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다크혼으로 돌아간 김용훈은 곧장 렌더의 개장 동료 레프와 레프를 구하러 온 카릴리아 대륙의 카르틴 왕국 기사단을 선동시켰다.
-이교도의 소행이 분명하다니까? 그놈들, 흑마법으로 이 대륙을 망치려 들더니 이젠 카릴리아 대륙까지 점령하겠단 거라고. 세상을 구하고 싶으면 당장 이차원 그 개새끼랑 동료 새끼들을 잡아다 족쳐야 된다고, 쫌!
-렌더가 당신을 죽음의 나무에 가뒀단 소릴 믿으라고? 퍽이나 걔가 그랬겠네.
김용훈은 계속해서 이 모든 것이 이차원 일행을 이교도 세력으로 마녀사냥을 하였다. 그러나 렌더와 한동안 감옥살이를 함께 했던 레프는 김용훈의 말을 믿지 않았다. 자신이 아는 렌더는 너무나 순수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개장 근처로 다가온 몬스터들하고 소통을 해서 돌려보내며 이곳에 있던 사람들을 도와준 렌더였기에 레프는 커다란 고마움을 느꼈던 것이다.
-답답하네. 새끼야 원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거야.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었나. 순진해 빠져가지고. 나도 모른다, 이제. 이 세상이 망하든 말든 니들이 알아서 해라.
-레프, 이 사람 말도 들을 필요가 있어. 이 사람이 죽음의 나무에 묶여있던 건 우리 두 눈으로 확인했어.
-아는데 렌더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니까?
-그건 모르지. 이 사람도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잖냐. 죽음의 나무에서 죽다 살아난 사람인데.
기사단장 말에 레프를 제외한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김용훈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이제 거의 다 넘어왔구나.
-그래서 그 이교도 세력을 찾으면 어쩌겠단 겁니까?
-잡아다 죽음의 나무에 던져줄 거야.
김용훈은 복수의 칼날을 가는 듯이 말했다. 현실 세계에서는 이미 그를 이기기엔 글렀고, 지금 자신에겐 카르틴 왕국의 기사단이 있어 어쩌면 다시 디원의 육체를 얻을 수도 있었다.
‘그 새끼도 이미 여길 뜬 거 같고.’
김용훈이 보기에 정황상 이차원이 이곳에서 육체를 하나 득해서 떠난 것 같았다. 동료들을 다 개장에 쳐넣은 것을 보면 결국 이차원도 NPC를 그저 NPC로 보는 자신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온갖 깨끗한 척은 혼자 다 하더만. 재수 없는 새끼.
이차원을 찾을 때까지 세력을 키우면서 로이칸과 협력해 이차원을 죽여 낼 궁리를 하고 있던 것이다. 어쩌면 이번 기회로 디원의 육체를 다시 얻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림 받은 놈들을 내가 품어주는 거지.’
김용훈은 이차원이 버렸다고 생각하는 NPC들을 자신의 편으로도 만들 생각에 개장으로 향했다.
-울프릭.
울프릭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알고 있는 김용훈이 가장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미 리지에게 배신당한 상태에서 이차원에게도 버림을 받았으니 마음이 제일 심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동생 리지가 이교도에 빠져 힘들지? 내가 이곳에서 나가는 걸 도와주지.
-뭐야. 꺼져.
하지만 김용훈의 생각대로 울프릭은 거칠게 대항했다.
‘반응 왜 저래. 원래 시나리오대로면 리지를 찾아 카릴리아 대륙으로 넘어가야 되는 거 아닌가?’
어째서 울프릭이 관심이 없는지 고민도 하지 않고 다음 타자로 코웰을 정했다. 코웰 역시 기사단장 출신이기 때문에 자신을 배신한 이차원에게 복수할 준비를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코웰. 당신은 가장 성스럽고 깨끗한 식수를 지키기 위해 이곳을.
-이미 인수인계 다 해주고 떠났네.
-뭣...!
코웰 또한 물을 지키는 기사인데, 물을 지키는 것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코웰마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자 김용훈은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제대로 났다.
-이 새끼들이 단체로 돌았나...!
김용훈이 혼자 분노에 사로잡혀 있을 때, 로이칸의 부하가 허겁지겁 뛰어왔다.
-로이칸님께서 요정이란 놈의 행방을 찾았다고 합니다!
부하의 말에 김용훈 얼굴이 확 펴졌다. 드디어 복수를 할 수 있으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
부하는 김용훈을 절망의 숲 앞에 있는 탱크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곳엔 로이칸으로 빙의한 이차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자가 나에게 저놈들을 데려와 바쳤다.”
로이칸이 탱크 바로 앞에 누워있는 시체를 가리켰다. 이전 이차원이 [창조]를 사용해서 만들어낸 거지꼴의 캐릭터였다.
-이 몸에 말고 여기서 빠져나온 놈은 어디 갔습니까?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구름 같은 얼굴이요.
김용훈 말에 로이칸으로 빙의한 이차원은 일부러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글쎄. 그런 건 없었는데.”
