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이차원님이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탄약고를 관리하는 부대장이 들뜨다시피 말하였다. 탄약고 안은 매우 깨끗하게 정리가 된 상태였다. 아마 이차원이 온다는 연락을 급히 받고 병사들을 시켜 부리나케 청소를 시킨 모양이었다. 무기들은 일렬로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기름칠을 빡빡하게 했는지 쿰쿰한 냄새가 콧속으로 침투해왔다. 그나저나, 헌터가 탄약고에 오다니, 이차원은 당연하다는 듯 부대장에게 물었다.
“처음인가요? 헌터가 시찰 오는 건?”
“아니요. 종종 오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부대장 말에 이차원이 조금 의아하게 쳐다본다. 자신 말고도 군인들 탄약고에 오는 헌터들도 있다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왜냐하면 헌터들에겐 각자 무기가 있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관할지역에 피해가 생기면 헌터나 군대나 피차 좋을 게 없으니까요. 실적이나 인사고과에 불리한 영향을 주기도 하고.”
이차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들은 헌터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게이트가 형성되는 것이 예측되면 군인들과 헌터가 집결해 게이트의 위험도를 파악하고, 곧장 처리하든가 남겨두고 돈을 벌 것인가 판단하는 업무도 하였다.
그러나 돌발 게이트가 형성되면 군인들이 빠르게 출동해 헌터들이 올 때까지 주변 인력을 통제하기도 하였다. 자이언트 웜 때도 그랬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몬스터에 대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항상 제대로 준비가 돼 있어야만 했다.
마침 차원의 관할 지역은 서울이었으니, 수도방위사령부에 대한 시찰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실제로 많이 이루어지는 일이기도 하니 평소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기가 생각보다 다양하군요.”
이차원은 가지런히 진열된 무기들을 보며 말하였다. 이에 부대장이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대부분 하급 에인 결정 탄환을 사용하는 무기들입니다.”
“중급이나 상급 탄환을 사용하는 무기는 없는 겁니까?”
“기술의 한계죠. 아직 그 힘을 버틸 수 있는 금속이 개발되지 않았거든요.”
만약 그 금속이 개발만 된다면 더 좋은 무기가 나올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이차원은 끝내 아쉬운 마음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무기들로 눈길을 돌리자 부대장은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저건 몬스터 심장에 있는 마정석을 이용한 수류탄이고 저건 결정 에너지를 이용하는 박격포입니다.”
부대장이 설명하는 무기 모두 차원의 관심을 받을 만한 것들이 많았다.
‘당장 이런 무기들을 내가 가져갈 방법 없나.’
지금 있는 무기들을 당장 게임 속 세상에 가져가면 매우 큰 도움이 되겠지만, 아무리 헌터라도 나라의 무기를 훔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사들이기에는 어딘가 심히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트럭이라느니 관광버스를 구매하느라 비용이 너무 많이 든 것이다. 그런데 그때 이차원이 한 곳에 무기들이 정리가 되지 않고 쌓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차원은 바로 더미들에게 다가갔다.
“여기 쌓여져 있는 물건들은 무엇이죠?”
부대장은 이차원이 가리키는 더미들을 보며 말했다.
“수명이 다한 무기들을 모아둔 겁니다. 하급 에인 결정이 화약보단 강해도 금속이 견뎌내기 힘들다 보니 수명이 짧아요. 이것도 기술의 한계인 거죠.”
부대장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아무리 강한 무기라 해도 오랫동안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손질만 잘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깔끔한 것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럼 이대로 버려지는 건가요?”
부대장은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인 결정 기운이 몬스터를 끌어들이다 보니 재활용도 안 되고. 뭐, 그냥 부대 안에 방치중에 있습니다.”
이차원은 그것이 잘 됐다는 듯 다행스럽다는 미소를 지었다.
“버려진 거면 제가 가져가고 싶은데.”
“저걸요? 저거 고쳐 쓰지도 못하는 고철입니다.”
부대장은 이차원에게 가져가봤자 소용없다며 이차원을 말렸다. 그러나 이미 마음속에 한 번 정한 일은 바꾸지 않는 이차원이기에 단호하게 나갔다.
