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후우우웅-
퍼억!
게이트엔 돌이 물살을 가르고 날아가는 소리와 흑천어가 맞는 소리만이 울렸다. 마치 물수제비를 하는 모습처럼 돌은 흑천어들을 사뿐히 즈려밟으며 춤을 추듯 통통 튀었다.
돌이 날아오는 귀여운 형태에 비해 흑천어들은 저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머리가 터져 죽어 나갔다. 그들의 머리는 투구처럼 단단하였지만, 종이컵을 찌그러트리듯 아주 쉽게 망가트렸다.
저런 힘이 진짜 일어날 수 있었다는 거야? 자신의 힘으로는 오직 한 마리만 가능한데. 그 모습을 본 랜디는 자신의 눈앞에서 예술 행위를 펼치듯 자유롭고 유연한 차원의 행위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말 그대로 흑천어 여러 마리가 차원이 던진 돌 하나에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쓰러져나가는 게 믿기지 않은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저 사람의 위력인가......’
그는 이차원을 두 눈으로 담아보았다. 여태까지 차원이 보여준 행보가 일반적인 헌터의 범주를 넘는 다양성을 보여줬지만, [투척술]을 사용한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전 세계 투척 기술을 가진 자들 중에는 자신이 최고였고 자신이 알기로 차원에겐 원래 투척 스킬이 없었으니까.
‘분명 무신이라 불린 백주신이 투척술의 높은 경지에 올랐단 소린 없었다. 그렇다는 건...’
무신의 스킬볼을 얻기 전부터 연마하고 있었던 건가? 랜디는 차원이 금방 얻은 스킬을 이렇게나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모습에 의문이 들어왔다. 그럴 게 랜디는 야구 메이저 출신의 투수였다. 그렇기에 단숨에 연마할 수 있었는데, 차원은 숙련도는 물론이고, 그 위력까지 그를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후우우웅-
퍼억!
쉴 새 없이 스킬을 사용하는 소리가 진동에 몸을 맡긴 채 들려왔다. 세기가 얼마나 강했는지 랜디 본인에게도 힘이 압도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건 너무하잖아... 이차원의 위력에 랜디는 서서히 작아져 갔다. 그러는 사이에 흑천어들은 너무나 쉽게 나가떨어졌고, 수십 마리의 흑천어 시체가 바닥에 가득 쌓이기 시작했다.
‘지금 이 정도 공격력이라면 어쩌면......’
랜디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더니 흔들림 없는 나무와 같던 손은 결국 바람에 꺾여버린 것처럼 밑으로 쳐져 버렸다. 지금까지 [투척술] 하나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고 자부하던 게 자신의 힘의 원천이었다. 그만큼 [투척술]에 있어서만큼은 랜디를 범접할 사람이 없었고 랜디 하면 모두가 [투척술]을 떠올릴 만큼 그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욱 피나는 노력을 하였다.
헌데, 단 몇 분 만에 자신의 노력이 빚은 순간이 유리처럼 깨져버렸다. 자신의 앞에서 [투척술]을 하는 차원의 몸짓을 보자니 어쩌면 자신이 최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든 것이다. 이것이 노력만 하는 자와 재능있는 자의 차이인가.
그를 따라갈 수 없다는 현실에 헛웃음마저 들었다. 그것은 가슴에 남아 사라지지 않고 쓸쓸한 향기를 내었다. 오로지 [투척술] 하나만을 생각하여 뼈를 깎는 노력을 해왔던 랜디는 차원이 가진 재능 앞에서 무릎을 꿇을 뿐이었다.
‘이 정도로 숙련된 투척술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지경이야.’
랜디는 이내 차원이 가지고 있는 그 압도적 재능과 힘에 경외심마저 들어왔다. 결과는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 허나, 그것이 좋은 결과만을 가지고 올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아아, 이곳에 왜 있는 거지? 분명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왔을 텐데... 그 목적은 어느덧 모습을 감추어 버린 듯 자신을 홀로 남겨두고 떠나버렸다. 랜디는 차원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자신의 위치를 되찾으려 하였다.
“살살하시죠. 저도 밥값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밥값하고 싶으면 얘들 데리고 진액 채취 좀 해라.”
