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프랭크의 외침에 기절해 있다 깨어난 울프릭도 놀란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평소 말이 없는 프랭크였는데 갑작스럽게 흥분을 했기 때문이었다. 프랭크의 얼굴은 마치 낙엽이 붉게 물드는 것처럼 달아올랐다.
-답답해.
프랭크는 코웰과 차원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성을 잃었다. 이어서 기사들한테 총을 빼앗더니 숲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행동력이 어찌나 빨랐는지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프랭크의 행동을 막지 못하였다.
-야, 꼬맹이 기다리라고. 야!
데린과 기사들은 갑작스러운 프랭크의 행동에 뒤를 쫓았다. 숲에 있는 몬스터 대부분이 이차원 쪽으로 몰려있는 탓에 몬스터의 모습을 찾기에도 힘이 들었다. 프랭크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사라지는 일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 하였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그렇기에 프랭크는 죽기 살기로 몬스터들을 찾아다녔다.
-안 돼… 요정님이랑 코웰 아저씨는 그럼...
하지만 어딜 찾아봐도 살아있는 몬스터의 조각은 찾을 수 없었다. 조각은커녕 어떤 한 구의 시체덩어리도 볼 수 없었다. 살아있는 동물이라도 나타나주길... 프랭크는 빌었지만 애석한 신은 그의 기도를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프랭크는 결국에 혼자 주저앉으며 절망하는 듯 보였다. 그때 뒤에서 뒤따라오던 데린이 프랭크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꼬맹이. 내가 기다리랬잖아.
프랭크는 울상인 표정을 지으며 데린을 올려다보았다. 데린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프랭크를 향해 웃어 보이며 라지안 스크롤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프랭크의 얼굴이 다시 펴지기 시작하였다.
-이 정도면 내가 무엇을 할 건지 말 안 해도 알겠지?
프랭크를 데리고 다시 숲 밖으로 나온 데린은 라지안 스크롤을 찢었다. 이윽고 괴물 고릴라 라지안이 등장하였다.
-마지막 스크롤인데. 이것도 결국 요정을 위해서 사용하네.
스크롤에서 나온 라지안은 어리둥절해 하였다. 스크롤을 통해서 불러내진 몬스터들은 그 스크롤을 사용한 사용자와 어느 정도 소통이 되는데, 라지안이 보기에 자신에게 떨어지는 명령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재료 준비는 끝이 났는데.
사람들은 모두 한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엔 몬스터 수백 마리가 엄청난 모래 폭풍을 일으키며 썰려 나가고 있었다. 라지안은 그 모습이 좋은 건지 싫은 건지 흥분을 한 듯 소리를 내었다.
-기다려. 어차피 곧 가게 될 거니까.
그렇게 차원이 빙의한 코웰이 디텐션할 몬스터는 구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코웰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차원은 [디텐션]을 사용해 몸을 바꿀 목표를 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였다. 이차원에게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어떻게든 줘야 되는데. 방법이 있을거다.
-라지안에게 계속 소리를 울리라 해. 라지안의 소리를 아는 이차원은 금방 눈치챌 거야.
울프릭이 데린을 보며 방법을 알려주었다. 데린은 바로 라지안에게 소리를 내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귀를 때리는 소리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이 정도면 바위가 있는 저곳까지 무사히 잘 들리고도 남을 거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안 되겠어. 우리가 나서서 싸워야겠어. 당장 눈앞에 있는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할 거 아니야.
데린의 말에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코웰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였다. 이번엔 프랭크도 말리지 않았다. 그렇게 각자 무기를 챙겨 들고 숲을 향해 몇걸음 걸어갔을 때다. 라지안의 소리가 볼륨을 줄인 듯 확 줄어들었다. 이에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차원이 빙의한 코웰이 디텐션 마법을 사용해 그들 쪽으로 나타난 것이다.
-커헉.
