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워프로 무한성장-185화 (185/202)

185화

[각성 ‘차원이동자’]

[패시브 : 빨간실 습득]

[당신과 다른 세계에 속한 캐릭터에 당신의 생명줄에 연결되었습니다. 연결이 더욱 긴밀해지면 특수한 효과를 발동시킵니다.]

순식간에 박지원 앞에 상태창이 떴고 이를 본 헌터들이 모두 소스라쳤다.

“차원 이동자? 진짜 게임과 현실이 연결됐다니.”

그러나 박지원에겐 온통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차원이동자는 차원이 가진 능력과 비슷하단 건 알았지만 빨간실 습득이라니? 박지원 역시 다크혼이란 게임에 무지한 탓에 이해할 수 없었다.

“빨간실 패시브. 이건 뭐죠, 차원님?”

게다가 생명줄이 연결되었다니, 괜히 섬뜩해져 왔다. 이 모든 것이 어리둥절해서 차원에게 물어보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건 오직 박지원과 연결된 캐릭터였다. 캐릭터가 누구냐에 따라 루오비를 빨리 획득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기에 화면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젠장.”

“젠장이라뇨?”

하지만 그의 입에선 실망감을 숨기지 못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박지원이 연결과 연결된 캐릭터는 슈리라는 여자로 다크혼에서 하필 엑스트라 수준의 존재감이라고는 없는 캐릭터가 보였다. 슈리는 아담한 크기의 소녀였고, 연노란빛의 가운을 걸치며 갈색의 중단발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은 그렇다 치고 루오비를 얻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그럴 게 슈리는 체격이 왜소하여 박지원과 전혀 다른 품위였다. 차라리 박지원이 게임 속 캐릭터였다면 좋았을 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차원과 울프릭이 각각 스크롤과 리지를 찾기 위해 프라하성으로 향했듯 박지원과 슈리의 목표도 프라하성이란 거였다.

‘목적지는 같지만... 가는 길에 죽으려나.”

초반 스토리이기 때문에 강한 적은 나오지 않지만, 워낙 불친절한 전개 때문에 버티지 못하고 헤매다 죽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차원님, 이 사람들 왜 이러는 거죠?”

박지원이 휴대폰 화면 속 프롤로그를 보며 조금 겁에 질린 듯 말하였다. 화면 속 슈리의 집에 갑자기 기사들이 들이닥치더니 사람들을 칼로 베어 죽이기 시작하는데, 여기저기서 피의 향연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 맞다.”

이 충격적인 장면을 보자 드디어 박지원과 연결된 ‘슈리’라는 캐릭터에 대해 생각이 났다. 어머니가 마녀로 오해를 받아 처형당하고, 집에 들이닥친 기사들이 사람들을 죽이고 전체를 불태우는 전제로 시작이 되었지. 마치 리지와 비슷하게 처한 상황 때문에 기억할 수 있었다.

물론 기억이 떠오른 차원은 이 부분의 공략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집 창고 밑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만들어둔 ‘불가사의 영약’이 있다. 그것을 이 수많은 기사들을 헤집고 수집해야 한다.

“진정하고 들어. 지금 얜 슈리라는 캐릭터로 엄마가 마녀로 오해받아 사형당했어. 그리고 지금 이 기사들은 쟤 엄마가 만든 영약을 찾으러 온 거고.”

“그, 그럼 전 어떻게 해요?”

“창고 밑에 슈리 엄마가 만들어 둔 불가사의 영약이란 게 있어. 그걸 저 기사들한테 먹이고 첫 번째 시나리오부터 깨.”

“그걸 제가 꼭 해야 돼요?”

갑작스레 전개되는 일과 어리둥절한 상황에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박지원이 망설이던 그사이, 불길은 점점 집을 삼켜가고 슈리 또한 불에 데어 고통받은 듯 피가 깎였다. 그리고 역시나 빨간실 패시브에 의해 그녀가 휴대폰을 놓치더니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슈리의 고통이 그대로 자신에게 전해진 것이다.

“서두르라 했잖아. 지금 네가 느끼는 고통은 슈리와 연결된 빨간실 패시브 때문이야.”

