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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워프로 무한성장-118화 (118/202)

118화

‘나 말고 누가 절망의 숲을 뚫고 왔다고? 대체 누가?’

갑작스러운 침입자 경보에 이차원도 크게 당황하였다. 이 대륙에서 절망의 숲을 뚫고 들어올 사람이 누가 있나 생각해봤지만 떠오르는 사람은 마땅히 없었다. 그럴 것이 그의 동료들은 모두 로이칸에 의해 감금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여길 오려면 안정의 종이 있어야만 무사히 들어올 수 있는데 그것 역시 이차원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봐. 침입자가 들어온 게 확실해?”

이차원이 자신을 디원 시체 보관소로 안내해준 부하에게 되물었다. 평소 로이칸의 말투와 비슷한 구조로 말했을 텐데 부하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했다. 설마 벌써 눈치를 챈 건가? 부하는 넋이 나간 듯 굳은 채 서 있을 뿐이었다.

“이봐. 야!”

이차원은 괜한 불안감에 그를 향해 소리쳤다. 그때였다. 부하가 갑자기 몸을 움직여 차렷 자세를 취하더니 로이칸과 같은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이차원은 급하게 그의 뒤를 따라가 밖으로 나가자 그곳엔 로이칸의 부하들이 모두 넋이 나간 얼굴로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들 역시 모두 붉은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그동안 이런 식으로 전투 준비를 해왔군.’

로이칸의 강령술이 지닌 강력함과 그 철두철미함에 다시 한번 놀라고 있었다. 그의 마력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는 사실이었음에도 이렇게 실제로 보니 그 위력이 몇 배는 더 뛰어났던 것이다.

이차원이 놀라고 있는 틈에 열을 맞춘 부하들이 모두 바이머 산맥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대체 자신 말고 절망의 숲을 건너려는 자가 누군지 그 정체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이차원도 그들을 따라 향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정의 종을 울릴 사람도, 안정의 종을 대신할 마법을 쓸 사람도 차원의 생각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그럴듯한 건 납치된 영웅을 구하기 위해 다른 대륙에서 넘어온 세력인데 직접 어떤 세력인지 알아봐야겠어.’

어찌 됐든, 그 세력을 직접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 영웅을 구하러 온 세력이 아니라 로이칸이 가진 것들을 탐내하는 세력이라면, 차원도 견제해야 할 대상이었으니 말이다. 절망의 숲을 지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온 세력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차원은 잠시 디원의 육체를 미루었다.

어두컴컴하고 나무들이 여전히 움직이고 있는 절망의 숲 앞. 그곳에선 이미 로이칸의 부하들과 강령술에 의해 움직이는 몬스터와 사람을 합친 변형체들이 숲을 건너려는 세력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 앞에 로이칸으로 빙의르를 한 이차원이 나타나자 그들의 발악은 더 심해졌다.

-로이칸 너 이 개자식!

기사의 눈에는 분노와 경멸 등, 선한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시선만이 느껴졌다. 그들의 행색을 둘러보니 옷차림과 생김새를 보아 역시 다른 대륙에서 넘어온 자들이 맞았다. 거기다 그들이 착용한 장비와 장신구 역시 이 대륙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아이템들이었다. 즉 마법사, 궁수, 등 모든 전투 부대가 자신들의 동료를 구하기 위해 다른 대륙에서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내가 반드시 널 죽일 거야. 우리 아버지 돌려줘 이 개자식아!

-시체에 손이라도 까딱했다간 그땐 내 손으로 널 찢어발길 거다.

말투에서부터 그들의 피가 섞여 들려왔다. 그들의 온몸에서부터 떨림이 전해져 왔다.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서 울려오는 맹수의 포효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들이 이렇게 분노하는 모습을 이차원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실제 게임에서도 로이칸은 자신에게 좌절과 절망만을 심어준 희대의 개새끼였으니까.

-피를 보지 않고 서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때 흥분한 기사들과 달리 조금 차분한 기사단장이 소리쳤다. 그는 자신들의 수적 열세를 인정하고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그렇다고 기가 죽은 것 같지도 않았다. 그의 표정과 말투는 당당했다. 또한 그 모습에서 이차원이 제안을 거절해서 피를 봐야 한다면, 네가 죽나 내가 죽나 싸워보자는 태도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서로 피해를 입지 말고 교환을 하자는 말인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게 뭔 줄 알고?”

차원은 로이칸에 실제 빙의된 듯 여유롭게 말했다. 갑자기 그들을 옹호한다고 생각해 보아라. 기사들은 둘째 치고 로이칸의 부하들이 그런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둘리 있겠는가. 그래서 이차원은 일단 분위기에 맞춰주기로 한 것이다. 그때, 기사 단장으로 보이는 놈이 인벤토리에서 자신들의 대륙에서 가져온 아이템들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에 차원은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았다.

‘용의 발톱?’

