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블랙우드 게이트로 들어가자 게이트 특유의 음침한 냄새가 이차원의 코를 자극했다. 차원은 블랙우드를 처리하기 전 로아칸의 계획에 대해 생각하였다.
‘영력을 얻은 다음 왕국 하나 삼키고, 그 삼킨 왕국의 국민들을 수하로 삼고 그걸로 또 다른 왕국을 삼키고. 그런 식으로 군단을 만든 놈이 로이칸이다. 첫 번째 왕국을 삼키기 위해 비명의 영약을 사용했고.’
비명의 영약은 바닥에 뿌리면 가스처럼 널리 퍼져나가는 성질이 있다. 이 가스를 마신 게임 플레이어들은 레벨에 따라 그 시간은 다르지만 목숨을 잃어나갔다. 세계관 상으로 금지의 영약인데, 로이칸은 이것을 준비해 이 대륙으로 넘어온 상태인 것이다.
‘이 대륙 바로 다음 대륙인 카를리아 대륙만 해도 이 가스로 죽는 사람이 소수겠지만 지금 대륙 사람들은 레벨이 낮아 대다수가 당할 수밖에 없어.’
차원이 로이칸의 계획을 알고 있다는 것은, 로이칸의 호감도를 빠르게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해 내는 게 더욱 빨랐다. 그렇게 로이칸의 호감도를 올려 강경술을 배우면 네크로맨서가 될 수 있고 로이칸처럼 군단을 일으킬 수 있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영력을 최대한 모아놓을 필요가 있어.’
이차원은 게이트를 걸으며 계획을 정리했다.
‘우선 블랙우드를 캡슐에 담아 로이칸의 호감을 올린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비명의 영약을 다른 왕국에 사용하는 것에 관한 조언과 도움을 주면서 단번에 호감도를 올린다.’
쉽게 말해 로이칸을 돕는 척, 그의 계획을 방해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이런저런 생각을 마치는 차원의 앞에 블랙우드가 등장하였다. 팔과 다리가 있는 통나무 몬스터라 그런지 걷는 속도도 느리고 걷는 폼도 아장아장 걸어왔다. 처음 접하는 헌터들이었다면 이게 무슨 31짜리 몬스터냐고 깔보며 비아냥거렸을 게 틀림없었다.
‘게임에서만 보다가 실물은 처음이군. 생각보다 아장아장 걷네.’
이차원은 이 몬스터 또한, 게임으로 다크혼을 접했던 시절에 많이 상대해봤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에게 많은 역경과 고난을 준 몬스터인데, 차원은 이놈의 해법을 알고 있었다.
‘어찌 됐든 저 몸뚱이는 나무다.’
이놈들이 지금은 포식자의 눈깔과 표정을 하며 차원에게 다가오고 있지만 몸은 나무기 때문에 불을 매우 무서워하는 성질이 있었다. 물론, 불을 매우 무서워하는 성질에 대해서는 헌터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미 헌터와 게이트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 공략법들까지 공유가 잘 되는 세상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차원의 경우는 달랐다. 이차원은 저놈들을 생포해서 캡슐에 넣어야 했고 그래서 공략법과는 반대로 다른 전략을 구사해야 했다.
그가 고른 방법은 바로 [메테오]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블랙우드는 땅 위에서 공격을 하기도 했지만 보통은 토굴을 파 땅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다, 그러다 인간들이 나타나면 땅 아래에서 줄기를 꽂고 공격하는 패턴도 있는 아주 귀찮은 녀석들이다. 그래서 이차원은 불을 무서워하는 그들이 아예 땅 위로 못 나오게 할 방법을 생각한 거다. 물론 직접 맞춰버리면 불에 타 죽어버리니 간접적으로 맞춰야 한다. 그만큼 컨트롤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이윽고 이차원은 [메테오]를 사용하여 게이트 안에 불을 질렀다. 그 모습에 다가오던 블랙우드들은 불을 피하기 위해 땅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좋아 아직까진 순조로워.’
