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지금쯤 재료는 다들 얻었으려나.’
이차원 일행들이 재료를 다 얻었나 싶어서 게임에 접속하였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선택지가 떠오르며 이차원이 고를 수 있는 듯 보였다.
[ 울프릭 ]
[ 코웰 ]
‘선택지? 시점 변경 같은 건가?’
이차원은 곧장 그 의도를 눈치챘다. 그는 이것이 게임 시점이 변경되는 것인 줄 바로 알아채었다.
‘동기화되는 캐릭터의 시점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군.’
이차원은 새롭게 얻은 능력에 대해 빠르게 생각해보았다.
‘동기화되는 캐릭터 능력이 많을수록 신체 힘이 증가하고 게임 여러 군데를 빠르게 옮길 수 있겠어.’
그야말로 완전 미친 능력이었다. 이렇게만 된다면 제한된 범위만큼은 차원의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었다. 결국 시간을 단축해나가며 게임을 진행해 나갈 수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었다. 이 사실이 앞으로 동기화를 더 많이 해야겠다는 차원의 의지를 불태워주었다.
“그렇다면 우선 이쪽 먼저 가볼까.”
차원은 코웰쪽으로 접속한다. 코웰을 이차원이 갑작스레 나타났음에도 정중히 모시며 인사를 하였다.
-오셨습니까.
코웰과 그의 부하들은 아직도 이동중에 있었다. 칼과 갑옷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니, 오는 길에 전투를 한 것 같았다. 다행히 부하들의 표정을 보니 지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직 멀었습니까?”
-혈정적은 흡혈귀 몬스터한테 나오는데 앞으로 삼일은 더 가야 합니다.
“전력에는 이상 없죠?”
이차원은 전투를 치른 기사들이 걱정돼 물었다. 겉모습은 지쳐 보이지 않을지라도 속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인 듯하였다. 기사들은 모두 힘든 기색 없이 웃어 보였다. 코웰 역시 이차원에게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문제없습니다.
불만이라고는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기사들은 오히려 모두 즐거워하는 듯 보였다. 그만큼 차원에게 높은 충성도를 가지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코웰의 표정은 무언가 말하고 싶은지 부하들의 눈치를 보며 입을 움찔거렸다. 마치 상관에게 어려운 부탁을 꺼내듯이 불편해 보이는 사원의 모습처럼 보였다.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이차원이 물어보자 그제서야 코웰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실 이놈들, 아까부터 배가 고프다는데 식량이 떨어져 가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네요. 이 근처에서 먹을 것을 구해 볼 수 있기에는 전혀 그렇게 안 보이고요.
코웰이 주변을 둘러보며 대답하였다. 확실히 이 길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바닥에 자라고 있는 잡초같은 풀 몇 가닥이었다. 과일도 열려있을 거 같은 나무들도 안 보이고, 짐승들마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부하 중 한명 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이차원은 그들을 바라보며 오늘 자신에게 표시가 뜬 것처럼 선택지를 주었다.
“짜장 짬뽕. 둘 중 하나 골라요.”
이차원이 대뜸 그들에게 중국집 메뉴를 물어보았다. 당연히 기사들은 그게 무슨 음식이고 어떻게 생긴 건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였다.
-자아아장? 짬뻥? 그게 뭡니까?
코웰도 이게 뭘 뜻하는 건지 전혀 알지 못하였다. 이차원은 넌지시 웃으며 종이와 펜을 넘겨주었다.
“반반의 확률이니 아무거나 고르고 계세요.”
말을 마친 이차원은 그들의 앞에서 사라졌다. 코웰은 이차원이 건네준 종이와 펜을 쥐고 각자 부하들의 선택을 적어나갔다. 한편 이차원은 게임에서 나와 이번엔 동기화 캐릭터를 바꾸기 위해 게임 초기화면으로 넘어가 있는 상태였다. 이차원은 곧장 울프릭이 있는 곳으로 접속하였다.
-왔냐 요정.
-오셨어요.
