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워프로 무한성장-175화 (175/202)

175화

차원은 게이트 곳곳 깔려 있는 백골의 기억을 읽어갈수록 불에 타 올라지는 종이처럼 붉게 타오르더니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랜디는 그 모습을 옆에서 숨을 죽이며 차원의 눈이 노란빛으로 물드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모두 백골이기 때문에 그들이 전부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차원의 [사자의 기억]을 통해 본 개중엔 한국인 헌터도 몇 명 있었다. 그의 눈앞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던 걸까.

-그분이 이곳에 있단 말이 사실인가?

-그분처럼 생긴 사람이 들어오시는 걸 잠깐 보긴 했지만 어디에 가둬두기로 한 건지 그 후로 종적을 감췄어.

-설마 그것과 최근에 납치가 멈춘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글쎄. 마지막으로 들어왔단 여자가 알고 있을 수도.

-그 여자 지금 어딨지?

‘그분은 누구도 납치는 또 무슨 소리지.’

차원은 계속해서 그들의 기억을 빠르게 읽어내려가는데, 마침내 저들이 말했던 그분을 말하는 듯한 기억이 보였다.

-갑자기 실종되시는 바람에 한국 전체가 발칵 뒤집혔고 현재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지만 정작 중국 당국에서 게이트 수사권을 주지 않아 그것마저 쉽지 않아요.

-여기서 납치된 헌터가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닌데 국제적으로 공식 항의를 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

-중국 당국이 진액 독점권을 가지고 있어서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예요.

실종자가 이렇게 많은데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사실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이차원은 더욱 분개함을 느꼈다.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 겁니까, 형님? 이대로 여기서 죽는 겁니까?

-진정하고 이분 말을 들어보자고. 저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 같나?

-중화연맹 놈들이 하는 얘길 들었는데 혹시라도 한국에서 수사가 들어오거나 이곳에서 탈출자가 나와 그분에 대한 얘기가 새어나가는 걸 막기 위해 당분간 게이트를 폐쇄한다고......

-젠장! 그럼 이대로 여기서 성게 진액이나 채취하다 뒤지란 소리야? 씨발......애초에 이곳에 조사를 하러는 오는 게 아니었어....흐윽......

이들도 자신과 같이 성게를 채취하러 온 자들이었다. 허나 이차원과 달리 그들의 검은 속내를 깨닫지 못하여 이곳에 버려져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다. 이차원도 이들의 계획을 눈치채지 못하였다면 랜디처럼 이곳에 버려져 죽음을 기다렸겠지.

-이대로 여기서 죽을 순 없어요. 저들이 뺏어간 장비가 있는 곳을 아는 사람 있나요?

-그걸 알면 여기서 진액 채취나 하고 있겠냐고! 씨발....우린 다 그냥 뒤진 거야.......뒤진 거라고!

그 후 기억은 비슷했다. 이 유골들은 이대로 죽게 된 것에 대한 억울함 때문에 흐느낌이 계속됐을 뿐이었다.

‘쓰레기 자식들.’

이차원은 이곳에 죽은 헌터들이 정식 고용된 노동자들이 아니라 불법 경로를 통해 이곳에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것도 일반 헌터는 아니고, 중화연맹의 각성자 살인이나,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는 것을 캐내려고 조사를 하고 있던 헌터들이었다. 즉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헌터들을 이곳에 넣은 것이다. 모두, 차원에게 했던 것처럼.

이들을 모두 일망타진시켜 싹을 잘라내야 된다. 하지만, 우선은 자신의 일을 먼저 해결해야 했다. 차원은 기억을 읽는 것을 멈추고 잠시 애도를 표하였다.

‘잠시만 사용하겠습니다.’

이윽고 죽은 백골들을 강령술로 일으켜 성게를 채취하는 일 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줄곧 성게들을 채취해 나갔다. 자신 또한 진액 채취를 마저 하는데 다른 곳과 조금 떨어진 외진 곳에서 철창에 갇혀 홀로 죽어있는 시체 하나를 발견하였다.

‘설마.’

차원은 백골들이 말하던 ‘그분’이 저 백골인가 싶어 철창을 부수고 들어가 그의 기억을 읽어보았다.

-이봐! 거기 아무도 없나! 이봐!

