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불사자의 지배자는 다크혼이라는 게임이 망겜이라는 소리를 듣기 전부터 유명했던 NPC이다.네크로맨서, 즉 강령술사라는 특성을 붙일 수 있는 스킬을 제공하는 자였다.
차원이 그를 찾아가는 이유도 그 스킬로 육체를 얻어 다음 대륙으로 넘어가기 위함이었는데 원작 게임에서도 그렇지만 플레이어들은 불사자의 지배자는 만나는 것조차도 버거워했다. 불사자의 지배자가 있는 곳인 바이머 산맥을 가기 위해서는 절망의 숲을 지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절망의 숲? 설마 거길 지나야 만날 수 있단 거냐?
울프릭 역시 그 숲에 대해 알고 있을 정도로 악명 높은 숲이었다. 얼마나 빠져나오기 힘들면 이름이 절망의 숲일까 싶지만 진짜 이름대로다. 패기롭게 들어가는 사람들은 다 얼마 못 가 포기하며 나오는 건 일상 있는 일이었고, 심지어 어떤 플레이어는 그곳에 캐릭터가 영영 갇히게 되어 게임을 접었다는 썰도 심심찮게 들어오고 있었다.
-거길 건너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크라투반 정글이랑은 차원이 달라.
“알아. 거기선 아이템도 무용지물인 거.”
-정말 그놈이 거길 지나서 바이머 산맥으로 갔어?
울프릭은 못 믿겠다는 듯 되물었지만 이차원은 고갤 끄덕였다. 울프릭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받아들였다.
-하긴. 죽은 자도 살리는 놈이니.
불사자의 지배자는 이 대륙에서 금기인 죽은 자를 살리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죽은 자를 살리는 건, 해골병사들을 만들고 시체를 움직이게 만들어 자신의 부하로 삼는 네크로맨서의 개념을 말한다.
당연히 네크로맨서라는 단어를 모르는 울프릭은 어쩌면 그가 이교도와 관련이 있다고만 생각을 하고있었다.
-흑마법… 어쩌면 그놈도 이교도와 관련이 있을지 몰라. 7성군의 압박이 심해지니 절망의 숲을 지나 몸을 숨긴 거겠지.
그리고 생각을 마무리한 울프릭은 다시 의지를 다잡는다.
-무조건 갈 수밖에 없겠네. 방법은?
울프릭은 언제나처럼 이차원에게 방법이 있을까 묻고 당연히 이차원은 방법이 있었다.
“안정의 종이 필요해.”
-안정의 종?
***
이제 생명의 풀과 염원의 이슬을 가지고 돌아오는 데린만 있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충!
바짝 군기가 들어간 디즌 왕국의 경비병이 이차원 일행을 보곤 곧장 인사를 하였다. 생명의 풀과 염원의 이슬, 검은 사자의 눈, 최상급 에인 결정, 혈정석, 그 외의 재료를 얻은 이차원 일행은 다 함께 디즌 왕국을 방문한 것이었다.
-살벌하네요. 누가 보면 전쟁이라도 치르는 줄 알겠어요.
렌더는 저번보다 배로 늘어난 경비병 수에 놀라 말하였다. 디즌 왕국은 확실히 저번 사건으로 보안을 더욱 철저하게 하기 위해 경비 시스템을 강화시킨 것이었다.
-제아무리 7성군이 지켜준다 해도 한계가 있으니 충분히 그럴 만하지.
그런데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앞으로 관광버스 한 대가 멈추더니, 타무스 왕국의 사람들이 내려왔다. 코웰이 그중 은퇴한 기사 한 명을 알아보고 곧장 인사를 나누었다.
갑자기 이 버스가 어디서 났는지 이차원은 어리둥절하였다. 그러자 마을 주민이 알려주기를, 데린에게 주고 남은 관광버스가 타무스와 디즌 왕국의 교류를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 있었다.