“그럼 차원님도 계속 이 끔찍한 고통을 느껴온 건가요?”

불에 살짝 닿은 것만으로 빨갛게 부어오를 거 같은데, 차원이 지금까지 참아왔을 엄청난 고통을 생각하니 그저 놀라웠다. 그러니까 그렇게 놀랄 시간 없다니까! 어느새 화면 안에 들이닥친 기사들이 숨어있던 잡부와 시녀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며 슈리를 찾고 있었다.

그들의 기세는 마치 화면을 뚫고 현실 세계로 나올 듯 돌진하였다.

“차원님 이제 어떡합니까?”

“일단 게임 속으로 들어가서 네가 요정이라고 밝혀. 무조건 슈리를 살려야 해.”

여기서 슈리가 죽어버리면 지원도, 차원의 계획도 끝이 난다. 당혹스러운 차원의 지시에 조금 망설이던 그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심호흡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러더니 물속에 다이빙하듯 곧장 게임 속으로 들어갔다.

***

슈리는 기사들을 피해 이층 자신의 방에 숨어 창문을 열어 도망가려 하지만 이미 집 밖엔 기사들이 모두 둘러싸고 있었다. 그거에 자신을 도와줄 가족도, 주변 사람들도 없었다. 하루 만에 변해버린 상황에 슈리는 깊은 좌절감에 빠져있었다. 그때.

-너 뭐야?

집에 쳐들어온 기사 중 한 명이라 판단한 슈리는 치마폭에 숨기고 있던 단검을 꺼내 들며 위협하였다.

“난, 난 요정이야.”

-요정? 거짓말. 너처럼 생긴 요정은 없어!

일단 이차원 님이 시키란 대로는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러면 상황이 끝나는 거 아니었어? 박지원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스토리 때문에 몹시 당황하였다. 그와 동시에, 기사들이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사납게 들려왔다. 침착하자, 그동안 해온 일들처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어.

“내가 도와줄게. 지하에 불가사의의 영약이 있어. 그걸 저들에게 먹이면 여길 벗어날 수 있을 거야.”

-그 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

“일단 살고 봐야 할 거 아니야.”

-하지만... 당장 여기서 어떻게 지하로 가란 소리야!”

이들이 있는 곳은 그녀의 집에서 가장 위층에 있는 방이었다. 시작하자마자 지하로 뛰어갔어야 했는데, 박지원이 망설이는 사이에 타이밍을 놓쳐 버린 거다. 슈리는 더욱 큰 절망에 빠지자 박지원은 우선 그녀를 침착하게 달랬다. 어느덧 기사들은 문 앞까지 온 상황이다.

“저들은 널 공격 못 해. 네가 저들의 시선을 끄는 사이 슈리를 창고로 내보내.”

이 상황을 지켜보던 차원이 그녀를 향해 말했다. 그와 동시에 기사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그들을 발견하였다.

-저게 뭐지? 몬스터인가?

-일단 죽이고 본다.

기사들의 모습에 슈리는 완전히 겁에 질렸다. 박지원도 살짝 겁이 났지만 이차원의 말을 떠올렸다.

“내가 저들을 유인할 테니 어서 창고로 향해.”

-그게 무슨... 잠깐!

지운은 기사들을 향해 내달렸다. 그에 모든 기사들이 그녀에게 검을 휘두르는데, 차원 때와 마찬가지로 검은 허공을 가로질렀다.

-이게 대체.....!

이어서 그들 중 몇 명 마법을 쓰는 자들은 마법 공격까지 이용하지만 똑같이 박지원을 통과할 뿐이었다. 모두 당황한 눈치였다. 그 사이 기사들의 눈을 피해 창고로 내려간 슈리는 박지원이 말한 영약을 가지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감히 우릴 따돌리고 도망가려 해?

-들고 있는 영약을 전부 내놔라.

기사들이 슈리를 향해 위협을 하려 하자 들고 있던 영약을 모두 던져주었다. 유리로 된 자그마한 병 안에 들어 있는 영약은 진한 보라색을 띠고 있었다.

-이게 무슨 영약이지? 색이 좀 이상한데.