-안 닥쳐? 자꾸 짖어대면 죽여버리는 수가 있어.

-날 죽이면 한국 정부에서 가만있을 것 같나? 분명 대대적인 조사에 들어올 걸세.

상당한 협박과 조사를 받고 있는 듯 보였음에도 이 자는 굴하지 않고 철저히 그들과 맞서 싸우는 용맹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독기로 가득 차 있었다.

-조사는 개뿔. 당신은 그냥 게이트에서 사고사 당한 걸로 기록될 거야.

-무력으로 헌터들 장비를 뺏어 심해에 고립시켜 강제로 노동 착취를 시키는 것도 모자라 살인까지 저지르는 극악무도한 놈들. 내가 죽어서라도 네놈들 죗값을 치르게 할 것이야.

-확 죽여버릴까.

-참아. 대장이 저 인간은 어떤 상해도 입히지 말라고 했으니까 알아서 뒤질 때까지 그냥 내버려 두라고.

-그 정도로 대단한 놈이야, 저 새끼?

-한국에서 무신이라고 불린다나 봐.

‘무신?’

이차원은 기억을 읽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신이라고 불리는 헌터는 대한민국에서 백주신, 딱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백주신은 아버지로부터 정신적 지주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던 헌터로 몇 년 전, 각성자 신호 생성기가 없었을 때 돌연 실종되어 모든 사람들은 그를 게이트에서 사망한 줄 알고 있었다.

차원 또한 당시 일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의 파급력은 엄청나게 뛰어났기에 대한민국에서는 금세 백주신을 찾는 대대적인 뉴스가 앞 페이지를 대문짝만 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현재 국가 소속 헌터의 자격을 얻은 차원은 그 당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그의 위상을 얼마나 높게 사고 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차원은 그제서야 그 전에 백골들이 했던 말들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백주신을 납치한 저들은 혹시라도 이 사실이 밖으로 새어 나갈까 봐 한동안 게이트를 닫았던 것이었다. 그에 따라 자동적으로 흑천어의 개체수가 증가한 것이고. 흑천어가 게이트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것 역시 너네들 짓이었냐... 이대로 무사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마라.’

그들의 더러운 내면의 모습을 다 파헤쳐 본 차원은 백골의 기억을 읽는 걸 멈추고 곧바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백주신이 가지고 있던 무기들과 스킬볼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무슨 용무인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것들이 근처에서 보이지 않았다.

‘분명 근처에 있을 텐데.’

굳이 저놈들이 이곳까지 들어와서 그것들을 챙겨갈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그럴 것이, 백주신의 물건이라는 게 외부로 새어 나가게 되면, 나라가 뒤집어 엎어질 듯 철두철미하게 조사를 실시할 게 틀림없기에. 차원은 모든 강령술에 걸린 해골들을 성게 진액 채취가 아니라 무기들을 찾도록 하였다.

“랜디, 당신은 여기 있어요.”

“네? 네.”

랜디는 무슨 일인지 감이 안 잡혔지만, 차원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차원 본인도 게이트 안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폭죽이 터지듯 수많은 자들이 연달아 움직였다.

***

[ 대한민국 대표 헌터 이차원! 중화연맹 관할하는 흑천어 게이트로 출발 ]

[ 중화연맹, 이차원에게 먼저 제안? ]

[ 흑천어 게이트 생산량 6년 전보다 줄어든 이유, 해결하기 위해 먼저 제안! ]

[ 최초! 중국 국적이 아닌 헌터가 게이트에 들어가다? ]

차원의 지시를 받은 박지원은 흑천어 토벌과 관련된 기사를 내자, 불과 몇 시간 뒤에 중화연맹이 기자 회견을 열어 전면 부정했다. 그들은 여전히 새빨간 거짓말로 신문을 도배시켰다.

[ 어불성설, 중화연맹이 아닌 헌터는 게이트에 발을 들일 수 없다. ]

[ 이차원, 유명 헌터인 것을 알지만 만나 적 없음. ]

[ 중화연맹 “대한민국의 이차원 신격화에 역겨움. 그가 대단한 헌터라 해도 우리 영역을 침범하지 못함.” ]

박지원은 현재 나온 기사들을 대한민국 국가 소속 헌터들에게 보여주며 이차원이 중화연맹과 만나서 실질적인 논의를 했다는 증거를 알렸다.

