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데린의 [메테오] 공격에 관객석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혼비백산이 되어서는 도망치기 바빴다. 엄청난 불덩이와 무게로 그녀를 압박하였지만 그녀에겐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알리샤는 그런 공격쯤이야 하는 생각인 듯이 차원 일행을 향해 가뿐하게 비웃음을 던지더니 갑자기 콜로세움 전투장을 향해 달려갔다.
자신의 동료가 있는 곳에서 싸우는 것이 유리하다 판단한 것 같았다. 알리샤의 뒤를 차원 일행이 뒤쫓아 갔다. 차원은 [스카이워커] 스킬로 허공답보를 하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충분한 높이로 오른 이차원은 곧바로 심판자의 검을 경기장 아래로 휘둘렀다.
그의 주변으로 신성한 빛이 생겨나더니 마치 창이 날아가듯 날카로이 땅으로 향하였다. 순식간에 거대한 십자가 모양의 빛이 경기장에 떨어지고, 경기장으로 달려가고 있던 알리샤 앞에 있던 지반이 붕괴되었다.
-저 녀석은 또 뭐야?
당황한 엘리샤는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 이어서 중단되었던 해설 방송이 지지직거리며 다시 진행을 시작하였다. 메테오가 떨어져 도망가던 사람들도 사회자 한 마디에 다시 의자에 엉덩일 붙였다.
-여러분, 뉴페이스가 등장했습니다!
-엄청난 덩치의 신성입니다.
이차원은 늠름하고 대범한 모습의 디원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듯이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었다. 직접 나선 그의 모습에 데린은 잠시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뒤는 나한테 맡겨.
그녀가 뒤에서 버프 속성의 스킬을 모두 걸어주자 겨울잠에 빠져있던 곰이 다시 일어서는 것마냥 가벼워진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차원은 데린에게 고맙다는 인사로 고개를 끄덕이며 알리샤와 엘리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제대로 된 싸움을 할 수 있겠네.
“이제까지 당한 건 그럼 연기였나?”
그들의 기 싸움을 시작으로 곧바로 땅이 흔들리며 싸움이 시작되었다. 차원은 그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빠른 템포로 그들의 앞에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드래곤 발톱]이라는 스킬을 가진 그들은 단검을 너무나도 쉽게 맨손으로 막아내었다.
-생각보다 약하네?
알리샤는 약 올리듯 웃으며 이차원의 검을 거세게 튕겨내었다. 그때, 순식간에 나타난 단검 하나가 알리샤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녀는 간신히 몸을 굽히며 단검을 피하였지만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잘린 탓에 그녀의 눈앞에서 흩날리고 있었다.
-이래도?
코웰이 빠른 몸동작으로 [은빛 조각]을 시전한 것이었다. 그는 바닥에 발이 닿음과 동시에 다시 도약하며 그들에게 달려갔다. 바닥에 쪼그려 있던 알리샤에게 단검을 휘두르려 하자 알리에가 재빠르게 코웰의 단검을 막아내었다. 이어 알리샤가 [드래곤 발톱]을 사용해 코웰의 머리를 움켜쥐려고 하였다. 그때, 그들의 사이로 십자가가 박히면서 그들을 떨어트려 놓았다.
“너네도 볼 게 별로 없네?”
-칫, 저것들이!
그들은 자리를 정비하며 자세를 다시 잡아갔다.
-팀 전인가요! 여러분, 콜로세움 최초로 팀 전이 벌어졌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규칙상 어긋나지 않나요? 저 두 사람은 원래 있던 참가자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 콜로세움의 규칙이 뭡니까? 이기는 자가 법이다! 이것이 콜로세움의 전통이며 법입니다!
우와아아!
해설자의 물음에 관객석에서 터질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들은 실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지만 이것이 콜로세움 관람객들한테는 토너먼트 경기처럼 보인 것이다.
