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늠름한 드래곤의 자태를 뽐내는 하칸의 모습이 전장을 감싸버리는 듯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랜돌프가 혼자 무어라고 구시렁거렸다.
-위대한 드워프족이 나가서 싸우는 건 말이 안 되지. 드워프족은 몸이 아니라 머리를 쓰는 위대한 종족이거든.
이거, 이 전쟁 분위기에 제대로 겁먹었네. 카르틴에 모인 모든 기사들이 이교도에 맞서 싸우는 동안 랜돌프는 홀로 풀숲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막상막하구만.
랜돌프는 싸움이 한시라도 빨리 끝나기만을 빌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전투장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모두가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들 전쟁을 하다 말고 갑자기 뭘 쳐다보고 있는 거지?’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랜돌프도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 고갤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 순간, 거대한 검은 그늘이 땅에 생겨나더니, 푸른 빛을 내리는 풍경이 만들어졌다. 랜돌프는 드래곤의 실물을 영접하고는 입이 떡 벌어진 채로 기절을 해버렸다.
그렇게 랜돌프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하칸을 탄 차원이 이교도 세력에 맞서 한창 전쟁 중에 있었다.
-설마 지금 드래곤을 다스리며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자가...
드워프는 차원의 존재를 처음 봤지만 울프릭이 자신에게 말해줬던 것이 떠올랐다. 울프릭 말로는 자신을 구원해준 요정이 있는데 그는 온갖 신비한 것을 다 한다고 했었다.
-이 세계를 지배할 힘을 가진 자라...
랜돌프는 울프릭이 했던 말을 곱씹으면서 감탄한 채 차원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분명 울프릭은 창고에서 자신을 구해주며 차원에 대해 저렇게 말했었다. 언제고 이 세계를 지배하고도 남을 힘을 가진 자라고. 그 말을 들은 랜돌프는 그 요정이란 자에 대해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허나 그 기대감이 너무 커버린 탓일까.
-싸우는 것만 보면 영 아닌데 말이야.
확실히 지금 이차원이 싸우는 모습은 그가 생각한 모습이 아니었다. 심판자의 검을 잃은 탓인지, 차원이 하칸을 타고 전투를 하는 것을 보는데 답답함이 차오를 지경이었다.
분명 하칸 위에 올라탄 모습은 7성군 못지 않은 위풍당당하고 패기 넘치는 기운을 내뿜어 대었다. 그가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대장장이 랜돌프의 눈에 들어온 차원이 심판자의 검을 대신하여 들고 있던 무기가 영 마땅치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손에는 아우라와 힘에 비해 한없이 작고 아담한 무기가 들려 있었다.
-드래곤을 타고 단검을 쓰고 있다니, 쯧.
차원에겐 따로 대체할 무기가 마땅히 있지 않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단검을 들고 이교도를 공격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그 공격력은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아무리 [은빛 조각]을 숙련하고 사용을 한다 했어도,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기마병이 단검을 쓰는 거 봤나? 싸움을 모르는 나도 알겠네!
랜돌프는 그 모습에 답답하여서 하늘을 보며 소리를 쳤다. 무언가를 탔으면, 그게 용이든 말이든, 창을 휘두르거나 대검을 휘둘러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이차원의 모습은 애들 장난하는 거 같이 허공에 팔을 휘두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의 무력은 충분히 강했고 능력도 매우 뛰어나서 위력적이긴 했다. 더군다나 푸른 빛을 띠는 용은 마나 에너지를 그대로 발사해 다 적들을 녹여내리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힘의 균형은 점점 요정의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랜돌프에게 지금 이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경우였지만, 그 엄청난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안 되겠구만. 위대한 드워프족이 나서야지!
그렇게 그는 오지랖을 펼쳐 보이듯이 소매를 걷으며 이 전투를 빨리 끝내기 위해서라도 창을 빠르게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을 내렸다. 그때, 마침 하칸이 이차원을 태우고 하늘로 다시 높게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랜돌프는 이때다 하듯 손을 크게 흔들며 자기 자신의 위치를 그에게 알리고 있었다.
