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할아버지 제법이네요. 어떻게 스킬도 없이 이 정도 제련이 가능한 거죠?
프랭크의 두 눈이 신비한 세계를 발견한 것 마냥 반짝거렸다. 제련한 팰리티움 광석이 랜돌프의 손에 들려있으며 그는 장난감처럼 조물거리고 있었다. 랜돌프는 석유가 아닌 원료로 가는 다크혼 세계 자동차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프랭크는 옆에서 각종 금속들을 제련해 주며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랜돌프는 자만심을 가진 말투로 어린 애에게 대답하였다.
-그건 말이다, 우리 위대한 드워프족만이 가지고 있는 마도 공학 때문이지. 하지만 너무 기죽을 거 없어. 내가 보기에 넌 우리 위대한 드워프족 다음으로 똑똑한 인간이거든.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말만 해. 뭐든 다 만들어주마.
-할아버지도 말씀만 하세요. 제가 어떤 금속이라도 다 제련해줄게요.
랜돌프와 프랭크, 서로의 능력을 보며 빠져들었고 랜돌프 또한 프랭크가 퍽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각종 장난감들까지 만들어주었다. 자동차 모형을 시작으로, 현실 세계의 블록과 같이 조립 가능한 물건이 마법처럼 그의 손에서 흘러나왔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면 호흡이 잘 맞는다는데, 차원은 이 둘이 만나면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킬 거라 생각하여 서로를 소개시켜 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저 둘은 자신들만의 공간으로 빠져들었다.
랜돌프와 프랭크는 이차원에게 디원과 로울로 등 육체를 싣고 갈 이동수단을 부탁받았기에 그에 맞는 차를 만들고 있었다. 일이 순조롭게 가는 것 같아 차원은 회복이 끝난 디원의 몸으로 빙의해 라프텔에게 다가갔다.
-기본기를 알려달라고?
“영력으로 버프와 비더프를 더 정교하게 사용하고 싶어.”
로울로와 전투 때, 이차원은 라프텔에게 받은 영력으로 그에게 디버프를 걸 수 있었다. 덕분에 이길 수 있었지만, 아직 라프텔만큼 자유롭게 사용하지는 못하였다.
-좋아. 호흡부터 영력을 담아내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알려줄게.
“또 바라는 게 있는 건가?”
-아니?
이차원은 라프텔이 순순히 자신의 기본기를 전수하는 것이 이상하여 아직 남아있는 한이 있는 건지 물오본 것이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이에 라프텔은 무고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장은 없어.
“당장이라니?”
-앞으로 네가 더 강해져서 더 높은 위치에 오르면 그때 생각해볼게.
뭐지, 도대체 뭘 부탁하기 위해서 저러는 거야? 괜히 불안하네. 라프텔은 그녀가 보기에도 차원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여 앞으로의 길이 기대되었다. 그렇기에 당장 원하는 것을 말하기보다 차원의 편에 서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라프텔은 차원에게 호흡하는 것부터, 영력을 담아내는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였다.
-일단 평온한 마음을 가지고 숨을 깊게 들이쉬어.
“이렇게 하면 되나?”
-너무 빨라! 좀 더 천천히 숨을 가다듬을 수 없어?
“지금도 충분히 차분하게 숨을 쉬고 있는 건데.”
역시나 이차원도 처음 배우는 일에 서투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한참 실랑이를 하더니, 남들보다 빠르게 차원에게도 소울 하트가 생겨났다. 강령술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영력을 다루는 소울하트를 가지고 있다. 심장의 한 공간에 마나를 담아 방출할 수 있는 것처럼, 영력을 담는 공간이었다.
-가끔가다 이 공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자들이 있는데 너도 그런가 보네.
차원이 빠르게 소울하트를 만든 것도 모자라 그 공간 사용을 본능적으로 해내다니, 라프텔은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제자를 가르친다는 재미인 걸까? 라프텔은 더 욕심이 난 듯 더 적극적으로 그를 가르치려 하였다.
-이제 소울하트 자체에 집중해 봐.
“소울하트는 됐으니 스킬을 알려주지?”
-스킬?
라프텔이 차원을 보며 피식 웃었다.
-보통 마법으로 강령술을 사용하지만 영력을 기본적으로 다루게 되면 스킬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도 강령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될 거야. 육체와 마찬가지로 영력도 단련하면 그 힘이 점점 강해지니까.
