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불사자들의 지배자 짓인 거냐?
울프릭도 범상치 않은 시체를 보며 눈치를 챘는지 이차원에게 물어보았다. 차원은 그 말이 맞다는 듯 입을 앙다물었다. 이차원과 울프릭 모두, 심경이 복잡한 얼굴을 띠고 있었다.
“아무래도 카릴 왕국의 자원을 미끼로 사용한 거 같아.”
-그래서 이 대륙에 넘어온 거였어. 바이머 산맥에 간 이유는 단순히 은둔을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더 많은 수하를 품으려 했던 거고.
“일부러 노리고 온 거지. 납치가 돼서 사라진다 해도 고국으로 돌아갔다 생각할 테니까.”
-반대로 그들 고향에선 아직까지 전쟁을 하고 있다 생각할 테고.
울프릭의 어둡고 힘빠지는 소리에 이차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실험을 할 수 있기에 매우 좋았다. 왜냐하면..
“납치하기에 최적인 셈이지.”
다른 대륙에서 강력한 기사나 마법사들을 품기엔 리스크가 있었기 때문에 이 대륙에 터전을 잡은 것이다. 거기에 이 대륙의 자원과 다른 것을 노리기 위해 넘어온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납치했던 것이 확실히 보였다.
또한 그가 영웅들을 납치한 것은 더욱 강력한 육체를 얻기 위함이니 당연히 그들을 어딘가에 숨겨두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곳에 생각보다 강한 육체들이 있겠네.’
이차원은 영웅들의 육체에 대해 생각을 하고 싶었으나 당장은 급한 불을 끄는 것이 우선이었다.
“서둘러야겠어.”
이대로 렌더를 계속 찾지 못하고 방치를 해두기만 하면 그 또한 저렇게 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오히려 더욱 심한 일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렌더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사라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상황이다. 이차원은 서둘러 산을 내려가려는데 울프릭이 잠시 멈춰섰다. 한시가 급한 이차원이었기에 울프릭을 재촉하였다.
“뭐해? 빨리 와.”
-잠깐 기다려.
자신을 불러세우는 울프릭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울프릭의 감각이 좋다는 것은 그의 몸에 빙의를 하면서 알 수 있었다. 울프릭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다름 아닌 자신들을 여기까지 이끌어준 모래쥐가 있었다. 울프릭은 모래쥐에게 발효의 영약을 던져주었다. 모래쥐는 영약을 입에 머금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가자고.
“뭘 준 거야?”
-있어.
울프릭이 갑자기 휘파람을 불며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차원은 자신들을 여기까지 데려다준 거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
-약속한 것들이니 마음껏 가져가시죠.
카릴 요스 4세 왕이 이차원 일행에게 금괴와 타파이트, 아만티움, 미스릴 등 왕국엔 넘쳐나는 희귀 금속을 내어주며 말하였다. 그 많은 걸 내어주면서도 왕의 얼굴엔 연신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전쟁을 마무리 지은 이차원 일행이 굉장히 훌륭해 보이는 거 같았다.
-100년 전쟁이 끝났다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정말 이걸 다 받아도 됩니까?
-내 꼴 안 보여? 여기 전쟁 막겠다고 내 머리카락 다 탄 거 안 보이냐고.
데린은 전쟁통에 머리가 조금 불타서 심기가 불편한지 사양하지 않고 잔뜩 금괴와 금속을 챙겼다. 전투 때 수많은 적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당황한 나머지 이리저리 [메테오]를 쏘아대다가 그만 자신의 근처에까지 떨어트린 것이었다. 그 덕에 메테오의 파편이 튀어 머리카락을 태워먹은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이건 자기가 벌인 일이잖아. 머리카락이 조금 탄 것도 다행이었지, 몸에 튀었으면 또 어떤 괴물같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이차원은 금괴와 금속을 보고 있던 중 눈에 안 보이는 하나를 발견했다.
“안정의 종이 보이지 않는군요.”