-여기야! 위대한 드워프족이 이곳에 있네!
랜돌프가 하늘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얼마 걸리지 않아 이차원의 시야에 들어올 수 있었다.
“뭐야 저건.”
차원은 하늘에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너무 높이 오른 탓인지, 아니면 그의 키가 작은 탓인지 랜돌프의 모습은 쉽게 판단이 가지 않았다.
자기를 죽여 달라고 손을 흔드는 이교도는 아닐 테고. 그렇다고 코웰의 기사 중엔 저런 난쟁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칸, 밑으로 내려가 봐.”
차원은 혹시나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존재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 하칸을 몰아 지상으로 향하였다. 적이라면, 어차피 저렇게 작은 녀석이니 금방 처리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땅으로 향해 그를 볼 수 있었고, 그제서야 이차원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드워프족?’
***
-이봐, 왜 그 엄청난 드래곤을 가지고 단검 따윌 쓰는 건가? 그 정도로 멍청이로 보이진 않는데 말이야. 자네한테서 엄청난 힘이 느껴진단 말이지.
랜돌프는 울프릭에게 행동했던 것과 다르게 차원에겐 저자세로 나갔다. 아마도 전쟁에서 보여진 그의 미숙하고 답답한 전투 때문인지 실망을 한 게 아직도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심판자의 검이 부러져서.”
-그래? 줘 봐. 내가 고쳐주지.
차원은 박살 난 심판의 검을 혹시 몰라 인벤토리창에 넣어놨는데, 그것을 드워프족이 고쳐주겠다는 말에 곧바로 건네주었다. 랜돌프는 심판자의 검을 받아쥐고는 곧바로 상태를 보기 시작하였다. 정말 이렇게 망가진 검을 고칠 수 있다는 건가?
이차원이 의심과 기대감을 같이 가진 채로 그를 지켜보았다. 뭐, 못 고치면 지금 이대로 싸우면 되고 고쳐지면 오히려 이득인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순순히 검을 내준 것이다.
-흠, 꽤나 심각하게 망가졌구만. 하지만 이 정도야 나와 같은 드워프족한텐 아주 쉬운 일이지.
그는 여전히 수다스러운 입을 놀리더니 팰리티움 광석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팰리티움 광석을 제련하기 시작하였다.
-위대한 드워프족인 나 랜돌프가 추천하자면 대검이나 창을 쓰는 게 맞네. 아니지, 자넨 덩치도 있겠다 검 말고 무거운 창을 쓰는 게 더 낫겠어.
랜돌프는 어느덧 차원의 육체를 보고는 그에 맞는 무기도 골라주었다. 엿가락을 늘이듯이, 팰리티움에 심판의 검의 파편을 녹여내는데 그는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입을 움직였다.
‘그 입만 좀 다물었으면 좋겠는데.’
이전 혼령들에 의해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시끄러운 수다를 들어온 터라 더욱 거부감이 들었지만, 그의 현란한 기술과 손동작을 보며 참기로 하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 그가 수다를 멈추더니 엄청난 감탄을 내뱉었다.
-오! 이런 강도는!
랜돌프는 자신의 기술임에도 상당히 놀란 모습이었다. 랜돌프의 감탄사에 놀라 이차원도 그를 보는데 팰리티움에 녹아내린 심판자의 검은 어느덧 창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반 창의 형태가 아니었다. 거대한 녹색 빛이 감도는 창. 보기만 해도 날카로움이 서려 있어서 흐르는 물마저도 베어버릴 것만 같았다. 랜돌프가 만든 창을 믿기지 않는 듯 그에게 받아들고 확인을 해보았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 이건…!”
[ ???? 이름을 지정하세요 (드워프가 만든 무기) ]
그의 앞으로 안내창이 나타났다. 이차원은 고민도 하지 않고 곧바로 정하였다.
“심판의 창.”
