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그래서 그동안 그 절망의 숲이란 곳에 잡혀있었단 거냐?”
김무상은 언제 만났는지 김용훈과 이야기 중이었다.
“어. 그 버러지 같은 새끼가 내가 나무에 묶여있는 걸 보고도 쌩까고 가더라니까?”
“자세히 말해봐.”
“그러니까 내가 나무에 묶여있는데 울프릭이라는 NPC랑 데린이라는 싸가지없는 마녀년이...”
“아니. 그딴 건 관심 없고. 죽음의 나무 그게 정말 몬스터를 보면 반응한단 거지?”
“어? 어 그렇지. 근데 그건 왜?”
게임 세계에서 나온 김용훈은 곧장 김무상을 찾아가 한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무에 묶여 힘을 통제받고 있었던 김용훈이 나무에서 탈출함으로써 다시 현실 세계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김무상의 관심은 김용훈의 안위가 아니라 이차원의 행적에만 관심이 있었다. 김용훈은 어딜 가도 찬밥 신세구나.
‘진짜 그런 나무가 있단 말이지.’
김무상도 최근 이차원이 나무로 농경지를 만들 계획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나무라는 것이 블랙우드라고 퍼져서 기대하고 있던 사람들 모두 실망을 한 상태였는데, 김용훈 말을 들어보면 이차원은 농경지를 지을 실질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놈은 쓰레기가 맞겠지.”
김무상은 김용훈의 말을 믿기로 하였다.
‘역시 뒤가 구린 놈이었어.’
김무상은 뒤가 구리지 않으면 이차원이 그 정도 성장을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들 역시, 그렇게 커왔으니까. 그래서 삽시간에 그렇게 빠른 성장을 하는 헌터는 있을 수도 없고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걸 김무상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놈을 묻자는 거냐?”
“평소 하던 대로 하잔 거지. 게이트가 닫히면 진실을 누가 알겠어.”
김용훈이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이차원을 납치해 게이트로 끌고 간 뒤 게이트 문을 닫아버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게 된다. 게다가 그들의 의도된 행동이 아니라는 거에 대한 충분한 알리바이도 생겨 미꾸라지처럼 빠져나올 수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이차원에게 빼앗겼던 화제성과 보상을 다시 빼앗아오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차원이동자라. 흥미롭군.’
김무상은 이차원이 빠르게 레벨을 올리고 급격한 성장을 한 이유가 이제야 납득할 수 있었다. 게임 속으로 들어가 아이템과 스킬을 가져오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김무상의 숨겨져 있던 욕망이 봉인을 해제한 듯 얼굴을 들이밀었다.
‘죽여서 내 걸로 만들고 싶다.’
김무상은 이차원이 뒤가 구린 것만으로 그를 묻을 이유까진 없었다. 애초에 자신들이 해온 일과 비교하면 이차원은 깨끗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가 노리는 건 따로 있었다.
헌터를 죽이면 랜덤으로 그의 능력이나 스킬을 얻을 수 있는데, 김무상은 그 확률을 노리고 차원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그런 무서운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헌터가 헌터를 죽이는 것은 매우 위법에 어긋나는 일이라 헌터 생활은 물론, 일반이 취급도 받을 수 없는 대범죄였다.
그러나 제일 친한 동료인 김용훈에게도 확인한 바, 그 능력이 있다면 엄청나게 강해질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게이트에서 죽여 가두어버리면 그걸로 끝이었다. 김무상은 만족하듯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에는 오직 탐욕만이 깃들어져 있었다.
“납치 계획은?”
“그 새끼 집을 알아.”
이차원의 아버지가 하는 금은방. 그곳은 이미 핫플레이스로 소문이 나 검색만 하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김무상은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애들 불러.”
김무상의 명령이 떨어지자 김용훈은 빠르게 동료 헌터 7명을 소집했다. 그들은 모두 김무상과 함께 일을 해오던 사람들이었다. 모두 김용훈의 말을 들어서인지 모두가 먹이를 노리는 짐승들의 표정이었다.
‘이차원을 죽이는 건 나다.’
