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박지원은 이차원에게 앞으로의 일을 설명해주기 앞서 이 과제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거듭 강조하였다.
“전 세계는 지금 잦은 게이트 출몰로 인해 식량난에 처해있어요. 선진국들이야 A급이나 S급 헌터를 고용해 게이트가 발생하는 것을 막지만 예산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은 헌터를 고용할 수 없어 농가나 축가가 파괴되는 걸 지켜볼 수밖엔 없어요.”
이 사실은 현재에선 화제로 불리고 있는 사실이었다. 돈 있는 나라는 쭉쭉 잘나가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그저 당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화가 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TV로도 보도가 잘 되었고 어딜 가든 한 번씩은 접하게 되는 기삿거리였다.
“그 문제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인도적 차원이랍시고 헌터 파견을 한다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본토에서 속출하는 게이트를 막기엔 한계가 있어요. 결국 선진국도 자국 게이트를 막고 남는 인력을 보내주는 거니까요.”
“그래서 지금 나보고 식량난을 해결할 방안을 마련하는 건가? 그걸 해결하면 정지 기간을 단축시켜주겠단 거고?”
“네.”
박지원은 이차원의 동태를 살폈다. 이마에 손을 얹으며 얼굴을 쓸어 담는 모습이 생각에 깊이 빠진 모습으로 보였다. 박지원은 그의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하루 만에 헌터 자격 정지가 되고 그걸 풀기 위해선 나라에서도 힘겨워하는 문제를 해결하라 하니 머리가 아프지 않고는 못 배길 상황이지 않은가. 박지원은 이차원을 보며 생각했다.
‘역시 아무리 강한 헌터라고 해도 이런 일에 닥치면은 약해질 수밖에 없구나,’
몸이 힘들어서 일을 못 하는 것보다 마음이 힘들어서 일을 못 하는 경우가 과반수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박지원은 이차원을 힘을 실어주기 위해 그를 다독거려 주었다.
“어려운 건 알지만 저도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당장 한 사람이 식량난을 해결하는 것도 어렵다는 걸 알기에 박지원은 그를 나아갈 수 있게 밀어주려던 것이다. 그렇게 그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기 위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정작 이차원의 행동이 이상했다. 팔을 위로 올리더니 박지원을 거부하는 듯한 표현을 하였다.
‘이 상황에서도 강한 척을 하려고 하는구나.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네.’
그렇게 생각을 하며 박지원은 감명을 받았다. 그런데...
“징계 금방 끝나겠네.”
“네?”
별일 아니라는 듯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차원의 말에 박지원은 당황하였다. 이차원은 약해 보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쉬운 일을 맡게 된 사람처럼 가뿐하게 몸을 움직였다.
“이차원 님, 이건 그렇게 쉬운 문제가...”
“나 금방 나갔다 올게.”
해결할 방법이 바로 떠오르는 차원은 그렇게 사무실을 나섰다. 박지원은 그런 이차원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대체 뭐야, 저 사람...”
박지원의 속마음이 들려오지 않아도 들려오는 건 기분 탓일까. 어쨌든 이차원은 다시 다크혼 세계로 향하였다.
***
차원은 로이칸이 마련해준 거처에, [창조] 스킬로 만들어낸 캐릭터를 두고 있었다. 그래서 빠르게 게임에 접속할 때마다 경비대의 몸으로 빙의할 수 있었다. 당장 이차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이차원 일행을 죽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로이칸이 쉽게 그들을 건들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 그들을 죽여봤자 득이라곤 차원이 데리고 있는 부하들의 총이라는 무기밖에 없었으니까. 로이칸에게도 차원이 실제 레벨 10의 몬스터 100마리를 데려오는 게 실효성이 있고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컸다. 헌데...
-실망이군. 100마리 생포는 무리였나.
로이칸은 이차원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대놓고 그를 비웃었다. 그럼 그렇지, 이 녀석도 한낱 모험가에 불가할 뿐이었잖아. 로이칸이 뒷말을 이을 새도 없이 이차원이 끼어들었다.