이차원의 관심은 오로지 종에 있었다. 그렇기에 왕에게 따지듯이 물어보았다.
-그건 따로 포장을 시켜놨습니다.
왕이 신하에게 손짓하자 신하가 정성스럽게 포장된 안정의 종을 가져왔다.
-안정의 종은 우리 왕국 대대로 내려오는 국보인 만큼 왕의 독단적인 선택으로 함부로 내어드릴 수 없는 귀한 것인데, 영웅들이 종을 원한다는 소문을 들은 국민들이 먼저 종을 내주자고 하지 뭡니까.
왕이 호탕하게 웃으며 이차원을 향해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타무즈 때부터 국민들의 도움을 의도치 얺게 많이 받게 된 이차원 일행이었다.
[ 카릴 요스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더군다나 왕의 호감도까지 얻었다. 렌더의 실종만을 제외하고는 크나큰 이득이었다.
-오히려 전쟁이 끝난 지금 안정의 종이 국민들을 나태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저와 국민들도 큰 결심을 했습니다.
왕은 신하가 준 종을 들어 직접 이차원 일행 앞에 가져다주며 말을 마쳤다.
[ 카릴 요스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안정의 종 없이 자원을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기로요.
왕의 호감도는 계속 오르고 있었고 여기까지는 전쟁을 끝내고 얻는 시나리오와 똑같았다.
이제 그들은 종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자원을 지키기로 한 것이었다. 전쟁도 끝났겠다, 드디어 제대로 된 관리에 들어가려는 모습이었다. 이차원은 왕이 건네주는 종을 받아들었다. 그런데 포장지를 본 이차원의 눈이 커졌다.
‘뭐야 이건.’
그 포장된 금속마저 최하급 에인 결정을 깎아서 만든 것이었다. 게다가 차원이 이 대륙 내에서 처음 보는 에인 결정의 모양이었다. 이 대륙에서 이 정도의 가공 능력을 가진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에인 결정은 최하급이라도 에너지가 강력해 그것을 함부로 깎거나 가공하면 위험할 수 있었다. 잘못 건드렸을 시 이차원의 총이 터지던 것처럼 주변에 있는 것들을 파괴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폭탄을 일반인이 해체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차원의 눈앞에 있는 건 매우 정교한 용의 모양이 박혀있는 네모 상자(나전칠기)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다.
애초에 결정을 가공하는 일이, 게임 속에서는 관상용을 위해 쓰였었고, 지금 보이는 이 상자처럼 어떤 것을 꾸미는 것에 쓰였었기에, 차원도 별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허나 지금은 그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저 멀리 프랭크와 에인 결정이 같이 보이자 문득 가능한 경우의 수가 생각난 것이다.
프랭크가 타파이트를 제련하고 가공하는 것에 달인인데, 그 스킬은 차원이 결국 얻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더 강한 무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차원은 이 스킬을 배우고 싶은 생각이 매우 강하게 들었다.
“상당한 스킬이군요. 누가 만든 겁니까?”
이차원의 물음에 왕이 흐뭇하게 웃었다. 왕은 그 말 자체로도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보통 이런 질문을 하면 그 스킬을 가진 자를 매우 뿌듯하게 알려줄 텐데. 그러자 이차원은 바로 눈치를 챘다.
“왕께서 직접 하신 거군요.”
이차원 역시 왕을 따라 표정이 밝아졌다. 금속과 에너지 결정의 가공 능력을 얻으면, 압도적인 능력을 얻게 되리란 기대감 때문도 있었지만, 현재 카릴 요스의 호감도가 끊임없이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 프랭크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그리고 이차원의 계획을 눈치챈 프랭크의 호감도도 동시에 올랐다.
‘조금만 더.’
이차원은 왕의 스킬을 얻기 위해 그에게 앞으로 있을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였다.
“실종된 영웅들의 행방을 알아 왔습니다.”
