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이곳은 왜 이렇게 어두운 거야, 철창 안에 있어서 그런지 더욱 갑갑하게 느껴지는 울프릭이었다. 그러자 드워프족이 창고에 새로 들어온 울프릭을 보고는 곧장 관심을 보이면서 접근하였다.
-난 렌돌프라고 하네. 보다시피 위대한 드워프족이고.
드워프족은 충분히 인간과 소통이 되고 인간을 도와 이로운 장비들을 만들어주는 종족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그런 드워프족마저도 경매에 팔려고 하다니...
‘드워프까지 이곳에 가둬두다니.’
인성을 도대체 어디까지 팔아먹은 놈들인 건지. 울프릭은 그 생각에 살짝 화가 났다.
-난 말이야, 이 경매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존재일세.
이 녀석은 지금 자신의 상황을 깨닫지도 못한 듯이 멍청한 말이나 해대고 있었다.
-그렇게 높은 가치를 가졌으면서 왜 아직 창고에 남아있지?
울프릭은 가장 높은 가치를 지녔다면서 여전히 입찰을 못 받고 있는 그가 어째 이상해 보였다. 그러면서 이딴 창고에 갇혀 있는 드워프가 한심해서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 렌돌프라는 놈은 여전히 자신의 이런 모습이 멋있어 보인다는 듯이 당당히 대답했다.
-그건 말이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내 가치가 높기 때문이라고.
어이없이 황당한 말에 울프릭은 자연스럽게 피식 웃었다.
-난쟁이가 뭘 할 수 있다고.
울프릭 말에 렌돌프의 얼굴이 급격히 시뻘게지면서 열을 내었다.
-이 무식한 늑대 새끼를 봤나. 대륙을 통틀어 아만티움, 팰리티움, 에인 결정을 자유롭게 제련할 수 있는 종족은 우리밖에 없다고. 지상 최고의 무기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날 원하고 있단 걸 모르겠나?
렌돌프는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려는 울프릭이 재수가 없다는 듯이 입에서 불을 내뿜고 있었다. 그 기운으로 차라리 이곳에 나갈 생각을 했다면 진작에 탈출하고도 남았을 기력이었다.
-좋겠네, 그렇게 유능하신 분이 철창에 갇혀 있어서.
울프릭은 렌돌프의 말에 비꼬는 듯이 말대꾸를 하였다. 곧바로 그는 인벤토리에서 미리 준비한 철창의 열쇠를 꺼내들고는 자신의 철창을 보란 듯이 확 열어젖혔다. 그 모습을 본 렌돌프는 울프릭을 보며 소리쳤다.
-뭐, 뭐야! 나도 꺼내줘!
-잘나신 분이 늑대 새끼 도움이 뭐가 필요하다고.
-꺼내만 주면 뭐든 해주겠네! 제발, 부탁이야. 나는 이제 경매로 팔려가면 죽을 때까지 대장간에서 못 나오게 되는데 불쌍하지도 않나?
렌돌프는 아까와는 정반대의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울프릭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각해 볼게. 일단 찾을 게 있어서.
-뭘 찾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만 나도 도와주겠네.
-아크족.
-그거라면 내가 잘 아네!
울프릭은 철창을 떠나려다 아크족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안다는 듯이 큰소리를 치는 드워프의 말을 듣고 되돌아왔다. 울프릭은 그의 앞에 열쇠를 흔들어 보이며 그의 마음을 힘껏 휘저었다.
드워프는 곧바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어느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쪽, 저 너머에 미친 여자가 갇힌 우리 바로 옆에 있어.
-미친 여자?
미친 여자가 한 둘이어야지, 지금껏 여행을 해오면서 얼마나 미친 사람들을 만나왔는데. 울프릭은 전혀 감을 찾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저 여자도 모르나? 이 전 대륙에서 제일로 강했던 마녀라고 하던데.
-마녀라니?
미친 여자에 마녀라... 그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존재가 서서히 형태를 띠기 시작하였다. 울프릭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빨리 물어보았다.