돌아온 건 다행이었다. 그러나 코웰의 상태가 부상이 심한지 피를 토하며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꼬맹아, 지금이야.
데린의 말에 프랭크가 바위산을 조준하고는 그대로 격발했다.
폭발음이 땅과 공기를 세차게 흔들었다.
***
이차원이 몸에서 나오자마자 쓰러진 코웰은 울프릭과 마찬가지로 부상이 심했다. 피를 철철 흘리는 울프릭과 코웰을 보던 이차원은 이들을 탱크 안의 편안한 곳으로 옮기게 하였다. 그들이 치료를 받고 있을 때 저 멀리 최상급 에인 결정을 화약으로 하는 탱크의 포가 발사된 바위에 먼지 하나 남지 않은 것을 바라보았다. 먼지가 된 그것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있을 때였다.
[EXP 344500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11 상승합니다.]
‘레벨 11 상승이라고?’
이 글귀를 보고는, 항상 냉소적이었던 차원도 놀랐다.
다크혼 내에서의 행보를 통해, 자잘하게 경험치가 올랐으나 차원의 레벨도 20 초반대를 넘어서면서 그동안 레벨업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벨이 오를수록 레벨업도 함께 어려워졌기 때문에 전 세계에도 레벨30이 넘는 헌터가 몇 없었다. 추가로 11레벨을 한 번에 올린 헌터를 들어본 적도 본적도 없는 차원은 한순간에 이제 레벨 30이 넘는 헌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사실 자체도 중요하지만, 차원은 실험해 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하칸의 알.’
지금까진 레벨이 낮아 이것을 현실 세계로 가져갈 수 없었는데, 이것을 가져갈 수 있나 확인하고 싶었다. 현실 세계의 헌터, 사람들에게는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판타지의 전유물인 줄 알고 있겠지만 차원은 드래곤의 힘에 대해 알고 있었다. 절망의 숲을 향해 달리는 탱크 안에서 하칸의 알을 꺼내고, 그것을 옮기는 시도를 하려는데 프랭크가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가져가게요?
“왜?”
-저도 드래곤 보고 싶은데.
프랭크는 이차원이 그가 사는 세계로 드래곤을 가져갈 걸 알고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이차원은 그런 프랭크를 안심시키려는 듯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다 키워서 데려올게.”
되기만 한다면, 하칸을 잘 키워 게임과 현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용할 생각인 차원이었다. 그렇게 차원이 하칸의 알을 잡고 현실에 가져나가겠다는 생각을 하며 게임에서 나왔다.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품 위로 묵직한 무언가가 있었다. 차원의 방에 하칸의 알이 넘어간 것이었다. 게임에서 현실로, 실제로 옮겨진 것이었다. 무기와 물건들만 되는 줄 알았는데, 이런 전설적인 것도 넘어올 수가 있었다니...
“진짜 됐다.”
이차원은 곧장 프랭크가 만든 부화기까지 옮겨놓고 작동을 시켜두었다. 그리고 다시 게임으로 넘어갔다.
***
절망의 숲.
탱크에 안정의 종을 걸어두고, 죽음의 나무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탱크는 죽음의 나무들을 밟고 부러뜨리면서 나아갔다. 원래 이 우거진 숲의 나무들은 영혼에 반응하여 몬스터처럼 줄기와 뿌리를 이용해 생명체를 속박하였다. 하지만 안정의 종 덕분에 탱크는 유유히 전진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론 잘 됐지만 아슬아슬했어.’
원래는 이 숲을 통째로 날려버리고 빠르게 전진하려 했지만, 이곳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다. 중간중간 위기가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차원은 엄청난 레벨을 올릴 수 있었고, 하칸의 알을 현실에도 보일 수 있게 됐으니 어찌 보면 잘된 일이었다.
‘렌더가 걱정이긴 하지만.’
물론 예상보다 늦어진 구조에 렌더가 걱정이긴 했으니 실질적으로 많은 차이가 나진 않았다.