타이밍도 기가 막히지, 마침 자신이 필요로 하는 아이템이 나오자 순간 머리가 띵했다. 용의 발톱은 드래곤이 착용할 수 있는 장비 중 하나로, 드래곤의 능력 말고도, 무력 자체를 극도로 강화시켜 주는 아이템이다.

‘어차피 이 세계에선 실용성이 제로인 아이템. 이거 말고 다른 것도 얻어 낼 수 있겠어.’

이들에게는 드래곤이 전설의 몬스터였기에, 이 장비가 귀하기는 하다만 실효성은 없었다. 즉, 그 말은 로이칸에게 있어 교환가치가 현저하게 낮다는 것이었다. 이차원은 떠보는 식으로 한 번 튕겨내었다.

“용의 발톱? 이 세계에 드래곤이 어디 있다고 그딴 장비를 거래 품목이랍시고 가져오는 거냐.”

거기에 이 사실을 이용하여 차원은 조금 더 나아가 그 장비를 얻음과 동시에 다른 것도 얻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기사단장도 이 말에 납득한다는 듯 인벤토리에서 다른 아이템을 꺼내 보였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카렌 수호대장의 방패다.

수호 대장의 방패. 이차원도 알고 있는 아이템으로 극강의 노가다를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역시나 희귀한 아이템이었다.

‘게임 플레이어 시절에 저거 하나 얻겠다고 뻉뺑이를 얼마나 했는지.’

이 정도 아이템이라면 거래 가치가 충분히 있겠지. 이에 인정하고 부하에게 손짓을 내렸다. 부하가 기사단장을 차원의 앞으로 데려왔다. 이차원은 품위를 유지한 채 기사단장에게 물어보았다.

“누굴 원하는 것이냐.”

-레프.

이차원은 부하를 바라보았다.

“안내해라.”

거래를 성사시킨 이차원은 기사단장이 준 아이템을 챙겼다.

‘용의 발톱이라.’

사실 이 무기를 구하는 난이도는 어쩌면 카렌 수호대장의 방패보다 낮았다. 그러나 용의 발톱을 장착시킬 용을 구하는 것이 그 어떤 아이템보다 난이도가 높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이것을 돈벌이로 팔고 다니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차원도 이것을 사들여서 얻을 생각이었는데, 로이칸을 얻은 이후로 일이 술술 풀려나갔다. 이렇게 되니 이제 로이칸이 행운의 아이콘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때마침 하칸도 부활했고. 이걸 장착시키면 여기서 더욱 강해지겠지.’

지금도 레벨29 아그니토를 전멸시킨 하칸인데, 무기까지 장착시키면 얼마나 더 강력해질까? 이차원은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릴 무렵, 그들 사이에 있던 어떤 이가 로이칸을 불렀다.

-이렇게 로이칸님을 뵙게 되는군요.

많이 들어본 목소리는 아니지만, 어딘가 귀에 익은 소리였다.

‘로이칸을 섬기는 NPC가 있다고? 그것도 다른 대륙에?’

차원이 아는 시나리오에 의하면, 로이칸을 섬기는 NPC는 어딜 가도 없었다. 로이칸은 곧장 이 대륙에서 영력과 육체를 얻어 다음 대륙인 카릴리아 대륙으로 넘어가,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데, 그를 섬기는 NPC가 있을 리가 없었다. 무력에 제압당해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르는 수족들은 있어도, 지금 일어난 일로는 그럴 일도 없었다.

“얼굴을 보여라.”

이차원은 도대체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자 로이칸을 뵙겠다고 고개를 조아린 사내가 얼굴을 가린 로브를 내리었다. 그러자 이차원은 믿을 수 없었다.

‘네가 어째서 여기에...’

이차원을 이토록 당황하게 한 인물은 바로... 김용훈이었다.

“로이칸님께 아뢸 말이 있습니다.”

분명히 절망의 숲에다 버리고 왔었는데... 이차원은 그와 함께 있는 NPC의 분위기를 살폈다. 느낌상으로 보아 다른 대륙에서 찾아온 기사단이 그를 구해준 듯싶었다. 그리고 김용훈은 차원처럼 NPC를 실제 사람으로 대하고 있었다. 그편이 자신에게 이득이란 걸 깨달은 모습이었다.

-로이칸님?

김용훈은 이차원이 한동안 말이 없자 재차 그를 불렀다. 이렇게 다시 마주치게 되다니... 그는 로이칸에 차원이 빙의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

-레프!

개장에 갇혀있는 레프를 보자마자 기사단장이 달려갔다. 레프와 그는 오랜 친구인 듯 보였다.

-이럴 줄 알았어. 날 구하러 올 줄 알았다고. 내 가족들은?

-모두 안전하게 있어. 자네만 돌아가면 되니 기운 차리고 일어나게.

오랜만에 만나는 두 사람을 보며 기사단장에게 얻은 용의 발톱과 카릴 수호대장의 방패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때, 김용훈이 다시 로이칸으로 빙의한 차원에게 접근하였다.

