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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워프로 무한성장-109화 (109/202)

109화

거대한 검을 치켜세우며 품위 있고 당당한 태도였다. 그런 이차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몬스터들 득달같이 이차원 일행에게 달려들기 위해 뜀박질을 시작할 때였다. 그 모습을 본 로이칸은 한쪽 손을 들어 그들을 저지하였다. 아무 말 없이 지시를 내리는 로이칸의 몸짓에서는 벌써 사악한 죽음의 기운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몬스터들은 모두 얼음처럼 얼어버린 듯하였다.

-의외로 이야기를 잘 들어주려나 보네요.

코웰이 이차원에게 속삭이듯이 말을 건넸다. 그러나 역시 로이칸은 순순히 보내줄 생각은 없었는지 붉은 안광을 밝혔다. 그러더니 언제부턴가 몬스터들이 언제라도 공격을 할 것처럼 이차원 일행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이 그려졌다. 로이칸은 낮고 무거운 발성으로 이차원에게 질문을 했다.

-거래를 하자고?

“특별히 준비한 선물인데 탐나지 않아?”

이차원은 자신의 몸을 비키며 속죄의 매듭으로 묶인 세 명의 사람을 가리켰다. 그들은 모두 침울한 표정을 하며 연기에 힘껏 열을 내고 있는 듯하였다. 아니면 진짜 겁에 질려서 표정이 이렇게 리얼하게 짓고 있는 것일지도.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로이칸의 동공이 커졌다.

‘탐나겠지.’

차원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로이칸은 울프릭, 코웰, 데린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원래 카릴과 라돈 두 왕국의 전쟁을 끝내러 온 영웅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로이칸도 그들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이들도 로이칸의 원래 목표이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그중 렌더가 첫 번째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고.

-네가 직접 이놈들을 생포한 것이냐? 그 유령같이 괴상한 몸을 한 놈은 어디 가고?

깐깐하기도 해라. 로이칸이 이차원의 약해 보이는 몸을 훑어보며 물었다. 딱 봐도 약해 보이는 이차원이 저렇게 강한 놈들을 생포했다는 것이 수상했던 것이겠지.

“내가 저들을 생포할 만큼 충분히 강해 보이지 않나 봐?”

그 말과 동시에 옆에 있던 기사가 차고 있던 총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바로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차원일행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리는 늑대형 몬스터에게 조준하고 쏘았다. 곧바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즉사해버린 모습을 본 로이칸은 웃음을 퍼트렸다. 겉은 분명 웃음소리지만 안은 심연의 공간처럼 텅 비어있는 포식자의 웃음이었다.

자신의 앞에서 차원을 둘러싼, 강령술에 걸린 몬스터 병력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기를 사용해 한 마리를 처리하다니. 그 패기가 재밌다는 로이칸의 표현이었다.

-그냥 내가 널 죽이고 네 포로들을 가져가도 되는 것 아닌가?

로이칸은 굳이 거래까지 갈 필요가 있냐는 듯 사악하게 이차원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차원은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에 그는 믿을 구석이 있었다.

그는 곧바로 이전에 구했던 재료들인 생명의 풀, 염원의 이슬, 검은 사자의 눈, 최상급 에인 결정, 혈정석을 꺼내 로이칸의 앞에 보여주었다. 그걸 본 로이칸의 동공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다시 한번 커졌다. 원래 게임이었다면, 로이칸과 처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재료들이었다.

그렇기에 로이칸은 이 재료들을 구해오는 퀘스트로 해당 플레이어가 네크로맨서가 될 재능이 있는지 확인하고 다음의 퀘스트를 주는 흐름으로 전개가 되었다. 그런데 차원은 이미 이것들을 모두 구해왔고, 이 대륙에서 상위에 속하는 육체들을 제공해 준다, 하고 있으니 아리송할 게 뻔하였다.

‘선택받은 모험가인가?’

선택받은 모험가란, NPC의 입장에서 퀘스트 완료 확률이 높은 플레이어를 듯한다.

원래 이들은 모험가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재료를 받고 플레이어들에게 스킬이나 아이템을 제공해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자신에게 재료를 공급해줄 확률이 높은 플레이어를 만나면 호의적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쓸만한 놈인 건 확실하군.’

