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다리면 레벨업-5화 (5/200)

# 5

제5화

선우가 보상으로 받은 스킬 사용권을 확인했다.

사용권은 인벤토리에 들어 있었다.

[스킬 사용권]

등급: 유니크

인피니티 마스터의 특권 중 하나인 1회용 아이템. 사용권을 쓰면 스킬을 뽑을 수 있다. 플레이어가 뽑기를 하면 무작위로 스킬 1개가 지급되고 주어진 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뽑기면 운빨인데… 질러봐야지.”

선우는 사용권을 썼다.

띠링.

[스킬 사용권 1장이 소모됐습니다.]

[스킬 뽑기창이 생성됐습니다.]

[다음 스킬 카드 중 한 장을 선택하세요.]

[카드를 선택하는 즉시 해당 스킬이 지급됩니다.]

선우의 눈앞에 뽑기 화면이 나타났다.

총 12장의 카드가 생성되어 있었고 모두 물음표가 그려져 있었다.

“으음… 뭘 골라야 되지….”

선우는 대충 아무 카드를 손가락을 터치했다.

띠링.

[카드를 선택하였습니다.]

[원샷원킬(One shot one kill) 스킬이 지급됐습니다.]

[스킬의 사용 시간은 24시간입니다.]

선우는 재빨리 지급받은 스킬을 확인했다.

스킬: 원샷원킬

한 방으로 적 하나를 죽일 수 있는 스킬.

등급: 유니크

숙련도: F

조건: 숙련도가 오를수록 스킬 재사용 시간이 줄어든다.

스킬 재사용 시간: 3초

사용 시간: 24시간

“우워…대박이다.”

뜻하지 않은 행운이 선우를 덮쳤다.

한방 치면 깔끔하게 죽일 수 있는 유니크 스킬이 뜬 것.

선우는 누가 들을 새라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삼켰다.

간신히 진정시킨 뒤 골목에서 나왔다.

입술 틈으로 새어나오는 웃음은 어쩔 수 없었다.

비록 시간제한이 있는 스킬이었지만 누구든 걸리면 한방에 보낼 수 있단 것만으로도 선우의 기분을 들뜨게 했다.

“어라? 이 새끼 봐라. 여기서 다 만나네.”

“응?”

들뜬 기분도 잠시.

마을 밖 사냥터에서 마주쳤던 블러드 스컬의 양아치 길드원들이 선우와 맞닥뜨렸다.

먹거리 골목에서 한 손엔 왕만두와 다른 손엔 튀김이 든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어디로 튀었나 했더니 여기에 숨어 있었구만.”

“숨긴 누가 숨었다 그러냐?”

선우의 대답에 양아치 동생이 형 오기환의 눈치를 봤다.

오기환이 선우를 노려보며 다가왔다.

“야, 언제까지 여기서 숨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진 마라. 블러드 스컬에서 내 동생 길드원 승낙만 떨어지면 척살령을 내릴 거니까. 그러면 일찌감치 지금 캐릭터 삭제하고 다시 만들던지 아니면 다른 게임을 해야 될 거다.”

오기환을 본 근처의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렸다.

“야, 저거 봐. 블러드 스컬이다.”

“블러드 스컬 길드가 켄트 마을엔 왜 왔지?”

“아마 버스 태워주려고 왔나 본데.”

“근데 쟨 뭐냐? 싸움 붙은 거 같은데.”

플레이어들의 수군거림이 오기환의 귀를 자극했다.

오기환은 더 건방진 말투로 선우를 몰아붙였다.

“블러드 스컬에서 초보자들 일일이 상대하긴 쪽팔리니까 깔끔하게 사과만 받고 가지. 내 동생한테 사과해라.”

이미 구경꾼들이 많아졌고 오기환은 선우를 망신 줄 생각이었다.

사과만 받고 끝날 리도 없었다.

선우가 켄트 마을을 나서는 순간만 노릴 테니까.

오기환의 말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더 모여들었다.

선우는 구경꾼들을 무시한 채 가볍게 대꾸했다.

“어디서 개가 짖나….”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미친놈. 방금 들었냐? 저거 블러드 스컬이 어떤 길드인줄 알고….”

“혹시 상위 랭커가 캐릭터 다시 키우는 거 아냐?”

선우의 반응에 오기환이 입술을 꿈틀거렸다.

사람들 앞에서 망신 주려고 했던 오기환의 계획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선우가 아닌 오기환의 반응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이 느껴졌다.

“이 새끼가 진짜… 죽고 싶냐?”

여기서 오기환이 틈을 보이면 소속 길드의 이미지를 우습게 만드는 꼴.

보는 눈들이 많은 만큼 확실한 매듭을 지어야 했다.

