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인어들의 서식지로 가기 위해 차원과 동료들은 프랭크와 랜돌프가 제작한 트럭에 올라탔고 그 뒤로 포박된 인어족들이 줄을 맞추어 따라오는 중이다. 코트는 자신의 왕국에 전염병이 멈추게 되었기에 순순히 인어들을 넘겨주었다.
탕탕탕-
-꼬마야, 에인 결정은 아직이냐?
-조금만 기다리세요.
한편, 거대한 육체들을 실었던 화물칸에서는 프랭크와 드워프가 잠수정을 만들고 있었다. 현실 세계에서 잠수정에 대한 분석을 삽시간에 끝내버린 프랭크였기에 작동방식을 생각하며 조립을 해나갔다.
물론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프랭크는 만들어가다가 잘 안 풀리는 듯 같은 부분을 계속 만지작거리며 헤매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차원은 믿고 의지하였다. 현실 세계, 수심 1km에서도 버티던 잠수정을 만지고 뜯어본 프랭크였다. 거기에 금속 제련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랜돌프까지 있으니, 그들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좀 전부터 느껴지던 건데, 어째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이 느릿느릿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울프릭, 속력 좀 더 낼 수 없냐?”
차원은 차가 점점 느려지는 기분이 들어 속도계를 확인해보니, 점점 시속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게 최선이야. 내 생각엔 동력이 부족한 거 같다.
설마... 밖에 있는 인어들이 문제인 건가? 이차원은 뒤에 매달려서 오는 인어들을 바라보았다. 인어족들은 아까의 전투에 진이 빠진 모양인 듯 거의 끌려오다시피 뒤따라오고 있었다. 어쩐다, 빈자리에는 프랭크와 랜돌프가 잠수정을 만들고 있는 터라 그들이 들어 올 공간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이동하기에는 너무 오래 걸리는 데다가 인어들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였다.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까 고민하는 와중에, 멀리서 하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자 하칸이 하늘에서 크게 한 바퀴 크게 돌며 차원에게 향하였다.
“타이밍 좋네. 하칸!”
이렇게 호흡이 잘 맞을 수도 없었다. 하칸을 부르자 땅을 향해 강하하더니, 차원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 차를 염력을 걸어 공중으로 날아오를 수 있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었다. 하칸은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날개를 크게 휘젓더니 그의 푸른 빛이 반짝이며 차의 주변을 감싸들었다. 이내, 그 거대한 트럭이 서서히 붕 뜨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하늘 위로 떠올랐다. 그에 따라 뒤에 포박된 인어들 또한 연 마냥 허공을 가로질렀다.
-우와아!
프랭크는 결정은 제련하다 말고 점점 작아지는 땅을 보며 신나 하였다. 이차원은 현실 세계에 있는 비행기를 많이 탔기 때문에 별 감정은 안 들었지만, 이들에겐 드래곤 말고는 모두 낯선 느낌일 것이다. 랜돌프 또한 망치질을 하다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내가, 나 위대한 랜돌프가 하늘을 내려다보다니!
염력으로 차를 날게 한 하칸은 임무를 마치고 인간으로 변하여 차 안으로 들어왔다. 인간 상태로 변한 상태여도 하칸의 염력은 지속적으로 사용이 되기 때문에 빠르게 하늘을 날아갔다. 하칸은 곧바로 차원에게 다가가며 말을 건넸다.
-오키나와 해구에 다녀왔습니다.
“뭘 좀 찾았어?”
-이쪽 세계의 기운이 느껴지는 게이트를 찾았는데 바로 가까이에서 이교도의 에너지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하칸의 말에 리지는 두 손을 불끈 쥔 채 몸을 떨었다. 차원 역시 이교도라는 말에 생각에 잠겼다. 차원은 휴대폰, 또는 컴퓨터를 통해 다크혼이라는 게임으로 이 세상과 접하였다. 따라서 당연스럽게 이교도는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을 수가 없다. 그 말은 오키나와 해구에 있는 게이트는 다크혼 세계로 넘어가는 입구이지만 다크혼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넘어올 입구는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디선가 게이트를 찾는 중이겠군. 그게 아니라면,’
-게이트를 만들다 실패한 걸 거야.
리지는 마치 차원의 생각을 읽어내기라도 한 듯 말해주었다. 하칸 역시 리지의 말에 동의를 하는 듯 묵묵히 리지의 말에 따르는 눈치였다. 이교도의 에너지가 미약하게나마 느껴진 것은, 이교도가 게이트를 직접 만들려는 시도를 했기에, 그 시도에 의한 에너지들이 밖으로 뿜어져 나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저들 인어족들한테 느껴지는 것과 결이 비슷합니다.
“그 말은 저들이 오키나와 해구로 넘어갈 입구를 저들 왕국에 만들고 있을 확률이 높단 소리군.”
[사자의 기억]으로 보았던 사실대로, 바르티스가 인어족들을 끌어들여 이차원의 현실 세계와 연결하기 위한 통로를 만들고 있던 것이다. 허나, 역시나 관문에 막혀 진행이 안 되는 모양이지만.
정확히 놈들이 그런 짓을 하는 이유는 대악마를 깨운 뒤 대악마의 힘을 바깥 세상에도 분출하고 싶었는데, 이 세상 밖으로 통할 수 있는 길을 어떤 계기에 의해서 알게 된 것 같았다. 물론 어떤 방법으로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악마를 깨우기 전에 완성을 시키려는 움직임으로 보였다.
자신들의 세상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세상까지 건드리려는 야망과 욕심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제 생각이지만 어쩌면 지금 우리가 있는 세계는 요정님이 계신 지구란 곳 말고도 다른 세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세계는 알 바 없어. 내게 중요한 건 지구니까. 거기 있는 출구를 닫아버릴 방법만 찾아줘.”