“기본체력이 늘어나는 개념인가?”
이해까지 빠른 차원에 라프텔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되면 따로 힘을 줘서 스킬을 사용할 것도 없이 적들의 영혼을 흔들어 디버프를 주거나 아군의 영혼을 어루만져 버프를 주는 것이 가능해져.
라프텔의 말에 차원은 곧바로 호흡을 하며 소울하트에 집중하였다. 한두 번 시도하던 차원은 곧바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는 더욱 집중시켜 저 앞에서 오순도순 차를 만들고 있는 프랭크와 랜돌프를 바라보았다.
‘시험해볼까.’
차원은 그들에게 곧바로 힘을 주입하기 위해 영력을 사용하였다.
깡!
-뭐야!
랜돌프는 자신만의 망치로 기세등등하게 차를 만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강도 조절이 안 되는지 망치에 의해 차가 거세게 찌그러졌다. 어이구야, 보닛이 아예 쑥 들어가 버렸네. 저 정도면 보험비도 상당히 들겠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프랭크의 표정도 조금 일그러졌다.
-차를 만들랬지, 부수랬어요?
-나, 나 아니야. 내가 이렇게 힘이 강할 리가 없잖아…! 이 쥐알 만한 키에서 그런 힘이 나올 수 있겠냔 말이다.
-그럼 아저씨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했는데요? 아저씨 망치로 아저씨가 망치질을 했는데 아저씨가 부순 게 아니라면 누가 부순 거죠?
-그, 그건......
드워프는 애초에 전투형 종족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힘에 민감하지 못해서 자신의 힘이 증가 한 줄조차 눈치채지 못하였다.
-우리 아까까지 좋았잖아. 왜, 왜 그래!
한 번의 일로 이렇게까지 차가워지다니... 방금까지 죽이 잘 맞던 프랭크가 자신의 실수(?)를 보고 냉랭해지자 당황해 하였다.
“괜히 미안하네.”
***
프랭크와 드워프가 만든 팰리티움 트럭의 외형은 크림색이었고, 바퀴가 없이 최상급 에인 결정의 동력만으로 이동되는 차였다. 마치 자기부상열차와 같았다.
-어떤가? 위대한 드워프족이 만든 자동차가? 마음에 드나?
“에인결정 동력만으론 한계가 있지 않나?”
-하칸의 동력...
-하칸의 동력을 더하면 문제없어.
프랭크의 말을 끊으면서 말하자 프랭크는 랜돌프를 조금 찌릿 노려보았다. 이런 걸로 다 관심을 받고 싶어 하다니, 랜돌프도 프랭크와 같은 얘로 보였다. 그러나 랜돌프는 그러거나 말거나 손을 비비며 차원에게 차에 대한 설명을 계속하였다.
-지면의 마찰, 충격도 전혀 전달되지 않게 설계했네.
랜돌프도 이에 질세라 설명을 더하며 차 문을 열어주었다. 이러니까 자동차 중매인 같네.
-안을 보면 더욱 놀라울 거야.
내부 안으로 들어서고 인테리어를 살펴보니 차 안 또한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셀트락 가죽을 사용...
-셀트락 가죽을 사용해서 부드러움과 강도는 일반 악어가죽의 다섯 배예요.
프랭크는 아까의 설욕을 하듯 랜돌프의 말을 채가며 설명했다.
-마력을 이용해 자율주행 기능을 넣어보려 했는데...
-그건 실패했죠.
이번엔 랜돌프가 프랭크를 째려보는데 프랭크는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한다.
-나 위대한 드워프족에게 실패란 없네. 그게 시간이 좀 걸려서 당장 급한 건 아닌 거 같길래 안 넣은 것뿐이야. 혹시 꼭 필요한 건가? 없으면 죽을 만큼?
이전에 차원이 자율 주행 기술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어 그 말을 기억하고 넣으려 한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이 정도로 만든 것도 굉장히 훌륭하다. 차원은 드워프의 실력에 놀라기도 했지만 프랭크의 기술력에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프랭크가 탱크를 만들었을 때의 기술력보다 한계를 뛰어넘은 실력이었기 때문이다.
-고생했어.