차원은 자신을 만나기도 전에 미리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서 가져왔기에, 로이칸은 높은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다.

-들어가서 얘기할까.

이차원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로이칸의 말을 받아들였다.

***

-내 몬스터 경비를 날려버린 것이 네놈이라고? 이런 당돌한 녀석을 봤나.

로이칸은 여전히 카리스마 풍기는 얼굴을 띠며 이차원을 탐색했다. 저렇게 강한 인간들 세 명의 육체를 제공한 것도 모자라, 절망의 숲의 모든 몬스터들을 날려버린 것도 차원이었으니. 그의 실체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을 게 틀림없었다.

“이 정도 배짱은 있어야 불사자들의 지배자 거처에도 와보는 것 아니겠어?”

이차원의 언행에 로이칸이 다시 씨익 웃었다. 이차원의 말과 행동에서 적의 거처에 와있는 사람치고 전혀 떨림이나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쓸만한 놈은 확실해. 마침 영력이 부족하기도 했고.’

로이칸도 차원이 자신에게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리란 것을 이따금 깨닫고 있었다.

-네가 날 위해 해줄 것이 있다. 물론 그에 대한 대가는 만족스럽게 줄 것이다. 난 네가 썩 마음에 들거든.

‘영력을 위한 퀘스트겠지.’

로이칸의 사탕 발린 말에 이차원은 그리 쉽게 현혹하지 않았다. 그가 지금 당장 자신에게 이렇게 호의적으로 나오더라도 이용할 만큼 이용한 다음엔 죽일 거란 사실을 이차원은 알고 있었다. 원작 게임 시작부터 드래곤이 마차를 불태워 곤경을 주듯이 이곳에서도 로이칸의 퀘스트를 다 깨고 나면 로이칸은 플레이어를 엉망진창으로 죽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키워낸 그 플레이어를 자신의 수많은 육체 중에 하나로 사용할 만큼 악질 중 악질이었다.

‘이러니 안 망하는 게 신기하지. 굴릴 대로 굴려놓고 결말은 항상 비극인 망할 게임 같으니.’

생각할수록 깔 부분이 넘쳐나는 게임 수준에 이차원은 어이가 없었다. 이런 게임을 14년 동안이나 했던 스스로마저도 한심해 보일 지경이었다.

-너 정도 되는 강자에겐 어려운 일도 아닐 테니 벌써부터 긴장할 건 없어.

로이칸은 그런 이차원의 침묵이 긴장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안심시켜 주듯이 호의를 베푸는 척했다.

“뭘 구해다 주면 되겠습니까?”

-LV10의 몬스터들을 산채로 100마리 데려오거라.

...?

‘벌써 그 퀘스트를 줘?’

로이칸의 부탁은 이미 앞에 있어야 할 퀘스트 단계 몇 개를 건너뛰고 나온 퀘스트였다. 이건 뭐, 워밍업도 시켜주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꼴이구나. 로이칸은 이차원을 생각보다 더 높은 가치를 주며 생각하는 거 같았다. 하지만 그의 퀘스트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차원이었다. 로이칸과 싸워야 되는 시기가 훨씬 앞당겨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영력을 올리려면 생명체를 죽이는 게 필수인데 내가 직접 여기저기 다니기엔 할 게 많아서 말이야.

사실 바이머 산맥에는 실제로 몬스터가 살기에는 척박한 지역이다. 그렇기에 로이칸도 이차원에게 몬스터를 생포해달란 퀘스트를 내린 것이다.

‘아무렴, 그렇겠지.’

차원은 물론, 이 퀘스트에 대해서도 생각해 둔 방법이 있었다. 차원도 이 플레이어 시절 이 퀘스트를 깨려고 대륙 전체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깨나갔었다. 그렇게 막노동에 가깝듯이 속죄의 매듭으로 몬스터들을 속박해서 갖다 바쳐주던 기억이 있었다. 그렇게 겨우 네크로맨서의 능력을 얻고 좋아했었는데, 로이칸에게 허무한 개죽임을 당하며 게임오버를 맞이했던 게 아직도 마음속에 한으로 맺혀있었다.

‘망할 게임. 이번엔 제대로 갚아준다.’

