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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워프로 무한성장-163화 (163/202)

163화

이차원이 리지를 감정으로 설득하고 있던 때였다.

[ 리지의 호감도를 얻었습니다. ]

이교도라는 존재는 차원이 게임 플레이를 할 때부터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은 존재였지만 NPC들에게 언급되는 빈도가 잦았고, 플레이어 자신들도 모르게 없애야 하는 존재들로 각인되어 있었다. 이교도는 어쨌든 게임 세계관 안에선 빌런으로 설정된 큰 세력이었고 차원 또한 구체적인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그 내부 이야기를 알고 있긴 했었다.

이제 리지에게서도 호감도를 얻은 상태이니 이교도를 이용해 그녀를 설득시킬 수 있다.

“이교도가 널 택한 이유를 알아?”

리지는 이차원에게 마음을 열어놓은 상태이지만 쉽게 말을 떼진 못하였다. 말하기 힘든 이유라도 있나? 이차원은 자신이 물은 질문에 자기가 대신 대답하였다.

“네가 가진 신성력은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압도적이기 때문이야. 대악마를 깨울 수 있을 만큼.”

-내가 그것도 모르고 이교도에 들어갔을 리가.

그녀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그렇다면, 그 사실을 알고도 그녀는 왜 이교도로 들어가게 됐을까.

“그럼 여기서 질문. 그 축복받은 힘을 대륙에서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넌 왜 대륙에서 가장 불행해졌을까. 너보다 훨씬 적은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네 오빤 잘만 살고 있는데 말이야.”

-......

질문이 너무 길었나. 이번에도 대답을 바로 뱉지 않는 리지에게 이차원이 재차 물었다.

“너와 울프릭의 다른 점이 뭐냐고 묻는 거야.”

-복수. 난 복수를 원했고 오빤 그러지 못했어. 그리고 그게 내가 고통받는 이유라면 얼마든지 받겠어.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달라. 넌 복수를 택했고 그 결과 너 자신을 잃었다. 울프릭은 달라. 그는 너와 다르게 대담하게 모험을 떠났고 스스로를 고통과 원한에서 치유했어.”

-그게 멍청한 거지! 때린 놈이 분명 있는데 왜 내가 내 돈 주고 치료를 받아야 해? 맞은 것도 억울한데, 내가 왜!

순간 그녀의 이성의 끈이 끊어진 듯 악에 받친 대답이 그에게 흘러왔다. 아직도 과거 응어리가 다 풀어지지 않은 듯해 보였다. 뭐, 그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인생의 부조리는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더욱이 그것에 과거가 얽매여 버린 자는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리지가 딱 그러하고. 이차원은 그녀를 우선 과거의 속박으로부터 풀어주려고 하였다.

“이교도는 널 치료해줬고? 그들로 인해 네 분노와 상처가 치유됐다 생각하나?”

-그건......

“그랬으면 넌 지금 행복하겠지, 리지.”

이차원의 말에 리지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이교도들은 네가 가진 원한과 고통을 이용했을 뿐 네가 받는 고통 따윈 안중에도 없어.”

리지는 차원의 말에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 맞는 말이어서 뭐라 반박하고 싶어도 대꾸할 말이 없었다. 이차원은 리지를 더욱 강하게 끄집어내었다.

“여기서 가장 웃긴 게 뭔지 알아? 네가 가진 신성력은 생명을 치유하고 활력을 넣어주는 힘이란 거야. 이교도도, 다른 누구도 아니라 바로 네가, 그 누구보다 너 자신을 가장 잘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자신이 만들었던, 자신의 눈을 가로막던 색안경에 금이 가면서 깨졌다. 이내 진정한 빛이 그녀의 눈동자를 비추어대었다. 아아, 그랬었지... 자신의 과거 모습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날개를 잃은 나비의 날개가 점차 재생되었던 것. 병들던 가축들이 자신과 생활하며 살아났던 것, 지치고 힘듦에 발버둥 치던 자들이 그녀를 통해 구원을 받아온 것. 그랬던 그녀의 힘을 이교도는 단지 대악마를 깨우는 데에 사용하려 했던 것이다.

