양했다.
인피니티 로드를 관할하는 인공지능은 갈수록 자동으로 진화하고 업그레이드 되었기에 NPC들을 재미 삼아 공격하는 플레이어들로부터 NPC의 가치를 일깨우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내가 원하는 게 뭘까… 뭐가 있을까… 오크들에게 아니 오크 족장에게 뭐 해달라고 해야 꿀 빠는 이득이 손에 들어올까?’
선우는 이 와중에도 머릿속을 스포츠카 타이어바퀴처럼 빠르게 굴리고 있었다.
라누 족의 부족장 라누는 오크 NPC로 인간과의 전쟁 경험이 많은 전사였다.
그렇다면 원하는 것의 범위를 넓혀볼까?
“족장님께서는 그동안 저 같은 인간들과 많은 전쟁을 해보셨다고 아까 들었습니다.”
“그렇지.”
라누의 대답에 선우가 재빨리 물었다.
“그러면 지금 이곳 벨론 대륙에서 족장님께서 보시기에 강하다고 생각되는 인간들의 세력들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선우는 정보를 요청했다.
천하의 길드라 해도 어떤 정보에 의해 발이 묶일 수도 있고 와해될 수 있었다.
반면 솔로 플레이를 하는 유저가 어떤 정보에 의해 이미 앞서가고 있는 랭커들을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었다.
선우는 이미 히든 클래스 중에서도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히든 클래스를 손에 넣었다.
그렇기에 정보가 필요했다.
먼저 벨론 대륙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유력 길드들의 거품을 걷어낸 진짜 정보가.
“으음… 먼저 내가 전쟁을 했던 성들은 모두 벨론 대륙에 있는 성들이란 것을 알아뒀으면 한다. 다른 대륙에는 듣기만 했을 뿐 직접 경험해본 적은 없으니까.”
“물론입니다.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라누가 바닥에 편하게 앉으며 선우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선우가 인사를 하며 정중하게 앉았다.
‘가능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고 말겠어.’
선우가 정중하게 앉자마자 또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부족장 라누가 플레이어 ‘김선우’ 님의 행동을 마음에 들어합니다.]
[오크 라누에게 신뢰를 조금 얻었습니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달리 선우의 정중한 행동이 오크 라누의 신뢰를 조금씩 높이고 있었다.
선우는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NPC들로부터 호감을 얻고 신뢰를 높일 수 있는지.
그리고 호감과 신뢰가 더해질수록 선우가 얻게 될 정보의 가치 또한 올라갈 터.
“자넨 정말 보기 드문 인간이로군.”
“과찬이십니다.”
라누가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먼저 이곳 벨론 대륙에서 나는 모든 성들의 기사단과 전쟁을 했었지. 그중 가장 많은 전투를 치렀던 성은 당연히 켄트 성이라네. 다른 성들보다 내 부족들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성이기도 하고 이곳 숲으로 사냥을 하러 온 놈들 모두 켄트 성의 의뢰를 받고 온 적이 많았으니까.”
켄트 성은 여러 마을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켄트 마을.
라누는 자신의 경험담을 선우에게 들려줬다.
“켄트 성은 얼마 전 어떤 인간들의 세력에 의해 주인이 바뀌었다고 하더군.”
선우는 커뮤니티에서 봤던 게시글을 떠올렸다.
‘아마 지난달에 있었던 공성전을 말하는 건가 보네. 블러드 스컬 길드가 공성전에 성공했다고 인터넷만 들어가면 곳곳에 광고 영상이 나왔었는데.’
“라누님. 혹시 그 인간 세력들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게 있을까요?”
선우는 좀 더 확실한 답을 얻고 싶었다.
“특징이라면….”
라누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니까 전쟁에서 기억에 남는 뭐 그런 거죠. 하하.”
선우가 말끝을 흐리면서 설명을 하자 라누가 그제야 이해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켄트 성을 지배하는 놈들은 모두 가슴 부위에 피로 얼룩진 해골 문양을 하고 있더군. 놈들은 죽은 시체들을 다시 살려 전장에 쓰던 흉악한 자들이 많다네.”
네크로맨서들이었다.
블러드 스컬 길드의 주력은 네크로맨서였으니까.
“이전 켄트 성을 지배하던 놈들과 달리 해골 놈들은 동족의 시체들까지 살려내 전장의 무기로 썼지. 아마 놈들을 상대하려면 우리 같은 오크들은 엘프 놈들과 손을 잡아야 할 걸세.”
오크 족들은 전통적으로 엘프 족들과 앙숙이었다.
하지만 라누 부족은 필요하다면 엘프 족들과 협력하는 관계에 있었으니 블러드 스컬과의 전쟁에서 엘프들의 도움을 요청할 만 했다.
“혹시 그 해골 놈들과 전쟁에서 엘프 족들이 참가했었나요?”
“다른 부족들은 아니었지만 내 요청은 한 번 들어줬었지. 엘프들의 마법으로 간신히 놈들을 숲에서 몰아냈었지.”
라누는 켄트 성을 먹은 블러드 스컬 길드를 노리는 다른 길드의 정보들까지 술술 이야기해줬다.
선우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흥분되는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애썼다.
‘굉장하다. 이런 정보들이라면 틀림없이 나한텐 엄청난 이득을 줄 거야.’
돈으로 살 수 없는 정보들이었다.
선우는 지금 뒤늦게 출발한 플레이어.
1분 1초마다 빠르게 빛처럼 앞서가는 대형 길드와 상위 랭커들을 제치려면 정보가 필요하다.
지금 라누의 입에서 그런 정보들이 화수분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정도면 적어도 벨론 대륙 내의 길드들을 흔들어볼 수 있을 거야. 그 사이에 끼어들어 내가 먹을 이득은….’
생각만 해도 배가 불러왔다.
공성전부터 길드 간의 사냥터 독점권, 마을 관리, 영토 지배권 등 선우가 라누에게 들은 정보만으로 뽑아먹을 것들이 많았다.
라누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선우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
“자넨 정말 보기 드문 인간이로군. 대부분 인간들은 오크라는 사실만 내세워 업신여기기 일쑤인데….”
“하하, 그러는 놈들이 항상 필요할 때만 손 벌리죠. 저도 인간이지만 그런 놈들은 딱 질색입니다.”
선우는 라누의 눈빛을 파악했다.
‘좀 더 찔러보면 뭐 하나 얻을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
지금껏 토끼와 다람쥐들만 사냥한다고 선우가 시간을 헛되이 버린 건 아니었다.
캡슐에서 나오면 커뮤니티를 들어가 모든 게시글들을 읽어가며 사소한 정보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었다.
지금 오크 NPC들을 상대하는 요령 또한 남들이 흘려보낼 사소한 글에서 하나씩 배웠던 것.
“라누 족장님. 혹시 제가 더 도와드릴 만한 게 있을까요? 이렇게 제가 원하는 이야기들을 모두 알려주셨으니 저도 보답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선우의 말에 라누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물었다.
“자네… 정말로 그래줄 수 있는가?”
역시 뭐가 더 있었다.
“물론이죠. 라누 족장님께서 제게 해주신 이야기는 인간들 틈에서 엄청난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도움이 될 정보들이요. 제가 한 거라고는 고작 목걸이 되찾아 드렸을 뿐인데요. 저도 받은 게 있으면 드릴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젠 족장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알려주십쇼.”
선우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오크 부족장 라누가 플레이어 ‘김선우’ 님께 감동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숨겨진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선우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