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대형 해파리의 등장은 생각보다 위압적이다. 투명한 몸체를 통과하여 해파리의 반대편이 고스란히 보인다. 때문에 바다에 떠다니는 거대 비닐처럼도 느껴졌다. 이런 존재가 위험한 이유는 그들의 크기가 큰 것도 있었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전류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차원의 차와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대형 해파리들이 아크족처럼 전류를 촉수로 시작해 사용하였다.
지지직.
그들의 주의로 스파크가 일어났다. 물속이라 전류가 퍼질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들 주위로 헤엄치던 거대한 심해어들만 일제히 전기에 감전돼 배를 뒤집어 까며 기절해 나갔다. 저거, 잘못하다간 곧바로 바짝 튀겨져 버리겠는데.
-이거 위험할 수도 있겠네요.
렌더도 눈앞에 벌어진 일에 침을 꿀꺽 삼켰다. 하필 바닷속이라 잠수정에서 나가 싸울 수도 없었다. 문을 여는 순간, 바닷물이 차 안으로 들어올 것이 뻔한 데다, 차를 버리기에는 인어족들도 같이 버리는 꼴이었다. 난감하네. 방해물이 앞에 있어도 처리를 하지 못하다니.
그때, 자신들의 위력이 차원 일행들이 느꼈다는 걸 눈치챈 듯이, 무서울 거 없다는 식으로 차를 향해 일제히 날아왔다.
-꼬맹아, 이거 타파이트로 만든 거지...?
-...네.
-이런 젠장.
게다가 데린의 말처럼 프랭크가 만든 이 차는 주성분이 타파이트였다. 코스쿤을 잡기 위해 함정으로 이용했던 물질. 그들은 이것에 전류를 흘려보내어 그들을 잡은 것이다. 그랬던 일이 지금 와서 역으로 독이 되어버렸다. 그냥 맞아도 참치 수준으로 거대한 심해어들을 반죽음 상태로 만들었는데... 이들은 말 그대로 조리를 하기 위해 오븐 안에 들어가 있는 것과 똑같았다.
-요정, 뭐라도 좀 해봐.
“곧 공격을 멈출 거다.”
-뭐?
별다른 방법이 없던 울프릭은 이차원에게 요청을 했는데, 갑자기 헛소리 같은 대답을 하였다. 저렇게 포식자처럼 달려오는 놈들이 공격을 멈출 거라니, 이차원도 드디어 헛된 꿈에 사로잡힌 모양이다.
대형 해파리들은 이차원의 바람과 전혀 달리, 맹렬한 기세로 다가왔다. 아무리 울프릭이 속력을 내어도 그들을 따돌리기엔 역부족이다. 그렇게 차와 가까워질수록 차원의 일행은 사색이 되어갔고, 타파이트 차 뒤로 함께 매달려있던 인어족들 또한 소리를 질렀다.
차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피해는 고스란히 인어들에게도 향하게 된다. 이렇게 자신들이 만든 함정에 빠질 줄 몰랐겠지. 결국 궁지에 몰려 마침내 대형 해파리 떼가 차원의 차에 닿을 거리가 되었을 때였다. 갑자기 그들은 차원의 말처럼 빠르게 달려오다 급정거를 하듯 몸이 앞으로 쏠리더니, 일제히 전기 공격을 멈췄다.
-인어족! 인어족들이 공격을 하지 말라고 하니까 멈췄습니다!
이차원을 제외한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졌을 때, 렌더가 외쳤다. 그에게는 인어가 뭐라고 외쳤는지 알아들을 수 있으니 눈치를 챈 것이다. 아마 행동을 멈추라고 했겠지. 역시나, 대형 해파리 떼들이 차원의 트럭 뒤로 매달려있는 인어족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들까지 통구이가 될까 봐 공격을 멈춘 거다.
-그래서 저들을 전부 데려가자고 했던 거냐?
“혹시 모르니까.”
