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코웰의 외참에 이차원은 앞을 바라보았다. 성은 넓은 장막으로 막혀있는 모습이었다. 저곳에 김정담이 있다.
“잠깐 멈춰.”
이차원은 이번에도 SUV를 운전하는 울프릭에게 말하자, 차가 성벽 앞에 멈춰섰다. 브레이크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지며 주변으로 모래먼지가 일어났다.
-문제 있어?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
김정담을 만나기 전, 차원은 확인할 것이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 이곳까지 도달하기 전 귀신이 억울하다며 자신의 시체가 묻힌 곳을 말해주었던 것이 생각나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귀신은 왕가의 징표와 승리의 비약이라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고 했었기에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시체를 먼저 확인해야겠어.’
이차원은 귀신들의 말대로 시체가 있는지 먼저 확인한 후에 김정담에게 스킬을 얻은 뒤에 육체의 기억을 얻어 아이템을 얻을 생각이었다. 그렇기만 한다면 일이 훨씬 시원스럽게 흘러갈 것이다. 써펜트와 같은 일은 두 번 다신 사양하고 싶었다. 그 일 때문에 머리가 얼마나 아파왔었는지.
차원은 SUV에서 내려 트렁크를 열더니 삽 여러 개를 꺼냈고 삽을 받아든 기사들이 동쪽 성벽을 파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린 이차원의 명령이었지만, 호감도가 높았기 때문에 다들 이차원의 말을 잘 들었다.
파도 파도 앞에 보이는 건 성벽을 이루고 있는 흙밖에 없었다.
‘이거 있는 거 맞아? 괜히 또 헛된 일을 하면서 힘빼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얼마 동안 한참을 성벽을 팠을까, 근처에서 삽을 파던 기사 하나가 시신을 발견했다고 소리친다.
-여기 시체가 있어요!
시체가 나올지 몰랐던 이들은 모두 굳은 표정을 지었다. 시체를 발견한 기사는 거의 괴성을 지르는 듯이 이차원에게 보고를 내렸다. 어찌나 놀란 거 같은지 그가 들고 있던 삽은 어느새 그의 손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차원은 기사가 소리친 곳으로 달려가니 시체 한 구도 아니고 해골 무더기가 있었다.
게다가 해골들이 입고 있는 옷과, 장신구들이 모두 왕가의 옷이었다. 모두 반짝거렸고 어디서 함부로 구할 수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장인이 직접 꾸민 듯 바느질 자국이 세밀히 이루고 있었다.
‘왕가의 사람들이라. 지니고 있는 아이템도 상당하겠는걸.’
그걸 보고 기대감을 느끼는 차원이었다. 이제 김정담에게 스킬만 얻으면, 차원이 게임 플레이어 시절 몰랐던 왕가의 가보들이나, 모르는 아이템까지 얻을 수 있을 거만 같았다.
‘플레이어 시절엔 단순히 김정담의 스킬만 얻고 지나쳤는데 여기 이렇게 많은 시체가 묻혀있을 줄이야.’
이차원은 디원의 몸을 얻어 새롭게 발견한 시나리오에 감탄하는데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점차 소리가 북적거려지더니 결국 그의 귀로 말 한마디가 들어왔다.
-습격입니다!
하, 그럴 줄 알았다. 이렇게 편하게 흘러갈 리가 없었지. 코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벽을 지키는 경비들이 차원 일행이 적군인줄 알고,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데린이 빠르게 방어막을 만들어 내더니 화살을 막아내고 있었다.
기사들은 이차원의 명령을 기다리는 듯이 모두 전투무장을 한 채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죽일까요?
코웰의 오른팔인 아르만이 용맹하고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차원에게 물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표범과 같이 적을 노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죽이진 말자. 침략자로 보일만도 했으니까.