마력이 스킬과 다크혼 세계에서 사용되는 마법을 관여하고 영력이 강령술처럼 영혼에 관한 힘에 관여했다면, 리지가 가진 신성력은 생명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힘이다. 재생의 에너지나 회복 에너지같이 살아 있는 생명 본래의 힘을 유지하게 하고 더 북돋아 줄 수 있는 힘. 그 힘의 위력을 가장 잘 알지 못했던 건 리지, 자신이었다.

거울은 마주 보아야 잘 보이는 법이다. 어디론가 숨고 눈길을 피해버리면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게 되버린다. 그 거울이 자기 자신이라 하여도.

“리지, 넌 정말 원한을 풀고 고통에서 치유 받고 싶었던 게 아니야. 복수 그 자체에 중독됐던 거지.”

그녀는 자신이 서있는 길을 보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밤하늘을 보며 소원을 빌려고 하면 떠 있는 별들이 모두 자취를 감춰 도망치기 바빠 보였다. 그렇기에 혼자 이겨내려 하였다. 그뿐이었는데...

“후회로 좌절하고 있어도 해방되는 날은 올 거야. 그게 살아간다는 증거니까.”

그의 팔이 자신에게로 향하였다. 저 손을 잡지 않으면...

그리고 잠시 뒤,

[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 리지의 스킬 ‘{R} 치유Lv1’가 부여됩니다. ]

그녀의 표정은 수줍은 소녀의 얼굴처럼 붉게 변하였다. 그런데 어제 차원은 리지의 스킬을 얻게 된 것에 좋아하지도, 그 티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꺼내 드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생각도 마치기 전에 이차원은 곧바로 제 팔을 찔러버렸다.

검이 꽂힌 자리는 붉은 속살을 내보이며 허무하게 찢겨져 버렸다.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보던 리지는 이보다 심한 장면을 많이 보았을 텐데 마치 처음 느껴지는 충격마냥 깜짝 놀라 하였다.

‘확실히 이전의 리지로 돌아왔군.’

그가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한 건, 그녀가 이교도에 빠지기 전으로 돌아왔단 걸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자신의 몸을 검으로 찌르다니, 용기가 대단하다.

물론, 차원은 놀라는 리지 앞에서 방금 획득한 [치유] 스킬을 사용하였다. 그러자 빠르게 차원의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더니 언제 상처가 있었냐는 듯 팔이 말끔해졌다. 리지 자신의 본연의 힘인데 그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란 듯해 보였다.

“보여? 이게 네가 가진 힘이야. 사람을 죽이는 힘이 아니라 살리는 힘.”

울프릭과 같은 환경에서 자란 여자. 사람을 생각하는 따뜻함이 마음속에 살아있는 여자. 울프릭과는 다르지만 강한 힘을 가진 여자. 그것이 바로 리지의 진짜 모습이다.

게임 시나리오에 의하면, 그녀는 결국 대악마를 깨운 뒤,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모습에 후회감에 빠지게 되고 자결을 하니까. 지금 상태를 보아하니, 어쩌면 이미 자신의 행보를 비관하고 자결을 시도했을 날이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왔다.

“네가 가진 그 신성력은 이 세계 전체를 살릴 수 있어.”

아마 그녀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겠지. 부모가 몰살당하고,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 리지의 눈에서 깨끗하고 맑은 눈물이 글썽이더니 이내 주저앉아 울기 시작하였다. 차원은 그런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일전에 데린에게 받아두었던 ‘파멸의 알약’을 꺼내었다.

