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네 따위가 나를 농락하려 든 것이냐!
로울로는 곧장 도망가는 차원을 대낫을 들어 올리며 그의 몸을 세로로 찢어버렸다. 이차원은은 그 자리에서 몸이 두 동강으로 잘려버린 채 바닥으로 쓰러져버렸다.
그런데 분명히 죽어버린 차원의 시체가 이상증세를 띄기 시작했다. 그의 잘린 몸체가 서서히 젤리처럼 녹아내리더니 바닥에 퍼져버린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딱 하나밖에 없었다.
-감히 네가 코스쿤을!
로울로는 차원이 [분신] 스킬을 사용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또한 코스쿤을 죽인 것이 차원이란 걸 깨닫게 되고는 더욱 격노하며 본성을 드러내었다.
그의 몸은 [흑화]를 사용한 것과 같이 몸이 새까매져 갔다. 동시에 등에서 커다란 날개가 돋기 시작하면서 손과 발도 커져 갔고, 그의 손에는 굉장히 날 선 손톱이 길어져 갔다. 이윽고 얼굴은 입이 서서히 찢어지더니 거대한 이빨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렇게 그는 완벽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하칸이 푸른색 빛을 발산하고 있다면, 로울로는 검은색의 철갑 같은 비늘을 두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마치 저승에서 온 사신과도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로울로는 곧바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의 강풍을 만들어내면서 날아올랐다. 분신을 보낸 차원을 찾기 위해 낮게 비행하며 주변을 탐색하려는데 빼곡히 세워져 있는 나무들 때문에 잘 보이지 않자 날개를 크게 휘둘렀다.
로울로의 날개는 하칸과는 다르게 은빛이 나고 있었는데, 값비싸 보이는 은이 아닌, 한 번 닿으면 무엇이든지 그대로 잘려 나갈 거 같은 칼날의 은색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하듯 로울로가 날개를 크게 휘두르자 숲을 이루던 나무들이 삽시간에 반 토막이 되어 날아갔다.
-찾았다.
그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을지 어떻게 알았으랴. 그가 숲에 있는 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리자 미처 이 상황에서 도망치지 못한 차원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로울로는 생기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앞 뒤 따지지 않고 공격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역시나 은색의 날개를 가차 없이 휘두르자 날개에서 참격이 날아갔다. 참격은 마치 부메랑처럼 휘어가면서 날아왔다. 거기에 어찌나 그 수가 많은지, 주변의 땅들과 나무들이 뒤엎어지면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무슨 힘이 이렇게 세!’
차원은 드워프가 만들어준 심판자의 창을 디원의 민첩성을 사용하면서 간신히 막아서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로울로의 힘이 워낙 강했던 지라 점차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힘이 살짝이라도 빠지면 고깃덩어리마냥 몸이 찢겨져 나갈 게 틀림없다. 결국 더 버티는 것이 무리라 판단한 차원은 참격을 옆으로 흘려보내었다. 그러자 참격은 그대로 날아가 뒤에 있는 바위산을 가격하였다.
쿠우우우웅.
바위산은 참격이 닿은 모양대로 곧바로 잘려지더니 녹아버린 듯 사라졌다. 그 모습에 이차원은 몸이 순간 굳었지만 여기서 멈춰버리면 그동안의 노력이 끝나 버린다는 걸 짐작했다. 어떻게든 저 녀석을 없애버려야 한다.
-혼자 왔을 리는 없을 테고.
그때, 로울로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차원에게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만약 그에게 지원군이 있다면 더 골치 아파지기에 금세 처리하려는 것이다. 이차원도 창을 들어 올리며 그를 대응하려고 하는 그 순간, 눈이 안 보이는 여자애가 갑자기 부르르 몸을 떨더니 극강의 공포심을 느끼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아......
에너지를 관찰하는 능력을 가진 여자에게 무엇인가 느껴진 모양이다. 도대체 어떤 힘이 느껴지길래 저리 공포스러워 하는 건가? 심상치 않은 모습에 로울로도 행동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가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였다. 하칸이 그의 위를 지나쳐갔다. 크기는 하칸이 월등히 작았지만, 하칸의 몸은 온통 푸른 빛으로 빛나고 있어 위엄은 로울로에 밀리지 않았다.
-하칸…!
마력, 마나를 관망하는 존재로 드래곤 중에서도 희귀하다고 널리 알려진 존재다. 그런데 로울로가 놀랄 수밖에 없었던 건 그 귀한 존재가 인간과 함께 어울리는 것도 모자라 인간을 돕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칸의 시선이 로울로를 바라보았는지, 하늘에서 빠르게 수직하강하며 운석처럼 떨어지더니 꼬리에 있는 철퇴를 휘둘러 로울로를 내리박았다. 정확히 로울로의 몸 중앙을 노린 모양이었다.
-크윽.
허나 하칸의 습격이 무의미하게도 로울로가 몸을 피하며 날개로 철퇴 공격을 막아버려 무산되었다.
‘젠장! 하필 지원군이 나와 같은 드래곤일 줄이야!’