-오러를 극대로 활성화시킬 수 있는 영약입니다.

슈리의 말에 기사들 조금 의심스럽게 쳐다보지만 튜토리얼 부분이기에 그들은 짜여진 듯 곧바로 영약을 들이켰다.

펑-

자그마한 안개가 일렁이더니 이내 그들은 모두 개구리로 변해있었다.

“퀘스트를 깬 겁니까?”

휴. 이차원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슈리 역시, 박지원을 감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제야 요정으로 좀 보이나?

[슈리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EXP +800 ]

-불가사의의 약이 거기 있단 건 어떻게 알았지?

“그건...”

그녀가 당황해하자 이차원이 자신이 위기에서 헤쳐나갈 때마다 했던 말을 전수하었다.

“요정은 다 아는 거라고 해.”

“요정은 다 아는 거야.”

다행히 슈리도 순순히 믿는 표정이었다. 상황이 일단락되자 지원의 눈에 불에 화상을 입은 슈리의 상처가 보였다.

“아까 다친 덴 괜찮아?”

-응...

지원은 곧바로 슈리를 자신의 친동생 다루듯 걱정해주었다. 차원처럼 게임 속 NPC를 유대적 공감대 없이 맨 처음부터 존중하기는 어려운데, 박지원은 스스럼없이 그들 사이의 벽을 허물어버렸다.

“어딜 갈 건지 물어봐. 아마 프라하성에 간다 할 거야.”

그 뒤로는 이차원의 말대로 흘러갔다.

“같이 가자 해. 의심하면 네가 가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고 대답하고.”

차원은 슈리가 박지원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였다. 초반에 깐깐한 울프릭도 차원을 믿고 따랐으니까. 더욱이 현재 슈리에겐 자신의 여행을 도와줄 그 어떤 존재도 없었기에 그녀의 도움이 더욱 절실했다. 원래 시나리오대로면 엄청난 고생을 들여서 겨우 몬스터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었지.

“차원님, 그런데 저라고 이곳에서 몬스터를 잡을 수 있을까요? 제대로 된 육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몬스터를 피하거나 제압하는 건 내가 알려주면 되니까 문제가 없어. 문제는......”

들려오는 차원의 목소리가 어째 심각하였다. 지원은 괜히 덩달아 불안해졌다.

“문제는 뭔데요?”

문제는 프라하 성으로 가는 길목에 이교도 사제들이 있다는 것이다.

***

목적은 슈리와 박지원이 쉽게 루오비를 구하는 것인데, 지난번 로울로를 상대했을 때처럼 전쟁이 일어나면 차원은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이교도를 막아줄 7성군은 프라하성이 있는 시작의 대륙에 상대적으로 병력이 적은 데다, 이교도는 미리부터 준비해 온 움직임 탓에 병력이 넓게 포진되어 있던 상태였다.

차원이 시나리오를 변경하며 게임을 한 탓에 이렇게 변해버린 것이다.

‘하칸이라면 저기로 곧장 접속할 수 있을까.’

확신은 없었다. 거기에 만약 하칸이 접속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역효과를 낼 것 같기도 했다. 하칸의 등장은 이교도의 긴장감을 더 올리게 될 것이며 경계 태세를 더욱 올려댈 테니까.

‘당장 판단을 내리기 전에 저들이 왜 이곳에 있는지 알아봐야겠어.’

우선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박지원을 밖으로 불러들였다. 박지원은 어렵지 않게 게임의 밖으로 나왔다. 그러더니 차원은 그녀에게 곧바로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이게 뭐예요?”

“시체를 담을 수 있는 캡슐.”

푸르게 빛나는 마블을 그녀에게 건네준 거다. 박지원이 시체를 가져오면, [사자의 기억]을 사용해 이교도가 왜 저곳에서 진을 치고 있는지 알아내려던 것이다.

“저보고 시체를 담아오란 소립니까?”

“응.”

갑자기 시체를 담아오라니. 시체의 혼이 따라다닐 것만 같다. 그런 그녀에게 차원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며 조언해주었다.

“프라하성으로 가는 길목 동쪽 로웬의 동산 뒤에 공동묘지가 있어. 거기서 아무거나 골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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