이차원의 말에 궁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자신과 울프릭을 제외하고는. 신하들은 물론 왕의 동공도 커지고 프랭크도 이차원이 좌중을 휘어잡는 모습에 눈을 반짝거렸다.
[ 프랭크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 카릴 요스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정말인가? 그럼, 그 범인은 바로 누구인가?
왕이 흥분을 토해내며 물었다. 이차원은 굳건하게 대답했다.
“불사자들의 지배자입니다.”
-불사자들의 지배자?
국왕 또한 불사자들의 지배자라는 존재도 모르고 있는 듯하였다. 이차원은 울프릭을 바라보며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울프릭은 곧바로 바위산에서 가져온 시체를 꺼내 보여주었다. 시체가 나오자마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 시체가 풍기는 악취에 코를 막았다.
“이 나라의 국민들도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납치된 영웅들도 이렇게 되겠죠.”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왕은 그 끔찍한 모습에 결국 고개를 돌렸다.
“그 끔찍한 일, 제가 막을 수 있습니다. 왕께서 힘을 보태주신다면요.”
[ 프랭크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 카릴 요스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그리고 이차원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감도도 빠르게 오르기 시작하였다. 왕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차원의 물음에 곧바로 대답하였다.
-무조건 힘을 보태드려야죠.
호감도가 올라가는 것을 실제로 또 보여주듯이 국왕은 협조하겠다고 했다. 어느덧 첫 만남 때의 악감정은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처럼 싹쓸이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
-현재 하칸의 알의 부화율 74%.-
‘육체를 얻을 때쯤엔 부화가 가능할 거 같다. 확실히 빨라.’
알의 부화율을 확인한 이차원은 다시 한번 감탄하며 프랭크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하루 빨리 부화를 하여 드래곤이 깨어난다면, 머지않아 현실에서도 드래곤을 다스릴 수 있게 되는 몇 안 되는 헌터로 자리매김을 할 수가 있게 된다. 이차원이 미래에 대한 망상에 빠져 있을 때, 프랭크는 이차원이 현실세계에서 가져와 건네준 사진을 관찰중에 있었다.
-이것도 버스처럼 달려요?
“버스보단 조금 느린데 더 세. 여기 이곳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거든.”
이차원의 설명을 듣던 프랭크는 고갤 갸우뚱하며 의문을 던졌다.
-여기에 맞는 결정이 있어요?
프랭크에겐 금속을 자유자재로 제련하는 스킬이 있지만, 이 폼에 맞게 에너지를 맞는 결정이 있을지가 궁금한 것이었다. 근데 애초에 현실세계에서 그런 물건이 있긴 했었나.
-난 제련은 잘해도 결정은 못 다루는데...부화기는 운이 좋게 맞아떨어진 거였고... 대신 버스나 트럭은 가능한데.
이차원이 버스와 SUV의 구동 방식은 모두 알아서, 타파이트로 그것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프랭크에게 또 다른 미션을 준 건데. 프랭크는 결정이 맞지 않아 걱정인 거다.
“이 계획이 성공하려면 무조건 만들어야 돼. 결정만 구해다 주면 문제없는 거지?”
-결정을 어떻게 구하게요? 이 대륙에서 결정을 가공할 수 있는 사람은 국왕밖에 없는데 국왕을 전쟁에 참여시키게요?
프랭크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전 대륙을 뒤져봐도 전쟁에 참여하는 국왕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뭡니까 이건?
어느덧 그들의 뒤로 코웰이 다가왔다. 코웰도 사진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신기해하였다.
사진 속에 있던 모습은 바로 탱크였던 것이다.
-자동차가 이렇게 생겼습니까?
“실제로 보면 더 놀랄 겁니다.”
이차원은 저들이 탱크를 보면 다들 놀라 자빠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밖으로 나섰다.
어쨌든 이게 완성되려면 국왕의 호감도를 올려, 결정을 가공할 수 있는 스킬이 있어야 됐다.
“언젠가 이걸 꼭 실현시켜 보이고야 말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