그렇게 푸른 용과 검은 용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로울로는 반격을 위해 빠르게 날개를 휘둘러 하칸에게 참격을 날렸다. 그런데 참격 공격이 하칸을 향할수록 점차 얼어버리더니 힘없이 깨지며 사라져버렸다.
-이게... 무슨!
로울로는 자신의 공격도 허무해지자 더욱 열이 올라갔다. 그의 참격이 얼어버린 것은 하칸의 등에 어느새 올라타 있던 차원이 [슈퍼노바] 스킬을 사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이차원이 하칸의 등에 올라탈 시간은 없었다. 방금 자신이 참격으로 거리를 벌린 차원이 갑자기 하칸 등에 올라타 있다니. 설마, 이번에도? 로울로는 방금까지 이차원이 있던 자리를 보았다. 그의 생각이 맞았다.
분명 좀 전까지 차원이 있던 곳에서 분신이 녹아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그제야 눈치챈 로울로는 또다시 분노를 느끼더니 그의 몸이 서서히 붉게 변하였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로울로의 군단과 부대의 몸까지 함께 붉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로울로가 관망하는 힘, 근력. 그에 대한 능력들이 모두 올라갔음을 알리는 표시였다. 군단들은 그동안 로울로와 하칸의 싸움을 관망했던 것과 달리 빠르게 차원과 하칸의 주위를 포위하였다.
차원은 몸이 붉게 변한 군단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상승한 것을 눈치채었으나, 차원을 포위한 사제들은 흑마법을 사용하여 하칸과 차원을 재빠르게 공격하였다.
이차원은 창을 휘두르며 마력을 방출해 그들의 흑마법을 방어하였다. 허나 수에서 밀려나갔다. 이차원이 공격을 막자 뒤를 이은 사제들이 연달아 흑마법을 날린 것이다. 게다가 이번 건 더욱 강력해진 흑마법이었다. 이차원은 이번에도 창을 휘둘렀지만, 온전히 다 막지는 못하였다.
다행스럽게도 하칸이 흑마법을 보며 좌우로 날아다니며 피하고 있었기에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막기만 해서는 저들은 더욱 강해질 뿐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한 방을 먹여야 돼.”
차원은 황급히 하칸과 함께 위로 올라가 반격을 취할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로울로가 원했던 그림이었다. 이미 그들의 움직임을 알아챈 로울로는 은빛 칼날이 박힌 날개로 온몸을 감싼 채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저 녀석만 피하면 어떻게든...”
이차원은 로울로를 피하기 위해 하칸에게 명령을 내리려 할 때였다. 그의 사방에서 흑마법이 날아오고 있었다. 이차원과 하칸이 흑마법을 피하며 도망 다닐 때, 부대의 사제들은 흑마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미리 준비해가며 그들의 시선을 뺏은 것이었다.
결국, 이차원이 로울로를 피하기 위해 움직이면 흑마법에 닿고, 흑마법을 처리하고 나면 로울로에게서 도망칠 수 없게 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빌어먹을! 도망칠 공간도 없어!’
그들의 옆 뒤로는 흑마법이 날아오고 정면으로는 로울로의 참격이 날아오는 상태였다. 그사이에 껴버린 그들은 오도 가도 못하며 방황하고 있는 순간, 엄청난 빛이 차원의 앞을 가로막더니 사제들의 흑마법 공격을 사라지게 하였다. 무슨 빛인가 했더니 [은빛 조각]이었다.
단숨에 길이 생겨난 이차원과 하칸은 그대로 로울로의 공격을 벗어났다. 뒤이어 하늘에 수많은 마법진이 생기더니 그 안에서 [메테오]가 떨어지며 사제들을 처리해나갔다.
-휴, 아슬아슬했네.
-저희가 너무 늦었나 보군요.
“아냐, 적당할 때 왔어.”
‘이번엔 또 뭐야!’
다름아닌 차원의 동료들과 7성군이 지원을 나온 것이다. 이차원의 지원군이 하칸으로 끝날 줄 알았더냐. 동료들의 지원을 받은 차원은 하칸에서 내려왔고 하칸은 곧장 하늘로 날아갔다. 로울로는 가장 귀찮은 존재인 하칸을 처리하기로 마음먹고 하칸에게 날아들었다.
이차원 일행들이 사제들과 싸우는 사이에 하칸과 로울로의 싸움도 시작되었다.
***
하칸을 보낸 차원은 동료들과 함께 사제들을 처리해나갔다. 데린과 코웰은 각자 [메테오]와 [은빛 조각]을 사용했고, 프랭크는 자신이 만든 총으로 지원사격을 나섰다. 거기다가 이들의 전투에는 같은 뜻으로 이교도를 타파하고자 하는 다른 왕국의 기사들도 몰려들었다. 허나 로울로의 부대는 드센 부대였다. 그들의 부대원이 죽어갈 때마다 그들도 기사들을 죽여나갔다.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며 싸우는 탓에 팔과 다리가 잘려 나간 부상병들이 속출해나갔다. 기사들은 서로의 힘을 모아 3명이서 한 명의 부대원을 처리해나가기도 했다. 바닥에는 어느덧 피로 물들여졌고 각종 시체의 잔해들이 굴러다녔다. 미래가 밝고 창창한 젊은 나이의 기사들도 이곳에서 쓰러져만 가야 했다.