그들을 태운 차는 어느덧 금은방에 도착하였다. 그들이 한꺼번에 이차원 집에 몰려왔을 때, 하필 집에 있던 이재배는 서울시장 아들 김무상의 얼굴을 보고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오늘은 쉬는 날인지, 집안의 불은 모두 꺼져있어 어두운 배경이 가게를 감싸고 있었다. 가게 안에 놓여진 값비싼 물건들도 제빛을 내지 못하고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있었다.
“아니, 김무상씨가 저희 집엔 다 어쩐...”
한순간이었다. 이재배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김용훈이 날린 펀치에 그의 얼굴이 돌아갔다.
“이차원, 이 씹새끼 어딨어.”
이재배는 날뛰는 김용훈과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김무상을 보고 당황하였다. 이재배의 코에서는 피가 흘러나오며 그의 얼굴을 더럽히고 있었다.
“대체 왜…. 우리 아들이 뭘 잘못했다고...”
어느새 문은 굳게 닫혀 있어 외부에서는 이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김무상의 부하들이 가게 문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재배의 시야에는 암만 봐도 저들의 상기된 얼굴은 차원이 무슨 잘못을 한 것 같았다. 자신의 아들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김무상급 헌터 9명을 상대하는 것은 매우 힘들지도 몰랐다. 이재배는 이들에게 자신의 귀중한 아들을 넘겨줄 수는 없었다.
“차원이가 뭘 잘못했는진 모르겠지만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이차원이 저들에게 잡혀간다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몰랐다. 산다 해도 저들에게 평생 찍혀 살아야 한다는 생각해 자신이라도 사과를 하겠다고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차원이를 관리 못 한 저를 잡아가십쇼. 정말 죄송합니다.”
“노인네, 뒤지기 싫음 빠져.”
김용훈이 자신의 바지를 붙잡고 비는 이재배를 발로 걷어찼다.
“아잇, 바지에 주름졌잖아!”
김용훈은 약이 제대로 오른 듯 가게 안의 물건을 부수기 시작했다. 물건이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야, 시끄러워!”
그 모습에 김무상이 소리쳤다. 이차원도 찾기 전에 누군가라도 오면 끝나는 상황이었기였다.
“이차원. 찾아.”
김무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용훈과 헌터들이 이차원 집을 마구잡이로 뒤지기 시작하였다. 이재배가 말리러 들었지만 헛수고였다. 헌터들은 이재배를 힘으로 밀쳐내며 내동댕이쳤다. 순식간에 집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시계는 땅에 떨어져 고장나 있고, 잠겨있는 문은 헌터들의 스킬로 곧장 부서지거나 찢겨나갔다. 물건들을 감싸고 있던 유리들은 파손되어 바닥을 어지럽혔다. 이재배는 그 위에 넘어진 바람에 유리에 긁혀 피부에서도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에 신경을 쓰는 헌터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 사이, 헌터 하나가 구석에 있는 차원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푸드득.
푸른색 물체가 날갯짓을 하며 이차원 방에 있는 간식을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뭐야… 저건… 몬스터?”
몬스터란 말에 김무상을 비롯한 헌터들은 곧장 전투를 준비하였다. 각자 무기를 꺼내 들며 싸울 준비를 하는데 김용훈 혼자 몸을 바르르 떨며 뒷걸음질 쳤다.
“서, 설마…”
이내 그는 발을 헛디디더니 그대로 넘어졌다. 그는 저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였다.
간식 시간을 방해받은 탓인지 하칸이 표정을 잔뜩 찡그리며 그들을 보았다. 이어서 보인 그들의 공격적인 태도에 하칸도 푸른빛을 점점 밝혀 나갔다.
***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차원은 자신의 앞에서 사라진 김용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일이 커질 걸 방지하기 위해 묶어둔 것인데 이렇게 풀려나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차원이 로이칸에 빙의해 자신이 차원이라는 것을 바로 알리지 않은 이유는 명확했다. 김용훈을 농락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따른 행동이었다.
‘현실로 돌아가는 건 뻔하니 앞으로도 종종 마주치겠네.’
그가 절망의 숲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은, 분명 현실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렇다면...
‘내게 복수를 해오겠지.’
무엇보다 김용훈이 자신을 절망의 숲에 두고 간 것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라도 현실로 돌아갈 거란 건 자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김용훈이 게이트 토벌 때 동료를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차원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이차원을 제거하는 건 당연했다.
