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아이템 위치를 파악한 이차원은 빠르게 그것을 찾으러 향했다. 왕실을 동료들이 제압하고 있다지만, 분명 왕실이 멈춘 것에 대한 의문을 품은 다른 국민들에 의해 소문은 새어 나갈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될 필요가 있었다.
‘복잡하게 갈 거 없이 아이템만 챙겨서 왕국을 떠나야겠어.’
차원은 아이템을 얻자마자 바로 이곳을 빠져나갈 거라, 따로 [창조]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고 디원의 몸으로 왕국을 돌아다니기로 하였다. 디원의 몸을 어디에 놓고, 창조 스킬로 태어난 몸에 빙의해 아이템을 찾고, 다시 몸을 찾아서 빙의하는 과정이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그 시간을 줄여 아이템을 얻자마자 바로 떠난 것이 확실히 편한 생각이었다.
-대박이다! 저 사람 몸 좀 봐. 전사겠지?
-어느 왕국의 전사인지 그곳 사람들은 든든하겠어.
마을을 지나는 주민들은 디원의 육체를 보고 다들 한 마디씩 던졌다. 그러나 차원의 머릿속은 하프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프만이 어째서.’
육체의 기억을 통해 알게 된 왕가의 징표와 성장의 비약의 위치를 확인한 차원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당장 아이템을 찾으러 가야 했지만 하프만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목을 내려친 사람은 하프만이었어. 하프만이 카르틴 왕국에도 이교도에 빠진 인간이 있었다고?’
하지만 하프만은 울프릭과 함께 개장에 갇혀 있던 레프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었나. 기억이 왜곡될 리는 없으니까. 그런 하프만이 이교도의 편에 서서 왕실 사람들의 목을 쳤다… 그렇다면, 하프만은 왜 로이칸의 거처에 왔을까.
‘이교도라면……설마 내 목을 노리고 하프만을 추적팀으로 보낸 건가.’
만약 그렇다면 큰 문제가 됐다. 그와 계속 모험을 함께하기 위해선 제대로 사상 검증을 해야 할 필요가 충분히 있었다.
‘하칸을 경배한 것부터 내게 보인 태도들까지 이해 가지 않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야.’
차원은 하프만을 무작정 이교도로 몰기엔 지금까지 그가 해왔던 행동들이 이해가 가지 않고 있었다.
***
차원이 아이템을 얻기 위해 향한 곳은 로덴 왕국 서쪽을 두르고 있는 에르핸 산맥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위치한 약수터 한쪽 어귀를 무슨 생각이라도 있는지 이차원이 열심히 파고 있었다.
‘깊게도 묻어놨네.’
차원은 땀을 흘려가며 땅을 열심히 파대는데 그때 작은 상자 같은 것이 나왔다. 차원, 삽을 던지고 손으로 조심히 흙을 파서 상자를 꺼내 여는데 그곳엔 왕가의 징표와 성장의 비약이 들어있다.
“드디어 찾아냈다!”
아무리 봐도 영락없이 그가 찾던 물건이었다. 이차원은 황토밭에서 석유를 발견한 사람처럼 매우 기뻐하였다. 차원은 왕가의 징표 위에 올려져 있는 성장의 비약을 먼저 집어 들었다.
‘한 시간가량 원래 능력치의 세 배라.’
성장의 비약 또한 약 1시간가량 원래 능력치 세 배를 얻을 수 있는데. 이 또한 유용하게 쓰이리라 생각됐다. 언제고 최대 힘, 그 이상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심지어 이차원에겐 더욱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이것을 현실세계에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이트 토벌에 사용해도 괜찮겠군.’
차원은 성장의 비약을 인벤토리에 넣고 남은 왕가의 징표를 살펴보았다. 왕가의 징표는 스크롤처럼 종이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겉은 타파이트 금속이 칠해져 있어 금빛을 내고 있었다.
이차원의 손에는 왕가의 징표가 다섯 장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의 징표는 다음 왕국인 카르틴 왕국으로 되어있었다.
‘그곳까지 가는 길이 험했는데 잘됐군.’
각 왕국의 국왕에게 받은 왕실의 표식을 이것에 붙이면 워프할 수 있는 거다. 즉, 왕실을 호위하는 기사들이 언제든 왕실로 올 수 있게 만들어진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차원은 그 사실을 떠올리자 하프만이 더욱 수상하게 여겨졌다.
‘하프만은 기사단장인데 왕가의 징표가 없을 리가.’
하프만이 카르틴 제국까지 함께 가는 것에 동행하자고 했던 것이 거짓말일 확률이 높아졌다.
‘왕가의 징표가 있음에도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한 이유가 뭐지.’
역시 하프만의 정신 상태에 대해선 제대로 검증해볼 필요가 있었다. 나중에 그게 또 무슨 문제를 일으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하프만부터 검증해봐야겠어.’
이차원은 하프만을 검증한 후 동료들을 따라오게 만들더라도 카르틴 왕국에 곧장 왕가의 징표를 사용해 넘어가 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손에 쥐어져 있는 왕가의 징표를 곧바로 사용하였다.
강렬한 바람 소리가 일렁이더니 귀를 재빠르게 지나쳐가는 소리와 함께 왕실에 도착하였다. 그의 앞에는 이미 일행들과 하프만이 같이 있는 모습이었다.
-얻어내셨군요. 빨리 출발하시죠.
하프만이 매우 공손하게 얘기를 하였다.
“공손은 넣어두고 있어.”