“레벨 10이 아니라 30짜리 몬스터도 잡아줄 수 있어.”
말 하나는 배짱 있네. 로이칸은 그런 이차원을 보며 또 코웃음을 날렸다.
-이 대륙에 레벨 24를 넘는 몬스터도 없지만 있다 해도 그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가진 모험가는 없다. 이번 일도 끝마치지 못한 네가 할 이야기는 아닌 거 같은데.
이차원 역시 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그 총이라는 무기로 100마리를 잡는 건 쉽겠지만 생포는 다른 문제다. 내가 너에게 부탁한 건 죽은 시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몬스터라는 걸 명심하라고.
“두고 보자고, 그러니까. 그리고 당신 죽음의 나무 전문가지?”
-그건 갑자기 왜 묻는 거지?
“그거 옮겨 심을 수 있나? 저것도 나무잖아.”
절망의 숲에 심어져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보면 반응하는 죽음의 나무. 이차원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 있는 물체였다. 차원은 그것들을 현실 세계로 가져가 식량난을 겪는 나라에 옮겨심을 생각이었다. 숲 전체에 있는 나무들을 옮겨, 농경지를 만들고, 그곳에 게이트가 출몰한다면 어떻게 될까. 몬스터가 등장하면 곧장 죽음의 나무들이 그들을 속박할 것이다. 죽음의 나무가 생명체에 반응하지만 식물에는 반응하지 않는 걸 역이용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수확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안정의 종이 있다면 큰 문제 없겠지. 역시 숲을 없애지 않길 잘했군.’
현실세계에 위치하지도 않는 죽음의 나무를 이용할 생각에 내심 이차원의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나무들만 옮겨서 울타리만 제대로 치면 식량난도 해결된다.’
저 나무들을 다 옮겨서 아주 넓게 울타리를 치고 그 울타리 안에도 곳곳 옮겨 심을 수만 있다면 몬스터로부터 완전히 안전한 지대를 만들 수 있고, 농사를 지을 수 있고, 그에 따라 식량난이 해결될 수 있을 거다. 이에 로이칸은 아주 흔쾌히 대답해주었다.
-옮기 수야 있지. 네가 죽는다면.
나무를 옮기는 것뿐인데 목숨을 줘야 된다고? 이차원의 표정을 본 로이칸이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저 나무는 보통 인간이 다룰 수 없거든. 나무를 옮기고 싶으면 죽거나 몬스터가 되거나 둘 중 하난 선택해야 할 거야.
로이칸은 이차원이 어떤 선택을 할지 굉장히 흥미롭다는 듯 이차원을 히죽거리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차원은 기대를 저버리듯이 그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선택지가 그것만 있진 않을 텐데.”
이차원의 아리송한 말에 로이칸은 웃음이 멈추고 단호하게 눈을 내리깔며 말하였다.
-다른 방법이란 없을 텐데.
“글쎄.”
이차원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게임에서 나갔다. 사실 이차원은 로이칸에게 네크로맨서 기술을 배운 뒤, 나무를 옮길 생각이었었다. 그러니 지금으로선 나무를 옮겨 심을 수 있다는 걸 확인만 해도 충분했다. 그 뒤 현실로 돌아온 이차원은 곧장 박지원에게 전화를 걸어 위풍당당하게 말을 꺼냈다.
“방법 찾았어.”
***
국가 기관 헌터 협회.
그곳의 공기는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항상 차가운 분위기도 아니지만 이곳이 지금 헌터 협회인지 이글루 안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한 곳에만 꽂혀있었다. 박지원만이 눈에 불을 켜며 열을 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럴 게 분위기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니까. 박지원은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싸늘한 반응에도 말을 이어갔다.
“그 나무를 심으면 농가에 나타난 몬스터를 효율적으로 제압할 수 있고-”
“그만! 더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남자가 박지원의 말을 끊고는 회의를 정리한다.
“세상에 그딴 나무가 어딨다고. 쯧. 나무로 몬스터를 죽인다니, 여기가 무슨 판타지 세곕니까?”