그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차원의 차를 둘러싼 대형 해파리 떼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전류를 내뿜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이들은 촉수를 휘두르며 공격할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차원 일행이 타고 있는 차는 굉장히 견고했다. 흐물흐물한 젤리로 벽을 백 년 쳐봐야 부서지겠는가. 그런 공격이 프랭크와 랜돌프가 만든 트럭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따로 공격할 거 없이 곧장 왕국으로 출발해.”
전류를 사용하지 못하는 해파리들 따위면 무섭지가 않지. 울프릭은 곧바로 액셀을 밟아 내달렸다. 해파리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듯이 바라볼 뿐이었다. 해파리를 뒤로 한 차원의 차는 심해 밑으로 보이는 인어 왕국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였다.
-육지인이다! 최고 경보령을 내려라!
마치 산호를 연상케 하는 듯 여러 갈래로 뻗은 인어 왕국의 감시탑에서 경보가 울렸다. 거대한 막을 두르고 있는 이상한 물체 덩어리가 자신들의 구역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모습에 적의심을 가진 거다. 이내 사이렌과 같은 나팔 소리가 크게 울리며 물의 파동을 일으켰다. 파동 때문인지, 아니면 고의적으로 한 것인지 왕국을 둘러싸고 있던 코팅이 천천히 허물어졌다.
-공격을 해오려는 건가?
-저것 좀 봐요. 뭔가 이상해요.
이들의 코팅이 벗겨지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견제를 하고 있는데, 생뚱맞게도 왕국 전체에 물이 빠르게 덮쳐가면서 그곳에 있던 인어족들과 경비들이 파도에 휩쓸려 가버렸다. 이들은 훗날, 다시 육지로 올라갈 일을 세우기 위해 코팅을 하며 바닷물이 없는 육지처럼 형성한 것이다.
그런 코팅을 제거해 버리고 왕국을 몰살해 버리다니.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인어족과 관련된 서적을 몇 개 읽은 적은 있지만 왕국 전체에 코팅을 해놨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요정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평소 몬스터 언어와 그들의 식습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 렌더는 인어족들 또한 따로 조사를 해본 모양이었다. 역시 게임 플레이어 때의 기억이 있던 이차원도 이런 사실은 전혀 몰랐다. 물론 관심도 가지 않았지만.
“그런 사소한 일은 몰라도 돼.”
차원이 무심하게 창밖을 내다보며 말한다. 애초에 이 왕국을 무너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면 진작에 조사를 해봤었겠지.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이전에 말했다시피, 이 왕국에 오기까지 소모되는 노력에 대비해 얻는 것이 적었으니까.
차를 타고 그대로 왕국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차원은 창밖으로 보이는 죽은 NPC들을 보고 있자니 찝찝함이 더욱 강해졌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탓에 눈을 뜬 상태로 죽은 인어들도 보였고, 고통스러워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시체들도 보였다. 상당한 고어함이 왕국을 지배하였다.
-도대체 이런 짓까지 한 이유가 있을까요?
-자기 왕국을 몰살한 경우는 처음 보네.
모두가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보였다. 등골이 오싹한 평온함이 시야를 통해 들어오고 있다. 이차원은 모든 것이 떠내려간 왕국을 보곤 찝찝한 무언가가 있다는 걸 눈치채었다. 저들이 너무나 쉽게 코팅을 풀어버린 탓에 육지에서 온 NPC 할 것 없이 모두가 희생을 치르게 되었는데, 최후의 방법이라는 듯 무언가를 지키려고 한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을 수장시키면서까지 숨기고 싶은 정보라도 있는 건가.’
게다가 이상한 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차원님, 뭔가 이상합니다.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긴 하지.”
하칸도 무언가를 발견한 듯 이차원에게 말하였다. 이상한 게 많지. 자신들을 함정까지 설치해 죽이려고 했으면서 빠져나오자 이렇게 자멸을 했으니. 하지만 하칸은 전혀 다른 점을 말했다,
-그게 아니라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분명 이곳에 오기 전까지 느껴졌던 에너지가 물에 잠기고 나서는 희미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완전히 종적을 감췄어요.
에너지라면... 통로에 관한 건가?