“이차원님은 8월 9일 오전 11시 중화연맹 본부를 찾았고 흑천어 게이트에 들어갈 것을 허가를 받습니다.”

“중국 당국에선 이를 전면 부정하고 있는데 게이트 허가를 받았다는 걸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있나?”

그 뒤로 헌터들은 말을 이었다.

“증거도 없이 저들 말을 무시했다가 혹시나 중국 당국에서 병력이라도 동원하게 된다면 외교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으니 확실한 증거를 대야 할 거야.”

“단순히 외교 문제로 끝나면 다행이게요. 흑천어 게이트는 중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저들이 국토 침략으로 몰고 가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될 겁니다.”

모두 박지원을 믿지 못하는 듯 당연스럽게 증거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박지원은 전혀 동요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은 채, 갑자기 동영상 하나를 틀어 보였다.

“제가 제시할 증거는 이차원님입니다.”

헌터들은 모두 박지원이 재생한 동영상에 시선을 집중하였다. 동영상 속엔 그녀의 말처럼 차원이 보였고, 그는 말을 시작하였다.

“이 영상을 당신들이 보고 있을 때는 200%의 확률로 나는 중화연맹의 게이트에 갇혀 고립된 상태일 겁니다. 아마 저들은 절 게이트에 가둬 죽일 생각인 것 같은데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만약 제가 여기서 고립돼 죽는다면 국가적 손해가 상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화연맹에서 절 구해줄 리는 없고... 당신들이 아니면 전 이대로 죽게 되겠죠.”

영상 속 인물은 누가 보아도 이차원이었다. 헌터들은 이에 크게 당황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동조하였다.

“뭐야? 진짜야?”

“게이트에 갇히다니? 저건 또 무슨 소리야?”

“중국에서 대한민국 헌터를 죽이려 들다니요! 이건 한국 정부를 우롱하는 행위와 다름없습니다!”

이들의 소리는 점점 커져가 단순한 사고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암시해주었다. 당연히 큰 시건이 될 수밖에 없지. 아마 더 깊은 사실을 알게 되면 더욱 분개할 것이다. 그때, 개중에서 가장 이성적인 헌터가 말하였다.

“그런데 저 말만 믿고 국가가 나서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그럼 이차원 헌터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소립니까?”

“이차원 헌터는 국가 소속 헌터 중 통제가 안 되기로 유명한 자입니다. 기록에도 나와 있듯이 국가 소속 기관 미션도 고작 하나 수행했습니다.”

아뿔싸, 그 일이 이렇게 영향을 끼치게 되다니! 미처 그 부분까진 생각지도 못한 박지원은 주변이 어둠으로 감싸쥔 듯 시야가 흐려졌다. 이차원이 아무리 뛰어난 자라 해도, 이런 자료들은 그를 신빙성이 없는 자로 불리하게 이끌어 갈 뿐이었다. 이런 일이 만들어지자 그녀는 생각했던 것보다 숨을 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겁니까?”

“당장 저 말만 믿고 국가가 나서기엔 너무나 리스크가 크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국가 전체가 나서서 보호할 만큼 대단한 헌터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 앉아 있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회의실은 각종 입장들이 판을 어지럽히며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었다. 괜히 끼어들어 분위기를 흐릴 거 같은 박지원은 그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살필 뿐이었다.

‘그래,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해. 여기서 이차원님을 도울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지원은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신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다. 정 좋지 않게 판결이 흘러가게 되면 곧바로 뛰쳐나갈 준비를 하려는 거다. 그렇게 반박할 자료를 생각하고 있을 때, 회의장 안으로 갑작스럽게 웬 젊은 남자가 들어섰다.

하지만 박지원은 곧바로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하칸...?”

박지원은 그의 몸에서 푸른 빛이 나는 것을 보고 하칸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푸른 빛은 마치 그녀의 험한 길을 이끌어 주려는 이정표로 보였다.

“뭐, 뭐야 저 남자! 어떻게 여길 들어와!”

헌터들은 갑자기 회의장에 난입한 하칸을 보고는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허나 하칸은 관대한 하늘처럼 푸른 자태를 유지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