그리고 역시 차원의 공격으로 곳곳에서 메테오가 떨어지자 불을 무서워하는 성질을 가진 놈들답게 땅속에서 도통 나오지 못하였다. 은신처가 매우 깊어서 메테오에 직접적인 피해를 받지는 않았지만 토굴에 몸을 숨기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 것이다.
‘다음 작업 들어가 볼까.’
블랙우드들의 발을 묶는 데 성공한 이차원은 곧장 인벤토리에서 시멘트를 꺼내 게이트 안에 여러 개 있는 토굴의 입구에 시멘트를 바르기 시작하였다. 메테오를 떨어뜨리고 시멘트를 바르고 다시 또 메테오를 떨어뜨리는 작업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게이트 안 토굴의 대부분 입구가 막혀졌다. 토굴의 모습은 마치 사우나에 있는 황토 불가마와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마무리 작업 들어간다.”
이차원은 토굴 안에 있는 블랙우드에게 말하였다. 그는 인벤토리에서 나무 땔감을 꺼낸 뒤 게이트 안을 돌아다니며 땔감을 뿌리고 다녔다.
준비를 마친 이차원은 그들에게 작별 인사와 동시에 다시 스킬 [메테오]를 사용하였다. 뜨겁게 불타오르는 메테오가 하늘을 수놓았다. 이번엔 세게 떨어뜨리면 기껏 만든 화로와 땔감이 부서질 수도 있으니 최대한 신중하게 천천히 땔감 위로 내려놓았다. 시원하게 퍼부어 내릴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하니 메테오 운석의 하나하나 무게가 팔에 실리는 듯했다.
‘이게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상황이네.’
이차원은 손을 부르르 떨며 신중을 기했다. 어느덧 게이트 곳곳에 메테오가 떨어지고 땔감에 불이 붙으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게이트 전체에 불이 번지기 시작한다. 땔감의 영향 때문인지 메테오의 열기로도 닿지 않는 깊숙한 곳까지 불길이 뻗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 그냥 땔감이 아니라, 몬스터의 부산물이라 불길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사우나가 따로 없네.”
순식간에 게이트 안 전체가 열에 휩싸이자 이차원의 몸에서도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가 열에 의해 기절하면 안 되니 잠시 게이트 밖으로 나가 상황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이윽고 차원의 눈에 떠오르는 상태창이 빠르게 지나갔다.
[ 블랙우드가 극한의 공포를 느낍니다. ]
[ 블랙우드가 상태이상, 공황장애에 걸렸습니다. ]
[ 블랙우드가 극한의 공포를 느낍니다. ]
[ 블랙우드가 상태이상, 공황장애에 걸렸습니다. ]
[ 블랙우드가 극한의 공포를 느낍니다. ]
[ 블랙우드가 상태이상, 공황장애에 걸렸습니다. ]
…
‘곧 기절하겠군.’
몬스터의 공황장애는 기절, 흥분 등 여러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블랙 우드의 공황장애 상태는 흥분에서 기절로 빠르게 바뀌었다. 그 시각 토굴 안에선 뜨거운 열에 반응을 느낀 블랙 우드들이 토굴 안에 불이 난 줄 알고 매우 겁먹어 탈출하려 하였다. 그러나 토굴 입구가 막혀있는 바람에 공황장애에 빠졌고 매우 흥분하다가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다는 공포에 전부가 기절하였다.
게이트 밖에서 시간과 상태창을 보며 상황을 확인한 이차원은, 다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서 시멘트벽을 깨부수었다. 혹여나 막무가내로 깨다가 안에 있는 블랙우드에게 데미지가 가면 안 되기에 조심히 부숴나갔다. 그 안은 이미 블랙 우드들이 벽을 깨려고 많은 시도를 해놨기에, 다행히 깨기에는 쉬웠다.
‘타파이트 금속을 골자로 하고, 정령의 모래를 섞지 않았으면 토굴 입구가 박살 났겠지.’