반면 선우는 아까와 달리 자신만만해했다. 사냥터에서는 튀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 스킬로 정말 이놈을 죽일 수 있을까? 만약 그러면… 캐삭빵 걸고 해봐?’

선우의 자신감은 조금 전 보상으로 받은 사용권으로 획득한 원샷원킬 스킬 때문이었다.

“누가 죽을지 한번 확인해볼래?”

“뭐라고?”

오기환의 눈에 약간의 당혹감이 어렸다.

‘이 새끼 봐라. 아까는 순식간에 튀더니만 여기서는 또 왜 이렇게 자신만만해하지? 설마 켄트 마을에서 피케이 금지라는 것만 믿고 이러는 건 아닐 테고….’

인피니티 로드를 하는 플레이어들은 모두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다.

그렇기에 켄트 마을에서만 머무를 순 없는 노릇.

선우의 기이한 자신감에 오기환은 속으로 당황했지만 다시 으름장을 놨다.

“하! 이 새끼가 지금 나한테 결투를 하자는 거냐?”

“바라던 바다.”

오기환이 잠깐 머뭇거렸다.

‘틀림없어. 켄트 마을의 피케이 금지 하나 믿고 이러는 거다.’

선우의 장비를 살펴봐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허름한 가죽 옷에 흔해빠진 초보 플레이어들의 기본 장비였다.

“오냐, 죽고 싶은 게 바라는 거면 원대로 해주지. 여기는 피케이 금지니까 밖으로 나가자. 결투를 원한다며?”

“그러지, 캐삭빵으로 할 거지?”

선우가 먼저 캐삭빵을 제안했다.

구경하던 플레이어들이 시끄러워졌다.

“야, 쟤 미친 거 아냐? 초짜가 지금 블러드 스컬 길드를 상대로 캐삭빵을 걸어?”

“저 길드원 장비 보니까 못해도 100렙은 될 건데…. 아무리 상위 랭커가 다시 키운다 쳐도 저 상태로 불가능할 거고… 뭐 믿고 저래?”

“고렙 유저가 취미 삼아 초보 캐릭터 키우는 거 같은데… 템빨 믿는 건가?”

오기환은 선우의 캐삭빵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 개념 없는 놈은 캐삭빵이 보약이지. 밖으로 가서 결판을 내자.”

선우와 오기환이 켄트 마을을 나갔고 구경꾼들이 따라갔다.

* * *

“이제 결투를 신청한다. 승낙이나 해라.”

[오기환 님으로부터 1:1 PVP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PVP 조건은 캐릭터 삭제, 아이템 독식입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es/No]

[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결투가 시작됩니다.]

카운트가 시작되고 오기환과 선우를 투명한 반 구체가 둘러쌌다.

“시작됐다. 뭐 믿고 블러드 스컬한테 들이댔는지 궁금한데.”

“야, 이거 찍어두자.”

구경하던 플레이어들이 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플레이어들의 PVP는 그 자체만으로 영상의 판매 수익을 보장해주는 핵심 수입원 중 하나였다.

“이제 죽을 준비는 됐냐?”

선우를 향해 오기환이 장검을 빼어들었다.

장검에서 붉은 기가 꿈틀거렸다.

반면 선우는 무기를 꺼내들지 않고 빈손이었다.

“야, 뭐하고 있냐? 빨리 무기를 꺼내. 혹시 맨손으로 날 상대하겠단 거냐?”

“아, 그렇지.”

선우는 원샷원킬 스킬을 생각하고 있었다.

무기를 꺼내서 공격할지 아니면 맨손으로 공격해도 스킬이 먹힐지 갑자기 궁금해졌으니까.

‘굳이 무기를 꺼낼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선우가 장검을 든 오기환을 보다가 반 구체 밖에서 구경하는 플레이어들을 힐끔거렸다.

‘영상 촬영을 하는 거 같은데 전투 구색은 갖춰볼까?’

토끼와 다람쥐를 사냥할 때 쓰던 사냥 단검을 꺼내자 플레이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거 뭐지? 설마 초보자들 쓰는 단검인가?”

“미친, 난 템빨을 믿고 저러는 줄 알았더니 쟤 완전 또라이네. 뭐 믿고 설친 거야?”

“와, 이건 찍으나 마나다. 난 고렙 유저가 템빨로 캐릭 키우는 줄 알고 기대했더니만.”

“야, 그냥 가자.”

기대하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실망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가장 당황한 건 오기환이었다.

‘미친놈인가? 지금 고작 저딴 단검으로 날 상대하려고 캐삭빵을 제안한 거라고?’

선우는 단검을 들고 오기환을 자극했다.

“야, 뭐하고 있냐? 칼 녹슬겠다. 빨리 들어와.”

“이 새끼가….”

파앗!