차원이 프랭크의 머릴 만져주며 칭찬하자 프랭크가 보란 듯이 랜돌프를 비웃었다. 하, 애들 둘을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그런데 그때, 차원의 눈이 붉은색으로 빛나더니, 어째서인지 로울로의 육체가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본 7성군 기사들이 반사적으로 칼을 꺼내들려다 차원의 상태를 보고 멈추었다. 아직 전장의 현장에서 로울로가 보여줬던 무력이 저도 모르게 떠올랐던 것이다.
‘떠나기 전에 테스트를 한 번 해봐야겠어.’
곧이어 차원이 일으켜 세운 로울로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는 은색 날개를 멋들어지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볍게 날아올라서 거대한 바위산으로 향하였다. 차원은 바위산에다가 로울로가 이전에 사용했던 스킬인 날개에서 나오는 참격 시험해보려고 한 것이다.
콰아앙!
로울로의 참격은 그가 전쟁에서 사용했던 것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고 바위산 두세 개가 그대로 모래 가루로 변해버렸다. 차원의 몸에 쌓인 영력이 힘을 보태준 건가? 사람들 모두 그 엄청난 파괴력이 입을 벌리고 있는데, 누군가의 박수 소릴 시작으로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가르친 보람이 있네. 훨씬 정교해졌어.
라프텔은 자신의 교육으로 강령술체에 버프를 건 것을 알아보고 그를 칭찬하였다. 이어서 차원은 코스쿤의 육체에도 강령술을 사용하여 스킬을 사용해보니 확실히 그전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 발휘되었다.
그렇게 테스트를 마치자 차원은 자신감을 가지고 모든 육체들을 트럭에 실었다. 이제 그만 떠날 시간이 된 것이다.
-언젠가 이 은혜는 갚으라고.
“정말 같이 안 가?”
이차원도 이대로 라프텔을 두고 떠나기 아쉬운 모양이었다. 하긴, 그녀에게 도움을 받은 게 한둘이 아니니까.
-날 의지하는 녀석들이 이리 많아서.
라프텔은 자신 뒤에 줄줄이 서 있는 혼령들을 보며 말하였다.
-또 보자. 조심히 가.
그렇게 차원은 라프텔과 혼령들에게 작별인사를 받으며 왕국을 떠났다. 하원의 말대로 라프텔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처음엔 시끄럽고 귀찮은 귀신들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꽤 괜찮은 녀석들이었잖아.
뒤에 육체들을 실은 트럭이 안정하게 움직여대었다. 나무나 바위산 길, 울퉁불퉁한 길도 바퀴가 달린 일반 트럭이 아닌 떠올라 가는 차였기에 이동이 아주 쉬웠다.
그리고 중간에 7성군 기사들도 차원 일행에 합류하게 됐다. 그 중 오카마라는 그들의 리더도 함께 탑승하였다. 차원은 7성군에 대해 더 자세한 것들을 알고 싶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말하는 즉시 기사 최고 영예인 7성군 기사 자격을 잃을 수 있어서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 정보에 대해 발설하는 것이 서약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허나 이차원은 굴하지 않고 계속 물어보았다.
-안됩니다. 이차원님이라 해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차원이 죽어 있는 7성군 기사의 기억을 읽으려 할 때도 이들은 극구 저지하였다. 그 어떤 일이 생겨도 말하지 않아 했다.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하라고?”
시체의 기억도 읽지 못하게 막고, 직접 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거절만 하자 뾰로통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7성군에도 이교도의 7대장같은 리더급 인물들이 있는데 그중 한 분이 오셔서 직접 설명한다는 말만 하였다.
-그분이 오실 때까지만 기다려주십쇼.
물론 차원 또한 7성군에 대한 정보보단 당장의 목표가 먼저였기 때문에 급할 건 없었지만 이대로 고분고분 알겠다고 해주는 건 계산에 맞지 않았다.
“좋아. 기다려 줄 테니 대신 그 대가로 내가 마음에 들만한 물건 좀 가져와.”
-물론입니다.
그렇게 차원과 일행을 태우고 있는 차가 이동 중이었다.
퉁.
갑자기 무언가에 의해 충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산에 있는 나무에라도 부딪친 건가? 곧이어 차가 멈췄고, 기사들이 차에서 뛰어 내렸다.
-몬스터다!
모든 기사들이 이렇게 소란스러운 것을 보니 보통의 몬스터는 아닌 듯해 보이는데. 도대체 어떤 몬스터지?
-육체를 지켜라! 듀드다!
듀드라면... 하필 죽은 자들의 시체를 파먹는 몬스터? 최악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