-7성군한테 이교도에 대한 정보를 넘기고는 여기 버려졌다 하더라고. 이교도랑 7성군이 상대했던 마녀니 그 가치가 얼마나 높겠나.
그의 말에 따르면 7성군과 이교도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 하는 세력들이 돈을 크게 베팅한 것으로 보였다. 허나 그 전에 더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7성군에게 이교도에 대한 정보를 팔았다고? 그럼 역시나...’
7성군에게 이교도에 정보를 팔아넘긴 미친 마녀... 그건 리지밖에 없었다.
만약 그의 예상이 맞다면, 리지를 7성군에게서 공짜로 받아서 경매에 내놓은 콜로세움 측은 이것을 그냥 판매하기보다 상품으로 내거는 게 훗날 더 많은 상인들과 고객을 끌어모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나저나 갇힌 여자가 그렇게 무서운 존재였던 리지가 맞다면, 이놈들도 대단하다. 그런 그녀를 단번에 상품으로 만들어 버리다니 말이야.
울프릭은 렌돌프가 누구인지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리지가 자동으로 생각났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 대한 가능성을 크게 두지 않기로 했다. 당장은 아크족을 찾아서 빠르게 도망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울프릭은 아크족을 찾기 위해 창고를 뒤지기 시작하였다.
‘저 드워프족이 말한 마녀란 여자도 철창에 갇혀 있으니 위험하진 않겠지.’
울프릭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빠르게 찾고 빠져나가고 싶어하였다. 하지만 상품들이 이 창고를 빼곡하게 메울 정도로 많은 데다가, 천 같은 것도 이리저리 가리고 있는 탓에 혼자서 일일이 찾기가 힘들었다.
-이봐, 늑대인간 씨, 그쪽이 아니야.
어느새 울프릭에게 말을 바로 하는 렌돌프가 그를 도와주었다. 울프릭은 그의 지시를 길잡이로 삼아 아크족을 찾아 들어갔다. 좁고 어두운 길을 지나 철창에 올라서기도 하였다. 그렇게 길을 해매다 마침내...
‘찾았다.’
울프릭은 드디어 철창 안에서 손과 발이 묶인 채 쪼그려 앉아있는 아크족을 발견하였다. 그는 곧장 급한 마음에 아크족 철창으로 달려갔다.
-엇...!
그때였다. 그는 순간 거대한 음성을 밖으로 내지를 뻔하였다. 무언가 그를 공격이라도 해온 것이었나? 하지만 그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이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의 시야에는 익숙한 여자의 실루엣이 어두운 곳에서 훤히 보이고 있었다.
‘리지?’
너무 놀라서 말도 나오지 않는 울프릭이었다.
***
울프릭이 리지를 발견할 당시였다. 이차원은 포스터를 다 외울 듯이 읽고 있었다.
“겨우 이런 조건으로 리지를 건네주겠다고?”
포스터에 적혀있는 조건은 이러하였다. 토너먼트 전투를 통하여 콜로세움 경기장의 전통에 따라 1등을 거머쥔 우승자에게 리지를 주기로 돼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듯이 그에 많은 상인들이 신청서를 낸 상황이었다.
이곳 경매에 생명체들을 내걸었던 사람들은 워낙 전투적이고 실력을 내놓으라 할 사람들이었으니까.
-저 마녀는 내가 갖게 될 거다! 전부 덤벼 보라고!
그것을 보여주듯이 덩치가 큰 성인 하나가 공모를 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큰소리를 떵떵거리고 있었다. 그의 몸 주변에는 하나같이 강해 보이는 장신구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뭐, 허세로 보일 수도 있지만.
-서로 갖겠다 난리네. 울프릭이 모르길 망정이지.
데린은 그 모습을 보더니 혀를 찼다.
-알아도 별수 있나. 이젠 동생 취급도 안 하던데.
코웰의 말에 동료들이 모두 반박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콜로세움 뒤편에 있는 주막으로 향하였다. 그들이 그곳으로 가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주막만큼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
주막엔 사람들로 북적거렸는데 그중 온몸이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고, 일반 사람이 옆에 선다면 거인이라고도 불릴 정도의 사람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렸다. 그들은 대낮인데도 옆에는 빈 병들이 수북이 세워져 있었다. 게다가 하나도 취하지 않은 듯 맥주를 마시며 껄껄대며 웃고 있었다.