차원은 심판의 검을 빼어 들더니 다짜고짜 하프만의 목에 들이대었다. 이차원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가 깜짝 놀라고 있었다. 하프만은 그저 깜짝 놀라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만 짓고 있었다.
-뭐야 또!
데린이 옆에서 소리치는데 코웰은 빠르게 상황 파악을 하며 하프만에게 검을 겨눠 차원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코웰을 따르는 기사들도 모두 하프만을 겨냥하더니 어느덧 그를 포위하였다.
“정체가 뭐냐.”
차원이 하프만을 향해 물어보았지만, 하프만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저딴 순진한 표정을 짓는 게 더 수상한 걸 모르나.’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건 하프만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따르는 카르틴 왕국의 기사들 또한 당황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차원이 이러고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무슨 일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드래곤의 주인인 차원에게 칼을 겨눌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들의 대장인 하프만에게 칼을 겨두지도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왕실에 있던 로덴 제국의 신하들도 당황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와 동행을 결정한 이유가 무엇이냐.”
이차원의 물음에 하프만의 눈빛이 크게 흔들려대었다.
“정말 단순히 카르틴 왕국까지 가는 길에 로덴 왕국이 있어 동행한 것이냐?”
-무엇이 궁금하신 겁니까.
이차원의 물음에 하프만이 겨우 입을 떼며 말하였다. 그는 매우 당황을 한 듯이 입을 떨면서 말하는 모습이었다. 아니면 자신의 속내가 들켰다는 것에 떨고 있는 건가.
“기사단장인 너에게 왕가의 징표가 없을 리가 없다.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숨긴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라.”
-전 그저 요정님과 함께 모험을 하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기사로서 모험을 즐기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로덴 왕국 사람 목을 벤 것도 너에겐 모험이었나 보군. 즐거웠나?”
이차원 말에 하프만의 굳은 표정에 금이 가더니 고갤 떨구었다. 그 모습을 본 기사들도 크게 놀라워하는 모습이었다. 설마 지신들의 대장인 하프만이 그런 일을 했을 거라는 건 예상도 하지 못하였겠지. 그는 이제 차원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죗값을 치르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억을 보셨군요.
하프만 말에 그를 따르던 기사들과 차원의 동료들도 모두 놀란 모습이었다. 설마 진짜로 그런 일을 행하였을 줄이야. 이차원은 더욱 무서운 언성으로 그에게 검을 더 가까이 대었다.
“즐거웠냐고 물었다.”
이차원이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물었다. 어느덧 하프만의 목까지 다가갔던 칼날은 그의 목을 찌르더니 이내 칼끝에서 한 줄기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나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제 손으로 그들을 처형한 것은 맞지만 저 또한 이교도에 이용당했던 겁니다.
하프만, 눈물을 흘리며 결백을 주장하였다.
“로이칸을 찾아간 이유는 무엇이냐.”
이차원은 그런 모습의 하프만을 쥐뿔이라도 봐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하프만은 그런 그에게 모든걸 털어놓듯이 대답을 늘어놓았다.
-이교도 행동대장인 리지라는 여자를 쫓을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리지? 이 녀석도 역시 리지에 대해 알고 있었고 쫓을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들보다 먼저 잡아내었더라면 리지는 분명 무사하지 못했을 테겠지.
-대륙으로 넘어가기 위해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했는데 마침 동료 레프가 대륙에서 납치를 당했단 소식을 듣고 그것을 빌미로 움직인 겁니다. 그러다 요정님과 동료분들을 만나 그 여잘 해결했단 소식을 듣게 됐고 대륙을 건너가 이교도를 쫓는단 소식에 함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울프릭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프만에게 리지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움찔거렸지만 이미 잡아놓은 상황이라서 그런지 예전처럼 큰 동요를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프만은 자신의 말에 있는 진심을 믿어달라는 듯 빠르게 말을 뱉어대었다.
-제 과거 악행을 숨긴 것에 대해서 사죄하지만 요정님과 동료분들을 위험에 빠뜨리려 한 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제 결백을 믿어주십시오.
-단장님...
하프만이 무릎을 꿇고 절박하게 말하자 그런 모습을 처음 본 기사들도 또한 안타깝게 그를 바라보았다. 누구나 살면서 실수는 다 하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잘못된 길로 빠져나가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차원이 주변을 보니 다들 갑작스러운 상황에 왕실을 제압하는 것은 뒷전인 듯 온 시선이 하프만과 차원을 향해 있었다. 이대로 어서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왕실을 제압하는 것에 빈틈이 생길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또 어떠한 적들이 나타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그의 처리 여부를 지금 내려야만 한다. 확실히 하프만은 커다란 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그는 지금 그 죄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와 반성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를 계속 살려둘지, 아니면 이 자리에서 당장 맞는 처벌을 내려야 할지 고민을 내리도록 생각하는 마음이 서로의 의견이 대립하는 것을 막아서야 한다. 그리고 그중 하나의 편을 들어서 선택을 해야만 한다. 보통을 그럴 것인데. 지금 판단을 내려야 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이차원이다.
그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결정을 내려서 그에게로 지시를 내리려고 하였다.
‘빨리 결단을 내려야겠어.’
이차원은 엎드려있는 하프만에게로 다가섰다. 그는 검을 하프만의 엎드린 자리 옆에 검을 꽂아박고는 그에게 엄격하게 말을 하였다.
“네 결백은 죽은 다음 그 기억으로 확인하면 돼. 내가 널 살려야 하는 이유만 말해.”
그가 선택한 판단이 맞고 틀리고는 따질 수 없었다. 애초에 맞는 답이 없는 문제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