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빙의가 단순히 그 사람 몸에 들어가는 거라면 동기화율은 그 몸을 컨트롤 하는 능력에 가까웠다. 즉 똑같이 빙의를 하더라도 코웰보다 울프릭의 동기화율이 높았기 때문에 울프릭의 육체를 더욱 효과적이고 공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게 울프릭의 몸에 빙의한 이차원은 울프릭의 몸에 직접 들어가니 확실히 그 우월성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더욱 우월했던 것이다. 예상보다 적응이 잘되었고 컨트롤도 잘 되었다.
‘놀랍다.’
확실히 울프릭과 동기화율이 올라가고는, 울프릭에 빙의했을 때 울프릭의 능력이 더 가깝게 와 닿았다. VR게임으로 예를 들자면, 점점 더 VR 게임의 캐릭터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동기화율이 올랐습니다. ]
[ 캐릭터 동기화율 ]
[ 울프릭 : 16% ]
[ 코웰 : 3% ]
안내창이 빠르게 올라오며 현 상태를 보여주었다.
‘동기화율이 올라?’
동기화율은 차원이 현실 세계에서 울프릭의 능력을 쓸 수 있게 하는 비율이기도 하지만, 차원이 울프릭에 빙의했을 때, 그의 능력을 얼마만큼 사용할 수 있는지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빙의를 해서 울프릭의 몸을 사용했더니 그 비율이 또 올라갔던 것이다.
‘감각이 또 달라졌다.’
확실히 동기화율이 올라가니 울프릭의 능력과 육체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TV로 하늘을 보던 느낌에서 실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보는 것과 같은 차이였다. 이에 차원은 지체하지 않고 총을 장전하였다. 사격준비를 마친 이차원은 검은 사자를 조준하는데 총 너머로 보이는 타겟에 노려진 집중력이 전보다 더욱 높아졌다. 군시절, 사격을 해봤던 차원은 이 정도의 집중력과 절제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감각들이 모두 탁월해진 느낌이었다. 특히나 절제력이 압도적이었다. 울프릭의 몸은 자신이 원하는 순간 완벽히 통제되는 느낌이었다. 심장도, 혈관도 오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기관들도 모두 잡을 수 있었다.
‘전보다 미세한 컨트롤이 가능해졌어.’
전과 비교했을 때와 어느 정도 차이가 나냐 하면, 집게를 사용해 작은 다이아몬드를 잡으려는 단계에서 젓가락으로 잡을 수 있게 된 단계로 오른 것 같았다. 이 짜릿한 경험을 실제로 느끼고 있는 차원은 굉장히 신나고 흥미로웠다. 이차원이 흥에 취해 춤추듯이 총을 쏘아댔다. 그 때문에 산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검은 사자들이 곳곳에서 날아가 죽음을 맞이했다.
이 모습을 이차원이 가져온 과자와 식량을 먹으면서 보고 있던 렌더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놀라움을 표하고 있었다.
-저렇게 움직일 수 있다니, 미쳤어, 미쳤다고.
렌더가 얼이 나간 사이에 이차원은 빠르게 아이템을 획득했다.
[ 검은 사자의 눈을 획득했습니다. ]
….
[ 검은 사자의 눈을 획득했습니다. ]
***
코웰과 기사단은 바닥에 주저앉아 뭘 그리 집중하고 있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다름 아닌 그들은 이차원이 보내준 짜장과 짬뽕을 먹기 바빴던 것이다. 판타지 세계 속 사람들은 매운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듯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여기 세계관 음식들은 모두 그냥 굽거나 과일들을 사용하여 맛을 낸 음식 밖에 없었다.
배가 많이 고팠는지 허겁지겁 음식들을 흡입하고 있는 그들에게 이차원이 물어보았다.
“짜장, 짬뽕. 둘 중 뭐가 좋아요?”
-짬뽕이요!