차원과 코웰은 서로 눈빛 교환을 마친 후, 각자 알리샤와 알리에를 맡아 전투를 벌였다. 차원은 다시 심판자의 검을 휘두르며 거대한 십자가 공격을 가하였다. 빠른 속도로 앞에서 날아들었음에도 알리샤는 가볍게 [드래곤 발톱]을 사용해서 간단하게 부숴버리고는 차원의 코앞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차원 또한 미리 그녀의 동선을 읽은 듯 한 발 빠르게 검을 휘둘렀는데, 알리샤는 강철 같은 손으로 검을 낚아채 버렸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넌 너무 약하다고.
힘겨루기를 하듯이 양쪽 다 힘을 주는데 검이 진동을 울리듯 흔들렸다.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검에서 조그마한 금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너무나 쉽게 부러져 버린 것이었다.
‘아니?’
차원은 흩날리는 검의 파편들이 느리게 흩날리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걸 예상을 해왔던 이차원이지만, 심판자의 검이 부러져 버린 이 상황만큼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직 개화도 안 한 검이기 때문에 강한 상대를 만나면 부러질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못한 것도 아니었지만 하필 그게 지금일 줄이야...
‘젠장, 이제 어쩌지?’
차원이 조금 당황한 걸 알았는지 알리샤는 입가에 미소를 슬쩍 내밀고는 더욱 공격적으로 몰아붙였다. 알리샤의 강철 같은 손은 빠르게 차원을 공격하였다. 차원은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도 인벤토리에서 파멸의 단검을 꺼내들었다.
-꺼낸다는 게 고작 단검? 그런 게 내게 통할 거라 생각하나?
알리샤는 이차원을 제대로 깔보며 무시하였다.
“그럼 한 번 막아봐.”
이차원은 겁먹은 모습도 없이 그녀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 뒤로 그녀의 얼굴에서 건방진 미소가 사라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차원의 단검 공격이 순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고 당연히 손에 잡기도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지. 그는 [은빛 조각]을 코웰의 몸에 빙의해서 마스터를 찍어놓았던 상태였으니까. 거기에 몸은 지금 디원이었다. 속도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이 세계관의 히든 캐릭터다.
-어... 그러니까 지금...
그리고 그들을 보는 해설자들은 경이로운 전투 현장 모습에 할 말을 잃었고 관중석 또한 집중한 상태였는지 조용하였다. 그들의 공격은 너무나 빨랐기 때문에 일반인들 눈엔 감히 보이지조차 않았다. 마치 레이싱 경기를 보는 것과 같은 수준이었다.
-저들 지금 한 명씩 붙어서 뭐 하는 겁니까? 싸우고 있는 겁니까?
-글쎄요. 제 눈엔 불꽃이 튀는 것밖에 안 보이네요.
알리샤는 차원의 단검이 잡히지 않자 방어는 포기하고 오히려 공격적으로 대응하기로 하였다. 코웰 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빠른 전개 때문에 모래바람이 일렁거리더니 어느덧 잠잠해져 갔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관중들의 입에선 환호성이 흘러나왔다. 차원과 코웰의 단검을 알리샤와 알리에가 각각 잡고 있었다.
알리샤는 이번에도 차원의 단검을 부러트리기 위해 강하게 힘을 주었다. 알리에 역시 코웰을 넘어트리고 단검을 그의 몸쪽으로 돌려 그를 찌르려고 하였다.
-미안하지만 너희들의 패배다.
그렇게 이차원과 코웰이 죽을힘을 다해 저항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알리샤의 피부로 스산한 기운이 들어왔다.
-이게 무슨 기운이지?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놀라운 상황이 벌어졌다. 그들의 뒤로 콜로세움 경기에 참가했다 죽은 시체들이 일어나고 있던 것이었다. 눈에 확 들어오는 붉은 안광. 다름 아닌 차원이 강령술로 시체를 살려낸 것이다.
-설마,
알리샤, 혹시나 해서 다시 차원 쪽으로 고갤 돌리는 순간, 차원이 엄청난 주먹의 힘으로 알리샤의 얼굴을 가격하였다.
