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듀드가 나타났습니다!
먼저 나가 상황을 파악한 7성군 기사가 돌아오더니 차원과 오카마에게 이 사실을 전하였다. 듀드는 ‘쥐’와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로, 앞으로 툭 튀어나온 앞니들은 포크레인의 모습같이 살을 파먹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이용해 죽은 사람들이나 죽은 몬스터들의 시체를 파먹는 놈들이었다.
하필 차원이 타고 있는 차에, 거대한 시신들이 많이 있었으니 아무래도 듀드들이 냄새를 맡고 몰려온 거 같았다. 하칸만 있었다면, 드래곤의 기운에 눌려 몬스터들이 접근하지도 않았겠지만 하필 필요할 때 원하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하칸은 다시 에너지의 흐름이 어디서 어디로 흐르는 것인지, 어디가 그 근원인지를 파악하겠다던 그는 차원에게 허락을 맡고 떠난 상황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어. 이차원도 듀드를 알고 있었지만 여기서 나올 줄은 몰랐겠지.
-으아아악! 숫자가 점점 늘어납니다!
-당황할 거 없다. 한 놈 한 놈 침착하게 처리해라!
밖이 생각보다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듀드들이 몰려오는 소리와 기사들의 외침이 불협화음을 내며 울리고 있었다. 일반적인 대륙, 그러니까 던전이 아닌 지형에서 습격하는 몬스터들의 수준은 아무리 높아봤자 이곳에 있는 차원의 동료들과 기사들이라면 쉽게 해결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혹여 전쟁에서 피로감이 너무 쌓여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건가?
그리고 상황이 빠르게 해결되지 않자 차원이 차에서 내리려는데 오카마와 코웰이 그를 말린다.
-저희가 확인해보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코웰과 오카마가 스스로 자원을 해 차 밖으로 나갔다. 그들의 무기에서 나오는 빛들이 빠르게 휘갈기며 움직였다. 차원은 창문 너머로 그 광경을 지켜보며 대책을 생각했다. 쥐 같이 생긴 놈들이 찍찍거리며 차원이 타고 있는 차 주변을 빠르게 맴돌고 있었고, 틈을 보며 기사들에게 몸을 날리며 공격을 했다.
기사들은 날아드는 쥐를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면서 처치해 나갔다. 이렇게만 보면 별 탈 없이 무사히 이겨나가 보이는데, 그 순간 갑자기 창을 들고 있던 기사 하나가 몸을 휘청거리더니 몸이 고꾸라졌다. 뒤이어 기사의 입에서는 거품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전염병이다! 붉은 게의 아가미를 껴라!
아무래도 듀드 몸 자체에서 나는 오염 물질이 공기 중으로 퍼져 병을 일으키는 거 같았다. 오카마의 외침에 7성군의 기사들이 붉은 게의 아가미를 입에 물기 시작하였다. 붉은 게의 아가미는 현실로 치면 방독면 같은 개념인데, 나쁜 공기를 정화 시키는 역할을 해주었다.
-서둘러 얼음 꿩의 허파를 장착해라!
그리고 코웰의 기사들은 얼음 꿩의 허파를 장착했다. 각자 다른 아이템이긴 하지만 그 효과는 비슷비슷했고 차원도 오카마에게서 받은 붉은 게의 아가미를 끼고 밖으로 나섰다. 리지는 이미 차 안에서 얼음 꿩의 허파를 쓴 상태로 쓰러진 기사를 치유하는 중이었다.
-듀드라는 몬스터에게서 병균이 옮은 거 같아.
리지의 표정이 심각했다. 리지는 얼마 전까지 웃으며 사람을 죽이고 다녔다는 것으로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진심으로 기사를 걱정하고 있었다. 물론 좋은 점이긴 한데, 이 상황에서 여유롭게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걸린 건데, 울프릭은 어디 가고 리지 혼자 남아있는 거지?
“울프릭은?”