-저, 저놈들! 저놈들의 동료가 여기에 오지 않았습니까?

김용훈이 가리킨 곳을 보니 개장 안에 갇혀 있는 울프릭과 코웰, 데린 프랭크 그리고 렌더가 모여있었다.

“저놈들은 왜.”

차원은 놈이 하는 말을 듣고 싶었기 때문에 최대한 짧게 대답하였다.

-저놈들은 로이칸님의 육체와 영력을 탐하는 자들입니다. 제가 절망의 숲에 갇혀 있을 때, 저놈들이 저를 조롱하고 떠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를 조롱한 게 아니라 네 죗값을 치르게 한 거지. 라고 생각하는 이차원이 싸늘하게 대답하자 김용훈은 잠시 당황하더니 개장에 갇혀있는 이차원 동료를 향해 걸어갔다.

퉤엣.

그는 돌연 그들의 얼굴에 침을 뱉더니 비웃음을 날렸다. 프랭크는 순간 화가 나서 울프릭의 검을 뺏으려 하자 데린과 코웰이 그를 말렸다.

-역시 이런 탐욕스러운 새끼들은 제 손에서 처리하는 것이 좋겠죠? 허락만 하시면 당장 처리하겠습니다.

김용훈은 이차원 동료들에게 함부로 상해를 가하면 로이칸의 기분이 좋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로이칸의 실험물체였기 때문이다. 김용훈은 배짱 좋게 웃으며 오리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로이칸의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이차원이 그를 벌레 보듯이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용훈은 이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그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눈알을 굴렸다. 김용훈이 알기로 로이칸은 육체를 그저 고깃덩어리로 알고, 그들에게 수치심을 주는 것은 상관없는 NPC였다. 그렇기에 지금 그의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금방 눈치채었다.

‘뭐지? 이런 걸로는 부족하다는 건가.’

김용훈은 어떻게 해서든 로이칸의 호감을 얻기 위해 전략을 바꿨다. 그는 비장의 무기인 듯 여기 이 자리에 없는 인물의 정보를 꺼내 들었다.

-이차원! 이차원이라는 요정이 있는데 그 새끼가 지금 여기 어딘가에 빙의를 해서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예! 그 개새끼는 같은 동족도 버리고 갈 정도로 인간말종 쓰레기 자식입니다. 지금도 보십쇼. 자기 동료들을 버리고 혼자 살자고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이차원이 자신을 절망의 숲에 버리고 간 것에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이를 바득 갈았다. 어이구, 이거. 화나게 해서 어쩌나, 이빨 다 닳아지겠네. 미안하게.

“그래? 그럼 그런 인간말종 쓰레기 자식을 무슨 수로 막지? 자기 동료도 버리고 간 마당에 이곳에 남아있겠나?”

-예? 로이칸님 그 개새끼는 분명 이곳에 숨어서 로이칸님의 모든 걸 노리고 있을 탐욕스러운 새끼입니다.

“그런가.”

로이칸이 김용훈의 말에 계속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김용훈은 입에 침이 마르고 속이 썩어들어갔다. 이차원과 같은 생각으로 이 정도 친밀도와 관심도면 강령술을 얻을 수 있는 퀘스트를 주어야 할 것인데, 퀘스트가 안 떨어지니까 답답해 미칠 지경인 것이다.

‘지금쯤 퀘스트가 떨어져야 되는데. 왜!’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부하가 한마디를 던졌다.

-로이칸님 혹시 그 거지꼴을 하고 나타난 모험가 얘길 하는 게 아닐까요?

-모험가라뇨?

“갑자기 나타난 거지꼴의 모험가가 저놈들을 뇌물이랍시고 나에게 바쳤다.”

로이칸의 말에 김용훈 머리가 번쩍였다. 드디어 말이 통하는 건가?

-그놈입니다! 그놈이 제가 말한 이차원입니다! 그놈을 잡아야 합니다. 저놈들은 전부 그놈 지시를 받고 일부러 잡혀 온 놈들입니다. 당장 저 새끼들을 죽여야 합니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목청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그런데 개장에 갇힌 이차원 동료들은 로이칸의 몸에 이차원이 빙의했다는 걸 어느샌가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들은 김용훈의 도발에도 여유롭게 웃음을 지으며 관람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이차원의 몸을 통해 이상한 기운이 들었다. 하칸의 존재가 이 게임 세상에서 사라진 듯 엄청난 마나의 이동을 느낀 것이다.

‘그 녀석, 내가 분명히 가만히 있으라고 경고를 했었는데.’

차원이 빙의한 로이칸의 표정이 찡그려지자, 김용훈은 아차, 싶은지 고개를 조아렸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흥분해서 너무 큰소리를 친 것 같습니다.

덕분에 더 주위를 산만하게 떠들어대던 소리가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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