‘김무상에게도 당연히 말을 했겠지.’
그러기 위해선 김용훈과 원래 친했던 헌터 A 김무상의 세력들 힘을 모았을 것이다. 게임 내 세상에는 자신의 동료들이 있었고, 평소 NPC들을 하대해서 동료가 없던 김용훈이 현실에서 자신을 해치우는 건 당연했으니까.
‘그래서 잡아다 가두려 했는데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여러모로 자신을 귀찮게 할 김용훈을 다시 가둬야겠다고 판단을 내렸다. 밖의 세상에선 이놈의 세력이 꽤나 강해서 함부로 건드리긴 힘들 것 같았고, 이전처럼 죽음의 나무에 매달아 놓는 게 지금 상황에선 가장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정체를 밝히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러려면 김용훈을 속여야 했다. 곧장 차원인 것을 밝히면 이놈은 다크혼의 접속을 끊고 다신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 차원은 김용훈을 속여 천천히 천천히, 죽음의 나무가 있는 쪽으로 은근히 끌고 갈 생각이었다. 경계심을 주지 않기 위해 거처를 마련해줬고 휴식도 보장해줬다. 그렇게 모든 덫을 완벽하게 만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건 예상 못 했네.”
다크혼에서 나간 김용훈의 행방을 보기 위해 현실로 나간 이차원은 난장판이 된 집을 보며 말했다. 조폭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자신의 눈앞에 놓여있자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휴식을 주자 사라진 김용훈이 세력을 모을 걸 알아서 자신 또한 사라진 하칸을 찾을 겸 다크혼 접속을 끊고 따라 나왔는데... 이렇게 당장 집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렸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얌전하게 있으랬더니.”
사라진 하칸이 집으로 찾아온 김무상 무리를 속죄의 매듭으로 묶어놨을 거라곤 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자신을 묶어둔 속죄의 매듭으로. 매듭을 얼마나 강하게 묶었는지 헌터들 얼굴은 모두 창백해진 상태였다.
그런데 정작 그들을 묶어둔 하칸은 침대 위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너무 많은 힘을 소모해서 그런 듯해 보였다. 이 상황에서도 엄청 귀엽게 몸을 웅크리면서 자고 있네. 기특한 녀석.
“컥. 이차원... 저 용은 대체...”
헌터들은 김무상을 비롯해 일곱 명이 묶여있었다.
“차원아!”
“아버지?”
차원의 아버지도 묶여있었는데, 아마 집의 소란스러움을 막으려다가 하칸에게 똑같이 묶인 것 같았다. 이재배의 몸에서는 여러 군데에서 핏자국이 보였다.
“저, 저 용은 대체 뭐냐 차원아. 저런 존재는 대체.”
“나중에 설명해드릴게요. 그나저나 꼴이 왜 그래요?”
이차원은 묶여있는 아버지를 풀어주며 인벤토리에서 회복 스크롤을 사용해 치료해주었다.
“쳐들어온 사람들은 너희가 다야?”
이차원은 묶여 있는 그들을 향해 물어보았다. 직접 집으로 쳐들어왔다는 것은, 김용훈도 이곳에 있었을 확률이 높았는데, 김용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두 명. 두 명이 도망갔는데 하나는 저 용의 정체를 아는 것처럼 보이더라.”
그때 때마침 하칸이 깨어났다.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어?”
푸드득!
자다가 깬 하칸은 갑자기 날갯짓을 하며 차원 주위를 날아다니더니 이차원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모니터로 향했다.
도망친 놈들 중 한 명, 김용훈이 도망친 곳을 말하는 듯싶었다.
‘한 명은 게임 속으로 도망갔다는 소리군.’
김용훈도 차원처럼 휴대폰으로 다크혼을 들고 다니기에, 하칸의 존재를 보고 바로 도망친 듯싶었다. 그리고, 일단 도망은 쳤겠지만 결과적으론 하칸과 함께 있지 않은 게임 속 차원을 빨리 처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죽음의 나무에 매달아 놓으려는 속셈이다.
‘뻔한 새끼.’
놈이 할 짓은 뻔히 보였다. 개장에 갇혀 있는 울프릭과 동료들에게 가서 자신의 존재를 캐묻는 것밖에 없었다.
“너희는 내가 다 처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