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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워프로 무한성장-135화 (135/202)

135화

이차원의 판단에 내린 물음에 하프만은 모든 걸 내려놓은 듯이 말하였다.

-제 결백이 죽어서라도 증명된다면 기꺼이 목숨을 드리겠습니다.

-단장님!

하프만 말에 카르틴 기사들이 일제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더 나아가 그들이 이젠 흥분을 한 탓인지 자신들도 칼을 꺼내 차원 일행과 맞서려 하였다. 그럴 만도 하지, 자신들이 섬기는 사람이 이렇게 쉽게 누군가에게 목숨을 내놓지 못하게 할 테니까. 허나 그들을 막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하프만이 손을 들어 그들을 막아세웠다.

-나와 요정님 사이의 일이고, 목숨을 바치는 건 나의 의지다.

하프만의 말에 기사들이 모두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검을 한두 명씩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 때문인지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어 갔다.

-죽여주십쇼.

하프만은 이에 신경 쓰지 않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모두가 차원의 선택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차원은 들고 있던 검을 두 손으로 천천히 올렸다. 하프릭도 마음의 준비를 끝낸 듯 고개를 숙이며 눈을 감았다. 모두가 눈을 회피하며 그의 최후를 보려 하지 않았다. 그때, 이차원은 검을 그대로 칼집에 넣었다.

아무런 소리도 안 나자 주변에 있던 기사들과 동료들이 모두 그 상황을 보았다. 모두 어리둥절하고 놀란 한편, 긴장이 풀려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차원은 아직도 엎드린 채 자신을 보고 있는 하프만에게 말을 하였다.

“네 왕국의 힘이 널 살린 줄 알아라. 결백은 차차 밝혀지겠지.”

하프만은 차원의 말에 고갤 들어 그를 바라보다 결국 고갤 떨구었다.

-목숨은 살려주지만 여전히 제 결백을 믿지 못하시는군요.

이차원 역시 하프만의 말에 딱히 반박을 하지 않았다. 사실 차원이 왕국을 지키기 위해 이교도를 따랐다는 하프만의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었지만 그것이 하프만을 살려둔 이유는 아니었다.

‘아직 이용가치가 높아. 벌써 죽이긴 아깝지.’

카릴리아 대륙부터는 왕국들이, 이교도라는 존재에 대한 저항성 때문에 외부인의 진입 장벽이 높았다. 게임으로 치면 퀘스트를 받기도, 쉽기도 어렵다는 것은 이러한 설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하프만이 이교도 소속이라는 것에 대한 정확한 진위 여부는 죽은 자의 기억을 통해 충분히 의심하고 처리하면 좋겠지만, 카르틴 왕국에서 하프만의 입지나 명예가 꽤나 효용성이 있게 쓰일 게 틀림없었다.

‘라프텔을 만나기 위해선 하프만의 힘이 분명 필요로 하는 것이겠지.’

카르틴 왕국에 마음껏 활개를 치고 다니면서 하원이 소개해준 ‘라프텔’이라는 마법사를 만나기 위해선 하프만을 동행하는 것이 차원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더군다나 하프만의 목을 이곳에서 내치면 하프만의 부하들이 목격자가 되고 그들은 절대 이차원을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들의 눈빛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차원은 라프텔이라는 마법사를 만나기도 전에, 또, 다음 왕국으로 이동하기도 전에 카르틴 왕국의 수배자가 될 운명에 놓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크혼에는 주요 NPC에게 해를 가하거나 죽이면, 죽임당한 관련 NPC들의 추적을 받고 더 나아가 불이익을 얻을 수 있는 복잡한 시스템도 가지고 있었다.

-단장님, 괜찮으십니까? 뭣들 하고 있느냐! 부축해드리지 않고.

그리고 카르틴 기사들, 긴장상태가 소강되자 곧장 하프만에게 달려가 그를 부축해주었다. 하프만은 곧장 일어나더니 차원 앞으로 묵묵히 다가왔다.

