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안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건가? 기다리는 것도 슬슬 힘든데.
아랫입술을 깨물며 이차원은 인터폰 앞에 서 있었다. 잠시 후 인터폰에서 사라졌던 기사단장 코트가 문을 열면서 차원 일행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또한 전염병 때문인지 두꺼운 방호구를 입고 있었다.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제 목을 치셔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는 정말 죄송했는지 무릎을 꿇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칼을 내밀었다. 그의 표정 또한 각오를 다진 듯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거짓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전염병의 여파가 너무 큰 탓이었는지, 방역을 철저히 하려다 만들어진 모습이었다. 우선 그는 방호구를 틈이 보이지 않게 겹겹이 입고 있었다. 재질을 보아하니 그래도 기사라고 금속으로 만들어져 갑옷 겸용으로도 사용 가능하였다. 그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밖에 경비를 서는 사람도 없던데 상황을 설명해라.”
이차원은 7성군좌의 징표를 가진 자답게 근엄하고 무게를 잡으며 말했다. 애초에 계속되는 기다림에 짜증이 났기도 했고,
-듀드라는 몬스터 때문에 전염병이 퍼졌기 때문입니다. 구토와 고열을 동반하는 증세를 보이다가 거품을 물고 죽는데 죽을 때 전염병 균이 공기 중에 한 번에 전파되기 때문에 모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흐익. 우리도 방호복이라도 입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아까 우리도 만났잖아요. 듀드라는 놈! 아니다,
이미 만났으니 치료제라도 먹어야 되는 거 아닌가.
렌더는 여전하게 전염병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말에 겁에 질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진정하게. 우린 기사가 죽지 않고 살았으니 독이 퍼지지도 않았고 아니, 무엇보다 자넨 얼음 꿩의 허파를 쓰곤 차 안에 숨어 있었잖나. 덕분에 꿈쩍도 안 했으면서 걱정은.
코웰은 렌더를 진정시키면서 차에서 숨어있던 것을 굳이 끄집어내며 말하자 렌더는 그제서야 머쓱해진 듯 다시 뒤로 물러섰다. 이차원은 잠시 다른 곳으로 세어가는 이야기를 붙잡아 제자리로 놓았다.
“이곳에서 육체를 캡슐에 넣어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는 연구에 성공했다 들었는데.”
-아, 마블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캡슐 이름이 마블인가 보군.”
-캡슐이라기보단 작은 구슬에 가깝습니다. 그 안에 육체를 넣으면 말씀하시는 것처럼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지만 현재는 전염병 때문에 관련된 모든 연구와 생산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마블이나 마도 공학, 결정 같은 모든 분야의 마법사들이 전염병을 해결하는 연구에 매진 중이라서요.
전염병의 힘이 거기까지 영향을 미친 건가. 어쩐지 듀드의 출현이 너무 짧다 했어. 하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알겠습니다, 하고 물러날 수는 없다.
“샘플이라도 구할 수 없나?”
-구할 수 있긴 하지만...... 그런데 마블은 갑자기 왜 필요하신 겁니까?
코트는 단순한 호기심에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코웰이 타고 온 거대 트럭 화물칸에서 드래곤의 시체를 보여주었다. 코트는 마치 보아선 안 되는 것을 보기라도 한 듯 온몸을 곤두세웠다.
-맙소사. 이건 드레곤 아닙니.....
그가 드래곤이 죽어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눈은 떠 있었지만 어떤 움직임도 없는 데다, 눈도 깜빡거리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무서워할 필요까진 없다 생각했는데... 코트는 이내 사색이 돼선 벌벌 떨더니 더욱 무서워하는 행동을 보였다. 드래곤의 시체인 것을 떠나 시체 자체가 듀드의 균을 왕성하게 퍼트리는 보균자의 역할을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시, 시체다......! 당장 이것을 불태워야 합니다!
코트는 겁에 질려 소리쳤다. 여기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지 않으려고 했는데. 하는 수 없이 차원은 눈이 붉어지면서 차에 있던 모든 육체들이 강령술에 걸려 벌떡 일어서며 밖으로 걸어 나왔다. 처음 보는 모습에 코트는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을 치더니 이내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이... 이게 어찌 된.
“아무런 일도 안 할 테니 마블 연구소로 안내해주면 좋겠는데.”
***
이차원 일행은 코트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안은 동굴로 이루어졌을 텐데도 반듯한 철들로 매끄럽게 구성되어 있었다. 마치 고대 보물을 찾으러 가는 듯 신비로웠다. 연구소에 들어서자 수많은 마법사들과 학자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 역시 모두 완벽한 보호구와 방역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방역지침이 있기 때문에 모두 검사를 하셔야 합니다.
연구소를 관리하는 자들이 차원 일행을 보자마자 시체와 구분을 나누더니 전원 전염병 검사를 실행하였다.
-그걸 넣으시려는 건... 크헙!
렌더는 무언가 기다란 막대 같은 걸 들고 있는 관리자를 보자 당황하였다. 그는 안내에 따라 혓바닥을 내밀었는데 렌더의 질문은 듣지도 않고 검사를 실시하였다. 그렇게 전원이 검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몇 명의 연구원들은 차원에게도 혓바닥을 내밀라고 명령하였다. 그때, 오카마가 7성군 신분패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분은 7성군좌의 징표를 받으신 분이다. 이런 일은 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자 연구소에 있던 마법사들과 과학자들 모두가 일동 하는 일을 멈추었다. 이들은 아직 이차원이 7성군좌의 징표를 가지고 있는 걸 모르는 듯하였다. 이들은 곧바로 이차원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나 차원은 괜찮다는 듯 오히려 오카마를 말리며 검사에 응해주었다.
