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그 빛은 가까이 올수록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널찍한 날개에 이제는 성인 남자 정도는 돼 보이는 푸른빛 자태의 드래곤이 나타나자 헌터들의 몸이 모두 굳어버렸다.
“저것이 뭐냐?”
“드, 드래곤 아니야?”
“그건 게임에서나 나오는 거고. 저게 뭐냐고 대체.”
헌터들은 아직까지 하칸이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저마다 하칸의 존재를 보고 놀라며 호기심을 갖으며 보고 있었다.
“설마 하칸...?”
박지원 또한 하칸을 보더니 놀랐다. 귀여웠던 하칸이 저렇게 커진 것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크기는 분명 달랐으나, 하칸이 확실하였다. 그리고 박지원을 알아본 하칸은 한 바퀴 크게 그녀의 주위를 돌더니 염력으로 땅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엄청난 힘이다...”
장은은 금세 넋이 나간 표정을 짓더니 하칸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도 잊은 채 그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를 공격해오던 빛은 사파이어의 빛처럼 아름다웠고 눈이 부셨다. 그의 옆으로 땅이 갈라지면서 동료들이 날아가는 상황임에도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대장! 어쩔까요? 이대로 있다간, 으악!”
헌터의 말이 마치지도 않았는데 하칸은 구덩이에 장은을 비롯한 중화연맹 헌터들을 모두 몰아넣었다. 박지원이 말하지 않았음에도 하칸은 이미 적이 누군지 아는 듯 영리하게 움직였다.
“저 녀석을 누구 처리할 수 있는 사람 없어?”
“드래곤을 처리할 헌터가 이 세상에 존재할 거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들의 발악하는 소리가 땅 안과 밖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하칸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리는 전혀 없었다. 방금 전까지 박지원과 랜디를 사지로 몰아넣었던 중화연맹은 힘 하나 쓰지 못하고 그대로 구덩이에 쳐 박아넣고 있었다.
“하칸!”
박지원이 자신을 부르자 하칸은 곧바로 울음소리를 내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하칸은 아직 나무에 묶여있는 박지원을 탈출시켜 주었다. 그러고는 이어서 중화연맹 헌터들이 파놓은 죽음의 나무를 구덩이로 던지더니 염력으로 흙을 퍼 올려 덮어버렸다.
그 모습이 너무 압도적인 힘이어서 그 어떤 헌터도 반격을 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현장에 있던 박지원을 비롯한 랜디와 우랑길드까지 모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임무를 완수한 하칸은 곧장 박지원에게 날아와 박지원의 몸에 얼굴을 비벼대었다. 그러자 박지원의 몸에 조금 남아있던 죽음의 나무가 갑자기 시들어버리기 시작하였다.
‘혹시 하칸의 힘 때문인가.’
박지원은 오랜만에 재회한 하칸의 머릴 쓰다듬어 주는데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던 랜디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와우...”
랜디는 말까지 더듬으며 감탄을 내뱉었고 함께 있던 우랑 길드원 또한 넋이 나간 채 하칸을 쳐다보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차원 헌터가 키우는 애완 용 같습니다.”
“이전에 고블린을 조종했다고 하니 몬스터를 펫으로 길들이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겠군.”
“그런데 드래곤을 펫으로 키울 줄이야... 이차원 헌터가 세상 유일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보니 그 힘이 더욱 신비하게 느껴져.”
우랑길드원이 모두 하칸을 보며 감탄을 하다가 이내 생각났다는 듯 휴대폰을 꺼내었다.
“이 진귀한 광경을 우리 마누라한테 보내줘야겠군.”
“어! 저도 찍을래요.”
저마다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데 박지원도 그 모습을 지켜보다 이내 자신도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네 아빤 네가 이렇게 큰 줄도 모를 거다.”
박지원은 사진을 현재 연락도 되지 않는 차원에게 보내주었다. 그나저나, 이차원은 뭐하고 있길래 이렇게 나타나고 있지 않은 건지... 박지원은 알 수가 없었다.
***
‘이 정도로 원한을 산 걸 보면 보통 사람이 아닌 건 확실하다.’
차원은 혼령에게 일부러 접근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모두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이전에 하프만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아직 어린애다. 누군가 빙의했거나 변신 스킬을 사용했을 확률이 커.’
이차원은 어린 꼬마에 대해 의심을 하는데 프랭크가 차원을 툭툭 치며 신호를 보내왔다.
-저것 봐요.
이차원은 프랭크의 말에 꼬마애를 다시 보았지만, 어디가 달라진 건지 그전과 특별히 달라진 건 없었다.
“어떤 걸 보라는 거니?”
프랭크는 차원이 모르겠단 표정을 짓자 다급하게 설명을 하였다.
-팔찌요. 어린 애가 차기에 너무 크잖아요.
이차원은 프랭크의 말에 꼬마애의 손목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드디어 이차원의 눈에도 프랭크가 발견한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여자아이의 왼쪽 손목에는 어른이 찰법한 큰 팔찌가 끼워져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헐렁하였기에 살짝만 툭 쳐보아도 금세 팔찌가 빠져나갈 정도였다. 게다가 팔찌의 생김새를 보아도 그 여자아이의 외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이차원은 이내 프랭크가 그 말을 한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 프랭크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하여 일부러 모르는 척을 하였다.
“네 생각은 어때? 왜 저 꼬마애가 커다란 팔찌를 차고 있을까?”
-변신술을 사용했으니까. 변신을 할 정도로 신분을 숨기고 싶었단 뜻이겠죠?
역시 프랭크다. 차원은 프랭크의 영민함에 즐거워하며 프랭크의 머릴 헝클어뜨렸다. 그렇다면, 저 여자아이의 본래 모습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내 생각도 그래.”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글쎄.”