그 알약은 차원이 주문을 걸면 곧장 엄청난 화염을 내면서 불타오르는데, 이것을 리지에게 먹이면 그녀가 돌발행동을 하거나 배신을 했을 경우 곧장 처리할 수 있다. 그럴 일은 없겠다만, 만약을 위한 일이었다. 데린은 이것을 파멸의 알약이 아닌 것처럼 잘 포장해 뒀고 재료의 성질을 조금 바꿔서 웬만한 사람들은 눈치 못 채게 만들어놨기 때문에 리지도 쉽게 눈치를 못 챌 것이다.

“이걸 먹으면 우린 이제 하나가 되는 거야.”

과장되고, 오글거리도록 민망한 말이었지만, 아무도 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차원은 속으로는 차갑게 리지의 표정을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

-협상?

-그럴 필요 없어요. 협상할 가치도 없는 놈들이니까.

리지의 말에 로울로를 비롯한 이교도 사제들이 크게 당황하였다. 이교도에 몸을 담그고 있을 그녀인데 저 태도는 뭐지? 그녀가 이차원으로부터 정화된 걸 모르는 그들이었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리지, 방금 뭐라 했느냐.

여전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은 로울로가 리지에게 다시 묻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짓은 그만둬.

-......

리지가 이전, 이교도에게 설득당하기 전의 발언을 막 해대니 로울로는 당황해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는 이내 차원을 노려봤다.

‘저놈이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리지에게 이교도의 믿음을 세뇌시켜 대악마를 깨우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데! 그런데 차원 때문에 그 모든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간 것이엇다.

-네가 감히.....

로울로가 분노에 차오르며 그에게 협박했다.

저렇게나 많은 대군을 이끌면서까지 리지를 구하려 했던 건데... 리지만 한 신성력을 갖춘 인재들이 세계 전체에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는 이교도에 한 번 물들어 본 여자였으니까.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끝이었거늘!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리지가 변했다 해도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목적은 달성한다.’

로울로는 명확한 목적만이라도 완수하려고 하였다. 리지를 데려가는 것과, 차원을 죽이는 것.

리지를 데리고 가 다시 이교도의 믿음을 세뇌시켜야 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들 테지만 일단 가장 급한 것은 그것이 첫 번째였다.

-저런 여잘 구하겠다고 우리가 이 개고생을 하다니.

그런데, 어째 주변에 있는 그의 부하들은 그와 다르게 목적이 다르다는 듯 목소리가 새어나가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목숨을 걸면서 그녀를 데려오는 일이 맞는 건지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확히는 디원의 위세에 눌려 살며 지금까지 참아왔는데, 너무나 멀쩡한 리지의 모습에 의욕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차원이 노리던 거였다.

“개고생도 이런 개고생이 없지. 내가 알려줄까? 너네가 리지를 데려가봤자 변하는 건 없어.

괜히 목숨값만 아깝지.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나을걸. 안 그래, 리지?”

-더는 내 힘을 헛되이 사용하지 않겠어. 난 내 신성력으로 세상을 살릴...

리지도 이차원의 힘을 밀어주는 태도를 보이자 로울로는 리지의 말을 다 듣지도 않은 채, 가장 동요했던 부하의 목을 쳐버리고 말았다. 그의 손에는 보기만 해도 살벌한 대낫이 쥐어져 있었다.

-협상을 원한다 했나. 원하는 걸 말해라. 이쪽도 괜히 피 보긴 싫으니까.

자신의 부하를 단숨에 처리해버리고 그런 말을 하다니. 하기야, 로울로니까 가능한 언행이겠지. 사실 이차원의 생각은 로울로도 알고 있었다. 지금 부하들의 사기, 그리고 싸워서 이긴다 해도 자신이 얻을 피해. 그 모든 걸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그의 협상안도 들어보고 싶은 것이었다.

“아, 협상한다고 했었지.”

순간 잊고 있었네. 그는 망설임 없이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뒤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가 꺼내든 것은 다름 아닌 창이었다.

-그게 협상 물건인 건가? 도대체 무슨 생각...

로울로가 말을 마치기도 전인데 이차원이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로울로가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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