-왕가의 징표를 이용하여 저와 함께 카르틴 마을로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내가 왜? 당신을 뭘 믿고?”

-요정님께서도 원하시는 것을 얻기 위해선 카르틴 마을로 가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와 함께 카르틴 마을로 가시면 그곳에서 제 결백을 증명해드리겠습니다.

이차원은 하프만의 제안에 고갤 끄덕거렸다. 그렇다면 이차원도 피해 볼 거 없이 더욱이 좋은 상황이었다.

“좋다. 함께 가지.”

물론 차원은 하프만의 결백 따윈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차원은 하프만을 이용해 라프텔을 찾아 경령술에 관련된 스킬만 배우면 그와 함께하지 않을 생각이었기에 그의 득만 될 때까지만 이용하려고 한 것이다.

의심할만한 요소가 생겼으니, 그를 증명할 필요도 없이 이용하고 버려서 위험 요소 자체를 버리겠다는 판단인 것이었던 거다.

-잠깐, 둘이서 왕가의 징표로 가버리면 우리는?

데린의 외침에 차원의 동료들이 자신들은 어쩌냐는 표정으로 이차원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는 알아서 판단해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는 SUV 키를 울프릭에게 던지며 말하였다.

“차는 뒀다 어디다 쓰게.”

이차원은 이제 자신이 빠진 채 있는 그들이 걱정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경험들로 충분히 몸소 알 수 있게된 것이다. 그들은 충분히 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렇게 단둘이 남게 된 차원은 왕가의 징표 스크롤을 바로 찢어버렸다. 이번에도 그들은 곧장 카르틴 마을 왕실에 도착하였다.

‘잘못 온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런데 이번에는 차원에게 도착하자마자 뭔가 이상함이 전해져왔다. 그의 앞에 보이는 왕실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수상합니다.

뒤이어 도착한 하프만 또한 왕실이 텅 빈 것을 보고 수상함을 눈치채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 건지... 이차원, 커튼을 거두어 왕실 창문 밖으로 마을을 내려다보는데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유령도시의 느낌이었다.

‘벌써 이교도들한테 당한 건가.’

이런 광경은 차원이 수없이 많이 다크혼을 해봤음에도 모르는 시나리오였다. 마치 리지에게 조종을 당했던 트레스 마을과도 같은 분위기였다. 그때도 분명 시나리오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었는데 말이지.

‘내가 개입해서 스토리가 변형됐어.’

이차원은 이곳에 자신이 들어와서 게임이 이렇게 바뀌었다는 기시감이 들어왔다.

“마을에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차원도 곧장 하프만에게 물어보았지만, 하프만은 자신도 모르겠다는 몸짓을 하며 대답하였다.

이차원은 결국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곧장 왕실을 나가보았다. 그러나 역시 거리엔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육경대 마저 없는 걸 보니 큰일이 벌어진 건 확실합니다.

육경대는 왕국 전체를 지키는 부대의 이름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왕국을 수호하게 되어있는 단체이다. 전 대륙에 펼쳐진 ‘시대 전쟁’에 동원할 병력이 없었음에도 왕국을 수호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들마저 없으니 뭔가 단단히 잘못된 건 확실해 보였다.

-육경대가 왕국을 떠난 건 역사에도 없던 일입니다.

“너한테 보고도 없이 떠났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기사 단장이라면 인구이동이나 병력 이동에 대한 보고를 들은 거 아니야.”

의심에 가득 차 내던진 말에 하프만은 잠시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그에게 말하였다.

-이교도들 짓인 거 같습니다. 요정님 말씀대로 계획적인 이동이 있었다면 저에게도 보고가 들어왔어야 하니까요. 이교도 소행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역시나 이교도들의 짓인 걸까. 하기야, 이렇게 사람을 한 번에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건 이교도 아님 이차원밖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이교도라. 좀 더 알아볼 필요는 있겠어.’

