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칭호란 엄청난 업적을 달성해야지 나오는 건데 특수 칭호라니. 불의 지배자란 칭호는 전 세계 단 한 명만 얻을 수 있는 칭호다. 거기다 불속성 저항까지.’
불속성 저항이란, 이전에 독에 내성이 생겼을 때처럼 불에 의한 화상 데미지를 입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칭호에 이어 엄청난 효과를 지니게 된 이차원이었다.
‘일단 아그니토의 폐를 로이칸에게 전달해야겠어.’
이것과는 별개로 이제 아그니토의 폐를 얻었으니 로이칸에게 이것을 전달해야 했다.
‘그런데 이놈을 어떻게 하지.’
이차원은 자신의 방 안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는 하칸을 볼 뿐이었다. 아그니킹의 몸을 폭발시킨 뒤, 기절했다가 다시 살아난 하칸은 기분이 매우 즐거워 보였다. 오히려 아그니 킹과의 전투 때 자신의 온 힘을 다 쏟아부었던 탓인지, 자고 일어난 듯 매우 개운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 자신의 힘에 대해 알게 돼서 그런 건지, 더욱 활기차게 이차원의 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처음엔 안심이 되는 듯하였으나 처음보다 더욱 집을 어지럽히는 모습에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판단이 선 것이다. 네가 아무리귀엽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있는 거야, 이 드래곤 녀석아.
“하칸. 이리로 와 봐.”
하칸은 마치 이차원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날아와 어깨에 앉았다. 그리고 이차원은 하칸을 데리고 곧장 다크혼 세상으로 들어갔다. 현실에 두고 일반인들이 볼 바에야 차라리 다크혼에 들어가서 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더욱 쉬웠다. 이 사실을 믿어줄 동료들도 있고 하니.
“조금만 기다려. 제발 잠깐이면 되니까 사고 치지 말고.”
이차원은 다크혼 세계로 들어가자마자 경비대 몸으로 빙의하였다. 그리고는 바로 속죄의 매듭을 꺼내 하칸을 잠시 묶어 놓아두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속죄의 매듭으로 묶어 놓으면서도 하칸의 힘이라면 이것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는 차원이었다. 이 끈을 풀어버리고 이차원을 찾으러 어디로 날아가 버리거나 하면 찾기는 굉장히 힘들다는 걸 직감상 깨달았다. 거기에 그렇게 되면 앞으로의 여정 또한 날아가 버린다. 이에 이차원은 그런 일을 막기 위해 편의점에서 사온 초콜렛과 초코바를 꺼내 들었다. 하칸은 그것을 보자마자 흥분한 듯이 여기저기 날뛰어 다녔다.
“이거 먹으면서 얌전히 있어라.”
하칸은 이차원이 준 간식을 빠르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때, 로이칸의 부하가 문을 두드렸다. 그 순간 동시에 하칸의 몸이 푸른 빛으로 변하였다.
“적 아니야. 괜찮아.”
이차원, 하칸을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예민하게 구는 것이 꼭 고양이를 닮았네. 이차원은 하칸을 자리에 두고 부하를 따라나섰다. 로이칸은 이차원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장엄하게 서있는 채로 있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로이칸은 이차원에게서 아그니토의 폐를 받아들고 무척 흡족해한 표정을 지었다. 로이칸은 비명의 영약을 로이칸의 폐에 넣자, 기체가 되어 나오고 로이칸은 재빨리 그것을 용기에 담았다.
-이제 이 대륙을 삼키는 것도 시간문제야.
이차원 덕분에 대륙을 집어삼키고 더 많은 육체를 얻을 수 있게 된 로이칸은 지금 상황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블랙우드 덕분에 영력도 채웠고 이제 군대를 완성해서 다음 대륙으로 이동하면 되겠어.
[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 로이칸의 스킬을 얻었습니다. ‘강령술Lv1’ ]
로이칸이 고갤 들어 차원을 보고 웃는 동시에 차원에게 상태창이 떠올랐다.
-됐다.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것을 얻은 이차원이었다.
‘이제 디원을 드디어 내 육체로 만들 수 있게 됐어.’
강령술을 걸으면, 그 육체는 다른 네크로맨서에게 먹히지 않으니까 강령술은 육체의 주인이 되는 행위이기도 했다. 이 말은 즉 차원이 디원의 몸에 최초 강령술을 걸면, 차원이 디원의 몸을 갖게 되는 거였다. 차원이 냉동 장치에 보존되고 있는 디원의 몸에 직접 [빙의]하지 않은 이유는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다. 호감도가 없는 비어있는 몸에 빙의가 가능한지 확인할 수 없었고, 디원의 몸에는 실험을 위한 각종 보안 장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패했을 시 리스크가 너무 커.’
괜히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로이칸은 곧장 디원에 강령술을 걸어 영영 디원의 몸을 얻지 못하게 했을 것이고, 거기에 더해 차원의 동료들을 이미 죽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당장 스킬은 얻었는데.....빙의까지 할 수 있으려나.’
일단 계획한 목표를 이뤄낸 차원은 로이칸에게 [빙의]까지 노려보고 싶었다. 로이칸이 자신에게 대단한 호감도를 표시하면서 웃고 있었기 때문에 잘만 하면 빙의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차원도 로이칸도, 서로 가지고 있는 본심에 서로를 겨누는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이차원만이 이 상황을 다 알고 있는 상태였다.
“비명의 영약이랑 에인 결정을 섞어서 탱크로 함께 쏘는 게 어때? 그럼 더 쉽고 빠르게 약을 퍼트릴 텐데.”
-무슨 수로?