‘이런 일로 여기 있는 이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 필요는 없지.’
그의 주된 목적인 마블을 얻기 위해서 이차원은 호의적으로 나오기로 하였다. 그렇게 이차원까지 전원 검사를 마치자 코트가 다시 안내를 시작했다.
-육체들 전원 검사 통과했으며 현재 방역 창고로 이동 중에 있습니다.
“방역시스템은 믿겠으나 보안은 못 믿겠어. 가서 지키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방역 창고가 열리는 틈에 누군가가 침입을 할 수 있을 가능성도 본 것이다. 차원의 말에 코웰과 오카마가 동시에 부하들에게 눈짓을 하자 그들의 부하들은 빠르게 방역 창고로 달려갔다.
-그리고 머무시는 동안은 입을 방역 도구를 좀 가져와 봤는데.
코트의 말이 끝나가 관리자들이 차원 일행에게 타파이트와 매우 가벼운 네린이란 금속을 섞어 만든 옷과 방역도구를 전달해주었다.
-생각보다 편한데요?
-이런 옷만 만들어서 팔기만 해도 돈을 잘 벌 거야.
렌더와 데린이 옷을 입어보며 한마디씩 감상평을 보냈다. 전염병이 없는 곳에선 잘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기동성은 완벽했다. 그렇게 방호구를 입은 차원은 코트를 따라 연구소의 시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마블’의 샘플을 받아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은 성인 남자의 주먹보다 작은 초록빛 구슬이었다. 마치 에메랄드처럼 보이기도 해 외형도 아름다웠다.
차원은 시험 삼아 이것을 로울로의 몸에 던지자, 로울로가 초록빛 구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간편하게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혁신 그 자체였다. 몬스터 캡슐을 사용해 온 바가 있으니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었지만, 몬스터 캡슐은 죽은 것은 담을 수가 없었고 자신의 레벨보다 높은 몬스터를 담을 수도 없는 만큼 제약이 있었다.
“이걸 좀 많이 얻고 싶은데 말이야.”
차원은 구슬을 가져가 곧바로 써먹을 생각에 흥분하였다. 그러나 코트는 그 행동에 난처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샘플이 부족한 건가?”
-샘플은 많지만... 모두 전염병을 막기 위한 연구에 사용 중이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코트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며 차원에게 사과를 하였다.
-국민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 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혹여나 불편하신 감정이 있으시다면 저에게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자꾸 그런 극단적인 말 좀 그만하고, 이게 왜 전염병에 사용되는지 설명해봐.”
그런 식으로 나오면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잖아. 그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과학자가 다가왔다.
-그건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전염병에 저항이 있는 영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외종, 즉 언어의 진액이 필요한데 언어들을 이곳에 보관하며 진액을 뽑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마블 안에 담긴 인어 모두가 죽은 시체란 건데, 설마 살아있는 인어들을 모두 죽였단 소린가?”
-실험을 하다가 죽은 것들이 대부분… 네, 어쩌면 죽였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과학자는 어느 정도 죄책감이 드는 듯 조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인어는 아크족과 같이 몬스터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었기 때문에 다루기 영 힘든 존재다.
“마블 하나만 줘봐. 진액 문제 해결해줄 테니까.”
그게 가능한 건가? 그는 바로 마블을 이용해 현실에서 진액과 비슷한 것을 찾아주고 문제를 해결해서 마블을 얻을 생각인 것이었다. 그만큼 차원도 마블이 절실한 것이겠지. 육체를 자유롭게 보관하는 것이 차원 전력 증강에 엄청난 도움이 되는 것은 이미 누누이 생각했던 것이고, 이렇게 거대한 육체들을 싣고 다니는 것은 기동성도 그렇고 자리도 복잡해져 다들 차에 낑겨 앉아 있어야 했다.
그렇게 고민이 해결되나 싶더니, 갑자기 또 사이렌이 울려대었다.
-단장님! 인어가 출몰했습니다!
-모든 연구를 중단하고 방호복을 챙겨 전투 준비를 하라!
연구소에 있던 마법사들이 전원 전투에 나갈 준비를 시작하였다.
‘가뜩이나 전염병이 있는 마을에 전쟁까지 벌어지면 이 왕국 망하는 거 아니야?’
차원에게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면서 불안해졌다.
‘마블 얻기 전까진 이 왕국은 살아야 해.’
게다가 인어들이 나타났다고 하는 것을 보니, 이들이 영약을 연구하는 데 쓰이는 인어의 진액이 문제가 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게 문제라면, 이번 말고도 다음에 또 침입을 해올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차원도 함께 성벽을 나서자, 수백 마리의 인어 떼가 무기를 두르고 있었다.
역시나, 그들에게선 자신들의 동료들을 실험체로 쓰는 것에 대한 분노가 세세히 전달되었다. 장비를 쥔 폼만 봐도 이 왕국의 몰락을 꿈꾸고 있구나. 이를 본 차원은 누구 편에 설지 고민이었다.
이 왕국이 망하면, 그냥 저 마블들을 다 가져가면 되었지만, 인어들을 막아주면 이 앞 여행처럼 왕국에서 얻어낼 것도 얻고, 마블도 얻고, 혹시 모를 바르티스의 행방도 찾을 수 있었다.
“그 고귀한 7성군이라면 어떻게 해야 되냐?”
차원은 그들의 선택이 궁금하여서 오카마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오마카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였다.
“인어들을 다 죽입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