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헌터 등급 평가소-
헌터 등급 평가는 각성되는 헌터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서 찾는 곳이다. 당연히 이곳에서 높은 등급을 받게 되면 좋은 길드, 또는 국가 소속 헌터가 될 수도 있었다.
“평가는 인공 게이트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차원님이라면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을 겁니다.”
차원은 박지원의 배웅을 받으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은 게이트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연습실 같은 곳이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새하얀 벽으로 막혀져 있는 밀폐된 공간이 보였다. 모서리 부근에는 현 상황을 관계자들에게 전해주기 위한 CCTV 같아 보이는 카메라가 보였다.
‘저걸 통해 내 모습을 보고 등급을 측정한다는 거지?’
벽을 한번 쓸어보았다. 겉보기에는 그저 아무것도 없는 벽으로 느껴졌었다. 하지만 직접 만져보니 알 수 없는 기운이 벽과 이차원의 손 사이로 흐르는 듯하였다. 마치 정전기 같은 게 지나가듯이 진동이 울려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스킬을 마구잡이로 사용해도 그 충격을 분해시켜 충분히 버틸 수 있게 해주기 위한 장치 같았다.
“재밌네.”
이어서 이차원은 게이트 주변에 설치된 센서를 둘러보았다. 게이트에 들어오기 전, 박지원이 귀띔해주듯이 설명해준 센서였다. 설명에 따르면, 스킬들을 사용하면, 캡슐에 달려있는 센서가 그 스킬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었고, 그 위력까지 설명해준다는 것이었다. 이윽고 안내방송으로 신호가 떨어졌다.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스킬은 하나씩 시전하시면 됩니다.”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알림 소리가 울렸다.
삐!
이차원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 안에 서있는 상황이었다.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스킬을 쓰면 된다고 하였지? 그럼 스트레스도 풀 겸 제대로 실력발휘 해봐야지.’
이차원은 온몸에 힘을 집중시키며 끌어모았다. 이내 왼발을 앞으로 내민 후, 오른발을 뒤로 보내며 몸을 지탱시켰다. 그렇게 무게 중심을 뒤로 젖히더니 앞으로 몸을 숙이듯이 움직였다. 동시에, 오른팔을 크게 휘둘렀다. 마치 야구에서 투수가 공을 던지는 모습과 같았다.
그렇게 이차원이 사용한 첫 스킬은 이차원의 트레이드마크인 [슈퍼노바]였다. 반지의 위력에 한층 강해져 있던 [슈퍼노바]는 엄청난 눈보라를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생겨난 얼음 결정들이 날카롭게 바뀌더니 이차원의 맞은편 벽으로 힘차게 던져졌다.
‘오늘따라 몸이 되게 가벼운데? 그렇다면 쉬지 않고 간다!’
차원은 여태까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스킬인 [슈퍼노바]를 비롯한 [독장판], [스카이 워커], [라이트닝 스피어]를 연달아 사용하였다. 그 모습을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감탄하였다.
이차원의 장갑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장판]은 초록색 액체를 뿌려대며 벽을 녹여대었다. 녹아든 벽은 이내 다시 재생되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어 이차원은 [스카이 워커]를 사용해 하늘로 높이 날아들더니 양손을 사용해 [슈퍼노바]와 [독장판]을 같이 사용하였다. 쏟아져 가면서 눈보라에 의해 얼었던 푸른 액체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벽에 부딪히면서 녹아 흐르더니 더 넓은 범위의 벽들을 녹아내렸다.
행위예술과 같은 이차원의 몸짓에 감탄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보는 건 또 다르네요.”
“아니 근데 무슨 구경 났다고 이렇게 몰려들었어?”
관계자 중 한 명인 김용수가 평소에는 잘 보이지도 않던 관계자들도 몰려들자 짜증스럽게 물었다.
“왜긴요. 이차원 보러 왔죠.”
이차원이 헌터 등급 평가를 받는단 소문이 어느새 쫙 퍼진 것이다. 이런 사실은 또 어떻게 알고 퍼트린 건지. 하긴, 제출한 신청서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때문인지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온 것이다. 물론, 다들 국가 소속 헌터 기관의 관계자들이었다.
김용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혀를 차며 모니터링에 집중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차원은 이번에 교본을 통해 업그레이드한 스킬들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차원이 메테오를 사용할 때였다.
“잠깐만, 저건 레벨 1이 아니잖아?”
모니터를 통한 메테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메테오의 온도는 Lv1보다 더 뜨거운 듯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개수 역시 거의 2배에 가까운 양이었다. 그런 막강한 스킬을 이차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도 웃으면서 말이지. 메테오 숫자가 늘어났기 때문에 하나하나에 신경 써야 돼서 제대로 컨트롤 하기에는 그만큼 오래 걸리는 일인데도 이차원은 너무나 쉽게 사용하고 있던 것이다.
‘스킬볼을 두 개나 먹었단 게 말이 돼?’
스킬 Lv2라는 건, 현실 세계에서 아주 고가에 팔리는 스킬볼을 두 개나 먹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스킬볼이란, 몬스터를 잡으면 얻을 수 있는 구슬형태의 아이템이었다. 허나 희소성과 희귀성, 둘 다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기에 하나 얻는 것도 평생의 운을 다 썼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매우 얻기 힘든 귀한 아이템이었다.
그러다 이차원을 보던 관계자가 김수용에게 물어보았다.
“근데 원래 이차원에게 메테오 스킬이 있었나?”
“아니.”
김수용이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이 아는 이차원에겐 원래 메테오 스킬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 정도의 능력을 보일 수가 있다니.
‘그래. 뭐, 이차원 정도 되면 저 정도 스킬이 있을 수 있는 건 가능한 일이지.’