이차원은 곧바로 리지에게 물어보았다. 리지는 대답하는 대신에 듀드가 가장 많이 몰린 곳에서 그들을 처리하고 있는 울프릭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울프릭은 심판자의 검을 휘두르며 십자가들을 무자비하게 날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듀드들은 십자가에 맞아 몸이 잘려나가 여러 방면으로 피와 내장을 흩뿌려 다녔다.
울프릭도 전투를 거듭해왔던 탓에 힘이 더욱 증가한 것처럼 보였다. 차원은 울프릭을 향해 곧바로 다가갔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차원이 걷는 길마다 있던 듀드들이 빠르게 흩어지더니 숲으로 도망가기 바빠 보인 것이다. 뿐만 아니다. 차원이 울프릭 주위에 가까워질수록 울프릭을 공격하던 듀드 또한 재빠르게 줄행랑을 치기 시작하였다.
왜 저러지? 저들이 원하는 시체는 반대편에 있는 차 안에 있을 텐데.
-요정, 또 무슨 일을 하기라도 한 거야?
아니, 딱히 뭘 한 것도 없이 보이는 것처럼 걸어온 것뿐인데. 허나 울프릭을 비롯한 기사들과 차원의 일행은 일제히 차원을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골칫덩어리이던 듀드가 사라질 이유가 그들에겐 없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거 때문인가?’
그 순간, 차원은 바로 얼마 전에 자신이 로울로를 죽이고 받았던 칭호가 떠올랐다.
[ 드래곤 슬레이어 : 만물의 근원인 드래곤을 쓰러트린 자. 그의 숨결에 강한 정기가 뿜어져 나온다. ]
그건 자신이 따로 사용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발생되는 스킬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거군, 자신의 숨결에는 이미 드래곤과 같은 기운이 들어있어 듀드들은 그를 드래곤으로 착각해 도망친 거다. 차원도 이번에 자신이 얻었던 칭호의 뜻을 이번 기회로 다시 알게 되었다.
“그나저나 몬스터도 전염병을 옮길 수 있었군.”
-듀드 같은 애들이 옮기는 전염병은 지독하기로 소문나서 각 왕국마다 대비를 철저하게 해놓습니다.
그건 다행이긴 하지만, 앞으로 각별한 주의를 하며 모험을 다녀야겠군. 이들에게도 리지가 있긴 하지만,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그렇게 소동을 지나고 나자 저 멀리에서 쿠마바 왕국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
이차원 일행이 왕국에 도착해 내렸지만, 쿠마바 왕국은 차원이 생각했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분명 차원이 기억하기로 이 왕국은 마도공학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왕국으로, 다른 왕국에서도 이 왕국으로 유학을 올 정도로 활기찬 왕국이었다. 그런 기술에 따라 국민들의 의식 수준도 높고, 더군다나 이 나라의 국왕은 정치까지 눈에 뜨인 명성이 자자한 자였다. 그렇기에 국민들의 명석한 머리로 만들어낸 아이템들을 다른 왕국으로 수출시켜 왕국을 발전시키는 것도 잘했다. 기술에 따른 돈이 많은 나라였으니, 얼마나 평화로웠겠는가.
‘이토록 훌륭한 곳인데, 기본적인 경비조차 보이지 않다니......’
그런데 그런 부유한 왕국치고는 성을 지키는 경비도 없었으며 거리엔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카르틴 왕국처럼 사람의 온기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국민들 모두가 집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고 있었다. 아직 하늘은 푸르고 해가 지기에는 시간이 꽤 남은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 굉장히 수상하군.
오카마도 이 상황이 부자연스럽고 의심이 드는 듯 부하들에게 어떠한 지시를 내렸다. 그의 부하들은 자신들이 메모해둔 종이를 꺼내더니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 읽어내렸다.
-뭐야, 이게?
마을이 수상하다면서 종이를 보게 시키다니, 뭘 하려는 속셈인 거지? 데린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슬쩍 엿보려 하자 7성군 기사들이 자랑스럽다는 듯 종이를 보여주었다.