그가 이름이 지정하자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바로 능력치가 개화된 것이었다. 원래 능력치가 ??? 로 작성되어 있었던, 심판자의 검이었지만, 능력치를 개화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심판의 검의 기본 능력치로만 사용했었다. 허나 지금은,
[ 마력 + 11.3% / 근력 + 14% / 민첩력 +3.1 % / *시너지 효과* 30% ]
[ 주인이 지정한 사람, 생명체에 무기의 효과 30%를 버프한다. ]
“이런 무기가….”
차원은 창을 한 번 들어보았다. 분명 심판자의 검보다 무게가 상당하였다. 얼마 전 얻은 ‘드래곤 발톱’이라는 스킬이 없었다면 차원의 손이 으스러졌을 정도였다. 차원은 랜돌프가 만든 창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였다. 지금껏 무기가 개화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이차원은 더욱 의기양양했고 투지가 더욱 불타올랐다.
당장에 이 무기의 위력을 사용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그의 육체를 집어삼켰다.
“당장 쓸게요.”
차원은 곧장 하칸을 타고 날아올랐다.
***
차원이 하칸 위에서 창을 휘두르자 한 번에 그들의 가슴을 모두 꿰뚫고 지나갔다. 그들은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져 나갔다.
차원뿐만 아니라 코웰의 기사들과 라프텔의 육체들 또한 전보다 더욱 강한 힘으로 이교도 세력을 몰아붙였다. 차원이 그들에게 버프를 걸었기 때문이다.
‘영력도 없이 무기로 버프를 건 거야? 어떻게?’
그는 개화된 심판자의 창으로 영력 없이 버프를 건 것이었다. 하지만 잠시 차원이 멈칫하는 사이 코스쿤의 분신들이 한꺼번에 차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차원은 그들을 향해 곧바로 창을 휘둘렀다. 기본 공격이었음에도 코스쿤의 분신들 일부가 나가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역시 전부는 무리였는지 재빠르게 공격을 피한 분신들이 주위로 산개하였다.
그들은 차원 하나를 노리기로 작정했는지 점점 차원 주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차원도 이에 질세라 붉은 안광을 보이며 [강령술]을 이용해 바닥에 쓰러진 육체들을 일으키더니, 코스쿤의 분신들을 하나씩 잡아내갔다.
말 그대로 막상막하였다. 그때, 난리 속에서 땅 밑에 숨어있던 코스쿤의 분신 하나가 치고 나오더니 차원의 다릴 붙잡아버렸다. 그와 동시에 나머지 코스쿤들이 차원을 속박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들의 동료들도 전투 중이었기에 차마 그를 도우러 갈 수 없었다.
-요정!
-요정님!
그런데 그 순간, 하늘에 있던 하칸이 마력을 강하게 압축한 기를 입에서 쏘아내렸다. 차원을 향해 달려오던 코스쿤들은 그대로 먼지처럼 가루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그 힘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근처에 있던 이교도 사제들 또한 몸이 찢겨져 나가 버렸다.
‘저것이 드래곤의 힘인가.’
전투의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한 라프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습은 마치 신성으로 인해 악마들이 소멸되어 가는 모습과 같았다. 차원도 뒤이어 창을 꺼내 자신의 다릴 붙잡은 마지막 코스쿤 분신의 머릴 찍어 내렸다.
[ 거인의 철퇴 ] / [ {R} 분신술Lv1 ]
그를 처리하자마자 바닥으로 떨어진 그의 무기와 스킬 교본이 보였다. 차원은 곧바로 코스쿤에게 얻은 스킬을 사용하자 몸이 여러 개로 늘어나는 걸 볼 수 있었다.
-저건 방금까지 코스쿤이 사용하던 스킬...!
아르만과 코웰의 기사단은 차원이 다시 또 새로운 스킬을 얻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봐도 봐도 놀랍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매번 빠르게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시는 건지!
그를 따라 라프텔은 이젠 그저 헛웃음을 지으며 차원을 바라보았다. 하원이 엄청난 녀석을 소개해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강력할 줄은 몰랐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엔 전혀 관심도 주지 않고, 철퇴를 하칸에게 주자 하칸은 그것을 알아서 꼬리에 둘렀다.
“이 정도면 준비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