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중화연맹 헌터들은 하칸을 데리고 게이트로 들어갔고 위텐신과 한국 헌터들 또한 게이트로 향했다.
“난 됐으니 드래곤 먼저 치유해라.”
위텐신은 자신의 망가진 몸상태를 보며 치유하려는 부하들에게 당장 쓰러진 하칸의 치유를 먼저 부탁하였다. 자신의 몸에는 상처까지 났으면서 고작 기절해있는 하칸을 도와달라니. 당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들 중에서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위텐신이 이렇게 나올 정도면 심각한 일인 건 틀림없었기 때문에 말없이 그의 명령을 따를 뿐이었다.
“지금부터 잘 들어.”
위텐신은 간신히 벽에 기대어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하칸을 치유해주고 있는 부하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오키나와 해구에 이 세계 말고 다크혼이라는 다른 차원의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가 발견됐다.”
역시나, 중화연맹 헌터들은 이 사실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그러겠지. 아까부터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말들만 뱉어내다가 이번엔 다른 차원의 세계와 이어진다는 통로가 있다니.
아마 거대한 충격을 받은 탓에 정신이 잠깐 나가 있는 듯하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 없었다.
“그 말은 지구와 연결되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소립니까?”
간신히 부하 중 하나가 상황을 이해하고 물었다. 위텐신은 자신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부하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 세계에 있는 이교도 세력은 대악마를 깨워 지구를 정복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대악마라. 게이트를 통해 단순히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몬스터까지 오고간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이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건가? 위텐신은 중화연맹 헌터들을 보며 바보들도 이런 바보들이 없다는 듯 웃음을 갈겨주었다.
“그럼 지금 지구에 생기고 있는 게이트, 몬스터가 다 어디서 왔겠나.”
위텐신의 물음에 모두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들도 같은 물음을 가슴에 품게 되었다. 이 게이트의 시작은 과연 무엇이었나. 지금 위텐신이 하고 있는 말이 사실이라면, 이대로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럼 이대로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겁니까? 게이트를 막을 방법은 없는 건가요?”
“그쪽 세계로 넘어가 대악마를 깨우는 걸 막는 방법은요?”
“그보단 게이트 자체를 폭파시키는 건 어떨까요?”
다들 공황장애에 빠진 듯 허둥지둥 방법을 갈구하기만 하였다. 그들의 표정에는 하나같이 절망이 껴있었지만 행동하는 모습은 달랐다. 어떻게든 최악으로 흘러가는 상황을 막으려고 발버둥 치는 자들이 있으면, 자포자기를 하며 이내 모든 걸 포기해버린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위텐신은 잔잔하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조용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헌터들에게 말하였다.
“방법은 있다.”
가장 희망적이고 밝은 대답이다. 중화연맹 헌터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 희망의 줄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하였다.
“말씀만 하시면 뭐든 따르겠습니다.”
“들었지? 뭐든 따른다잖아. 말해.”
위텐신은 마치 자신의 부하들이 그렇게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대한민국 헌터들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그 모습을 본 중화연맹 헌터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차원을 죽이러 와서 만난 것도 모자라 한-중 사이가 좋지 않은 상황인데도 한국 헌터들에게 손을 뻗다니. 중화연맹 헌터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된다는 말이 있지만, 지금은 꼬박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위텐신님, 설마 지금 한국 헌터들의 명령을 따르라고 명령하시는 겁니까?”
“이차원과 한국 헌터들만이 이 세계의 종말, 게이트 현상을 끝낼 수 있다.”
위텐신의 말에 중화연맹 헌터들은 대답 없이 침묵을 지켰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반응이었다. 그 일을 대한민국 헌터들만이 끝낼 수 있다면 그들의 손을 잡는 게 맞는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리 쉽게 손을 잡기에는 벌레를 잡은 손으로 요리를 하는 것처럼 찝찝하였다.
그런데 그때 그들 중 가장 윗선으로 보이는 헌터 하나가 앞장서며 말하였다.
“따르겠습니다. 말씀해주세요. 어떻게 하면 되는지.”
대단한 용기였다. 모두가 꺼려 하고 있는 상황에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니. 그의 용기가 퍼진 탓일까. 그것을 시작으로 눈치만 살피던 가른 중화연맹 사람들도 한국 헌터들을 따르겠다고 서서히 손을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거의 대부분의 중화연맹 소속 헌터들이 대한민국 헌터에게 명령을 따르겠다고 대답하였다. 이제 한국 헌터들만 이들의 손을 잡기만 하면 되는데... 정작 대한민국 헌터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한국 헌터들 또한 당장 어떻게 해야 대악마를 막고 게이트를 부술 수 있는지 자세한 계획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게......”
이차원이 있었다면 현재 이 일을 잘 풀어나갈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을 텐데. 한국 헌터들은 뭐라고 말도 못 하고 말끝을 흐리는데 그 순간 쓰러져 있던 하칸이 눈을 떴다.
-루오비 광석.
하칸이 그물에서 풀려난 몸을 일으키며 게이트에 모인 헌터들을 향해 전하였다.
-루오비 광석만 모은다면 다크혼 세계와 통하는 게이트를 닫을 수 있다.
“정말 그 광석만 모으면 종말을 막을 수 있단 건가?”
헌터 하나가 하칸에게 묻자 바로 수긍하였다.
-최대한 빨리 차원님에게 넘어가야 루오비 광석을 구하고 지구를 지킬 수 있다. 그러니 빨리 날 회복시켜라.