그렇게 땀을 흘리면서도 매운맛에 빠진 듯하다. 이차원은 이곳 음식처럼 달콤한 맛이 나는 짜장면을 더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의외라고 생각했다. 코웰 역시 붉게 달아오른 얼굴색을 띠며 쉴 새 없이 흡입하고 있었다.
-이게 요정님이 말한 매운…… 맛이라는 건가요?
“성과를 더 올리면 더 맛있는 매운맛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이차원의 말에 모두 잠시 행동을 멈추나 싶더니, 각자 그릇에 담긴 음식들을 기사들이 빠르게 들이켰다. 그릇을 보니 모두 싹 쓸어버린 듯 깔끔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듯한 기사들이 벌떡 일어섰다.
-뭣들 하냐. 훈련 안 하고!
이 사람들, 이차원 세계의 매운맛에 흠뻑 빠져버린 모양이다.
“밥 먹고 바로 훈련하면 속 버려요. 피곤도 할 테니 좀 쉬세요.”
그렇게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진 후, 이차원은 코웰에게 프랭크가 만들어준 총기들을 건네주었다. 엄청나게 많은 양에 코웰은 당황하며 말을 이었다.
-아니 이 많은 걸 혼자 만드셨습니까?
“그럴 리가요. 프랭크 도움을 받았죠. 울프릭 주는 김에 같이 만들어봤습니다.”
-그럼 프랭크한테 갔다 다시 울프릭한테 갔다가 그새 여길 오신 겁니까?
코웰이 놀랄 만도 하였다. 그들의 입장에선 이차원이 마치 순간이동하듯이 이동할 수밖에 없던 일이었다. 물론 데린이 있었다면 가능했겠지만 그녀는 지금 엘프를 만나러 가 이 자리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런 일을 해내기 위해선 무려 일주일 정도 걸리고도 부족할 정도였다. 물론 이차원에게도 얼마 전까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동기화된 캐릭터로 접속을 다양하게 하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두 캐릭터로 접속하면서 엄청난 시간 단축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차원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갤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울프릭의 몸에 [빙의]를 하며 동기화된 실력을 이들에게 보여줄 때가 왔다.
“그럼 이제부터 제가 직접 빙의해서 사격술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요정님, 제 몸을 사용하시죠!
코웰은 저번에 차원이 자신의 몸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몸의 변화를 다시금 느끼고 싶었다. 때문에 선뜻 자신의 몸을 내주겠다 한 것인데 이차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코웰님은 이번 훈련을 지켜보셔야 합니다. 제가 빙의하면 코웰님은 그 시간만큼 기억을 잃을 텐데 그렇게 되면 몸은 기억해도 머리가 기억하지 못합니다. 부하들을 챙기려면 우선 이 머리로 배우셔야 합니다.”
이차원의 생각엔 전투의 중심이 되어야 할 코웰이 먼저 사격을 배워서 다른 구성원들을 챙기는 것이 효과적이라 판단이 섰던 것이다.
-하지만...
“울프릭 쪽은 벌써 검은 사자의 눈을 얻어서 복귀 중에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 일도 이차원이 했기에 빨리 끝났지, 이차원이 없었다면 아직까지도 검은 사자 5마리도 잡지 못했을 것이다. 이차원은 이 사실을 굳이 이들에게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 말에 코웰이 조바심이 났는지 의욕을 불태웠다.
-요정님 말이 맞습니다. 제가 쓸데없는 욕심을 부렸네요. 죄송합니다.
코웰은 미련이 남은 듯 보였지만 울프릭 팀이 벌써 재료를 구했단 말에 빠르게 수긍하였다. 이차원은 흡혈귀에 대한 추가설명을 이들에게 해주었다. 이 설명은 박지원을 통해 조사한 내용이었다.
“흡혈귀는 검은 사자와 다른 방식으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들입니다. 박쥐형 몬스터인 것도 있지만 속도가 빠르고 날아다니는 패턴이 정해져 있지도 않다 보니 난이도로만 치면 검은 사자보다 높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혈정석을 얻으려면 흡혈귀를 잡아야 하는데, 검은 사자와 다른 방식으로 성가신 놈들이었다.
