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제6화
계좌에 들어온 돈은 1천만 원 남짓.
“우와… 역시 블러드 스컬이군.”
인피니티 로드의 유명 길드는 단순 게임 길드가 아니었다.
가상현실게임의 유행으로 게임 산업의 급부상은 게임 길드에 고급 브랜드의 가치를 부여했다.
블러드 스컬은 네임드 길드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름 알려진 길드였다.
그만큼 선우가 경매에 내놓은 아이템은 길드의 가치가 더해져서 좀 더 비싸게 팔렸다.
“이걸로 아이템을 좀 살까? 아니지. 원샷원킬 스킬이 있으니 남은 시간 동안 그냥 사냥을 해봐야겠어. 아이템 판 돈은 그냥 엄마한테 살림 보태라고 드려야겠다.”
선우는 먼저 로그아웃을 한 뒤에 계좌의 돈을 엄마 계좌로 송금했다.
“이제 나는 생활비 좀 벌어볼까?”
휴대폰을 침대에 던져두고 인피니티 로드에 로그인을 했다.
선우는 스킬의 남은 사용 시간을 확인했다.
“23시간 10분… 아직 한참 남았어. 이 정도면 그동안 못 갔던 던전 뺑뺑이 돌리면 되겠군.”
그동안 가고 싶어도 못 간 던전들이 생각났다.
인피니티 로드에는 온갖 던전들이 많았고 각 던전마다 다양한 특성과 난이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선우는 가장 먼저 켄트 마을과 가까운 초보 던전을 찾아갔다.
초보 던전은 대개 튜토리얼을 마친 플레이어들이 다른 마을이나 대륙으로 가기 전 레벨업을 가장 빠르게 하려고 찾는 곳이었다.
그만큼 몬스터들이 풍부했고 드롭되는 아이템의 수확량이 켄트 마을 근처 어떤 사냥터도 따라오지 못했다.
“키엑! 키엑!”
선우 앞에서 고블린 한 마리가 나타났다.
고블린이 발톱을 번들거리며 개구리처럼 펄쩍 뛰며 달려들었다.
서걱!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고블린의 손톱 1개를 획득했습니다.]
한방이었다.
아직 레벨 1밖에 안 된 선우.
고블린을 한방에 죽이기엔 턱없이 낮은 레벨이었다.
“후아… 짜릿하구만.”
원샷원킬 스킬은 문자 그대로 한방에 죽였다.
선우는 여세를 몰아 던전 1층을 싹 쓸어보기로 했다.
* * *
“야, 쟤 뭐냐? 쳤다 하면 몹들이 다 죽어버리네.”
“다른 데로 가자. 고렙 같은데 괜히 휘말리면 피곤해.”
“고블린 한 방에 죽이는 건 렙 좀만 높이고 스텟이랑 템빨만 좋아도 가능하지. 뭐 엄청난 거라고.”
“야, 너 아까 저 사람 사냥 하는 거 못 봤냐? 고블린들을 초짜들 쓰는 단검 하나로 한 방에 죽인다니까.”
“단검처럼 생긴 레어템인가보지. 비슷한 것들 상위 랭커들한테 많아.”
“하여튼 다른 데로 가자.”
플레이어들이 선우의 사냥을 힐끔 보더니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초보 던전에는 대부분 초보 플레이어들이 많았는데 가끔 악취미를 가진 상위 랭커들이 출몰할 때가 빈번했다.
이들은 초보 플레이어들이 자신들에게 죽어나가는 걸 보며 만족하는 유저들이었다.
물론 플레이어들이 죽고 떨어뜨리는 아이템들 중 값이 나가는 것들은 모조리 경매에 팔거나 혹은 커뮤니티에 올려 아이템 주인을 찾은 뒤에 되팔이를 했다.
그러다 보니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플레이어들은 던전의 몬스터보다 PK 유저들을 더 꺼려했다.
선우는 본의 아니게 주위의 플레이어들로부터 경계심을 사고 있었다.
물론 당사자는 그런 시선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 정도면 벌써 이번 달 생활비는 넉넉하겠는 걸.”
선우가 초보 던전에 들어온 지 고작 한 시간.
그 사이에 인벤토리에는 고블린 손톱만 100개가 넘게 쌓여 있었다.
“2층으로 가 봐야지.”
선우는 던전 2층으로 향했다.
1층이 고블린과 슬라임들만 나타나는 곳이라면 2층부터는 좀 더 위험한 몬스터들이 많았다.
“케엑!”
고블린 무리들이 선우를 향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선우는 토끼와 다람쥐 사냥으로 익혔던 민첩한 컨트롤로 고블린들의 공격을 모두 회피했다.
서걱! 서걱!
단검이 고블린 무리들을 한 방에 한 마리씩 찔렀다.
고블린 다섯 마리가 순식간에 죽어버렸다.