-7성군좌분들께서 각 왕국마다 평가를 내린 것입니다. 평가 기준은 국민 의식, 국왕 통치,
문화 수준, 전투력 등 다양하며 보시다시피 쿠바마 왕국은 순위권에 들 정도로 매우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놈의 7성군좌는.”
도통 모습을 보이지 않을지언정 자신에게 7성군에 대해 알려주지 않자 더욱 거슬렸다. 7성군 기사들도 이차원이 불편해 보이는 모습을 보이자 곧바로 몸을 숙였다.
-…죄송합니다.
어쨌든 왕국의 모든 마을의 도시에 사람들이 없었고 차원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겨버린 건 변하지 않았다. 이차원은 이곳의 일을 빨리 끝낼 생각으로 바뀌어있었다.
‘이 왕국에서 육체를 인벤토리에 넣을 아이템을 얻어야 되는데, 대체 어디서 어떻게 얻어야 하는 건지.’
그리고 그것뿐만 아니었다. 만에 하나, 백만분의 하나로 바르티스가 이곳으로 숨어들어온 것도 생각해야 했다. 그런 일은 지금만은 피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요? 말씀하시면 따르겠습니다.
차원은 자신이 플레이어였던 시절의 기억을 살려 일단 이곳의 왕실이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이곳의 왕실은 다른 왕실과 달리 지하 깊은 곳에 만들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부유하고 기술력이 좋은 마을이다 보니 침입에 대비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거겠지.
“왕실을 먼저 찾아가 봐야겠어.”
그의 말이 떨어지자 그들을 모두 실은 거대한 차가 움직이며 왕실 앞에 다다랐다. 입구에는 현실 세계의 인터폰과 같이 동그란 구슬이 있었는데, 그곳에 다가가니 사람의 얼굴이 비쳤다. 차원 역시 차에서 내려서 곧장 얼굴을 보여주었다.
-방어구를 끼지 않았다. 당장 물러나라.
-방어구도 없이 왕실 가까이 오다니. 저런 정신 나간 놈을 보았나.
인터폰 같은 곳에서 경비들의 험악한 소리가 들려왔고, 그 이후에 사이렌 같은 경보가 그들의 귀를 강타했다. 바로 이곳에 오기 전 듀드가 난리를 쳤다. 거기에 왕국 전체의 길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 모습까지. 이차원은 그것을 보고는 왜 경보가 울리는지 알 것 같기도 하였다.
‘방어구? 방역 장비를 말하는 건가?’
만약 듀드에 의해 전염병이 퍼져서 이 왕국이 멈춘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걸 깨달았다 해도 사이렌은 멈출 생각을 안 했다. 방역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차원 일행을 제거하려는 듯이 그들의 길을 막고 있었다.
알았으니까 일단 저 정신 사나운 사이렌부터 꺼주었으면 좋겠는데. 차원이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오카마가 자신의 신분패를 인터폰에 보여주었다. 그 신분패만으로 자신이 7성군 소속의 기사라는 걸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었다. 그러자 인터폰 안에서 사람들끼리 떠드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7성군 신분패아닌가?
-서, 설마, 가짜 아닐까.
-마을에 생긴 그 일 때문에 우릴 도와주려고 온 걸 수도 있지 않나.
-내가 단장님께 보고하고 오겠네.
그 후 잠시간의 정적이 있더니 사이렌 울리는 소리가 드디어 멈추었다. 드디어 멈추었네. 그럼 이제 좀 들여보내 주면 안 되나? 그렇게 아주 한참 후에야 늙은 남자의 목소리가 인터폰에서 들려왔다.
-기사단장 코트입니다.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7성군 소속의 기사님들이라면 제가 영접을 해야 마땅하겠으나, 저는 왕실을 호위하는 기사이기에, 왕실에 위험이 될 수 있는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 저희 왕국은 전염병 때문에…
코트는 구구절절 변명을 이어갔다. 결국 참지 못한 차원이 오카마를 옆으로 살짝 밀치고 ‘7성군좌의 징표’를 인터폰에 들이밀었다.
-엇!
무슨 일인지 코트라는 기사단장이 짧은 비명을 끝으로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