로이칸은 이차원 말에 호기심을 보였다. 이차원이 이를 직접 보여주겠다며 로이칸을 데리고 나갔다. 이차원이 자신이 가진 스킬로 에인 결정을 가공하기 시작하였다. 에인 결정이 빛나면서 녹아내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에인 결정을 가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듣긴 했는데. 너는 대체…
차원이 여태까지 보여준 능력들 중에 이것에 대해 굉장한 호감을 보여왔다. 로이칸은 그런 이차원을 보며 자기 스스로만 알고 있다 생각하는 본심을 떠올렸다.
-역시 이놈을 내 수하로 거느리는 것도 괜찮겠어.
[ 로이칸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 로이칸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차원은 더욱 호감을 이끌기 위해 로이칸에게 기체화된 비명의 영약을 에인 결정 안에 넣었다. 결정의 안을 깎아서 기체를 넣었는데 터지면 안에 있는 기체가 새어 나오는 구조였다. 차원은 그것을 곧장 탱크에 장전해서 저 멀리 보이는 바위산에다 쏘아 대었다.
지이이잉!
굉장한 굉음이 울리며 바위산이 터지는데, 비명의 영약이 기체화 됐을 때의 특성인, 보랏빛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통했다.’
이차원은 로이칸의 표정을 보며 확신했다. 로이칸은 이차원의 생각대로 그 모습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비명의 영약이 퍼지는 속도가 느린 것이 단점이었는데, 폭발력에 의해 기체가 퍼지는 속도는 매우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이놈은 잡아야 한다.’
로이칸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여기서 이차원을 놓쳐버리게 되면 두 번 다시 이런 완벽한 몸을 자신의 수하로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과하지. 겉모습만 보고 널 평가했던 건 경솔했다.
“뭐? 경솔?”
로이칸이 평소 그답지 않게 말하자 이차원이 귀를 의심하며 물었다.
-블랙우드 100마리를 가져왔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말이야.
로이칸은 이차원이 남루한 경비대 몸에 빙의해있어서 그의 능력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네크로맨서인지라 육체의 가치를 빠르게 파악할 때 외형을 중요시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외형만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옷이 더럽거나 몸이 더럽고 남루한 행색을 가진 자들은 실제로도 강한 육체를 가진 경우가 별로 없었으니까 말이다.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네.’
그리고 이차원은 평소 로이칸답지 않은 모습에 언제 반격해올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때, 이어서 상태창이 떳다.
[ 로이칸의 호감도가 최대치로 올랐습니다. ]
[ 로이칸에 빙의할 수 있습니다. ]
‘끝났다.’
이걸로 체크메이트.
***
로이칸의 거처로 돌아온 이차원과 로이칸...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차원 혼자였다. 그는 로이칸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차원은 기분이 좋아져 로이칸의 몸을 움직여보았다.
로이칸의 힘이 백퍼센트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가 가진 영력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마나와는 다르게 다른 생명체들이 이 몸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놈 재산은 얼마나 있으려나.’
차원은 로이칸의 재산을 실제로 확인하고 싶었다. 재산이라 함은 육체와 가진 금은보화들 그리고 아이템들이었다.
“모아둔 아이템을 확인해야겠으니 안내해.”
로이칸으로 빙의한 이차원이 부하들에게 명령하자 부하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안내요? 아니, 아까 다녀오셨으면서 무슨 안내를......
부하가 감히 그의 앞에서 구시렁거렸다. 어쭈.. 이놈 배짱 봐라. 이차원이 한번 매섭게 노려보자 곧장 머리를 조아리며 길을 안내하였다.
‘진작 그럴 것이지.’
이차원은 부하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수많은 금은보화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차원이 로이칸 몸속에 빙의한 줄 모르는 부하는 직접 금고에 있는 아이템까지 꺼내서 보여주었다. 부하는 [빙의]란 스킬의 존재여부도 모르는 듯이 행동하였다. 마치 이 스킬을 잘만 사용한다면 이런 금은보화는 물론 한 대륙을 집어삼킬 왕으로도 승승장구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도 손도 안 댔습니다. 보이시죠?
전혀 눈치채지 못한 부하를 앞에 두고 이차원은 다시 지시를 내렸다.
“디원의 육체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거라.”
이차원은 이번엔 디원 육체가 있는 곳을 안내하라고 하자 부하가 이상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역시나 이건 좀 티가 났나. 로이칸이 위치를 모르고 있다는 전제하에 과감히 물어본 질문이었는데. 하지만 그는 다른 걸 의심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욱 과묵한 로이칸의 분위기가 부하는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이어서 그를 디원의 육체가 있는 보관소로 안내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엔 이차원이 찾던 디원의 육체가 있었다. 얼음관처럼 생긴 칸막이 안에 어렴풋이 비쳐 보이는 얼굴 윤곽과 육체는 어딜 보나 이차원이 그토록 원하였던 디원의 형태였다. 가히 실제로 보니 가슴이 더 두근거렸고 당장이라도 꺼내고 싶었다.
‘이게 바로 캐릭터 기본 능력치로는 사상 최고의 잠재력을 가진 자.’
이차원은 비록 죽은 시체지만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만큼 디원 캐릭터는 다크혼 세계에선 사기 캐릭터였으니까.
‘무조건 내가 갖는다.’
이차원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였다. 인내심이 도달한 것이었다. 그는 곧장 자신이 얻은 강령술을 사용해 일단 저 육체의 주인을 얻으려 했다. 더군다나, 영력이 많은 로이칸의 몸으로 하니 훨씬 더 스킬 숙련도가 높을 것이었다.
이제 손안에 드디어 들어오는구나!
-침입자다! 침입자가 나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