이놈들은 모험가에게 빠르게 달라붙어 목을 물고 피를 빠는 괴물들이었다. 그렇게 피를 빨고는 하늘로 날아가 버리기에 매우 성가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총이야말로 그놈들을 상대하기 가장 적합한 전투방법이 될 겁니다.”
이차원이 말을 끝내고 열을 맞춰 서 있는 기사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이윽고 이차원은 기사들 한 명 한 명에 [빙의]를 시작하였다. 사격술에 적합한 사람을 고르기 위함이었다.
‘아니야. 몸이 무거워.’
‘몸은 가볍지만 무력이 약해.’
이차원이 기사들의 몸에 들어가 직접 총을 겨누며 몸소 체험했다. [빙의]를 사용하고 나올 때마다 기사들이 차례로 픽, 픽 쓰러져 나갔다. 기사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리는 듯했으나 용맹하게 이차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거다.”
이차원이 고심 끝에 택한 육체는 다름 아닌 로윈 아르만. 코웰의 측근 기사였다. 아르만 몸에 빙의한 이차원은 울프릭만큼은 아니지만, 얼추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빠르게 총기를 잡고 사격을 연습하였다.
위이이잉! 콰아앙!
빠른 속도로 조준 격발을 보이는 차원. 아니, 로윈 아르만의 모습에 코웰은 넋을 놓았다.
-아아......!
코웰은 자신도 모르게 아르만의 움직임을 보며 감탄사를 연속으로 내뱉었다. 코웰의 시선에도 아르만의 움직임에선 군더더기란 보이지 않았다. 움직임을 보면, 가장 간결하게, 최소한의 동선만을 이용하여 총기를 들고 격발하며 표적들을 모두 맞추는 모습이었다. 입을 벌리며 헤벌레 보고 있던 코웰은 뺨을 툭툭 쳤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아르만의 모습을 보며 그 움직임과 사격기술을 눈으로 배우고 익혔다. 이내 자신도 연습에 들어가며 그 모습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
이차원에게 총을 받은 우랑길드는 곧장 연구에 돌입했다.
“금속은 타파이트를 이용한 것 같습니다.”
“아주 정교하게 제련됐어요. 이 정도 기술력이면 독일이나 미국 쪽에서 만든 게 아닌가 싶은데.”
“이차원, 그 사람이 만들었다니까요.”
연구소 사람들이 몇 년을 공들여도 만들지 못했던 물건이었다. 그런 물건을 이차원이 순식간에 만들어냈다는 게, 대단함과 동시에 회의감이 같이 들어왔다. 이게 바로 노력은 재능을 이길 수 없다는 기분인 걸까. 연구원 한 명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지금까지 우린 뭘 했나 싶습니다.”
“게이트가 생긴 지 10년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과학기술을 앞지르는 스킬이 남아있군요.”
“그나저나 타파이트라니.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입니다.”
당연했다. 최상급 에인 결정을 다루기 위해선 타파이트가 아닌 다른 금속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학계 정설이었다. 그런데 차원은 직접 타파이트를 제련하고 가공해서 최상급 에인 결정을 다룰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준 것이었다. 정석을 제대로 깨버린 일이었다.
해답은 주지 않았지만, 최하급 이상의 결정을 다루는 것에 절대적으로 다른 금속이 필요하다는 것의 고정관념을 깨버린, 어쩌면 게이트 에너지 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애니상을 얻을 정도로 성과였다.
“앞으로 이에 대한 연구과 가속화될 겁니다. 우리도 길드 내 총기단을 만들어 훈련 시킬 필요가 있어요.”
“능력 미달 헌터들에게 희소식이 되겠군요.”
총기단만 구성되면 기존에 능력이 없어 기존에 짐꾼이나, 시체 처리반을 하던 헌터들도 무력을 얻는 것이 가능해질 거니까.
인생이 발전 중인 이들에게 새로운 상식이 피어나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