오기환이 장검을 들고 지면을 박찼다.

칼이 선우의 목을 내리그었다.

물론 닿을 리는 없었다.

선우는 슬쩍 옆으로 몸을 날려 단검으로 가볍게 쳐냈다.

오기환의 장검이 선우의 단검과 충돌하자 과자처럼 부스러졌다.

“뭐… 뭐?”

부서진 장검을 본 오기환에게 선우가 돌격했다.

“놀라긴 아직 일러.”

쑤걱!

선우의 단검이 오기환의 몸통을 찔렀다.

“미친… 말도 안 돼….”

오기환은 눈앞에 나타난 화면을 보며 몸을 떨었다.

조금 전까지 100% 가득 찼던 체력 게이지가 단 한방에 투명한 빈 칸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원샷원킬 스킬의 위력이었다.

[오기환 님이 PVP 대결에서 패배했습니다.]

선우에게 들려오는 승리의 알림.

“어디 보자… 뭐 쓸 만한 거 없나?”

인피니티 로드에서 PVP 대결은 단순히 캐릭터 삭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패배하고 쓸쓸하게 식어간 오기환의 캐릭터를 선우가 뒤적거렸다.

“야! 이 새끼야!! 형 꺼 손대면 가만 안 둬!”

선우는 오기환의 캐릭터에서 경매에 팔 만한 아이템들을 모두 인벤토리에 넣었다.

PVP 대결을 위해 생성된 투명한 구체가 사라지고 있었다.

단검을 든 선우가 사라진 구체 밖으로 나왔다.

“앞으로 나 보면 재빨리 없어져라. 안 그러면 네 형 꼴 나.”

오기환의 양아치 동생은 선우가 다가오자 얼음장처럼 굳어버렸다.

단 한 방에 오기환이 패하는 걸 지켜본 플레이어들 또한 마찬가지.

“저게 말이 돼?”

“어느 정도 고렙이길래 고작 저딴 쓰레기 단검으로 블러드 스컬 길드원을 죽여?”

“저 사람 누군지 혹시 아는 사람?”

플레이어들 중 선우를 알아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우가 구경하던 플레이어들이 모인 곳으로 가고 있었다.

지켜보던 플레이어들이 홍해처럼 좌우로 갈라지며 선우에게 길을 터줬다.

걸리면 죽는다.

한 방에 블러드 스컬 길드원을 패배시킨 난생 처음 보는 전투력에 플레이어들은 모두 기가 질려버렸다.

아이템, 스킬, 컨트롤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저 토끼를 잡듯이 단검으로 찔렀는데 적어도 100레벨 대의 플레이어가 죽어버렸다.

플레이어들은 선우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만 볼 뿐, 말을 걸 엄두조차 못 냈다.

* * *

“후아… 이건 진짜 대박이야… 미친 스킬이라고….”

선우는 켄트 마을에서 한적한 골목에 들어가 쾌재를 불렀다.

기다리면 자동으로 레벨업이 되는 클래스로 각성한 데 이어 퀘스트를 클리어하니 보상으로 받은 스킬 사용권.

그 사용권에서는 인피니티 로드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스킬이 튀어나왔다.

“아깝다… 이런 스킬을 고작 24시간밖에 못 쓰는 게….”

마음 같아서는 인피니티 로드에서 은퇴하는 순간까지 쓰고 싶었다.

“사용 시간만 아니었으면 아마 인피니티 로드의 버그 신고까지 받을 수도 있으니… 이해는 간다.”

선우는 인벤토리를 열고 오기환으로부터 가져온 아이템을 확인했다.

“오… 이거 경매에 팔면 돈 좀 만지겠는걸? 역시 블러드 스컬 답군.”

선우는 켄트 마을의 경매장으로 향했다.

“여기 다 팔 겁니다.”

경매장 NPC가 선우가 꺼낸 오기환의 아이템을 하나씩 살펴보더니 흥미로운 눈으로 물었다.

“이거 진짜 손님 거유?”

“예, 맞습니다.”

“겉보기와 다르게 돈 나가는 물건들을 제법 갖고 있구먼. 기다리쇼.”

“아, 저기 잠깐만요. 경매 시작할 때 이 아이템들은 블러드 스컬 길드원이 갖고 있던 거라고 설명 좀 붙여주세요.”

“알겠수.”

선우가 경매에 내놓은 오기환의 아이템들은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대형 길드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알려진 블러드 스컬 길드의 유명세가 아이템의 값어치를 더욱 높여줬다.

경매장에서 팔린 금액은 자동으로 현실 시세에 맞는 돈으로 플레이어의 가상 계좌로 자동 입금됐다.

“얼마 들어 왔을까?”

선우가 기대에 찬 눈으로 가상계좌를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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