차원도 이곳에서 강령술의 대가인 라프텔을 만나는 것보다 이 왕국의 현황을 알고 싶었다.

그가 느끼는 직감적으로도 매우 잘못되었음을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차원은 금세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저 멀리에 경비의 혼령이 하나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놈한테 물어보면 되겠군.’

하프만은 차원이 죽은 육체의 기억을 읽을 줄만 알지, 귀신을 볼 줄 아는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프만 몰래 정보를 얻어내려는 차원은 이쯤에서 그와 떨어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는 혼자서 혼령이 있는 쪽으로 향하였다.

“각자 거리에 사람이 있나 찾아보고 만나도록 하지.”

이차원의 말에 하프만도 별 의심 없이 차원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차원의 말을 별 뜻 없이 그냥 믿는 듯한 눈치였다.

-제, 제가 보이십니까?

차원은 정확히 자신과 혼령의 눈을 마주치게 보고 있었다. 그랬더니 귀신이 깜짝 놀라 묻는 것이었다. 차원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상태를 살피는데 그는 한이 서린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상태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억울하게 죽은 모양이군.’

차원의 예상대로 귀신은 차원에게 강에서 만난 귀신들처럼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한이 많은지 울먹이느라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고,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거라곤 죽임을 당했다는 것뿐이었다.

“그만. 시체 어딨어?”

-시체요? 하, 하지만 내 얘기는 아직 안 끝났는데.

“내가 직접 알아낼 테니까 시체 위치나 말해.”

이차원은 그런 귀신이 상당히 답답했는지 그의 말을 끊으면서까지 말을 하였다. 그가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처럼 보이니, 시체를 찾아 기억을 읽겠다는 생각이 있던 것이었다.

***

차원과 헤어진 하프만은 곧장 거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찾는 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시체였다.

‘반드시 내가 먼저 시체를 찾아내야 해.’

하프만은 어째선지 이차원보다 먼저 시체를 찾으려고 하였다. 물론 이차원도 지금 시체를 찾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겠지만. 하프만은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찾아다녔다. 그는 어째서 이차원보다 시체를 먼저 찾으려 하는 건지, 그의 속마음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 마을이 함정인 걸 알게 된다면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돼. 그러니까 그 전에 제발...’

사실 이 왕국은 이교도가 하프만의 보고를 듣고, 차원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장소로 마련한 곳이었던 것이다. 이교도는 차원이 세뇌 마법까지 벗겨낸다는 것을 타무스 왕국의 사례를 통해 알았기 때문에 이번엔 왕국의 국민들을 아예 없애 버리겠다는 생각을 한 거다.

물론 차원이 국민들이 없는 것에 수상함을 느끼긴 하겠지만, 그들 또한 차원이 왕국에서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 체류할 것이란 걸 눈치채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하긴 했지만 조금만 더 버티면 돼.’

그들의 계획보다 차원이 좀 더 빠르게 카르틴 왕국에 도착하긴 했지만 시간만 조금 끌면 됐다. 곧 이교도 군단이 차원을 죽이러 올 거다. 하프만은 눈을 꾹 감는다.

이번 일도 이차원에게 들통이 나게 되면 자신은 더는 이제 살아갈 방도가 없었다.

‘왕국의 살길을 위한 거야. 그것만 생각해.’

그때 하프만의 눈에 한 시체가 들어왔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 그것은 덩그러니 골목길에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마구잡이로 놓여져 있었다. 흉측한 몰골을 자세히 보니, 웬 경비병의 시체였다.

하프만은 금세 안심하는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이것으로 자신의 왕국은 무사해질 것이다.

‘찾았다. 요정이 이걸 봐서 모든 계획이 물거품 되기 전에,’

“하프만.”

하프만은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그대로 몸이 굳었다. 시체를 가져가려 한 순간에 차원이 하프만을 부른 것이었다.

“잠깐 대화 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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