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블랙우드라니. 하.”
이차원을 지원 나간 헌터한테 그가 블랙우드를 생포한다는 소식을 들은 해리 캐리가 웃어 보였다. 이번엔 냉소적인 웃음이 아니라 이겼다는 안도감에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속으로는 이차원에 대한 경쟁심과 적대심으로 가득 차 있는 해리 캐리였기에 취하는 행동이었다.
“고작 블랙우드로 농경지에 출몰하는 몬스터를 잡겠다니. 아이언 돼지를 잡은 저희가 확실히 승기를 잡은 것 같습니다.”
레벨 29짜리 아이언 돼지의 시체 60여 마리를 트럭에서 내리는 비서도 해리 캐리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해리 캐리는 자만심의 웃음을 입가에 지으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 드는 듯 자랑스럽게 물어보았다.
“아직까지 성과율은 내가 탑이지?”
“네. 이런 속도라면 정지 기간도 곧 풀릴 것 같습니다.”
사실 해리 캐리는 에인 결정을 모아 판매하는 사업을 주업으로 했었는데, 한동안 사업에 집중하느라 국가 소속 협회에서 차원과 같이 제재가 들어왔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과제를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 대형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양가 높은 몬스터, 즉 아이언 돼지를 잡아서 제공하고 있었다. 아이언 돼지는 일반적인 돼지 몸집의 5배에 달하는 돼지로 그램당 영양가 또한 일반 돼지보다 높았기 때문에 식량난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거기에 그만큼 잡기도 힘든 몬스터였기에 협회에서도 인정을 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해리는 그만큼 어깨가 더 펼쳐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어깨가 태백을 이룰 거 같이 힘이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죽음의 나무란 게 진짜 있어서 농경지를 만들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돼지야말로 실질적인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어.’
만에 하나 블랙우드가 농경지에 돌발적으로 나오는 게이트이고, 그리고 그곳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를 지배할 수 있다면 차원의 말이 효율적이기도 했다. 곡식을 재배하는 것에는 헌터들이 쓰이지 않고, 목숨을 걸지 않고도 식량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해리 캐리 자신도 이차원의 말이 사실이 될까 봐 내색은 안 했지만 자신의 위치가 이차원과 완전히 뒤바뀔까 봐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과제를 이차원에게 묻혀질 뿐더러 뺏길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히 내가 이겼다. 역시 말도 안 되는 계획보단 실천을 함으로써 보여주는 결과물이 더 중요하지.’
해리가 이차원을 꺾었다는 자아도취에 빠져 있을 때, 협회 관리인이 다가왔다.
“해리 캐리님. 이번에도 아이언 돼지를 잡아 오셨군요.”
협회 사람 하나가 해리 캐리와 비서가 돼지 시체를 옮기는 걸 발견하고 곧장 달려온 것이다. 관리자의 표정은 둥글게 쳐진 눈매를 씰룩거리면서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역시 나무니 뭐니 해도 고기가 최고죠.”
“그렇죠. 혹시 얘기 들으셨어요?”
해리는 자신이 이차원을 이겼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관리인에게 물어보았다. 관리인은 무엇이 좋은지 해리의 말에 맞장구를 옳다구나 쳐주며 해리를 북돋아 주었다.
“네. 다들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혹시나 해서 우리가 모르는 블랙우드의 새로운 성질이 있나 해서 조사를 다시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구요.”
협회 사람의 말처럼 블랙우드보다 레벨이 높은 게이트가 농경지를 덮치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 뻔했다. 논이나 밭에 대놓고 블랙우드를 두면 자기들 멋대로 뿌리를 심어대 오히려 역효과를 주는 상황밖에 초래하지 않았다. 추가로 애초에 이차원이 말했던 죽음의 나무라는 것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협회 사람들 또한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뭐, 블랙우드가 생명체에 반응을 하기도 하니까 끝까지 지켜보죠.”
해리, 이제는 여유가 생겼는지 애써 이차원을 감싸는 빈 껍데기밖에 없는 행동을 취하였다.
“역시, 일도 잘하시면서 성격도 좋으셔라. 이런 분이 왜 이차원처럼 안 뜨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관리인은 그런 해리 캐리를 속도 없이 좋아하였다.
“별 과찬을. 일단 상황을 더 지켜보자고요.”
해리는 씨익 입가를 찢듯이 웃었다.
***
[ 로이칸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이차원이 캡슐에다가 블랙우드를 생포에 넘겨주자 로이칸의 호감도는 곧장 올랐다. 레벨 10도 아니고 30짜리 몬스터를 주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상상했던 것 이상이야. 그냥 버리기 아까운 몸인데.’
로이칸의 인생 중에 레벨 10 이상의 몬스터를 가져온 모험가는 이차원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이차원 정도로 강한 모험가를 만난 적이 없던 로이칸은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고민했다. 평소였으면 적당히 그들을 이용하다 죽여서 강령술로 이용해왔을 텐데 이차원의 경우는 달랐다. 그를 죽여서 강령술로 이용하는 것보다 그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 더 큰 이득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필요한 건 아그니토의 폐 아닌가?”
-그걸 어떻게......?
게다가 이차원은 로이칸의 계획을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한 영민함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비명의 영약. 그거 기체화시켜서 사람들을 중독시키려면 아그니토의 폐가 필요하니까.”
아그니토의 폐는 그곳에 액체를 넣으면 금방 증발되어 기체가 되는 아이템이었다. 그렇기에 영약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할 중요한 아이템으로 꼽혔다.
“비명의 영약은 다 만들었겠고. 이제 남은 건 기체화 작업 아닌가?”