남자의 말에 사람들 모두 고갤 끄덕이며 하나둘 의자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나가려 하였다.
박지원은 자신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듣지 않고 있던 그들에게 질문을 내던졌다.
“그럼 당신들의 방법은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박지원의 말에 나가려던 사람들, 모두가 굳은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박지원도 이차원과 똑같이 패기를 두른 말과 표정으로 그들을 압도해갔다. 이차원 전용 비서 아니랄 까 봐 모습도 점점 이차원과 동일시되고 있는 듯하였다.
“지금까지 농경지를 보호한답시고 포탑도 설치하고 군부대도 설치했지만 결국 어떻게 됐죠? 강한 몬스터가 출몰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았나요? 이 나무를 이용하면 몬스터를 토벌해 고기를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몬스터에 의해 침략받지 않는 농경지를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판타지 세계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구요.”
박지원의 강하고 날카로운 말들이 그들의 가슴을 휘젓듯이 찔러대었다. 그 모습 때문인지 회의장 가운데 앉아있던 S급 헌터 해리 케리가 박지원을 흥미롭게 불렀다.
“박지원씨, 그 나무 정말 구할 수 있습니까?”
박지원은 호기롭게 당당히 대답하였다.
“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차원씨가 그 나무를 구해온다는 조건하에 효율을 따져보도록 합시다.”
해리는 웃으면서 박지원의 제안에 거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해리의 행동에 나가려던 사람들 모두가 엉거주춤하며 엉덩이를 붙이고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착석하자 해리는 질문을 던졌다.
“나무로 몬스터를 죽이는 것과 지금처럼 빠르게 몬스터를 잡아 고기를 제공하는 것 중 무엇이 더 합리적이라 봅니까? 쌀과 고기, 그들이 무엇을 더 원할까요?”
갑작스럽게 빈틈을 파고들어온 해리의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이 들어올 거라고는 예상도 못 했는데... 박지원은 예상치도 못한 질문에 크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건......”
박지원은 앞에서와는 달리 전혀 확답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럴 것이 둘 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해야 더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박지원이 쉽게 말하지 못하자 그때다 싶어 다른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왔다.
“원래 사람이 자기 그릇에 맞지 않는 자리에 오르면 헛발질도 하고 그러니 이해하시죠.”
“내 말이 그 말입니다. 인기 좀 얻었다고 정신머리 빠져서는.”
이때다 싶은 하이에나들이 박지원을 일동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해리는 오히려 박지원을 감싸듯이 말하였다.
“해보라고 하세요. 안 되면 마는 거고. 헛발질인지 아닌지 두고 보자구요.”
“그걸 지켜봐야 압니까? 레벨 20도 안 된 헌터 주제에 헛발질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이 사람들, 헌터 협회 기관 사람들 맞아? 박지원은 역전의 발판을 딛고 반박하였다.
“레벨 30 넘었습니다.”
박지원의 말에 회의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모두가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박지원은 또박또박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다시 한번 강조하며 말하였다.
“레벨 30, 넘었다구요.”
박지원은 그들에게 충고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이어서 해리 케인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하려는데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각성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레벨 30을 넘었다고?”
“요즘 게이트에서도 잘 안 보이던데 대체 어디서 경험치는 쌓은 거래?”
“조용. 다들 입 좀 다무세요.”
해리의 말에 순식간에 다시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그래서? 레벨 30 넘으면 합리적이든 않든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말인가?”
해리의 말은 무겁고 차분했다. 오히려 쌀쌀맞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해리의 표정은 박지원의 대답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하는 듯하였다.
“아니요. 전 쌀이 더 합리적이라 봅니다. 고기를 제공하겠다고 헌터를 파견해서 몬스터를 죽인다? 그냥 고기를 사주는 게 헌터 인건비보다 저렴할 거 같은데, 아닌가요?”
“......”
해리와 기관 사람들은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저는요, 그들이 스스로 독립적으로 농사를 짓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인류애라고 봅니다.”
박지원은 그 말을 끝으로 아직도 벙찐 표정으로 앉아있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해리 케리만이 그녀를 입가에 왠지 모를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