-알리샤!
알리샤는 그대로 경기장 반대편 벽까지 날아가더니 벽을 부수었다.
-저 녀석...!
이마에 피를 흘린 채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녀는 이차원에게 곧바로 뛰쳐 가려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앞에는 알리엔 도적단의 두목인 바이칸이 우두득, 몸을 풀며 서 있었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바이킨의 시체가 알리샤의 몸을 붙잡았는데, 옷 사이로 보이는 그의 피부는 새까맸다.
차원과 코웰이 단검으로 시간을 끄는 동안, 강령술로 되살아난 시체가 콜로세움 경기장 안에 살아있던 피랴티를 모두 죽이면서 흑화를 진행 시킨 것이었다. 그 짧은 시간, 이차원이 생각해낸 계략이었다.
-알리샤님, 설마 이거 흑화...?
알리샤와 알리에는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였다. 강령술에 흑화까지. 그가 이런 힘을 가졌을 거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하였던 거다.
-알리샤님!
-미련한 놈, 오지마!
바이킨이 서서히 몸을 움직이며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더니 알리샤와 그녀를 구하러 온 알리에를 속박하였다.
-돌아온 바이킨의 반란입니다! 아까완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힘으로 상대를 압살해버립니다.
와아아!
해설가와 관객석은 난리가 났다. 이제 게임을 끝낼 때가 되었다. 바이킨이 알리샤와 알리에를 속박한 것을 확인한 차원은 결단을 내렸다.
‘이 여자들은 매우 위험하다.’
차원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그녀들의 가슴팍에 단검을 꽂아 박았다. 이어서 차원의 눈은 노란색으로 빛이 나기 시작하였다.
***
-예? 하던 걸 중단하라뇨?
코웰의 기사들과 카르틴 기사들이 열심히 도로에 타파이트 금속을 깔고 있다가 내려진 명령에 모두 하던 것을 멈추고 울프릭을 바라보았다. 열심히 타파이트를 깔았더니 갑자기 모든 걸 중단하고 리간 왕국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었다.
-당장 리간 왕국으로 떠난다.
-하지만 로울로가 이곳으로 온다고 하지 않았나요?
-로울로는 리간 왕국으로 방향을 틀었어.
울프릭 말에 아르만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르만 또한 로울로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프텔이 보낸 시체는 우리에게 보낸 경고가 아니라 리간 왕국에 있는 요정이 위험하단 신호였어.
울프릭은 이전에 라프텔이 강령술을 이용해 말해주었던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당시엔 그것을 자신들을 향한 경고라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로울로가 방향을 튼 것을 알고 경고를 준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곳엔 요정님도 계시고 코웰 단장님이랑...
-지원을 가는 게 옳아. 애초에 우리도 그랑 전면전을 하는 것은 힘들다 판단해 타파이트와 아크족까지 구해가며 잠복을 계획한 거 아닌가?
울프릭 말에 아르만 또한 곧 수긍하며 고갤 끄덕였다. 아르만은 곧바로 명령을 이행하겠다는 충성을 보여주었다. 이들이 이곳에 같이 있어 준 것이 다행이었다. 이제 로울로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알겠습니다. 따르겠습니다.
-충!
아르만의 대답과 동시에 타파이트를 깔던 모든 기사들도 하던 것을 멈추고 함께 따르겠단 표시를 보냈다. 이제 곧바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에 갑자기 저 멀리서 또 다른 강령술에 걸린 육체가 뛰어왔다. 그리고 그 육체는 또 이전처럼 재연을 보여주었다.
총 세 명의 육체.
두 명이 앞서서 뛰어가다가 확 오른쪽으로 틀었고, 뒤에 따라오던 육체는 계속 이쪽으로 향하는 중이다.
-로울로는 리간 왕국으로 튼 게 맞고, 또 다른 세력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눈치가 좋은 울프릭은 이를 단숨에 알아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