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냉랭함이 서늘하게 감싸던 분위기에서 알 수 없는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포박당한 상태의 위텐신 앞에서 대한민국 헌터들이 그의 앞에서 핸드폰을 보며 웃고 있던 것이다. 자신을 조롱하려고 하는 건지, 그 모습을 보던 위텐신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미친 새끼들.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다니.”
“너야말로 재판에 회부되면 사형일 텐데 웃음이 나오나?”
헌터들은 극악무도한 악질을 하고 다닌 위텐신을 내리 깔보며 말했다. 이들의 말대로 위텐신은 물 흐르듯이 재판에 넘겨지면 인생에 마침표가 제대로 찍히게 될 거다. 지금 이런 상황에 놓여 심장이 터질 듯 호흡이 불안정할 텐데, 어째선지 위텐신은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 상처가 난 옆구리 쪽이 들썩거릴 때마다 벌어지면서 고통스러운데도 그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큭큭큭.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중화연맹이 그렇게 우스운 곳이 아니야. 너희들 저 위로 올라가는 순간에 미사일밥 되는 거라고.”
이게 무슨 말인가. 하기야 생각해 보니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중화연맹 본부장이나 되는 사람이 이런 곳에 아무런 수도 안 쓰고 올 리는 없다. 위텐신은 이곳으로 오기 전, 중국 당국에게 보고문을 보내었다. 자신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긴 거니 필히 후속 조취를 취해달라고 말이다.
위텐신의 직급도 있고 권력도 꽤나 높은 수준에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거절할 수도 없었겠지. 그렇게 그들은 합을 맞추고 심해로 넘어온 것이다. 그 시각, 중국은 위텐신의 감감무소식에 곧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역시 이런 사람이 무작정 들어올 리는 없었겠지.”
한국 헌터들의 입에서 자그마한 소리로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 역시나, 이들도 이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중국 당국은 위텐신이 이차원과 함께 심해로 간다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말리지 않고 여기로 보내었다. 아마 중국 정부도 이차원의 처리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를 표했었겠지. 그들 사이에서도 이차원에 대해서 견제를 하는 사람이 주가 되어서.
그렇게 그들의 수에 놀아난 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대응한 건지, 위텐신을 돕기 위해 최정예 멤버들을 꾸려서 보내었다. 물론 이것마저 실패했을 때 계획도 세워둔 마당이었다. 아마 지금쯤 수백 명의 중화연맹 소속 헌터들이 바다에 도착했을 것이고 항공모함까지 떠서 전투기 폭격을 준비 중일 수도 있었다.
최악의 상황은 이미 양국 간 무력 충돌이 벌어진 거겠지만 양국 모두 이를 마지막 선택지라고 여기는 만큼 당장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가뜩이나 여기는 중국 영역이다. 그렇기에 순식간에 주변이 적으로 보였다. 한순간에 이렇게 불리하게 변해버리다니,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 헌터들은 위텐신의 말에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이미 그에 대한 각오도 다지면서 이 게이트까지 내려온 것이기에 할 테면 해보란 듯이 행동하였다.
“혓바닥 참 기네. 너희들이 죄는 이미 밝혀졌어.”
한국 헌터들은 위텐신을 이를 악물고 입술 한쪽을 치켜든 채 백주신의 뼈를 가리켰다.
“정부에서 그냥 우릴 보냈을 거 같아? 우린 전쟁 시뮬레이션까지 돌리고 왔어. 무서울 게 없다고.”
자신들이 중국 정부에게 당하기 전, 이 사실을 중국, 아니 전 세계에 퍼트리기만 하면 대한민국의 승리가 확정된다. 시체가 나온 것에 보태어 박지원이 채취한 녹음파일과 함께 퍼트리면 온갖 비난은 중국으로 향하게 되겠지.
또한 대한민국 정부도 자신들이 게이트 밖으로 다시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군대, 또는 다른 헌터 병력을 파견시켰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해도 한국 정부도 순순히 중국의 의도대로 흘러가게 두지는 않게 할 거지만.
“우린 여기서 죽더라도 중화연맹, 너희들 죗값 치르게 하고 돌아가신 백주신 헌터님 원한 갚아주면 그만이야.”
“과연 그런다고 모든 게 끝날 것 같아?”
그 뒤에 무언가 더 있다는 뜻인가? 위텐신은 아까와는 다른 비열한 웃음을 보이며 한국 헌터들을 노려보았다. 또 무슨 헛된 소리나 하면서 시간을 끄려는 작전인 거겠지. 이보다 더 큰일이 어딨다고. 헌터들은 위텐신의 허세와 같은 행동에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위텐신은 그런 헌터들을 무지하다고 생각하는 듯 깔보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전쟁이라도 터지면 대악마니 세상의 멸망이니 누가 막을 거냐고.”
세상의 멸망? 그보다 대악마는 뭘 말하는 거야? 위텐신 말에 한국 헌터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이 또한 지금 상황에 도망치기 위해서 지어낸 말이겠거니 하려 했지만, 그러기엔 위텐신의 표정은 너무나 완고한 표정이었다. 마치 미래를 보고 온 사람처럼.
“이제 알겠어? 중국이니 한국이니 세력 싸움할 때가 아니라고.”
그 말을 끝으로 위텐신은 악의에 넘치는 웃음소리를 뱉어내었다. 게이트 내에는 다시 냉랭한 소리로 장악되었다.
***
차원의 앞으로 여러 가지 음식이 곧바로 차려졌다. 고급 레스토랑처럼 화려하고 값비싼 음식은 아니지만, 소소하고 정이 담긴 음식들이었다. 이교도와의 전쟁을 준비한다는 차원의 말에 병력들이 너나 할 거 없이 준비해온 음식들을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게임 속 음식을 차마 먹을 수 없었기에 이를 거부하였다. 게다가 이들도 먹기에 양이 좀 적기도 하였고.
