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레드 버드 떼는 차원의 집에서 강력 체력 포션과 군것질거리들을 모두 들고 도망갔다. 보통 몬스터들이 인간을 눈앞에 두고도 외면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상대가 너무 강력하게 느껴지던가, 단순하게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나 몬스터를 잡아먹는 것보다 이득이 되는 상황이 있던가. 게이트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게이트 밖을 나온 몬스터들은 매우 배고픈 상태라는 것을 감안하면, 저들은 하칸과 차원을 상대하기보다 자신들이 챙긴, 체력 포션이 발라져 있는 군것질을 먹는 게 이득이라고 판단한 모양 같았다.
물론, 차원 아주 강한 개체라는 것을 인식한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젠장.”
이차원은 급하게 레드 버드와 하칸을 쫓아가지만 날개를 가진 그들을 쫓아가기엔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빠르게 달리려는 기차라 해도 비행기는 이길 수 없는 것과 마친가지였다. 그렇게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물론 레드 버드가 돌아가는 곳이 자신들이 뛰쳐나온 게이트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그 게이트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거였다. 이곳 주변 게이트들을 일일이 확인해 볼 수도 없고, 정말 난감하네!
그리고 때마침, 박지원에게 전화가 왔다.
“레드 버드 게이트 찾았어요. 분당 야탑역 근처 재개발부지 공사 현장입니다.”
“알겠어.”
“저기!”
이차원이 전화를 끊으려 하자 박지원이 급하게 그를 불렀다.
“그 드래곤, 정체가 뭐죠?”
“그냥 드래곤이야. 끊는다.”
“측정기가 고장 났어요.”
박지원은 왜 그런지 자꾸 전화를 끊으려는 이차원을 붙잡고 말을 이었다. 한시 바쁜 이차원은 신경이 자꾸 분산되는 바람에 하칸을 따라가는 데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제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마나 측정기가 고장 났다구요. 방금 그 드래곤이 그 정도로 강력한 존재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거기다 아직 새끼인 걸 감안하면-”
“알겠으니까 좀 끊자, 제발. 그리고 오늘 본 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이차원은 호들갑을 떠는 박지원의 전화를 끊고 빠르게 레드 버드 게이트로 향하였다.
게이트엔 이미 많은 군인들과 헌터들의 모습이 보였다. 확실히 역세권에서 떨어진 지역이지만, 분당, 판교와 가깝다 보니 헌터들이 많이 있었다. 레드 버드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와중이었나 본데, 굉장히 어수선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다들 왜 안 들어가고 있는 거야?”
이를 이상하게 여긴 헌터가 옆에 있던 헌터에게 물어보았다.
“방금 10마리 정도 되는 레드 버드 떼 뒤로 푸른 빛을 내는 생명체가 게이트로 들어갔습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생명체라 좀 더 논의를 거친 후에,”
헌터 말을 계속하는데 갑자기 술렁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이차원 헌터님!”
이차원이 나타난 것이다.
국가 소속 기관의 S급 헌터 이차원. 게이트가 발생할 지역과 그 게이트에 나올 몬스터를 예측하면, 국가는 길드들에게 경매를 해 그 해당 게이트의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하지만 돌발게이트는 경매를 할 수가 없었다.
국가 소속 헌터들이나, 국가의 외주를 받은 길드들이 곧장 출동해 게이트를 처치하거나, 위험도가 낮은 게이트면 그곳을 지키다가 길드에게 경매를 내리는 방식이었다. 그 말은 즉, 지금은 국가 소속 헌터들이 이 레드 버드 게이트를 관할하고 있고, 이 현장에 차원보다 높은 지휘권을 갖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이차원은 바로 몰려있는 헌터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상황은 제가 통제합니다. 해당 게이트는 25레벨이 넘는 고위험 게이트로 논의할 시간 없습니다. 당장 토벌 시작할 거고 토벌 인원도 제가 결정합니다. 나머지 여기 계신 군인, 헌터분들은 민간인 통제에 힘써주세요.”
이차원의 말에 헌터들이 다시 술렁거렸다. 모두 하나같이 떨려 하는 분위기였다.
“선택받으면 이차원님이랑 게이트 전투 같이하는 거잖아!”
“이차원님, 여기서 제가 차원님 다음으로 레벨도 가장 높고 경력도 가장 깁니다.”
“무슨 소리야. 경력은 내가 더 길지. 차원님, 제가 레벨은 좀 딸려도 전투라는 게 레벨로만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헌터들은 서로 자신을 뽑아 달라고 자신의 경력과 쌓아온 업적들을 들이밀면서 소란을 피웠다. 이거, 더 소란스럽게 만들어버렸네. 이차원은 바빴기 때문에 돌려 말할 시간도 없었다.
물론 평소에도 돌려 말할 줄은 잘 몰랐지만. 결국 이차원의 덧붙인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버렸다.
“토벌 인원은 저와 박지원 헌터 둘이면 충분합니다. 무전기 채널은 열어두세요. 문제 생기면 연락할 테니.”
이차원 말에 분위기 잠시 조용해지더니 여기저기서 불만 섞인 말들이 터져 나왔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강압적으로 통제를 하시면 안 되지. 이봐요!”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이익이 아무것도 없자, 좀 전까지만 해도 찬양하고 애원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이차원은 그런 그들의 말을 싸그리 무시하고 그대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 마침 박지원이 게이트에 도착하였다. 그러자 모든 비난은 이제 아무런 죄 없는 박지원에게 화살이 향하였다.
“국가 소속이면 다야? 이런 식으로 월권 행사를 하면 안 되지.”