김수용의 생각대로 이차원은 대한민국에서 현재 잘 나가는 헌터다. 물론, 그가 스킬볼을 어느 곳을 통해 습득하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겠지만. 김수용이 나름 납득을 할 때였다. 엄청난 굉음들과 폭발음들이 게이트 안을 휘몰아쳤다. 마치 휘황찬란한 사물놀이를 보고 있는 거 같았다.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속이 시원해졌다.
그런데 김수용의 눈에는 오직 스킬들만이 눈에 들어왔다. 이차원이 사용하던 기술들이 모두 Lv2였던 것이다.
‘저게 말이 된다고…?’
김수용은 이차원에게 이제 위압감마저 들었다. 주어진 짧은 시간만에 저렇게나 많은 스킬들을 사용하다니.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저 많은 스킬을 얻었을까요?”
“스킬이 많은 것이 대단한 게 아니야.”
“그럼요?”
“저 많은 스킬을 동기화한 것이 대단한 거지.”
김수용의 말에 관계자들 모두가 동의하였다. 스킬을 새로 얻거나 스킬의 레벨이 올랐을 때, 헌터들은 대개 적응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기 일쑤였다. 심지어 [파이어볼]이나 [메테오]를 처음 얻거나 레벨이 올랐을 때, 온 동네를 불바다로 만들 뻔한 일도 종종 있었다. 걷는 것을 아무리 잘해도 오래 뛰기는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인데, 차원은 이미 모든 스킬에 동기화가 되어 있었다.
‘컨트롤이 완벽해.’
도대체 저렇게 많은 스킬들을, 언제 다 훈련하고 연습해서 동기화를 한 걸까. 거기에 지금 차원이 보이고 있는 검술은 이미 아시아급을 넘어섰다.
“이게 바로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구나.”
“와, 선배가 이 정도로 인정하는 헌터는 처음이네요.”
물론 게이트가 생성된 지 천 년이 되질 않았지만, 15년 이상 헌터들을 봐온 김용수의 경험에 의하면 그랬다. 이 정도면 개천에서 용이 난 정도가 아니라 사막 한가운데서 용이 난 것과 같았다.
***
[ 이차원, 세계에서 가장 많은 Lv2 스킬 보유 ]
[ 이차원 전 세계 길드 러브콜. 국가 소속 계약기간 5년 이상 남아. ]
[ 헌터 전문가 “이차원의 성장속도에 의하면 최고의 전성기는 딱 5년 뒤 ]
[ 각종 대형 길드 및 선진국들 5년 뒤 계약금 준비 ]
한편 이차원의 승승장구에 애가 타는 건 우랑길드였다. 샌드웍 게이트에서 자신들의 부하들이 차원에 의해 희생된 이후 관심이 생겼지 그들이 처음부터 이차원을 경계한 건 아니었다. 부하들이 말단 직원이긴 했지만, 들리는 소문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최근에 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차원이 헌터 등급 평가에서 가장 높은 단계인 S++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S++급은 현재의 강한 능력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에도 초점을 맞추는데, 이는 전 세계에도 몇 명 없는 수준이었다. 때문에 우랑 길드의 본부장인 장리와 그의 수하들이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굳이 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나요? 지금이라도 손을 내밀고 새롭게 관계를 구축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손을 내미는 정도로 되겠습니까? 머리 박고 싹싹 기어도 모자랄 판에.”
“그럼 이건 어떨까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최상급 에인 결정을 찾고 있다는데 우리 길드 창고를 싹 털어서라도 원하는 걸 내주는 거죠.”
“그 비싼 걸 그냥 주잔 겁니까?”
“사람이 단순하긴. 멀리 보세요, 멀리. 이차원의 마음을 얻는 게 대한민국의 마음을 얻는 거 아닙니까.”
회의장은 순식간에 결정을 주냐 마냐, 얼마에 팔아야 하냐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동안 조용하게 있던 본부장 장리가 탁자를 내려쳤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탁자가 부러지지 않은게 신기할 정도였다. 장내는 삽시간에 조용해지며 눈을 모두 내리깔았다.
“그냥 줘라.”
장리가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하였다. 수하들은 모두 놀라고 당황하였지만 장리의 포스 앞에서 함부로 그의 의견을 거역할 수 없었다.
***
“파는 것도 아니고 그냥 준다고?”
“네. 저도 아직 믿기지가 않아요. 이놈들이 이러는 게 처음이라.”
우랑 길드의 연락을 받은 박지원은 아직도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차원님도 아시겠지만 이놈들 그때 그 사건 이후로 꼬리를 자르며 내빼더니 한국에서 완전 발을 뺐거든요.”
박지원이 말한 그 사건이라면 센드웍 게이트 사건이었다. 그 당시 우랑길드가 차원에게 하려 했던 만행들이 공식적으로 밝혀졌다. 이에 우랑길드는 그 말단 직원들과 자신들은 상관이 없다며 꼬리 자르는 식으로 한국에서 발을 뺐었다.
“아무래도 이걸 빌미로 다시 한국에 진출할 계획인 것 같습니다.”
그들의 수야 뻔했다. 박지원은 한국에서 가장 핫한 차원에게 자금을 수혈해 들어오고자 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이차원 역시 그들의 뻔한 수를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양아치 새끼들, 그 근본이 어디 가겠나.”
꼬리 자르는 식으로 도망을 치는 모습부터가 마음에 안 들었고, 윗물이 더러우니까 당연히 아랫물도 당연히 더러워진 거라 생각하였다. 이에 굉장히 심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결정을 준다고 하니 일단 사양하지 말고 받기로 하였다.
그와 동시에 이차원은 박지원에게 무언가를 부탁한 듯이 물건을 건네달라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