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나한텐 보여주지도 않고 이걸 저 꼬맹이한테 그냥 맡겼다고? 자그마치 펠리티움을? 이 대륙에 이 금속을 만져본 사람은커녕 본 사람도 얼마없다고!
이차원과 프랭크의 대화를 엿들은 데린을 시작으로 이제 차에 있던 사람들 모두 하칸의 알 주위로 몰려들었다. 무려 드래곤의 알이다. 한평생 살아도 그 실제 모습을 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기에 모두의 화젯거리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거기에 펠리티움 광물로 만든 부화기라니, 엄청난 가치가 있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이차원이 이걸 어디서 구해왔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거 어디서 났어? 나도 구할 수 있을까?
데린은 마법사답게 펠리티움 자체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엄청난 고생을 해가며 생명의 풀과 염원의 이슬을 챙겨온 탓에 피곤에 찌든 상태일 줄 알았는데 이 장치 때문에 그런 건 확 달아난 모양이었다.
“도적놈들 발가벗겼더니 목숨만 살려달라고 주던데?”
그랬다. 얼마 전, 이차원이 도적들을 만나 몬스터 스크롤을 사용하면서까지 사용하면서 얻어낸 물건이 바로 이 펠리티움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차원은 이 물건을 받고 그렇게 놀라워하였던 것이다. 데린은 도적이 이걸 왜 가지고 있냐고 트집을 잡았지만 명백한 사실이었기에 결국 믿는 눈치였다.
-그래서 이거 받고 목숨은 살려줬고?
“그럴 리가.”
이차원의 태연한 말에 데린이 소름 돋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잘못은 그쪽에서 먼저 걸어온 것이었으니. 상대가 하필 이차원이었다는 것부터가 잘못되었던 것이다.
-요정님. 부화율이 2%나 올랐어요!
렌더는 하칸의 알 자체에 큰 관심을 보였다. 역시나 모든 몬스터와 대화해보고 싶은 렌더다웠다. 이차원도 알 부화상태를 확인하였다. 렌더의 말처럼 하칸의 알은 부화율이 2%나 올라 59%가 되어 있었다. 2%가 하루 만에 올랐다는 것은 매우 빠른 속도였다. 며칠 동안 1%가 오르는 게 기본 속도였으니 거의 몇 배에 가까운 속도를 보여주었다. 이 정도로 유지만 해주면 알이 부화 되는 건 정말 삽시간일 것이다.
-이번 생에 살아있는 드래곤을 볼 수 있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꼬맹이 대단하네. 알을 발견하고도 부화 못 시킨 사람들이 허다하잖아. 그래서 드래곤 알이 아니라 생각하고 버린 사람도 많다 하고.
데린의 말처럼 알을 찾아도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허다하였다. 알의 부화 속도가 너무 느려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여 힘을 키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몇 달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는 탓에 일반 돌덩이라고 판단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는 이 수치상으로 따지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 일은 현재로서 이차원 일행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재료도 재료지만 설령 그걸 구한다고 하여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프랭크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템을 이용해 드래곤 알 부화율의 속도를 이렇게 높이다니. 이차원은 프랭크가 어서 빨리 성장하고 싶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나이가 어린 걸 감안하면 엄청난 재능이긴 하지. 잠재력도 무궁무진하고.’
확실히 레이큰 대신 프랭크를 택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칭찬하였다. 정말이지, 프랭크가 나타난 건 신의 한 수였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점은 꼭 있기 마련이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인벤토리에 알을 넣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차원은 데린을 바라보며 해결해 달라는 말투로 물어보았다. 데린은 마법사이며 인벤토리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이건 인벤토리에 넣을 수 없나?”
-분리가 불가능해.
데린은 어림도 없다는 듯 딱 잘라 말했다. 이차원은 혀를 차며 아쉬워하였다. 데린은 이어서 부화기를 이곳저곳 살펴보면서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이 원리가 어떻게 되는 거야? 아무리 봐도 설명이 되지가 않아.
프랭크가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다가 원리를 설명해주었다.
-펠리티움. 에너지 전도 현상을 일으키는 금속. 연성과 전성을 처음에 따지는데, 미스릴이나,
타파이트, 아만티움 같이 에너지를 보존하는 금속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연성이 있어요.
“그런데 넌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어?”
이차원의 말에 프랭크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였다.
-관찰.
금속을 만져보고, 구부려보고 소리를 들어보고, 또 프랭크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는 듯했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이었다. 그리고 그런 프랭크를 보는 데린은 허,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천재는 천재구나. 꼬맹이, 너 나한테 마법 배울래?
데린의 말에 코웰이 기가 차다는 말투로 데린의 말에 부정하였다.
-마법이라니. 남자라면 검을 배워야지.
-무식하게 검이 뭐야? 꼬맹이 넌 무조건 마법 배워.
코웰과 데린의 난데없는 프랭크 쟁탈전이 벌어졌다. 그들은 프랭크에게 검과 마법 중 택하라고 서로를 깎아내리며 프랭크를 설득했다. 프랭크가 탐나는 존재긴 하지. 이런 아이를 자신의 제자로 키운다면 이보다 더 뿌듯할 리가 없어 보였다. 프랭크가 어쩔 줄 몰라 하자 차원이 상황을 한번에 정리하였다.
“둘 다 배우면 됩니다.”
이차원의 제3의 선택지에 코웰과 데린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금까지 차원이 봐왔던 프랭크의 능력은 마법사에 가까웠다. 프랭크는 자신의 생명력을 금속 생명체들에게 줬고 그 한계로 강인한 육체를 가지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번엔 본인의 개인의 능력치를 키워주고, 불사자 대기갑군단이라는 별명을 동시에 얻게 해줄 생각이었다. 막상 자신이 지어주려는 별명을 생각해보니 터무니없었다.