앞서 김용훈은 이차원이 [빙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허나, 그 기술을 로이칸에게 사용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그럴게, 로이칸은 언제나 남의 등골을 파먹고도 남을 악질 중의 악질이었으니까. 그 점을 역이용했던 이차원과는 달리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도 이런 모습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다.
‘죽어도 상관없단 건가. 어째서?’
지금 죽어있는 모험가는 로이칸에게 울프릭을 비롯한 강한 육체를 바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죽어있는데도 로이칸은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한 것이 수상했다. 아니면, 이 몸의 주인의 행방을 알고 있음에도 모른 척하는 듯 보였다.
‘이 새낄 잡아 족쳐야 되는데.’
그 와중에 김용훈은 신중하게 로이칸의 표정을 살폈다.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건가? 아니면 이미 원하는 건 다 얻었으니 상관없다는 건가?
김용훈은 뭔가 수상함을 느끼고 생각에 잠겼다. 이차원은 당연히 그럴 시간을 만들어 주지 않으려고 재빨리 절망의 숲을 가리켰다.
“숲을 지나 다시 대륙으로 돌아간 듯싶은데.”
절망의 숲을 본 김용훈은 자신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했다. 당연했다. 그에겐 절망의 숲에 대한 엄청난 트라우마가 있었으니까. 저곳에 대체 몇 주, 몇 달이나 갇혀 있던 건지 기억할 수 없었다.
“왜 그러고 서 있지? 네 말대로 그렇게 파렴치한 놈이라면 당장 가서 잡아야 되는 것 아니냐?”
-맞아. 그 쓰레기 자식을 잡아다 똑같이 복수해주겠다면서.
김용훈이 선동시킨 레프의 기사들도 김용훈을 부추겼다. 김용훈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로이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놈이다. 그렇기에 온전히 믿으면 안 되는 놈이지만... 아직 김용훈은 그가 원하는 보상을 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를 써먹을 대로 사용한 후 버릴 게 분명하니 일부러 자신을 도와주려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이차원은 생각에 빠져 쉽게 말을 떼지 않는 김용훈을 움직이기 위해 일부러 유혹하기로 했다.
“사실 이 탱크도 그놈이 주고 간 거거든.”
탱크 안에서 안정의 종을 꺼내 보여주면서 말이다. 이차원은 유유히 안정의 종을 울리면서 절망의 숲으로 걸어갔다. 이차원은 일부러 김용훈이 조급한 마음이 들게 발걸음을 빨리했다.
-로이칸님, 어, 어디 가세요! 왜, 그쪽으로 가십니까.
로이칸이 절망의 숲 쪽으로 걸어가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올 때만 해도 두 번 다시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나온 곳인데! 하지만 이차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야, 로이칸을 믿고 갈 수밖에 없었다.
혼자 겁에 질려 하는 김용훈의 앞으로 이차원이 안정의 종을 흔들며 숲에 들어갔다. 이곳에 이렇게 빨리 다시 들어오게 될 줄, 김용훈은 알지 못했다.
-로이칸님, 아직 멀었을까요?
로이칸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절망의 숲을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그들은 죽음의 나무 앞으로 가서 걸음을 멈추었다. 안정의 종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리다 공기 중으로 사라져갔다. 즉 죽음의 나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때.
‘지금이다.’
로이칸으로 빙의한 이차원이 [디텐션] 스킬을 사용해서 김용훈과 위치를 바꾸었다. 아주 순식간에, 죽음의 나무는 김용훈의 목과 사지를 감싸버렸다.
-으아아악!
***
절망의 숲에서 김용훈의 비명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한동안 그 비명은 계속되었다. 이제 다시는, 게임을 벗어날 수 없을 테니 그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만이 아니었다.
‘죗값 받는다 생각해라. 살인자 새끼.’
이차원이 그동안 김용훈이 죽인 헌터들을 떠올리는데 갑자기 카르틴 왕국에서 온 기사들과 레프가 칼을 동시에 그에게 빼어 들었다.
이 대륙의 기사들이 아니고, 다음 대륙인 카를리아 대륙의 기사들인지라, 기사단장부터가 A급 기사였다. 코웰보다 높은 등급의 기사들이 있었고, 같은 등급의 기사들도 여럿 있었다. 그 말은 즉, 비록 로이칸의 몸에 빙의한 차원이지만, 동기화 문제로 아직 온전한 힘을 사용 못 하는 상태에서 혼자 상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것이다. 이차원은 일단 로이칸의 기세를 이용해 강하게 나갔다.
“뭐냐.”
-악랄하기가 이로 말할 수가 없구나. 자길 도와주려는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극악무도한 짓을...!
이거, 오해를 해도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데. 그들의 시야에는 애초에 로이칸의 악명을 들어왔던 터였지만, 아이템을 줌에 따라 동료를 순순히 내어줬고, 김용훈의 말에 의하면 이교도 세력(이차원)의 행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협력적 관계를 맺고 있가 생각했는데, 김용훈을 절망의 숲에 가둬 버렸으니 크나큰 배신이었다.