이차원 말에 아르만은 고갤 끄덕이고 자신들의 부하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였다. 그들은 모두 아르만의 명령에 집중을 하며 따를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 저런 부대원들을 가진 전투 부대면 속부터가 정말 든든하겠네. 물론 군대를 포함한 다른 분야들에서도.
-요정님 명령이다. 급소는 피해 공격해라.
기사들은 명령을 모두 접수하였다는 듯 발을 땅에 굳게 디뎠다. 그렇게 기사들은 최대한 비살상 무력으로 경비들을 쓰러트리려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군력이 아니었다. 저들이 쏘는 화살의 속도가 빠르고 피하기 힘든 궤적으로 날아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 하늘에서 내리는 거친 비와 같았다.
-요정, 그냥 막고만 있긴 힘들다.
-맞아. 언제까지 쉴드만 하고 있을 수도 없잖아.
이차원 동료들 또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방어만 하고 있자니 힘들어했다. 역시, 카릴리아 대륙으로 넘어오고부터는 NPC들의 수준도 올라가 있는 상태인 건가. 젠장, 이렇게 되면 자신의 생각과 약간 다르게 흘러가게 되는데...
‘이러다 부상이라도 당하면 큰일이니 제압은 해야겠어.’
방어만 하다가 자신들에게 피해를 받으면 그게 더 앞으로의 일이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
제아무리 카릴리아 대륙의 NPC들이 수준이 높다 한들, 이들은 그저 경비대원들이었다.
“모두 뒤로 물러나. 괜히 무리하게 파고들면 부상 당하기 쉬우니까. 최대한 부상병이 생기지 않게 하고 있어.”
이차원은 그렇게 그의 일행들을 피신시켰다. 이차원은 곧장 디원의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게임 속의 히든 캐릭터라고 불리는 디원이기에 이 정도도 해치우지는 못할 리 없었다. 차원이 화살을 쏘는 곳으로 가서 그들을 제압하니 공격은 진짜 허무하게 끝이 났다.
화살의 수가 서서히 줄어들더니 어느샌가 그쳐 있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그들을 모두 포박하는 데 성공한 이차원은 이전 대륙의 국왕들에게 받아온 각 왕실의 표식을 그들의 눈앞에 보여주었다.
물론 그들이 공격하는 틈에 종이를 들이밀었으면 됐을 상황이었지만, 이차원에게는 생각이 많은 상태여서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머지 인원들도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황을 한 타세 다 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오직 국왕들만이 가질 수 있는 표시를 본 경비대원들은 고갤 조아렸다. 자신들이 엄청난 실수를 했다는 듯이 말이다.
“김정담에 대해 알고 싶은데 아는 게 있나?”
아무리 왕실의 표식을 보여주었다 해도 처음부터 그 물음은 이들에게 의아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 마을에서 꽤 중요한 인물 같아 보였다. 이차원 말에 기사들은 김정담은 왜 찾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조금 경계심을 보였다.
-김정담님은 왕실 대리인으로 현재 실종된 국왕을 대신하여 나라를 안전하게 통치하고 계십니다.
‘김정담이 벌써 왕실에 앉다니. 이교도가 왕실을 제거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게다가 기사들의 말에서 느낄 수 있듯 국민들은 그를 꽤나 신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분이 낮은 국민들은 이교도가 왕실을 제거하고 김정담을 앉힌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아마 그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뿐이겠지.
‘현재 왕실에 목숨이 붙어있는 자라면 모두 이교도 사제가 되기로 계약한 인간들이겠지. 아니면 이미 죽었을 테니까.’
게다가 경비대원들은 당장 모르지만, 차원이 들어왔다는 것이 보고되면 차원에게 무슨 위험이 처해질 지 몰랐다. 이들에겐 이교도는 사제 중 강력한 세력인 리지를 차원 일행에 의해서 잃었던 경우가 있는 상태였다. 차원이 이곳에 방문한 것이 이교도를 이끄는 리더들에게 들어가면, 위험해질 것이 뻔했다.