-어르신, 여기서 다 뵙네요. 그런데 다들 여긴 무슨 일로.....?
-왜긴. 우리 여기로 교육 다녀. 기사들 교육. 좋지, 뭐. 은퇴하고 할 것도 없이 적적했는데.
기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디즌 왕국의 국민들이 그들을 마중 나와 제 식구들처럼 인사를 나누었다.
-오셨어요? 오늘은 검술 훈련인가요? 요즘 총이라는 게 유행이던데 그건 못 배우나요?
항상 풍족하고 평화로웠던 마을에 새로운 일거리가 생겨서 그런지 디즌 왕국은 전보다 더욱 활력이 넘쳐 보였다. 그런 와중에 타무스와 디즌 왕국 사람들이 이차원 일행을 알아보더니 곧장 그 주위로 달려들었다.
-요정님이시다!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만든 차원 일행은 스타가 된 상태였다. 이들은 현재 이 대륙에서 가장 강한 것으로 보여지고 있는 존재들이었으니까. 그렇게 그들이 이차원 일행의 주위를 맴돌던 그때, 저 멀리서 모래바람을 몰고 오는 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이차원이 아는 사람 중 저런 마차를 가지고 있거나 타고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죠?”
이차원은 코웰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행히 코웰은 그 존재를 바로 알아챈 모양이었다.
-데린 같은데요? 꼴이 말이 아닌 게 고생 좀 했나 봅니다.
그의 말대로였다. 엘프들의 왕국으로 재료를 구하러 간 데린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마차는 곧 이차원 일행 앞에 멈추었다. 타고 있던 데린이 내리고 그 뒤로 엘프들이 따라 내려왔다.
그런데 데린의 모습이 어째 갈 때와는 전혀 달랐다. 깔끔하고 반듯했던 옷이 온갖 흙들로 너저분하게 더럽혀져 있었고, 머리도 매우 헝클어져 있어 정글을 연상케 했다.
그런 꼬질꼬질한 데린과 대비되어 보이는 엘프들은 말 그대로 눈이 부셨다. 비단처럼 가느다랗고 고운 머릿결에서부터 생기가 느껴지듯 빛을 머금고 있었다. 각각 그들의 은발과 금발은 실제 은과 금으로 이루어진 듯할 정도였다. 인간세계에선 감히 접할 수 없는 수려한 외모에 길쭉한 귀는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외모와 더욱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품행도 굉장히 세련되어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향수 냄새가 퍼져나가듯이 풍기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일행들은 모두 한눈에 반한 듯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할 수만 있다면 동공에 그 모습을 새기고 싶을 정도였다.
-눈이 멀 것 같습니다. 요정님.
렌더의 말에 코웰과 기사들도 침묵을 지키며 조용히 동의하는 몸짓을 지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는 엘프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이차원이었다. 엘프들은 품위에 맞는 겸손한 자세를 취하였다. 그중에서 가장 성스러워 보이는 엘프가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이 이 대륙을 구해주신 요정인가요?
여자, 그것도 인간이 상상해 낸 모든 세계관에서 항상 아름답다고 형용되는 종족인 엘프가 이차원에게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이차원에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데린이 이 존재들을 준비해왔다는 것이다. 이차원이 데린을 바라보자 자만하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차원은 안정의 종을 얻는 방법을 다시 한번 정리하였다.
‘안정의 종을 얻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지.’
바로 불사자들의 지배자를 만나기 위해 가야 할 절망의 숲에서 동서쪽 300km에 떨어진 두 왕국의 100년간 지속된 전쟁을 막는 것이었다.
두 왕국의 이름은 카릴과 라돈이다.
사실 차원은 두 왕국의 전쟁을 막고 안정의 종을 얻어 절망의 숲을 지나고 등등 일련의 과정은 원래 스킵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여 카를리아 대륙으로 바로 건너가 이 대륙보다 더 강한 NPC들을 만날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육신 없이는 영원의 바다를 건너지 못하는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었다.