“왕국은 내가 조사할 테니 넌 게이트 조사를 마저 해.”
그렇다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다. 이곳에 온 목적이기도 하니까. 차원의 말에 하칸은 고갤 끄덕이며 차에서 벗어났다. 차원은 렌더를 시켜 꼬마 인어를 동행시키게 하였다.
“왕국에서 이교도와 관련된 곳이 있다면 어디든 안내해라.”
어린 인어는 표정을 꿈틀거리며 눈치를 보았다. 이에 렌더가 괜찮다는 듯 인자한 표정을 보내자 가까스로 입을 떼며 렌더에게 말하였다.
-그곳에 접근하는 건 소수에게만 허락된다.
“그곳이 어디지?”
-정확한 위치도 누가 만든 지도 모르지만, 그곳 주위에선 항상 불길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라고 하는데요.
불길한 기운이라면... 이교도를 말하는 건가.
“근처로 안내해라.”
렌더는 다시 차원의 말을 전달해주자 어린 인어가 고갤 끄덕이면서 앞장서 향하였다. 그런데 뒤가 시끄러워졌다. 뒤를 돌아보니 몇 명의 인어들이 꼬마를 향해 뭐라고 소릴 지르면서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저 녀석들은 또 왜 저래. 자기들 왕국이 붕괴되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더니.
이차원이 렌더에게 상황을 묻자 혀를 차며 그들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배신자라고 온갖 저주를 퍼붓고 있네요. 아직 어린애한테 참.
그 정도로 이교도에 빠져있다는 건가? 이차원은 그들이 더욱 한심하게 보였다. 어떻게 왕국에 떠다니는 쓰레기보다 쓸모가 없을까. 그때, 인어들의 괴성이 시끄럽다는 듯 인상을 쓰던 데린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지팡이를 꺼내 휘두르며 [메테오]를 사용하였다. 물속인데도 정확히 그들의 위로 떨어진 메테오 덕에 잠잠해졌다.
-이제 좀 살겠네.
메테오보다 화끈하고 뜨거운 그녀의 성격이 여실히 보인 순간이었다.
***
그렇게 차원 일행을 태운 차는 꼬마 인어의 도움을 받아 왕국을 유유히 주행하였다. 거리는 정말 고요하여 막히는 일이 없었다. 가끔 창문으로 시체들이 부딪치는 걸 제외하고, 순간, 갑자기 리지가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였다. 이교도의 느낌을 받았나 보네. 차원은 뭔가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흑색 빛으로 감싸인 게이트가 보인다.
‘이곳이 입구인 건가.’
그는 주변을 보며 더욱 세밀하게 조사할 방법이 없나 하는데, 미처 피신하지 못한 시체가 둥둥 떠다니는 걸 발견하였다.
‘저거다.’
차원은 곧바로 떠다니는 시체에 [사자의 기억]스킬을 사용하였다.
-갑자기 무슨 소란이냐?
-바르티스님! 그놈들이 쳐들어왔습니다.
이차원 일행의 행적에 대해 알고 있는 듯 부하가 바르티스에게 상황을 전달하였다. 그러자 바르티스는 곧장 왕국을 빠져나가더니, 그의 뒤로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는 것을 끝으로 기억은 종료되었다.
‘바르티스, 네놈 짓이었구나.’
그제서야 이차원은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르티스는 이들을 앞으로의 계획이라는 듯 그들을 속이고 있어 이차운 일행이 들어오자마자 마을을 괴멸시킨 것이다.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도록. 허나 이차원의 동료들을 살아 있어서 이 게이트를 볼 수 있던 것이다.
“우선 이 게이트부터 조사를 해야겠어.”
곧바로 [강령술]을 사용하여 붉은 눈동자의 로울로가 눈을 번뜩였다. 그대로 재빨리 회색 게이트로 날개를 힘차게 움직이며 향하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로울로의 몸이 회색 게이트에 닿자마자 기포를 만들며 튕겨져 나간 것이다.
분명 하칸의 말론 이 입구를 통해 현실 세계로 이동할 수 있다고 했는데?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