그 말 대로였다. 다른 세계의 존재가 있을지도 의문이 들었지만, 있다 하여도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저들이 들어오는 걸 막는 것만으로도 벅차올랐다.
또한, 세상의 평화라는 감성적인 이유보다, 이교도 놈들이 언제라도 지구를 노릴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재 시켜 버리고 싶기 때문이었다. 이미 다크혼 세상에서 그들에 희생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던 차원은 그놈들이 지구의 사람들을 고통에 몰아넣는 상황에 만드는 일은 상상으로도 하기 싫었다.
-방법이 있긴 합니다.
표정이 안 좋아진 걸 알아채 버린 걸까. 순간 냉정을 잃어버렸다. 다행히 하칸의 위로 같은 답변에 다시 마음이 놓아져갔다.
-강한 에너지는 강한 에너지로 밀어낼 수 있는 법입니다.
“그건 알지만 이곳과 지구라는 두 세계에는 게이트를 막을 만한 에너지가 없어.”
지금까지 인류는 게이트 자체를 처리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떠올리며 실행을 해보았지만 모두 통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식량난 같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고. 그때, 하칸이 전혀 다른 시점으로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에너지를 압축하면 됩니다.
“압축?”
-제가 모든 에너지를 품고 산화하면 될 것 같습니다.
***
“뭐? 지금 자폭을 하겠단 소리야?”
정말이지, 예상치도 못한 방안이었다. 하칸의 말처럼 에너지를 품고 산화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그전에 에너지를 압축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즉, 자폭할 만큼 에너지를 모으는 것이 하칸 계획의 핵심인데 그러기 위해선 각각의 대륙을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원석을 가져와야 하는 거다.
“무슨 수로 원석을 구할 생각인 거지?”
-일단 하나는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여기에 있다고? 보이는 것이라곤 프랭크가 들고 있는 에인결정과 각종 금속재질뿐인데. 이차원은 하칸의 아리송한 말에 의아해하며 표정을 찡그리자, 하칸은 곧바로 울프릭과 리지를 가리켰다.
-울프릭과 리지, 두 남매가 가진 신성력 안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함축된 결정이 들어있습니다.
“지금 울프릭과 리지를 안고 심해로 들어가 자폭하겠단 소리야?”
-두 분 말고도 다른 광석도 얻어서 자폭할 겁니다. 그래야 영원히 게이트를 닫을 수 있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어떻게든 못하도록 막아서며 다른 방법이 있는지 연구를 해볼 텐데,
이차원은 하칸의 의견을 적극 지지하지도, 그렇다고 강하게 부정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동료들이 희생되어 잃게 되어 버리긴 하지만, 게이트를 닫는 일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그와 대등한 중요한 것을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에너지 원석을 곧 얻을 수 있게 될 겁니다.
“무슨 소리지?”
차원은 복잡미묘하고 자신도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을 느낀 채 물어보았다. 그때, 어느샌가 도착해버린 듯 차가 하강한 상태에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요정, 인어족 왕국에 도착했다.
차원은 울프릭 말에 다시 하칸을 쳐다보았다. 그의 속마음이 어림짐작 갔다.
“왕국에 에너지 결정이 있단 소리야?”
-네. 저곳 바다 밑에서 울프릭과 리지한테서 느껴지는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차에서 내린 그들 앞에는 넓고 잔잔한 모래사장 앞으로 망망대해의 바다가 펼쳐졌다.
-인어들은 바다에서 더욱 강해지니 입수 전에 포박상태를 확실히 해라!
-충!
코웰과 그의 부하들은 빠르게 입수준비를 하면서 인어들을 감시하였다. 프랭크와 랜돌프 또한 이차원과 하칸이 대화하고 있는 사이에 잠수정을 완성시켜 시험 운행 중이었다. 둘의 금속 제련 능력이라면 상상하는 무엇이든 금방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허나 여기에 문제가 있다면 이들은 이것을 처음 만들어 보았다는 것이다. 이 전에도 처음 만든 걸 잘 사용하였지만, 이번에 그 잠수정이 고장나 버린다면 곧장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습격이라도 당하면 큰일 나겠군.’
겉보기에는 매우 튼실해 보였다. 빈 공간도 보이지 않아 물이 샐 거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인어들의 영역이다. 혹여나 이들이 자신들의 왕국에 들어가는 길에 함정이라도 파둘 경우는 없지 않아 마음에 걸려왔다. 그 때문에 생각에 잠기는데, 그런 그에게 하칸이 다가왔다.
-혹시 대형 문어의 외투막이 있습니까?
차원은 갑작스러운 하칸의 물음에 인벤토리에서 외투막을 건네자 하칸은 그것을 점점 늘리더니 차원이 타고 온 대형 트럭 전체를 포장하였다. 외투막은 젤리와 같아 흐늘거렸지만, 그만큼 탄력성도 가지고 있는지 곧장 잘 늘어났다.
-이러면 문제없지 않겠습니까?
“제법이군.”
하칸은 차원이 뭘 걱정하는지 알고 미리 준비를 도와주었고, 그들은 잠수정이 필요 없이 코팅된 대형 트럭으로 바다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인어들은 또 물속에서도 질질 끌려가는 중이었다.
물 속은 역시나 차원의 예상대로다. 바다를 내려가는데 인어들이 만들어둔 함정을 쉽게 발견하였다. 갑자기 나타난 대형 해파리 떼가 신호에 맞추듯 차원의 차를 향해 일제히 몰려든 것이다.
“문제없는 거지, 하칸?”
-없습니다.
자신 있게 하칸이 대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