“이거 참 편리한 스킬이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던전 고층까지 쭉 돌아봐야지.”
선우가 고블린 다섯 마리가 떨어뜨린 아이템들을 모두 인벤토리에 넣었다.
던전 2층으로 향하는 선우를 근처에 낯선 플레이어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야, 부지런한 호구 하나가 2층으로 가고 있어. 잘 지켜봤다가 털자.”
* * *
가상현실게임 PC방.
오기환은 입술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이 새끼가… 내 피 같은 아이템들을 싸그리 경매에 팔아버려?”
선우가 팔아넘긴 아이템들이 각자 인증샷으로 커뮤니티에 올라와 조회수 베스트 란에 오르고 있었다.
모두 블러드 스컬 길드 특유의 마크가 새겨진 핸드 메이드 아이템들.
오기환은 자신의 아이템들이 뿔뿔이 흩어져 플레이어들의 장난감처럼 취급당하는 걸 보며 분을 삭혔다.
“후우… 이 개새끼가 내 캐릭터 삭제도 모자라 아이템으로 또 한 번 날 죽이려드네….”
“야, 기환아.”
뒤를 보니 사내가 서 있었다.
“사장님.”
“뭘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냐? 캐삭빵 후유증이냐?”
“아닙니다.”
“그러지 말고 캐릭터나 새로 만들어. 내가 다시 키워줄게. 명색이 블러드 스컬 길드원인데 캐삭빵 한 번 당했다고 찌그러질 순 없잖아.”
“고맙습니다. 사장님.”
“아, 그리고 너랑 PVP 뜬 애가 누구라고 했지?”
“저도 잘 몰라요. 제 동생한테 시비 털었던 놈인 거 보면 그냥 중딩 아니면 고딩인 것 같습니다.”
“걔 인상착의나 뭐 캐릭터 특징 같은 거 기억나는 거 없냐?”
“캐릭터는 엄청 곱상하게 커스터마이징을 했더라고요. 그 외에는 딱히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직접 마주치면 알아볼 텐데.”
“PVP 할 때 구경하는 애들 많았다며? 영상 촬영한 거 올라온 거 없냐?”
“그게….”
오기환은 다시 입술을 질근거렸다.
“영상 있으면 나한테 보여줘라. 척살령 내려줄게.”
“저도 증거 자료로 보여드리려고 찾아봤는데요. 당시 구경하던 애들이 제가 이길 줄 알고 촬영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한방에 끝나니까 촬영할 틈도 없었다고….”
사장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한 방에 끝났냐?”
“…예.”
“미안하다. 아픈 델 또 찔렀구나. 캐릭터나 만들어. 길드 애들한테 연락해서 버스 태워주라고 할게.”
“고맙습니다. 사장님.”
* * *
선우는 던전 2층을 순식간에 싹쓸이했다.
고블린 무리부터 홉 고블린, 오크, 늑대인간 등 온갖 몬스터들이 선우의 단검에 찔렸다 하면 한방이었다.
물론 스킬 재사용 시간이 3초 이다보니 타이밍을 잘 맞춰서 썼다.
가급적 무리로 다니는 몬스터들은 뒤에서 떨어져 있는 몬스터를 공격한 뒤에 쫓아오는 놈들을 한 마리씩 시간을 벌어가며 사냥했다.
선우의 사냥을 몰래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야, 쟤 아무래도 수상쩍어. 겉보기엔 초짜 같은데 템빨이 장난 아냐. 내가 1층부터 쭉 지켜봤는데 한방씩 치면 몹들이 다 죽더라니까.”
“사냥용 단검처럼 생겼는데 저 검이 레어템인가?”
“내가 아까 1층에서 사냥하는 거 다 촬영해뒀어. 나도 처음엔 사냥 단검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비슷하게 생긴 레어템인 거 같더라고.”
전사 클래스 플레이어와 궁수 플레이어가 이야기를 나눴다.
그 사이로 도적 플레이어가 끼어들었다.
“저거 털어서 먹자. 경매에 팔면 값이 장난 아닐 거야.”
“야, 경매에다 저걸 왜 파냐? 길드에 넘겨야지.”
“맞아. 저 정도 성능을 가진 레어템이면 경매보다는 길드에 넘기는 게 이득이 훨씬 클 거야. 촬영 영상 증거로 보여주면 되고.”
“그럴까? 어떤 길드랑 거래할까?”
“그건 저놈을 털고 나서 생각하자고.”
플레이어들은 선우가 눈치채지 않도록 각자 흩어졌다.
한편 선우는 계속되는 사냥으로 수확하는 아이템이 인벤토리를 채워가고 있었다.
“후와… 이 정도면 팔면 얼마일까… 못해도 3개월 치 생활비는 넉넉히 벌었을 거 같은데… 스킬이 완전 기가 막히구나… 이거 굳이 단검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을 거 같은데 맨손으로 해봐도 될까?”