울프릭과 렌더의 모습은 코웰의 상황과 완전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둘 다 모두 심하게 숨을 헐떡이고 있는 중이었다.
“문제 있어?”
이차원의 질문에 두명 모두 한탄하듯 대답하였다.
-문제야 많죠. 저놈들 너무 빠릅니다.
-검으로 하나하나 처리하는 것도 일이야.
그들의 말을 들어보니, 검은 사자 놈들이 기동성이 너무 빨라서 검으로 일일이 처리하는 것에 체력적으로 너무 부족한 모양이었다. 이런 속도라면 체감상 몇 주일은 걸릴 것 같아 보였다. 그들 역시 식량은 없었다. 차원이 직접 도와주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차원의 힘은 시간이 조금 단축되어도 파괴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울프릭이 저렇게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어차피 울프릭과 내 전투력은 비슷해. 거기에 사용 무기도 같고. [창조] 스킬을 발동해 현실 스킬들을 사용해버리면 얻고 싶은 아이템들이 다 상해버릴 거야.’
센드웍을 얻을 때처럼 말이다. 이차원이 [독장판]을 사용하여 얻은 센드웍들은 모두 상태가 안 좋았었다. 이차원은 고민에 빠지더니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기다려봐.”
게임에서 빠져나온 이차원은 최상급 에인 결정을 담은 총기를 쥐었다. 이것을 그들에게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 복제 ] [ 강화 ]
순식간에 두 정의 총기가 생겼고, 각각 울프릭과 렌더에게 전달이 되었다.
-이건 총이잖아.
울프릭은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전에도 이미 써본 경험이 있었고 이미 그 한계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수명이 너무 짧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최상급 결정을 넣고 내가 직접 만든 거야. 일단 써봐. 써보면 놀랄 거야.”
이차원의 말에 울프릭이 밑져야 본전이라는 듯 검은 사자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콰아아앙!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은 사자들은 놀란 듯 바삐 움직이던 몸을 세우며 그들을 쳐다보았다. 이차원 일행 역시 모두 놀란 토끼 눈을 지었다. 분명 방아쇠를 당겼지만 그 누구도 죽지 않았다. 그 전에 총이 터져버린 것이다. 울프릭이 터진 총을 보며 말하였다.
-요정,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잘못 건네준 거라도 한 거지?
이차원은 그저 울프릭의 손 위에 놓여진 터져버린 총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터졌다고? 어째서?’
분명 현실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잘만 사용했던 총이 터져버리자 당황한 것이다. 이차원은 도대체 뭐가 잘못인 건지 원인을 생각했다.
‘현실과 게임 속 물건들은 잘만 작동했는데, 이번엔 뭐가 다른 거지? 설마 [강화]스킬 때문인가?’
[강화]스킬을 사용했는데, 최상급 에인 결정의 에너지 역시 강화가 되었다, 그렇기에 타파이트 금속이 못 따라가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거라고 이차원은 생각한 것이다. [강화]스킬은 전체적으로 아이템이 강화되지만, 에인 결정과 같은 에너지 결정은 예외인 것 같아 보였다.
-이래서 총은 별로야.
울프릭이 터져버린 총을 내던지더니 다시 심판자의 검을 들어 올렸다.
“더는 줄 총도 없다.”
하급 결정으로 만든 총기를 사용해서 잡으려니, 그건 또 검은 사자에게 위력적인 파워를 내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최상급 에인 결정으로 만든 총이 필요해진 상황이었다.
‘프랭크한테 부탁하는 수밖엔.’
하지만, 이곳에서부터 프랭크가 있는 디즌 마을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트럭이나 관광버스도 없었다. 그렇기에 적어도 이틀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다, SUV라도 한 대 뽑더라도 다녀와야지.’
그는 SUV를 가져와 접속한 후, 디즌 마을에 가서 프랭크에게서 최상급 에인 결정을 이용한 총기를 받기로 하였다. 그것을 인벤토리에 넣은 후 다시 초기화면으로 가, 동기화를 통해 울프릭에게 이동하는 방식으로 총기를 전달하려고 하였다.