게다가, 불사자들의 지배자가 보냈던 몬스터들이 모두, 몬스터들끼리만을 합쳐둔 상태였다.
사람의 신체가 변형된 것들이 없는 걸로 봐선 아직까지 살아있을 확률이 높았다.
-태, 탱크다! 살려줘! 저 좀 살려주세요!
이 게임 세계관에서 탱크를 발견했다는 것이 매우 놀랐는지, 사람이 소리쳤다. 차원은 곧 사람의 목소리가 나는 곳이 어딘지 발견을 하였다.
차원이 소리 나는 쪽으로 가니 죽음의 나무에 팔다리, 목이 완전히 묶여 있는 일반적인 모험가의 몸이 보였다.
‘[창조] 스킬을 쓴 건가.’
차원이 [창조] 스킬을 이용해 이름 모를 모험가를 창조해 냈을 때, 딱 그 정도의 몸인 것 같았다. 그러자 차원의 심박수가 뛰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채었다, 어쨌든 이곳에서 게임 NPC 말고 사람을 만난 것이니까 말이다.
-부탁입니다. 제발 저 좀 살려 주십쇼.
눈물을 절절 흘리는 실종자가 제발 살려달라고 빌고 있었다. 이차원은 처음 보는 사람의 외형을 바라보았다. 덩치는 약간 있어 보였지만 뚱뚱한 정도는 아니었다. 꽤나 운동을 한 듯이 살에서 근육이 어느 정도 있어 보였다. 외모는 무섭다기보다는 꽤 촐랑거릴 거 같이 생겼다. 하지만 피부는 나무에 묶여 있었던 탓인지 온 못에 피딱지가 새겨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차원은 나무에 잡혀져 있는 그에게 다가가는데 상태창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 게임 오버. 시나리오 종료. ]
그에게 다가가자 계속해서 같은 상태창이 떠오르며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게 하였다. 상황을 천천히 파악하려는 차원은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한국 사람 맞죠?”
이차원 말에 남자는 콧물을 훌쩍이며 고갤 끄덕인다.
“이름은?”
-김용훈이요.
“차원이동자 맞죠?”
-네. 게임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빨간 실 패시브가 떴어요. 저, 그쪽도 차원이동자인 거죠? 그런 거죠?
그러나 이차원에게 있어 김용훈의 질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차원이 궁금했던 건 오직 김용훈이란 사람이 고른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차원이 게임을 처음 시작하였을 때 울프릭이라는 캐릭터를 골랐듯이, 그도 분명 캐릭터를 골랐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현재 그의 모습은 일반 모험가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캐릭터는 어딨어요?”
-제가요 원래 그놈이랑 같이 숲을 지나가려 했는데-
“어딨냐고. 빨리 대답하세요.”
이차원은 자꾸 자신의 신세 한탄을 하려는 그의 말을 자르고 재빨리 물었다. 김용훈은 이차원의 강요에 의해 대답을 하였다.
-불사자들의 지배자가 데려갔어요.
“그가 직접 잡아갔다고요? 그놈이 직접 이 숲에 와서 잡아갔단 겁니까?”
김용훈이 고갤 빠르게 끄덕였다.
‘불사자들의 지배자가 직접 움직여?’
이상했다. 불사자들의 지배자가 직접 움직이다니. 그런 일은 굉장히 희박했다. 그가 직접 움직일 정도로 강한 캐릭터란 뜻인가?
“캐릭터가 뭔데요?”
-디원이요.
“그 디원이요?”
-네. 그 디원이요.
이차원은 김용훈의 말을 듣고 매우 놀라워 하였다.
디원은 다크혼 처음 캐릭터를 고를 때, 말도 안 되는 확률로 나오는 히든 캐릭터로 울프릭에 비하면 잠재력이 몇 배는 더 높은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캐릭터를 찾아야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