‘정체가 밝혀지면 위험하다. 처음부터 신분을 속였어야 되는데 운이 없었군. -’
이차원은 애초에 이 성벽에 들어가고부터 신분을 속일 생각이었는데 경비대원에 의해 발각된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그럼 방법을 바꾸는 수밖에.
“소란을 피워서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따라 오시죠. 왕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니. 우리가 여기 온 사실은 아무도 몰랐음 하는데.”
“예?”
기사가 그게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인가 싶어 되물어보았지만, 이차원은 기사들을 순식간에 SUV에 가둬버렸다. 기사들은 묶여있는 상태로 차문을 두들기며 나가려 들지만 소용이 없었다. SUV가 얼마나 튼튼한 상태인지 그들은 모르는 듯하였다.
“걱정 마. 식사는 챙겨 줄 테니까.”
그들을 차에 가둔 차원은 계획을 조금 변경해야 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실패했군.’
강령술로 써펜트를 부려서 생각보다 빨리 영원의 강을 건넜음에도 김정담이 왕실에 앉기 전에 도착하는 것엔 실패했다. 게임 플레이를 할때도 김정담이 왕실에 앉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이곳에 도달하려고 노력을 해봤었는데, 역시나 실패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를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차원이 실제 게임에 빙의해서 플레이 되고 있는 흐름 상, 차원이 게임을 플레이할 때보다 전개속도가 빨랐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재료들을 많이 가져왔고, 관광버스나 탱크 같은 것을 만들어 파워풀하게 진행했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도 김정담이 왕실에 들어가기 전 도착하는 것에 실패한 것은 차원으로서는 조금 씁쓸한 일이었다.
‘쉽지 않겠군.’
황야지에 있었다면, 김정담만을 상대하면 됐지만, 김정담이 왕실에 있다면 상당히 달라진다. 즉, 신분상 그곳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교도의 계약을 한 사람들일 것이기에 쉽지 않으리라 생각하였다.
‘이렇게 된 이상 위장을 제대로 해야겠어.’
***
-교주님, 건너 대륙에서 교주님을 행복하게 할 영약들을 들고 상인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의상을 입고 있는 신하가 왕실 의자에 앉아있는 마른 체격의 남자에게 말하였다. 바로 김정담이었다. 남자는 날카로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말투 또한 무척 차가웠다. 얼음 왕자가 따로 없었다.
-영약을 들고 상인이 찾아와? 모험가가 아니라?
이미 김정남에게 스킬을 얻기 위해 수많은 모험가들이 이 왕실에 들렀었다. 김정남은 잠재력이 있는 모험가들에겐 가치 있는 것을 받고 자신의 스킬을 가르쳐 주지만, 대개는 가치가 없는 인물들이라 모험가 자체를 잘 만나주지를 않았다.
자신이 영약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갖가지 영약을 들고 온 사람들이 많지만, 별 내용이 없는 모험가들이 태반이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왕실, 왕실인데도 그 정도였으니, 김정담이 이교도에 계약을 맺기 전은 더 심했을 것이었다.
-들고 온 물건을 보아하니 상인이 확실합니다.
-그래?
김정담은 모험가라면 진절머리가 났지만 상인이라는 말에는 조금 끌렸다. 상인이라면 모험가보단 물건이 많고 다양할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영약을 가져왔길래.
-글쎄요. 이름은 모르겠는데 일단 먹어보라며 시식을 좀 해줬는데 맛을 본 신하 하나가 헬렐레 팔렐레 기분이 좋아져선 잠을 푹 자고 있습니다.
거기에 그의 주변에서는 맡기만 해도 어지러운 냄새가 나고 있겠지.
-황혼의 영약인가?
-그것과는 성질이 달랐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곧장 들라 해라.
김정담은 호기심에 상인을 들여보내는데 후줄근한 상인 옷차림을 한 남자가 등장하였다.
그들 빼고 다 잘 알듯이 이 이름 모를 상인은 차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