차원은 꼬마애가 변신술을 사용했다는 걸 확신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디원의 몸으로 그들을 쫓다가는 프랭크의 말처럼 의심이 너무 드는 행위에다 신분이 밝혀질 가능성이 있었다.
거기다 당장 울프릭이 SUV를 들고 카르틴 왕국을 떠났기에, 새로운 몸을 만들어 창조 스킬을 사용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디원의 몸을 숨길 수 있는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이 몸도 인벤토리창에 넣는 방법을 찾아야겠어.’
이차원은 저 여자아이를 어떻게 쫓을지 고민에 빠져 있는 모습이었는데, 프랭크도 이차원을 도우려는 열의를 가득 품은 채로 그에게 물어보았다.
-제가 쫓을까요?
프랭크는 차원이 움직이는 것에 제약이 많은 데다가 그에게 불리한 상황만을 전해줄 거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먼저 제안을 한 것이었다. 또한 이것은 이차원에게 굉장히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할 수 있겠어?”
-문제없어요.
프랭크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였다.
“그래.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나도 여기서 다른 특별한 게 없나 찾아보고 있을게.”
프랭크는 씩씩하게 고갤 끄덕이더니 곧장 꼬마아이를 뒤쫓기 시작하였다. 프랭크를 떠나보낸 이차원은 든든함과 동시에 혼자 일을 해야 하는 프랭크가 불안하기도 하였다.
“좀 위험하려나. 차라리 혼령을 끌어들여 꼬마애랑 여자 정체를 밝히는 게 나았을 수도.”
프랭크의 뒷모습을 보던 차원은 갑자기 약간의 후회가 밀려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놓쳐선 안 되었기에 내렸던 결단이었다고 생각을 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상황을 넘어가려던 그 순간, 차원의 혼잣말을 들은 혼령이 차원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더니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너 나 보이지?
***
차원은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서 혼령이 얼굴을 들이밀자 깜짝 놀라더니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걸었다. 혼령은 그 모습을 보고 확신에 차서 말하였다.
-역시 내가 보이는구나.
차원은 혼령의 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가만히 침묵하였다. 혼령과 엮이면 일이 귀찮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앞서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보았기 때문에 이들에게 한 번 걸리면 이들의 쌓여있던 한이 자신에게 폭풍처럼 몰아칠 게 뻔하였다.
-여긴 왜 온 거야? 결투에 참가하는 건가?
차원이 계속 말이 없자 혼령은 자신을 무시라도 하려고 생각을 하는 건지, 조금 안달이 나서 말을 빠르게 내뱉었다.
-그런 거라면 내 도움이 필요할걸. 저긴 네가 상상도 못 하는 함정들이 파져 있거든. 콜로세움에서 죽은 사람들 태반은 저 함정 때문에 죽는 거야.
혼령의 말에서 이차원의 마음을 흔들게 하려는 단어가 그의 귓가로 들어왔다.
‘함정?’
이차원은 혼령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의문이 갑자기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걸 또 놓치지 않은 건지, 혼령이 차원의 얼굴이 조금 변한 걸 발견하고는 이때다 싶어 그에게 시선을 유발하게끔 하는 말을 빠르게 내뱉었다.
-이제야 좀 흥미롭나? 아마 여기 모인 혼령들 중에 나보다 콜로세움에 설치된 함정에 대해 잘 아는 놈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이제 입을 좀 열지 그래?
혼령의 말을 들은 차원은 데린과 코엘이 떠올랐다. 그들도 지금 바로 저곳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힘정이 설치되어있다는 사실도 그들은 모르는 눈치였다. 이차원은 결국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 혼령에게서 정보를 끄집어 내야만 했다.
“무슨 함정.”
-역시! 너 내가 보이는구나?
“무슨 함정이냐고.”
이차원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혼령이 쓸데없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하였다.
-콜로세움에선 전투를 잘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게 아니야. 곳곳에 놓여있는 함정을 잘 피하는 놈이 승리하지. 나 또한 강했지만 함정에 걸려 죽어서 잘 알아. 죽은 이후에 나 대신 싸워서 한을 풀어줄 놈이 필요해 저깄는 함정을 모조리 파악해놨거든.
‘혼령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겠군.’
차원은 곧장 이 혼령을 사용할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이 혼령을 이용해서 저 꼬마아이와 여중년에게 붙은 혼령들을 유인하고, 콜로세움의 함정들을 알아내어 코웰과 데린한테 알려주어야겠다고.
-날 못 믿는 건가? 콜로세움의 경기는 59년 만에 이루어지는 건데 난 무려 20년 동안 함정만 연구했다고.
혼령은 생각에 잠겨서는 심각한 표정을 짓는 이차원이 마치 그 행동이 자신을 의심하는 거라 생각했는지 결백을 주장하려는 듯이 다급하게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혼령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그 대가로 분명 이 혼령의 한을 들어주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자신과 같은 혼령이 보이는 자들에게 이렇게 사탕 발린 말을 해대고 있는 것일 테니까.
“내가 진짜 잘 싸우는 둘을 소개시켜 줄 수 있는데.”
-얼마나 강한데?
역시나, 혼령은 바로 관심을 보이는 듯 그의 제안에 바로 받아들일 듯이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장 네 한을 풀어주고도 남을 정도로 강한 녀석들이지.”
-좋아.
“대신 너도 날 위해 해줄 게 있어.”
이차원은 혼령을 씨익 웃으며 바라보았다. 혼령은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전혀 알지 못하였다.
“저기 가는 저 혼령들 좀 데려와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