-산 사람을 땅에 묻는 것보다 잔인하다는 절망의 숲에 사람을 던지다니. 쓰레기 같은 자식.
산 사람을 땅에 묻는 것보다 잔인하다는 절망의 숲. 육체적으로 죽을 수 없고, 정신적으로 죽어간다는 건 이차원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김용훈에게 적합한 벌을 내린 것인데.
-모두 디텐션 스킬이 있다 조심해라!
기사들은 최대한 경계를 갖추었다. 그리고 상황이 어쩔 수 없이 돌아가자 차원도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대검끼리 싸우면 일대 다수의 싸움을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래도 혼자선 부족해.’
그럼에도 혼자 처리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차원은 로이칸의 몸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몬스터 변형체들까지 현장으로 불렀다. 어쩌다 보니 자신이 기사들을 처리해야 되는 정반대의 상황에 처해 버렸다. 그렇게 머릿수가 얼추 맞아떨어지자 긴장감이 계속해서 높아졌다.
“지금이라도 멈춰라. 지금의 난 할 일이 바쁜 몸이다.”
이차원은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최대한 싸움을 피하려 하였다. 허나 그럴 생각이 없는 기사단장이 검을 높게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더 이상 타협은 없다. 피를 보더라도 배신밖에 모르는 저놈의 목을 따라!
기사단장이 칼을 들고 달려들자 그의 부하들도 이차원과 로이칸의 부하들을 공격하려 들었다. 이미 이차원이 [빙의]를 풀고 상황을 해명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제 와 정체를 밝힌다 한들 이들에게 잘못 찍혀버리면 몸을 가진다 해도, 앞의 시나리오를 풀어가기란 불가능이었다.
‘젠장.’
이차원은 결국 단검을 들어 그들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최대한 이들에게 데미지를 주지 않고 공격을 막는 데만 집중했지만, 코웰이나 울프릭의 몸과 전혀 다른 로이칸의 몸이었기에 무력과 검술의 역량을 백프로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주변에서는 몬스터들이 기사들에 의해 몸이 잘려 나가며 피를 흩뿌리고 다녔다. 기사들은 이차원이 떨어트린 안정의 종을 울리며 싸움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처 종을 울리지 못해 나무에 잡혀버린 기사들도 보였다. 그렇게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투가 다시 발생해버렸다.
‘김용훈 이 새끼. 얼마나 입을 잘 털었으면.’
계획에도 없던 싸움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싸우는 건 오로지 김용훈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꽤나 수준 높은 NPC들을 이렇게나 만들어 놓다니, 김용훈은 확실히 사기꾼의 기질이 있는 달변가였다. 이차원이 최대한 싸움을 지연시키지만 승기는 기사단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미 로이칸의 강령술에 지배받는 몬스터 변형체들은 처리된 지 오래였다.
“하아...”
이차원, 숨을 거칠게 내뱉었다. 피가 흐르는 몇몇 기사들이 칼을 로이칸으로 빙의한 차원에게 겨눈 상태였다. 자신의 목숨은 어찌 되어도 상관넚다는 기사도의 정신을 모두가 가지고 있어서 더욱 힘들었다. 몬스터를 처리하던 기사들이 곧장 이차원과 싸우는 기사들을 지원하자 싸움은 1:3, 1:4, 1:5로 점점 늘어났고 이차원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얼마 안 가 기사들로 인해 완벽하게 고립되어 버렸다. 로이칸을 둥글게 둘러싼 기사들이 동시에 목에 칼을 겨누며 달려들었다.
‘버리고 탈출해야 하나.’
이차원도 이제 이제 한계인 듯 로이칸의 몸을 버릴 준비를 하였다.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하칸이 날아 들어왔다.
“하칸!”
이차원은 어디로 들어온 건지 모를 하칸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하칸을 발견한 기사들 또한 매우 놀랐다. 놀랄 수도 없을 만큼 긴장하고 신비로웠기 때문이다.
-설마 하칸의 용?
-드래곤이다...
기사들, 갑자기 날아 온 드래곤을 보고 놀라워하였다. 이 세계에서도 한 번 볼까 말까 한 용, 하칸은 곧장 로이칸으로 빙의한 이차원을 일아 보았다. 하칸은 자연스레 어깨에 앉더니 로이칸의 얼굴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이제 완전 애완동물이나 다름없었다.
“배고프냐.”
이차원이 그런 하칸의 머릴 쓰다듬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때, 그 모습을 본 기사들이 모두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일제히 칼을 내리더니 무릎을 꿇었다. 방금까지 피 튀기도록 싸우며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들이 갑자기 이런 모습을 보이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거기에 자신들의 공공의 적인 로이칸에게 말이다. 이차원이 뭐야, 이 녀석들.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레프가 앞으로 나서며 말을 전했다.
-카리튼 왕국의 레프, 용주님을 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