로이칸은 이차원의 영민함에 다시 한번 놀라더니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서? 그 폐도 네가 구해주겠단 거냐? 그런데 어쩌지. 그 아이템은 이 대륙에 없거든.
“알아. 시간은 걸리겠지만 구해줄 순 있어.”
분명 당황하여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댈 이차원의 모습을 기대했었는데... 이차원의 예상 못 한 모습에 로이칸의 눈이 오히려 휘둥그레졌다. 자신도 구하기 힘들었던 아이템을 이차원이 선뜻 구해주겠다고 그가 먼저 약속했기 때문이다.
[ 로이칸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로이칸은 그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이 가졌다. 한편, 이차원도 그냥 가만히 그의 도움을 주기만 하지는 않을 예정이었다.
“그냥은 못 줘. 나도 원하는 게 있거든.”
-원하는 게 뭐지?
“디원의 육체.”
이차원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로이칸이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차원에겐 강령술이 없었기 때문에 그 육체를 준다고 한들 그걸로 무엇을 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함부로 협상을 하는 모습이 가소로우면서도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거래는 간단해. 디원을 넘기면 아그니토의 폐를 줄게.”
로이칸은 이차원의 거래 제안에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흔쾌히 허락을 하였다.
-좋다.
어차피 로이칸은 차원이 아그니토의 폐를 구해다 주면 디원의 육체를 줄 생각은 없었기에, 쿨하게 거래를 받아들였다. 거기에 이차원이 실패라도 한다면 그에 대한 책임으로 이차원을 자기 것으로 다스릴 생각까지 품고 있었다.
“잠깐 보여줄 게 있으니 따라와.”
거래를 성사시킨 이차원이 갑자기 로이칸을 어딘가로 데리러 가려고 하였다. 로이칸은 이차원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듯 보였으나 우선 따라가기로 했다. 어차피 자신이 원하는 것도 있고 하니 자신에게 피해를 줄 거 같지 않아 내린 판단이었다. 그렇게 따라가다 멈춰선 곳 앞에는 다름 아닌 탱크가 있었다.
-이건가? 내 부하들을 묵사발 낸 게?
이차원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전, 프랭크에게 배운 대로 포를 장전시키고 발사하였다.
콰아아앙!
바위산 하나가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한 줌의 재가 돼버린 모습이 보였다.
[ 로이칸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로이칸은 처음 보는 물체의 처음 보는 위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이것들은 뭐지?
로이칸, 탱크뿐만 아니라 그 뒤에 있는 SUV와 버스를 보고도 무척 놀란 표정이었다.
[ 로이칸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 로이칸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하나같이 이 세계에서 볼 수 없던 물건들이다. 이게 무슨 물건들인지 고민에 빠지던 때, 이차원이 탱크에서 내려왔다.
“이걸 이용해서 비명의 영약을 발사하면 퍼지는 속도가 더 빠를 거야. 그만큼 육체를 더 빨리 얻을 수 있을 거고.”
-이걸 나에게 빌려주겠단 건가?
“물론.”
로이칸은 이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였다.
‘애초에 계획했던 속도보다 세 배, 아니, 네 배는 앞당길 수 있다.’
차원이 아그니토의 폐까지 구해주고, 탱크까지 빌려주면 자신의 계획이 거침없을 것 같았다.
[ 로이칸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호감도는 또 상승했다.
“당신도 확실히 해. 디원 육체 진짜 내놓을 거지?”
물론 이차원은 로이칸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차원이 디원의 시체를 달라고 강조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당장 로이칸이 디원의 시체에 강경술을 거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차원이 디원의 육체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한 로이칸은 계속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라도 디원에게 강령술을 걸지 않을 테니까. 자신이 강령술을 걸어버리면 차원이 움직일 동기가 사라져버리니 로이칸도 마지막 순간까지 디원의 육체에 강령술을 걸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시간은 벌 수 있어.’
이차원은 로이칸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차피 대답은 정해져 있을 것이었다.
-약속만 잘 지켜준다면 나도 약속을 지키지.
세상 뻔뻔하게 거짓말도 잘하네.
***
이차원은 박지원을 불러 아그니토를 잡으러 가기 전 샤워를 하며 로이칸에 대해 생각하였다. 그동안 쌓여있던 피로들이 있었는지 따뜻한 물이 몸에 닿자마자 녹아내리는 듯하였다.
‘지금쯤이면 디원의 육체를 얻어 카를리아 대륙으로 출발할 줄 알았건만. 확실히 다른 대륙에서 넘어온 캐릭터라 그런가 생각보다 호감도 올리기가 힘들군.’
확실히 로이칸은 다른 대륙에서 넘어온 캐릭터이다 보니 호감도를 얻기가 힘들었다. 원래 계획이라면 지금쯤 디원의 육체를 얻어 카를리아 대륙으로 출발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앞으로 좀 더 속도를 내야겠어.’
이차원은 샤워를 마친 후 머리를 털며 밖으로 나가자 화들짝 놀랐다. 하칸의 알이 부활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게... 하칸이라고?”
눈이 매우 크고 아담한 사이즈지만 용의 형태는 갖추고 있었다. 푸른색 오묘한 빛을 내며 자그마한 날개를 파닥거리며 공중에 날아다니고 있는 작은 생명체. 하늘을 날아다니며 포효를 지르는데 그 소리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높고 떨리는 음정이었다. 용은 차원과 눈 마주치더니, 차원의 주변을 막 날아다녔다. 차원은 용한테 뿜어져 나오는 엄청 강한 게이트 에너지를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와.”
게임 할 때 한 번 봤었고, 실제로 이 에너지를 느끼니 미칠 것 같은 차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