“기다리고 있어라.”
울프릭과 렌더는 두고 갈 생각이다. 데려가봤자 다시 돌아오는 데 시간만 걸릴 테니까.
***
“성능 좋네.”
이차원이 중고 SUV를 사들고 판타지 세상을 달리고 있었다. [창조] 스킬을 이용해 이름 모를 모험가를 만들어냈고 거기에 빙의한 채 이동하고 있었다. 유령 같은 몸으로는 이동 속도가 한정적이고, 이곳의 물체를 만질 수 없었기에 직접 차를 몰려면 이럴 수밖에 없었다.
마차가 달리는 길은 어느 정도 길이 잘 닦여있었다.
물론 검은 사자의 눈은 현실에서도 차원이 구해서 가져올 수도 있었지만, 그 상황이 매우 한정적이었다. 현실에서는 게이트에 들어가야 되고, 게이트 안의 몬스터들을 싹쓸이하면 몬스터들이 리젠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였다. 그렇기에 상당한 체력과 오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곳 다크혼에서는 해당 몬스터가 나오는 지역에 가면 몬스터들이 주기적으로 리젠되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는 이득이 되었다.
‘가서 죽치고 사냥하면 말 나올 거 뻔하지.’
게다가 S++ 헌터가 되었다고 해도, 길드나 개인이 입찰 받은 게이트에서 죽치고 사냥을 하기엔 또 시끄러워질 수도 있었다. 뭘 해도 꼭 불편함을 티 내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니까. 결국 최상급 에인 결정을 얻은 것처럼 강력하게 효과적인 것이 아니라면, 다크혼 내에서 구하겠다고 생각한 이차원이었다.
“이게 무슨 개고생이야.”
지금 상황이 어이가 없는지 운전 도중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차원은 인기나 명성이 좋기도 하지만, 이럴 땐 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그런 귀찮은 사건을 안 만들기 위해서 이러고 있는 거니.”
그는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다. 헌데 인기나 명성이 비효율을 동반하면서도 때때로 효율적일 때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사건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멈춰라!
이차원이 갑자기 길로 뛰어든 남자들 때문에 급히 차를 멈췄다.
잘 닦여있는 마차 길 앞에 기사 세 명이 보이는데 행색을 보아하니 딱봐도 도적놈들이었다.
-뭐야. 이런 마차가 있었나?
도적들은 처음 보는 차를 신기해서 둘러보더니 대검으로 차를 툭툭 건드렸다. 그에 따라 차에 기스가 생겼다. 중고라 다행이지, 새 차였으면...
-뭐하냐. 안 내리고!
도적이 이차원을 위협하려는 듯 칼을 꺼내 들었다. 이차원은 웬일로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 이차원의 행색을 본 도적들이 비웃기 시작했다. 저놈들 행색이 도적놈들이지만, 차원의 지금 행색도 허접한 모험가였기 때문이다. 도적들은 땡잡았다는 미소를 지었다.
-이 철덩어리 정도면 오늘 밥값은 나오겠어.
-근데 이건 대체 뭐냐?
-아까 보니 말보단 빠르던데. 일단 뺏고 보자고.
도적들은 이미 이차원을 제압이라도 한 것마냥 자신들끼리 수군거렸다. 이차원은 그들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야. 뭘 그렇게 쳐다봐. 가지고 있는 거 싹 다 꺼내.
이차원이 한숨을 쉬며 심판의 검을 꺼내 들었다. 검을 본 도적들은 동시에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더니 자신들끼리 급하게 회의를 하였다.
-저 검 그거 아니냐?
-맞는 거 같은데.
-근데 왜 저 검을 저런 놈이 가지고 있냐고.
잔뜩 겁먹은 듯이 뒷걸음질 치더니 이내 다시 위풍당당하게 이차원을 향해 걸어왔다.
-너 말이야. 그 검도 내놓는 것이 좋을 거다.
-조용히 넘기면 목숨은 살려줄게.
도적들은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었다. 가장 무서운 맹수는 적이 다가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고만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