“이거 우리가 다 나중에 문제 삼아서 신고할 거야. 당신들이 뭔데 게이트 통제야!”
박지원은 헌터들의 불만을 듣고 대충 상황 파악을 끝내었다. 그리고는 평소의 일 처리 방식대로 자세하게 분석하듯이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하였다.
“돌발 게이트 지휘권은 국가 소속 헌터가 가지며 그중에서도 헌터 등급이 가장 높은 헌터가 지휘권을 갖습니다. 해당 지휘권을 무효화하고 싶으면 해당 게이트에 출동 명령을 받은 헌터들이 만장일치를 해야 하고요.”
박지원은 그 말을 하곤, 자신이 이 게이트에 출동 명령을 받았다는 종이를 당당히 펼치며 그들의 앞에 보여주었다. 마치 경찰이 영장을 청구하여 사건을 조사하는 것과 같은 풍경이었다.
“참고로 전 이차원 헌터님 지휘권을 뺏는 건 반대하니 만장일치는 불가능하겠네요.”
차원과 박지원이 그렇게 해놓고 게이트로 들어가 버렸다.
“방금, 뭔 일이 있었던겨?”
헌터들은 모두 벙찐 상태로 게이트를 바라볼 뿐이었다. 박지원이 위엄 있는 포스로 팩트를 꽂아버렸기 때문에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고 그대로 묶여버린 것이다.
***
차원이 게이트에 들어갔을 땐 이미 레드 버드들 일곱 마리가 게이트 앞에 쓰러져 있었다. 이렇게 만들 헌터라도 들어와 있는 건지 의심이 들었지만, 현장 분위기로 봤을 때는 이차원만이 도착한 상태로 보였다. 다른 국가 소속 헌터가 있었다면 진작에 경매에 넘어간 상태였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단숨에 몬스터들을 처리한 존재는 하나밖에 없었다.
“설마 부화한 지 하루도 안 돼서 27 레벨 몬스터를 떼로 죽여놨다고?”
하칸. 그 녀석밖에 없었다. 이차원이 하칸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게이트 안 어디를 보아도 하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어딘가에서 당해버린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박지원이 이어서 들어왔다. 방금 막 들어온 그녀의 눈에는 차원이 레드 버드 일곱 마리를 처치한 것처럼 보였다.
“이차원님 벌써…며칠 사이에 더 강해지셨군요. 레드 버드를 이렇게 한 번에 잡을 수 있게 되다니...”
“아니 이건 내가 잡은 게 아니고,”
박지원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차원이 처리하지 않았다면 대체 누가... 이차원이 설명하고 박지원이 눈치챌 틈도 없이, 콰아앙! 소리가 들려왔다.
차원은 빠르게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그의 눈에서 오색찬란한 빛들이 들어와 시야를 밝혀주었다. 그곳에 있는 하칸의 몸은 매우 푸른 빛이 아름다운 수정 구슬처럼 발산되고 있었고 눈동자 또한 푸른 안광으로 변해있었다. 로이칸의 강령술에 지배당하는 육신들이 붉은 안광을 뽐냈다면, 하칸은 완전히 다른 푸른 빛을 뽐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로이칸은 죽음을 다스리는 지옥에서 온 불을 지펴 올리고 있었다면, 하칸은 순수한 영혼을 이끌어내듯이, 마치 등대와 같은 빛을 내뿜으며 그들의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뭔 짓을 한 거냐.”
이차원은 눈앞의 상황을 보고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레드 버드들도 하칸의 존재에 매우 당황하는 듯 몸을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얼마나 놀라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냐면 날개에 있는 불씨들이 꺼질 정도로 보였다. 이미 저들이 가져간 먹거리들은 바닥에 내려져 있었고 하칸은 그들 앞에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비록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하칸은 매서운 기운을 날리며 이곳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반달 모형의 파형으로, 뜨거운 마그마가 하칸 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이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인 레드 이글이 나온 것이었다. 레드 버드는 까마귀가 불사조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면, 이글은 말 그대로 독수리의 몸을 뜨거운 마그마가 두르고 있는 형태였다.
힘 역시 차원이 달랐다. 레드 이글은 무서운 불을 밝히며 레드 버드를 이끌고 있었다. 하칸은 그런 모습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레드 이글과 경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어딜 감히.”
차원은 곧장 [메테오]를 시전하였다. 그러면서 게이트 안에 메테오가 떨어지면서 레드 이글이 만들어낸 마그마 파형을 눌러 막는 데 성공하였다. 자신을 도와주었다는 걸 아는 모양인지 하칸이 차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차원의 몸에 주체할 수 없는 힘이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니 차원의 몸이 푸른 빛으로 빛났다. 하칸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같은 색이었다.
‘후. 이게 하칸의 힘인가.’
하칸이 차원에게 마나를 엄청나게 실어준 것 같았다. 이차원의 몸은 확실히 가벼워지며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어왔다. 게임을 통해 경험해 본 적이 있지만. 실제 자신의 몸으로 느끼게 되자, 신비로웠고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이것이 2D와 3D의 차이인 건가. 이차원이 하칸을 쳐다보자 하칸도 기분이 좋은 듯 높고 청아한 소리를 내며 근처의 레드 버드들을 처리해나가고 있었다.
‘날 아군으로 인식한 모양이군.’
차원은 하칸의 힘을 받아 다시 한번 [메테오]를 시전하였다. 그러자 확실히 달랐다. 레벨 4에는 버금가는 메테오가 게이트 안에 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유성의 크기와 개수, 온도가 차원이 현재 가진 레벨 2의 메테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파워였다.
“아…”
박지원은 이번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입을 벌리고 보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