정령의 모래를 사용하면 강도가 증가하기 때문에 이차원은 미리 시멘트에 정령의 모래를 섞어 놓았던 것이다. 정령의 모래는 다크혼 세상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챙겨두기 쉬웠다.
그리고 토굴 입구를 부수고 들어가자 예상대로 기절한 블랙우드가 널브러져 있었다. 차원은 기절한 블랙우드를 조심스럽게 캡슐에 넣기 시작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선물이 곧 도착할 테니.’
***
“뭐야, 잡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이차원을 지원 나온 헌터가 그의 행동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말한다. 그가 보고 있는 이차원의 모습은 그저 허공에 삽질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헌터라면 어서 빨리 몬스터를 잡고 그들에게 나오는 부속품이나 보상을 받는 것이 목적인데, 이차원은 전혀 그럴 행동을 취하고 있지 않아 하였다. 말 그대로 게이트 안에서 농땡이나 부리고 있다는 듯이 느껴졌다.
“이럴 거면은 난 여기 게이트에 왜 온 거야?”
이차원은 국가에서 주요한 연구 사항이었고, 정부에서 박지원이 레벨 30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헌터에게 지원을 나가라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급하게 서울에서 진주까지 왔는데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니. 레벨 30인 블랙우드를 혼자 잡겠다면서 그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 이차원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오늘 안에 처리하는 거 맞죠?”
헌터는 밖에서 그저 같이 바라보고 있을 뿐인 박지원에게 물어보았다. 박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차원님에겐 저희로선 생각하기도 힘든 일들을 해내고야 마는 분이세요.”
박지원은 애초부터 이차원을 편안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헌터는 이차원과 함께 업무를 해낼 줄 알고 왔다가 더욱 김이 빠진 듯한 표정이었다. 그때, 헌터의 는에 들어오는 광경이 있었다. 이차원이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드디어 이차원의 화려한 모습을 보나 싶었더니, 벽에 웬 이상한 걸 바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헌터는 그것의 정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메테오랑 시멘트의 조합이라.”
원래 정통적인 블랙우드 사냥법은 블랙우드의 토굴에서 블랙우드를 빼내어야 한다. 블랙우드가 땅속에서 줄기를 쏟아내면 상대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차원은 정반대로 토굴에서 블랙우드가 못 나오게 막더니 이젠 아예 토굴 입구를 시멘트로 막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헌터는 어이가 없었다. 어이가 없을뿐더러 저런 방식으로 블랙우드를 잡는 헌터는 본 적이 없기에 한편으로는 어떻게 할지 궁금한 마음도 들었다.
“설마 저거 지금......생포하려는 거야?”
그리고 이차원의 행동을 관찰하던 헌터는 지금 그의 행동이 몬스터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생포에 목적이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거기에 헌터는 문득 박지원이 헌터 협회에서 말했다는 내용을 떠올렸다. 그 생각은 다음의 생각으로 연계가 되며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혼자만의 생각이 끝나자 헌터는 어이 없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협회가 말한 나무가 블랙우드였어?”
협회의 말에 의하면, 이차원이 빈곤 국가들의 식량난을 해소할 만큼의 농경지를 만들겠다고 했었다. 그 말을 한 이차원을 헌터는 매우 훌륭하게 생각을 했다. 그는 훌륭한 사람은 그릇부터가 다르다고 또 엄청난 계획을 가지고 해결해 나갈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그의 행동을 보니 그의 기대에 한껏 못 미친 모양이었다. 뭐, 이 헌터의 마음에 들고자 하는 일도 아니었기에 이차원은 신경도 쓰지 않을 테지만, 헌터에게는 실망감까지 들었다.
“고작 저 정도 인간이었다니.”
차원은 레벨 30을 최단기간에 도달한 인간. 그 인간이 했던 말과 생각치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행동에 괜히 화가 난 듯하였다. 박지원은 그런 헌터를 보며 말하였다.
“멋대로 판단하지 마요. 사람의 속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