‘그러고 보니 별명도 비슷하네.’
프랭크도 앞으로 차원이 만날 ‘불사자들의 지배자’라는 호칭을 가진 놈과 같은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차이는 프랭크는 무쇠군단, 지배자라 불리는 놈은 시체, 또는 해골 군단이란 것일 뿐이었지만. 물론 개중에는 멀쩡한 몸도 있고 차원이 노리는 것도 그 멀쩡하고 강력한 몸이었다.
-참. 최근에 내가 불사자의 지배자에 대해 알아봤는데 실험을 하러 절망의 숲을 지나 본거지로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더라.
데린이 불사자들의 지배자라는 놈에 대한 소문을 풀기 시작하였다. 이차원은 데린의 말에 타이밍을 맞추어 물어보았다.
“무슨 실험?”
차원은 이미 소문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동료들이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기로 하였다.
-각 대륙을 돌면서 가장 강한 영웅들의 시체만 골라서 가져갔대.
시체를 가져갔다는 말을 듣자 주변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시체를 모아 어디에 사용하려 하는 건지, 이에 데린이 말을 이어 하면서 뒷말을 덧붙였다. 그녀는 무섭지도 않다는 듯이, 자신에게도 큰 피해가 올 수도 있는 일을 천하태평하게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그걸 복원시켜서 망자 군단의 군단장으로 세우려고 하는 짓이지.
-영웅들 시체라... 복원만 시킨다면 엄청나긴 하겠네.
그 이야기를 코웰은 흥미롭게 이야기를 듣고 앉아있었다.
-어쨌든 인간의 몸뚱이나 영혼이 없는 몸뚱이를 다루는 놈은 이 대륙에서 그놈 한 놈뿐이야. 그 말인즉슨 요정이 다른 대륙을 넘어가려면 어쩔 수 없어 이 난관부터 헤쳐야 된다는 거고.
-그 말인즉슨 저 전쟁을 막아야 된다는 거고?
코웰의 질문에 데린이 고갤 끄덕이며 차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창밖 너머엔 엄청난 흙먼지가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폭풍이 휩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속에서 많은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으아아, 저길 정말 가야 된다고요?
렌더가 자신은 절대 가고 싶지 않다는 듯 겁을 먹은 채 이차원에게 물었다.
흙먼지가 발생한 원인은 바로 저 싸움 때문이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 수를 다 합치며 수천 명은 되어 보였다.
-우와아아!
군사들의 소리와 비명 소리,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 등 전쟁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모든 걸 말없이 지켜보는 차원은 굳게 마음을 먹고 있었다. 이 전쟁을 끝내야 안정의 종을 얻을 수 있고, 그게 있어야 절망의 숲을 지나, 그 불사자들의 지배자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스스로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
이 역시 차원은 이미 게임에서 이 전쟁을 끝내는 시나리오를 경험해 봤었다. 게임을 하던 시절엔 앞으로의 세계와 대륙에 관한 에피소드를 다 해놓고 심심풀이로 다시 여기에 왔었다. 힘도 강해졌겠다, 이곳은 게임이 시작되는 가장 첫 번째 단계의 대륙이었으니까 추억을 되살리기에 좋지, 라는 플레이어들은 수두룩하였다.
‘그때가 좋을 때였지.’
모든 강함을 얻고 초보자 마을에서 강함을 마구잡이로 내뿜는 짓을 안 해본 유저는 없을 거다. 그렇기에 차원은 전쟁을 끝내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사용해 봤었다.
하나는 불을 다루는 용인 하데우스를 이끌고 전쟁터에 있는 카릴과 라돈의 기사. 마법사들을 다 태워서 끝내는 것이었다. 나머지 하난 전쟁 중인 카릴과 라돈이라는 두 왕국 중에서 라돈 왕국을 멸망시켜 카릴이 승리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이번엔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하며 엘프들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와 눈이 마주친 엘프 하나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냈다. 그러나 이차원은 무심하게 힐끗 보고는 다시 고갤 앞으로 돌렸다.
‘나한테 말고 왕한테나 그렇게 웃어라.’
사실 엘프는 전쟁이 끝난 뒤에, 왕에게서 더 많은 것들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이차원이 엘프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무력으로 두 전쟁을 끝냈었다.
이차원이 생각했던 두 방법 다 게임의 고인물이나 시나리오를 시도 때도 없이 공략해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일이었다.
‘둘 다 죽일지 하난 살릴지. 어떤 방법이 좋을까.’
이차원은 현재 저 두 방법 모두 가능하게 할 능력이 있는 상태이다. 용을 이끌고 전쟁터를 휩쓰는 것이야 시간이 걸리겠지만 하칸이 부활하면 가능했다.
‘시간이 걸리는 게 문제지만.’
반면 한쪽 왕국을 멸망시키는 것은 용이 없어도 당장 가능했다. 지금의 무력이라면, 그리고 지금의 멤버들이라면. 고민은 짧았다.
라돈과 카릴, 두 왕국의 무력 밸런스는 비슷하지만, 조금이라도 국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영웅이 있고 절대다수의 행복을 위하는 왕국을 살리는 선택이다. 거기에 더해 이왕이면 돈도 많은 왕국으로.
‘영웅까지 얻으면 더 좋고.’
이차원은 그곳을 선택하고 그 영웅까지 삼키려는 생각까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