-형님, 형님이 당연히 1등 아니겠습니까. 그 마녀가 얼굴도 반반하다는데 참, 부럽습니다.
-새끼, 형수님 될 사람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7성군과 이교도에 관한 정보만 팔아도 금세 돈방석 앉겠습니다, 형님.
남자들은 모두 리지를 얻어 황금대로를 걸을 생각에 푹 빠져 잔을 부딪혔다.
‘이전의 전통적인 방식의 토너먼트에서 1등을 하면 리지를 얻는다라.’
리지가 지금 상황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을 해보았다. 리지는 사람들의 말대로 7성군과 이교도의 끝을 모두 본 유일한 마녀였다. 그렇기에 그녀가 본 것만 들어도 엄청난 화젯거리로 만들어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7성군은 대륙의 모든 부와 부귀들을 가진 자들이라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자들이었고, 이교도는 새로운 7성군이 되기 위해 그들을 뒤엎으려는 악랄한 단체였다. 그렇기에 이 두 세계의 정점에 다다른 자는 현재 리지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얘길 들은 차원도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리지를 얻는 것이 이득일까.’
이차원의 고민은 언제나 그렇듯 오래가지 않았다. 당장 차원에게도 리지를 얻는 것이 이득이라 판단을 내린 것이다.
‘물론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애초에 우리에게 협조를 하지 않으면 죽여서라도 [사자의 기억]을 사용하면 그만이야.’
물론 울프릭의 동의하에 그럴 생각이었다. 생각을 끝낸 차원은 맥주를 마시고 있던 덩치들 옆 테이블에 일부러 자리를 잡았다. 그들의 대화에서 정보를 더 빼내기 위해서였다.
그들 중에서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 그의 이름은 바이킨이었다. 그는 알리엔 도적단의 수장이자 아크족을 이번 경매에 내어놓은 장본인이었다.
-아크족 팔고 드워프 사고. 그 마녀까지 얻으면 평생 먹고살 돈은 구하겠는데요?
그들의 대화에서 정보를 파던 차원은 순간 귀를 의심하였다.
‘드워프가 이곳에 있다고?’
리지가 이곳에 있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었지만, 드워프가 이곳에 있으리라곤 또 다른 충격을 그에게 선사해주었다. 드워프의 능력을 알고 있는 차원은 그 가치를 바로 매길 수 있었기에 욕망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곳에서 드워프를 만날 줄이야.’
아크족을 데려감과 동시에 드워프도 챙겨야 함을 생각하는 차원은 창고에 있을 울프릭에게 연락구슬을 꺼내어 연락을 취하려 하였다. 그 순간, 차원의 뒤를 지나가던 알리엔 도적단원 중 한 명의 배에 차원의 팔꿈치가 닿아 버렸다. 그 남자는 굉장히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내보였다.
“미안합니다.”
차원은 곧장 사과를 하였지만 그 덩치는 그렇게 쉽게 상황을 끝내려 하지 않았다.
-사과를 하려면 일어나서 똑바로 해야지, 어?
남자의 말에 차원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이차원 동료들은 모두 잠자코 차원의 선택을 기다리며 상황을 보고 있었다. 차원이 가만히 있는 이유는 겁먹어서가 아니라 더 이익이 되는 상황에 대해 판단 중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이, 사람 말 안 들려!
알리엔 도적단은 어느새 자리에서 전부 일어나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들이 리지를 얻는 토너먼트 싸움의 유력한 우승후보이자, 아크족을 데려온 상인이라는 걸 이차원은 각인하고 있었다.
‘당장 결투를 벌여도 나쁠 건 없어 보이는데.’
어차피 싸워야 될 존재라는 거지? 수적 우위도,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데. 차원은 결단을 내리고 의자에서 일어나는데 울프릭의 연락 구슬에서 연락이 도착했다.
-요정, 시간을 더 끌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