아까의 하칸을 잡았다는 기세는 어디 가고 중화연맹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하칸에게 달라붙어 몸을 회복시켰다. 사람이란 이토록 태도가 바뀌기 쉬운 존재이다. 한편 하칸의 말에 중화연맹 헌터뿐만 아니라 한국 헌터들까지 하칸에게 달려가 힐 스킬을 사용하고 몸을 회복시켜 주었다.
“당신을 치유하는 것 말고 우리가 이차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
위텐신의 말에 하칸은 조금 생각에 잠겼다. 자신은 모든 에너지를 조종할 수가 있다. 또한 루오비 광석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에 대해서도 파악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게임에서만 존재할 줄 알았던 루오비 광석의 에너지가 이곳에서도 느껴져 왔다. 게이트를 열고 닫을 수 있는 힘은 아니었지만, 다크혼 세계로 넘어갈 정도의 힘은 있어 보였다.
지금 다크혼에 있는 이차원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이 이차원에게 도움을 줄 수만 있다고 한다면 데리고 가도 무방하겠지.
-나와 함께 다크혼 세계로 넘어가는 방법이 있다.
“그게 가능한가?”
-당장은 내가 회복하기 위한 시간이 걸리니 이차원님처럼 다크혼에 접속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렇게 할 방법이...”
“다 이쪽으로 오세요.”
중화연맹 헌터들을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대한민국 헌터들이 중화연맹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자, 자 다들 휴대폰 꺼내세요.”
헌터들은 박지원이 자신에게 해줬던 것처럼 중국 헌터들에게도 게임을 옮겨 주기 시작하였다.
***
울프릭이 운전하는 대형 트럭은 마침내 루칸다 왕국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곳엔 경비조차 없었고 벌써 폐허가 된 모습이었다. 게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루칸다 왕국의 국민들의 갑각 또한 모두 깨져있는 상태로 죽어있었다. 그중엔 전투력이 높은 자들도 상당히 있었다.
-바르티스 이 자식......
이런 짓을 할 만한 존재는 이교도인인 바르티스밖에 없었다. 이를 깨달은 리지는 이곳까지 손이 뻗은 바르티스에게 분노를 느꼈다.
-이곳에 사람은 없는 것 같으니 왕실로 가보지.
왕실도 무사할 거라는 기대감은 하지 않았지만, 목숨을 건진 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코웰의 말에 울프릭은 곧바로 액셀을 밟아 빠르게 왕국을 가로질러 왕실로 향하였다. 역시나 왕실도 공격을 당했는지 아수라장이었다. 극도로 다행스러운 것은, 왕좌에 앉은 국왕이 힘없이 이차원 일행을 맞이한 것이었다.
-바르티스 그놈이 왕실에 있는 잠수정까지 싹 다 털어갔네......
그놈들, 이곳을 애초에 목적을 두고 있어서 인정사정 볼 거 없이 망가뜨려 버린 모양이었다. 국왕의 마음은 자신의 왕국처럼 산산히 부서진 채 그저 죽음만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리지는 그 모습에 자신의 죄책감과 더불어 증오심이 붉게 타올랐다.
-그놈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압니까?
-루오비 광석에 대한 얘기를 하더니 프라하성으로 이동했네.
-프라하성이라면 대륙을 건너가야 할 텐데, 바르티스가 이를 모를 리는 없고. 우리가 쫓아오는 걸 알고 거짓 정보를 흘린 건 아닐까?
데린의 의심에 국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해류를 타면 돼. 이곳 바다에 흐르는 대형 해류를 타면 프라하성과 가까운 일렉시아성의 지하수로 갈 수 있네.
국왕은 처음 만난 일행들이지만 모든 것을 다 알려줄 만큼 그들에게 정보를 알려주었다. 이제 잃을 것도 없기에 누구를 믿든지 간에 희망을 품지 않는 것처럼도 보였지만. 허나 떠나가는 일행들에게 국왕은 마지막으로 진심을 담은 소리를 질렀다.
-반드시 이교도를 막아주게!
***
중화연맹의 수백 명의 헌터들, 그리고 대한민국의 헌터들까지 하칸의 도움을 받아 모두 다크혼 세계관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본래대로라면 이차원과 박지원처럼 각성자만이 되어야 이 게임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하칸의 에너지로 인해 강제적으로 문을 열게 해 모두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게임 속으로 들어온 그들은 같은 대륙이지만 각자 다른 시작의 마을에서 부활했고 다양한 캐릭터와 연결이 되었다. 그들 중엔 울프릭도 있고 디원도 있고, 슈리도 있고, 수많은 캐릭터들이 있고 중복되는 것들도 있었지만 이들의 목표는 같았다. 바로 프라하성으로 가는 것.
-누구냐 넌?
-누구세요?
-정체를 밝혀라.
각각의 캐릭터들은 갑자기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이들을 보고 경계했고 그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몰랐다. 차원이 있었다면 캐릭터별로 어떻게 움직여야 되는지 공략법을 내놓았지만 차원은 이곳에 없었다. 더군다나 상황이 바뀌어져 이교도인들이 날뛰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난항이 시작되었다.
-내가 왜 너랑 프라하성에 가야 해?
“난 요정이니까?”
-요정이란 걸 증명해라.
헌터들 모두 이교도인들에게 예민해진 캐릭터들을 설득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다크혼 세계 시작 대륙 공중에 하칸이 뛰어올랐다.
-드래곤......?
캐릭터들은 모두 그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고 하칸은 마을 곳곳에 흩어진 헌터들을 찾아다녔다.
-길을 안내할 테니 따라와라.
“이것이 내가 요정이란 증거다.”
헌터들은 캐릭터들에게 드래곤을 증거로 내밀자 모두가 곧바로 수긍하였다. 그리고 하칸은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적들을 모두 처리를 해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만나게 된 캐릭터들과 함께 프라하성으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