그 시각, 하늘에선 두 드래곤이 싸우는 모습이 그림자를 통해 비치고 있었다. 하칸의 철퇴와 로울로의 참격 공격은 막상막하를 이루며 팽팽하게 전투를 이뤄갔다. 로울로가 참격을 날리면 하칸은 마력을 내뿜어 처리하였고, 하칸이 철퇴를 휘두르면 로울로는 날개로 막아대었다.
-왜 인간을 따르냐.
로울로는 하칸이 말을 못 한다는 걸 모르는 듯이 하칸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그냥 인간이 아니야. 다른 세계와 통할 수 있는 인간이야. 그리고 선한 힘을 가진 자다.
사제들에게 [슈퍼노바] 공격을 하며 그들을 얼려가던 차원에게도 하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칸의 처음 들린 목소리에 순간 당황한 것이다.
로울로와 하칸은 서로의 날카로운 손톱을 맞부딪치면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힘은 너무나 비등해서 쉽게 힘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았다. 결국 로울로는 인간으로 변신하여 하칸의 위에 올라탔다. 그의 대낫으로 하칸의 등을 내려 꽂으려 한 것이다.
-이대로 끝이다!
로울로가 하늘 높이 낫을 치켜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하칸도 젊고 잘생긴 외모를 한 근육이 꽤나 붙어 있는 미소년으로 변신을 한 것이다. 어느새 이 정도로 성장을 해버린 것인지, 거기에 하칸도 푸른 빛의 대검을 만들어 로울로의 낫을 막아내었다.
사방에는 [메테오]가 떨어지고, 각종 흑마법이 난무하며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차원은 죽은 자들에게 강령술을 걸어보려 했지만, 이교도의 강력한 흑마법에 지배당했던 이들이라 강령술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슈퍼노바]와 [독장판]을 사용하며 부대들을 처리해나갔다.
코웰 역시 [은빛 조각]을 사용하며 로울로의 부대들을 헤집어 다녔다.
-이렇게 오래 싸우는 것도 오랜만이군.
-그러게요.
아르만 역시 부대원들의 목을 잘라가며 함께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둘은 모두 지쳐 보이는 듯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그때, 그들의 뒤로 부대원들과 사제들이 몰려오더니 공격을 퍼부어 대었다. 그들의 공격을 막아서며 전투를 이어가려는데, 그만 집중이 깨진 탓에 아르만은 옆구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말았다.
-아르만!
그를 구해주러 가던 코웰은 아르만을 옆에 이고 대피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다리에 화살이 박혀버렸다.
-이대로 우린 죽는 건가?
-전쟁터에서 생을 마감하겠다는 자네 소원이 이루어지겠네.
그들은 최후의 발악으로 무기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몸을 던지려 할 때, 부대원들이 빠르게 쓰러져 나갔다. 그들이 뒤를 돌아보니 프랭크가 총을 들고 그들을 쏘고 있는 것이었다. 총에 맞은 부대원들은 처음 보는 위력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뒤이어 [메테오]가 날아오더니 남은 적들을 깔끔히 처리해주었다.
-어떻게 기사들이 꼬맹이보다 못 싸우냐? 얼른 치료받고 복귀해.
데린의 핀잔을 끝으로 그들은 들것에 실려 나가며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였다.
-우리도 아직 멀었군.
-아직 죽을 때가 아닌가 보죠.
그들은 허탈하게 웃으며 치료를 받았다.
‘확실히 끝내놔야겠군.’
로울로 역시 하칸과 전투가 길어지자 최후의 보루를 사용해야겠다며 자신의 힘을 쏟아내기 시작한듯 그의 몸이 더 붉은 빛으로 변하였다. 그러자 이교도 군단의 일원들의 힘이 증가하면서 차원의 일행들이 밀리기 시작하였다. 한편, 하칸도 자신의 몸을 더 빛내기 시작하였다.
-결이 달라, 아직 거칠군.
로울로가 했던 것처럼 하칸도 자신의 힘을 차원 일행에게 사용해 주었는데 로울로와 달리 차원의 동료들은 힘이 증가하지 않았다. 로울로는 그 모습이 하칸의 전투 능력이 부족하다 생각한 탓에 하칸을 비웃었다.
이교도 사제들의 공격이 더욱 거세지자 여기저기서 부상자 수가 솟구쳐 올랐다. 열심히 싸우던 데린도 코웰이 다치고 얼마 안 있어 사제의 흑마법에 걸려 오른쪽 어깨에 심각한 부상을 당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제 치료해줄 인원 수도 모자랐다. 그렇게 로울로는 승리를 예측하며 기분이 좋아지려 하는데, 어림도 없지. 이차원이 10명이 되어서 [스카이워커]로 그의 앞으로 날아오른 것이다.
하칸은 여러 명에게 힘을 실어주기보다 차원에게 힘을 실어줄 작정이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