이를 별개로 자연스레 지하 요새에 모인 병력에 대한 지휘권은 모두 차원에게로 옮겨졌다. 그들은 전쟁을 치를 거란 차원에 말에 군말 없이 전투 복장을 준비하였다. 날카롭게 다듬은 검을 시작으로, 유연하고 견고하게 만들어진 활, 거기에 각종 교본으로 마법을 익힌 자들도 각자의 지팡이를 챙겨 들었다. 수상한 자들에게서 빼앗아온 장비들도 있어서 내구력이 좋은 물건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원의 표정은 영 밝게 미소 짓지 못하고 잿빛으로 얼굴을 칠하고 있었다. 이들의 실력이 못미더운 걸까?
“차원님, 곧 있을 전투가 걱정이세요?”
그때 그렉과 함께 병력을 점검하던 박지원이 곧잘 어두워진 차원의 표정을 살피면서 물었다. 차원은 박지원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마음에 걸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전선이 너무 많단 생각이 들어서.”
확실히,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넘쳐난다. 다크 혼 안에서도 그렇고, 현실 세계에서도 그렇고.
다크 혼이 현실과 이어져 있다는 것이 확정되어진 한, 가볍게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어졌다.
“그렇긴 하네요. 흑천어 게이트에 있는 위텐신을 먼저 처리하는 건 어떨까요?”
“위텐신은 오키나와에 있는 다크혼 게이트를 붕괴시킬 때 필요한 해구 접근권 때문에 당장 처리가 불가능해.”
“루칸다 왕국으로 간 바르티스 추적대는 아직인 건가요?”
박지원은 이차원의 설명으로 인해 그의 동료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건 시간이 좀 걸릴 거라 예상했어. 바르티스 정도 되는 녀석이 쉽게 잡힐 리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네요. 당장 루오비 광석 공급책 먼저 확실히 차단하고 차례로 처리할 수밖엔.”
“다들 알아서 잘해주겠지.”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그런데 정말 따로 생각해두신 전략은 없는 겁니까?
어느덧 병역들은 그렉의 지시에 따라 비장함을 몸에 두른 채 가지런히 위치하고 있었다. 한편, 그렉은 별다른 작전이 없다는 차원의 말에 걱정이 되긴 하는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차원은 이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 요새에 이 정도 연합체가 있다는 것만으로 저들을 당황 시키기엔 충분해. 물론 그들이 만만한 상대는 아니지만 이곳엔 다른 대륙에서 건너온 강한 자들도 많아.”
차원의 호기로운 말에 그렉은 곧바로 받아들였다.
-바로 출발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차원은 곧바로 출발하기 전에 잠시 이들을 불러세웠다. 이교도를 습격하러 가기 전 마지막으로 이들의 사기를 복 돋아 주기 위해 한마디 하려는지 단상으로 발을 옮겼다.
“지금 이교도는 대악마를 깨워 이 세계를 정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세계까지도 손에 넣기 위한 계획을 세울 만큼 그 욕심이 끝이 없다. 만약 우리가 이곳에서 저들의 루오비 공급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만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수억 명의 사람들이 희생될 것이다.”
용맹하고 올곧게 뻗어가는 말에 그곳에 모인 모험가들의 표정이 더욱 결연해져 갔다. 또한 자신의 어깨에 무거운 짐이 얹어진 사람처럼 압박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복잡할 것 없다. 싸워서 이긴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고 지금 이곳에 모인 그대들이야말로 역사에 기록될 영웅들이며 평화의 주역이 될 것이다.”
그가 패기롭게 내뱉은 말에 모두가 승리의 의지를 다지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
정보를 얻고 돌아오는 하칸은 차원과 박지원이 있을 흑천어 게이트 안으러 들어가려 하였다. 그런데 근처에 엄청나게 많은 헌터들이 개미들처럼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모습에 속력을 줄이던 하칸은 그들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온갖 무기들로 무장이 되어있는 사람들과 잠수정들이 케이트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왜 저러고 있는 거지? 설마, 이차원을 처리하기 위해 온 건가? 아직 게이트 상황을 모르는 하칸은 슬며시 다가갔다. 그러자 그에게서 내뿜어진 에너지가 이들에게 닿아버리고 말았다.
“용이다!”
“저 용은 디버프 스킬을 사용한다고 하니 모두 조심해라!”
이미 중화연맹 헌터들은 하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공격하지 않고 하칸을 노리고 있었다. 곧이어 중화연맹 헌터들은 하칸의 출연을 대비해서 디버프 스킬이 통하지 않는 현대식 무기를 들고 왔고 소형 미사일들을 하칸에게 쏘아대었다.
하칸은 물속을 빠르게 헤엄치며 미사일을 피했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헌터들이 모두 하칸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하자 하칸조차도 어찌할 방법 없이 데미지를 입게 되었다.
자신에게 공격하는 몇 명 헌터들의 에너지를 빼앗으며 힘을 모았고 에너지를 빼앗긴 헌터들을 그대로 기절하게 하였지만, 하칸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그들은 하칸 주위를 점점 조여왔고 커다란 그물망을 던져 하칸을 속박하였다.
그물망을 찢기 위해 드래곤으로 변신하며 발버둥 치지만 특수한 에너지로 만든 것인지 영롱한 빛이 나는 그물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잡았다, 이놈.”
하칸은 도망치기 위해 몸부림을 쳐대었지만 오히려 그물망은 강하게 조여왔다. 그럴수록 하칸의 힘도 급속도로 빠져 축 처져버렸다.
마침내 하칸을 손에 넣은 중화연맹 헌터들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주변을 감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