차원이 그의 심정을 알 리가 없지. 힘이 있는 자는 높이 올라 밑이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그는 랜디와 해골들에게 흑화된 멍게의 진액 채취를 시켰다. 하는 수 없이 랜디는 그 말을 따르기로 하고 묵묵히 채취에 나섰다. 그런 그의 뒤로 차원의 황홀하고 무서운 기운이 여전히 내뿜어졌다.
후우우웅!
퍼억!
흑천어들은 무기력하게 차원의 힘 앞에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차원은 게이트를 잡아먹듯이 휩쓸었다.
***
다크혼에선 남겨진 일행들은 잠시 휴전 상태인 왕국과 인어 사이에 놓여있었다. 그야말로 폭풍전야였다. 그런 와중, 울프릭과 리지는 전보다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사이가 됐다.
-인어족한테 이교도의 에너지가 강하게 느껴져. 아직도 날 포기하지 못한 건가 봐.
리지는 과거 이교도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직 가시지 않는 듯 손톱을 물어뜯으며 불안증세를 보였다. 자신의 업보였을 것이지만 그녀로선 이제 감당하기 힘든지 그나마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울프릭에게 털어놓았다.
-그들이 쫓아오는 게 아니니까 진정해.
울프릭도 저번 하칸을 치료해주는 리지의 모습에 다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 듯 그녀를 진정시키며 자리에 앉혔다.
-하지만 확실해. 이건 이교도의 에너지라고!
허나 울프릭이 리지를 진정시키려 하지만 리지는 쉽사리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마음속의 쇠사슬이 그녀를 평안히 있지 못하도록 더욱 강하게 옥죄어오는 듯하였다.
-저들의 조상이 원래 이전 세대의 이교도였기 때문에 그런 기운이 느껴지는 거야. 저들이 폐와 다리를 잃고 인어가 된 것도 그 때문이야. 이교도를 섬겼기 때문.
-아니야, 달라. 이전 세대 에너지가 아니라 지금, 지금의 이교도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단 말이야.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어. 끝까지 날 쫓아올 생각인 거야.
이렇게 약해진 모습을 보이다니. 완전히 어린 시절의 모습이잖아. 하지만 그때보다 더 약해졌다. 울프릭은 그녀에게 더 다가가고 싶었지만, 지금으로선 무리였다.
‘인어들을 이용한단 계획을 들은 적은 없는데 왜 저들한테서 이교도 기운이 느껴지는 걸까.’
그녀의 두려움은 더욱 커져 갔다. 대체 무엇이 이렇게 그녀를 불안에 떨게 하며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인지, 울프릭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이토록 리지가 불안에 떨는 이유는 이교도가 가진 상상 이상의 잔인함을 아는 그녀였기에, 그들의 계획이 뭔지 모르는 상태는 더욱 공포로 다가온 것이다.
***
차원의 투척술 덕분에 랜디는 강령술에 걸린 해골들과 함께 편하게 흑화된 성게 진액 채취를 할 수 있었고 곧 엄청난 양의 진액을 구할 수 있었다.
-차원님, 이 정도면 충분할까요?
랜디는 그의 명령을 따라 열심히 성게를 채취하였고, 어느덧 그의 앞에는 껍데기만 남은 성게들이 높은 탑을 이루듯 쌓여 있었다. 그는 해골들과 함께 모은 엄청난 양의 진액을 보여주었으나, 차원은 얼마나 더 많이 모아야 성이 풀리는지 아직 부족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쿠마바 왕국에 필요한 양엔 미치지 못해.’
그런 모습을 보인 랜디는 허무감에 사로잡혔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이 정도로 모았으면 충분하고도 남았을 거라 판단하고 스스로에게 열심히 했다는 위안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 듯 이차원이 만족을 하지 않자 자신의 고생마저 부정을 당한 느낌이 들어온 것이다.
“이게 부족하다구요? 아니 그럼 대체 얼마나......”
랜디는 당장 이 앞에 있는 엄청난 양의 진액이 부족하다는 거면 대체 얼마나 더 진액 채취를 해야 하는 건가 낙담해 하였다. 하지만 별수 없다. 어서 이 업무를 끝내야 되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는 이내 군말 없이 채취 작업을 다시 하러 돌아섰다.