이차원은 이번엔 그때 느꼈던 좌절감에 복수를 제대로 하면서 능력과 육체를 얻어낼 생각이었다. 동시에 다음 대륙으로 넘어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리라 다짐하며 임하였다.

***

‘몬스터 백 개쯤이야 껌이지.’

현실 세계로 나온 이차원은 곧장 게이트로 향했다. 레벨 10짜리 게이트는 이미 한국에 무수히 많았고 현실세계에서 몬스터 100마리를 모아가는 것이 훨씬 빨랐다. 객관적인 노동량으로 봤을 때, 현실에 있는 게이트 하나를 골라서 그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을 잡아서 가져가면 그것만으로 게임 끝이다.

‘일단 한 마리 먼저 보내볼까.’

이차원은 게이트에 들어가 고블린 한 마리를 손쉽게 생포하였다. 아무리 몸부림친다 해도 고작 레벨 10짜리다. S++ 헌터등급을 받은 이차원에겐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물고기와 같았다. 그렇게 이차원은 워프를 열어 다크혼 세계로 들여보냈다, 그런데...

-끼이이...

다크혼으로 들어간 고블린이 갑자기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내더니 죽어버렸다. 현실 몬스터를 잡아다가 다크혼 세계로 넘기니 고블린은 아주 병약한 상태로 변해버린 것이다.

“야. 야, 일어나.”

이차원은 죽은 고블린을 발로 툭툭 차봐도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워프 때문인가.’

레벨 10의 몬스터들은 신체가 연약해, 워프를 넘으면서 힘을 모두 빼앗기는 듯해 보였다.

‘날 거 그대로 넣으면 죽어버린단 거지? 그렇담 캡슐에 담아가야겠다.’

현실 세계로 나온 이차원은 곧장 박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몬스터 캡슐 100개만 구해줘.”

“문제없습니다. 대신 저 좀 만나주세요.”

박지원 목소리에선 이젠 절박함마저 묻어나왔다. 이차원을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또 보고를 올리지 못해 부장이란 사람에게 잔뜩 노려진 모양인 듯했다.

“알았어. 사무실에서 봐.”

이차원은 전화를 끊고 곧장 사무실로 이동하였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몬스터 캡슐 100개가 가지런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일 처리 하나는 깔끔하게 해내는구나, 이 사람.

“그래서 할 말이 뭔데?”

이차원은 캡슐을 만족스럽게 만지며 박지원에게 물었다. 그러자 박지원이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떼었다.

“이차원님, 현재 자격 정지 상태세요.”

이번엔 어떤 부탁을 내걸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완전 생각을 벗어난 말이었다. 그 말에 이차원의 머리가 띵해졌다. 그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듯 되물어보았다.

“뭐? 자격 정지?”

“네. 이차원님 징계받으셨어요. 일주일 동안 말도 없이 사라지셨잖아요.”

이차원과 박지원이 동시에 커다란 한숨을 내뱉었다. 마음과 땅이 꺼질뿐더러 이 세상 모든 불이 꺼질 듯하게 깊은 한숨이었다. 현재 아마 국가 소속 헌터인 이차원의 행적이 국가에 보고되지 않아 현재 자격이 정지된 상태인 듯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박지원은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지는 풀 수 있어요. 대신 국가에서 내려준 과제를 장기간 수행하셔야 됩니다.”

“무슨 과젠데?”

이차원은 재빠르게 질문했다.

“게임 퀘스트 같은 겁니다. 일반인들이 해결할 수 없는 걸 국가 소속 헌터들이 대신해주는 거죠.”

“게이트 토벌하면 되나?”

“대개는 그렇죠. 그리고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과제가 있는데 그걸 깨시면 징계 기간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못하겠다면?”

“헌터 자격 영구 박탈됩니다.”

그건 굉장히 큰일이다. 완전히 박탈을 당하면 차원도 현실 세계의 아이템들을 강력하게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그럼 앞으로의 헌터 생활은 끝나는 건 물론, 분명 다크혼의 시나리오를 이어가는 것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주목받는 과제. 그거 무슨 과제인데.”

“인류애가 과제죠.”

인류애? 이차원은 그게 무슨 일인지 생각할 겨를없이 바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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