‘미리 알았으면 진작 데리고 왔을 텐데.’
이차원은 엘프를 데려온 데린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이차원이 이렇게 엘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두 왕국의 100년 전쟁이 시작된 원인이 엘프였기 때문이다.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완전한 수단은 아니지만, 엘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많은 도움은 아니더라도 두 왕가 왕들이 엘프에 미치고 팔짝 뛰잖아.’
-저기, 혹시 저희 언어가 안 들리시나요?
엘프가 다른 인간들과 다르게 자신에게 무관심한 이차원에게 재차 물었다. 안정의 종에 대해 생각하느라 엘프의 질문을 듣지 못한 것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멀리서 이차원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다름 아닌 프랭크였다.
그런데 프랭크가 그들에게 가까워질수록 엘프들 무리가 소란스러워졌다.
-이게 뭐야? 마나의 기운이 이렇게 느껴지는 건 처음인데.
-저 버스에서 나는 기운 아니야?
데린이 엘프들을 이곳에 데려올 때 차원이 제공한 신문물에 대해서 말해준 듯 이름을 알고 있었다.
‘마나의 기운? 버스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이차원은 엘프들이 말하는 마나의 기운이 뭔가 싶은데 이차원에게 달려온 프랭크 손에 들려있는 무언가가 눈에 보였다.
‘저건, 펠리티움?’
이차원은 프랭크 주위로 몰려든 엘프들을 조심히 비껴가며 프랭크 손에 들린 장치를 보았다.
“드래곤 부화기… 진짜 만들어낸 거야?”
프랭크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기사들은 대형 SUV 트렁크와 관광버스 한 대에 각종 영약과 금괴를 싣고 있었다. 왕이 이차원 일행에게 특별히 내려준 선물이었다. 짐을 다 실은 차가 디즌 왕국을 떠나자 입구에 몰려든 사람들이 모두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었다.
그렇게 떠나는 관광버스 안은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이 없었다. 바로 엘프들이 타 있었기 때문이다. 기사들은 어떻게든 엘프들과 한마디라도 더 하고 싶어서 질문을 퍼붓고 있었다. 이 모습에 코웰은 낯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어휴, 저놈들 완전히 홀려서 정신 못 차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네요.
관광버스 안이 시끌벅적하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에게 몰려오는 사람들과 기자들의 모습과 같아 보여 웃음이 났다.
‘현실세계에서 내가 저런 상황일 때면 이렇게 보이는구나.’
어느새 기사들은 차원에게 배운 게임을 하며 난리가 났다. 정말이지, 별 주접을 다 떨고 있는 중이었다.
-후. 무슨 저런 게임을 다 가르쳐주시고…
코웰이 옆에 앉은 차원에게 탓하듯 말하였다. 오랜 피로 때문에 잠 좀 깨우기 위해서 알려준 것뿐인데, 그걸 이렇게 사용하다니. 이차원도 순간 후회스러웠다. 이내 차원은 창조 스킬을 사용하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울프릭에게로 다가갔다.
“울프릭 피곤하면 말해. 교대하게.”
이차원은 운전 중인 울프릭에게 말하였지만 별문제 없다는 듯 손을 올려 보였다. 뒤이어 뒷자리로 이동한 이차원은 프랭크가 만든 부화기를 보았다. 펠리티움이라는 희귀 금속으로 만들어진 이 기계는 꽃 모양으로, 각각의 꽃잎 안에 최상급 에인 결정이 들어있어, 둥글둥글한 방울이 맺힌 꽃잎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 하칸의 알 ]
[ 부화율 : 57% ]
‘이걸 여기에 올리면…’
차원이 뒷자리에서 히칸의 알을 프랭크가 만든 곳에 올려보았다.
[ 부화율이 빠른 속도로 올라갑니다 ]
이차원은 옆에 있던 프랭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 진짜 장난 아니구나.”
프랭크의 얼굴이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