이번에는 이미 대부분의 흑천어를 처리한 차원 또한 멍게 진액 채취에 동참하였다. 더 이상 이들을 방해할 만한 요소는 없어 보였다. 가끔 흑천어가 나타날 때도 있지만, 그들의 [투척술]로 해치울 수준으로 나타나는 정도였다.
그뒤로 그들은 한참을 채취에만 집중하였다. 어느새 진액의 양은 순식간에 불어나 있었다.
‘이 정도면 되려나.’
이차원이 쌓여진 진액을 보며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거대한 물줄기가 그들을 덮쳐왔다. 또 흑천어가 나타난 건가 싶었는데, 좀 전에 느껴진 일반 흑천어의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무슨 일인 건가, 싶어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돌아보았을 때였다. 갑자기 그들 앞으로 보스처럼 보이는 흑천어가 등장하였다.
이 앞전에 싸웠던 흑천어보다 전혀 달랐다. 마치 미지의 시공간이 앞에 펼쳐진 것처럼 어둠이 드리워졌던 거다. 그런데 보통 두려움에 몸이 굳어버리는 게 보통 반응인데, 차원은 그렇다 치고 랜디마저 갑자기 표정이 밝아졌다.
“차원님, 저거 제가 생각하는 그거 맞죠?”
랜디는 흑천어가 들고 있는 무기를 가리키며 묻자 차원은 씩 웃으며 반응했다.
“찾는 게 힘들었는데 제 발로 나타났네.”
그들을 이렇게 기쁘게 해주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흑천어가 들고 있는 무기는 다름 아닌 백주신의 카타나였다. 백주신의 무기도 찾고 있던 차원은 게이트를 뒤지다 스킬볼만 찾고는 반쯤 포기한 상태로 진액 채취에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카타나를 든 흑천어가 제 발로 차원과 랜디를 찾아온 것이다.
“대장님, 여기 게이트엔 보스도 따로 없다고 하니까 저놈 죽여도 상관없는 거죠, 그럼?”
랜디도 백주신의 카타나를 얻을 생각에 신이 났는지 물어보았지만, 차원은 대답 대신 [투척술]을 이용해 곧장 돌을 던지고 있었다. 그러나 보스 흑천어는 카타나로 돌을 빠르게 쳐내면서 막아내었다. 돌은 흑천어의 비늘에도 미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일반 흑천어한테서 저런 몸놀림은 절대 나올 수 없는데... 이를 본 차원은 카타나에 특수 능력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었다..
‘백주신님이 아주 대단한 유품들을 남겨두고 가셨군.’
차원은 자신이 곧 얻게 될 카타나의 능력에 감탄하며 심판의 창을 꺼내들었다. 창의 초록빛이 어두운 심해의 게이트를 밝아주자, 보스 흑천어의 모습도 잘 보였다.
“저놈이 시야 확보를 못 하게 막아.”
차원의 말에 랜디는 곧 무슨 뜻인지 깨달았고, [투척술]을 사용하며 돌을 집어 들었다. 비록 이차원에게 밀리는 실력에 움츠러들었지만, 자신의 힘은 스스로라도 빛나게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힘을 내어 싸웠다. 그렇게 힘차게 던져지는 돌은 흑천어의 카타나로 부서져 내렸다. 하지만 그 파편이 퍼지면서 흑천어의 시야를 뿌옇게 하며 방해하기 시작하였다.
후욱-
랜디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던져대었다. 흑천어 또한 지지 않고 백주신의 카타나로 빠르게 돌을 쳐내었지만 돌의 파편이 더욱 많은 먼지를 일으키며 시야를 방해하였다.
‘이때다!’
그의 시야가 완벽히 가려진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차원은 심판의 창을 힘껏 던졌다. 창은 총알처럼 재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흑천어를 향해 날아갔다. 허나 순식간에 시야가 트인 흑천어는 날렵하게 카타나로 창을 막아 세우려 하였다.
이에 랜디는 곧바로 [투척술]을 사용하려 했으나 움직임을 멈추었다. 날아오는 힘과 창의 무게는 흑천어가 막기엔 너무 강력했던 탓인지 카타나가 서서히 뒤로 밀려났다.
이내 카타나를 쳐내고는 흑천어의 심장을 그대로 관통시켜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