선우는 때마침 근처에 나타난 늑대인간을 발견했다.
“크르릉.”
늑대인간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선우에게 달려들었다.
파앗!
선우가 같이 바닥을 차고 날아올랐다.
혹시 모르니 단검은 여전히 쥐고 있었다.
단검으로 찌르는 척 동시에 왼손을 냅다 질렀다.
뻐어억!
늑대인간이 피를 토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먹혔어… 맨손도 가능하구나… 역시 원샷원킬 스킬이란 건가….”
선우는 굳이 단검을 들고 다닐 필요는 없을 거 같았다.
지금까진 무기로 스킬 효과가 나올 줄 알고 있었는데 혹시나 하고 써본 맨손 공격에도 늑대인간이 죽어버렸다.
훨씬 간편해진 기분이 들어 콧노래가 나왔다.
“이건 버릴까? 아니면 이따가 같이 팔까? 얼마 되진 않지만….”
선우가 사냥용 단검을 들고 한참 고민하는 중이었다.
“어이, 이봐.”
뒤쪽에서 낯선 플레이어가 다가오고 있었다.
“거기 너, 여기 던전은 처음이냐?”
선우가 대답하려는 사이 옆쪽과 앞쪽에서도 플레이어가 나타났다.
‘뭐지? 이것들 영 껄끄러운 느낌인데.’
대충 봐도 양아치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뭐 때문에 그러냐?”
선우의 대답에 플레이어들끼리 눈치를 주고받았다.
“처음은 아닌 것 같군. 그러면 혹시 캐릭터 다시 키우는 중이냐?”
“그게 왜 궁금한데?”
선우의 반응에 플레이어들이 다시 눈치를 보며 귓속말을 켰다.
- 야, 이 새끼 아무래도 고렙 유저 같은데. 우리 잘못 찍은 거 아냐?
- 진정해. 좀 더 간을 봐야 알지. 만약 상위 랭커면 그냥 죄송하다고 공손하게만 행동하면 돼.
- 아, 이 멍청한 것들. 지금까지 약탈하면서 아직도 느낀 게 없냐? 이 새끼 고렙 아니야. 내가 지금 스캔 아이템으로 레벨 파악 해봤어. 레벨이 1이야 1.
- 레벨이 1이어도 서브 캐릭터 키우는 걸 수 있잖아.
- 걱정 마라. 이 새끼 털고 레어 단검 우리가 먹은 뒤에 대형 길드 찾아가서 길드원으로 받아달라고 하면 돼. 돈도 거하게 받고. 그러면 본캐 들고 와봤자 함부로 못 한다니까?
플레이어들끼리 귓속말 주고받는 걸 선우가 방해했다.
“뭐 때문에 그러는데?”
“아, 이 새끼 봐라. 말이 짧네. 죽고 싶냐?”
전사 플레이어가 거들먹거렸다. 뒤쪽에 있던 도적 플레이어가 물었다.
“딴 말 필요 없고 보아하니 초짜가 던전 구경 온 거 같은데 우린 보시다시피 PK로 먹고 살거든. 1층에서 쭉 지켜봤는데 지금쯤이면 인벤토리에 수확물 꽉 차 있을 거 같은데 죽고 나서 우리한테 바칠래? 아니면 거기 들고 있는 단검 그거 하나만 바칠래? 단검만 내놓는다면야 힘들게 번 수확물까진 손 안 대고 곱게 보내줄게. 어떠냐?”
PK 플레이어들의 말에 선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하는 놈들이지? 이깟 쓰레기 단검을 달라고 개폼을 잡았던 건가?’
선우는 흔쾌히 대답했다.
“그러지. 가져가.”
“뭐?”
PK 플레이어들이 순간 당황해했다.
“달라며? 뭐 하고 서 있냐? 가져가라니까.”
“지, 진짜냐?”
“진짜지 가짜로 주냐?”
도적 유저가 얼떨결에 다가왔다.
혹시나 선우가 기습을 하기 위해 미끼를 던진 거라 여긴 궁수 유저가 활을 겨눴다.
도적 유저는 선우의 눈치를 보며 사냥용 단검을 낚아챘다.
“하하… 뭐 이렇게 선뜻 주니까 고맙… 아니지. 운 좋구나. 앞으로 여기서 넌 특별히 봐주도록 하마. 오늘은 우리들이 할 일이 많아서 먼저 가니까 즐겜 하라고.”
PK 유저 셋은 귀환 주문서를 꺼내더니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때마침 다른 늑대인간이 나타나 선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퍽!
“깨갱.”
늑대인간은 선우의 발길질 한방에 죽어버렸다.
텅 빈 던전에 홀로 남은 선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별 희한한 놈들 다 보겠네. 켄트 마을에서 제일 싸구려인 단검을 뭐 저렇게 소중히 갖고 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