“재활용도 안 되는 고철을 처리해준다는데 좋은 거 아닌가요? 저한테 주시면 제가 잘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이차원은 부대장에게 전혀 꿀리지 않는다는 듯이 되받아쳤다. 부대장 역시 대령이라는 굉장히 높은 계급이었지만, 헌터인 차원과 비교해보았을 때 한참 낮은 계급이었다.
부대장은 당연히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그는 이차원의 행동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걷던 박지원이 눈치를 주며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신호를 날렸다. 부대장은 그 신호를 바로 알아챘다. 그건 무조건 맞춰주라는 눈빛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부대장은 일단 지르고 보긴 했는데 이차원이 왜 이런 선택을 하였는지, 도무지 그의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하였다. 물론 여기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저걸 무슨 수로 처리하겠단 건지, 원.’
이차원이 싱글벙글 웃으며 무기 고철을 가져가는 모습에 의문이 들었다.
***
말을 타고 달리던 레이큰이 수상함을 느끼고 고삐를 당겼다. 레이큰의 말이 갑자기 멈추자 그의 뒤로 따라오던 부하들도 모두 동시에 말을 멈추었다. 부하는 레이큰의 지시를 기다렸지만 아무 명령이 없자 물어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부하의 물음에 레이큰은 묵직한 어조로 대답했다.
-문제가 없는 게 문제다.
부하는 레이큰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문제가 없는 게 문제라니.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레이큰은 뒤돌아서며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부하에게 지금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말하였다.
-이 길은 험하기로 유명하지. 그래서 마차가 아니라 말을 이용해 가는 사람이 많고.
-네 그런데요?
부하는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네 눈엔 지금 이 길이 마차를 끌기 어려운 길로 보이느냐?
레이큰 말에 부하는 드디어 큰 걸 깨달은 것마냥 표정이 바뀌더니 호탕하게 웃었다.
-할 짓이 없으니 이런 것도 하나 봅니다!
부하의 말에 뒤에 있던 용병들도 함께 웃었다. 그들은 이차원 일행을 완전히 깔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레이큰의 표정만은 밝지 않았다.
‘왜지. 뭔가 기분이 찝찝해. 이 길이 아닌가?’
-이런 길이면 생각보다 더 빨리 도착할 수 있겠는데요?
부하는 신이 나서 말하였다. 거친 길이었으면 도망치긴 힘들겠으나 쫓아오는 추격자들도 따라오기는 여간 힘들었을 거다. 그런데 굳이 그런 길을 반듯하게 만들 이유가 있긴 한 걸까.
레이큰이 그들의 생각을 읽어보려 할 때 저 멀리 밭에서 일을 하는 남자와 소년이 눈에 띄었다. 아버지와 아들처럼 보이는 사이 같았다. 레이큰은 부하와 용병을 지휘하더니 순식간에 그 둘을 포위하였다.
-누, 누구세요?
남자는 아이를 감싸며 겁에 질린 채 물었다. 레이큰은 보기만 해도 무서워 보이는 무기를 내보이며 강압적으로 물어보았다.
-디즌 왕국으로 가는 길이 어디냐.
레이큰이 곧장 그들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레이큰 일행이 풍기는 위압감에 자신의 아들을 뒤로 숨기며 대답하였다.
-저쪽으로 쭉 가면 있습니…….
그 순간, 말하는 남자의 목이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늘을 날고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그 머리는 땅바닥에 떨어지며 굴러갔다. 동시에 아이의 입에서 비명과 슬픔이 흘러나왔다. 레이큰이 옆을 보자 어느새 나타난 레이큰의 부하가 악으로 가득 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개를 똑바로 쳐들고 얘기하기는 게 건방져서 베어버렸습니다.
죽은 남자 뒤에 서있던 아들은 여전히 몸을 벌벌 떨며 절망의 감정들을 내뿜고 있었다. 소년은 목이 잘린 아버지의 몸을 부여잡고 있었다. 여전히 부하의 칼에선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레이큰은 떨고 있는 아들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소년의 눈에선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무섭나?
레이큰의 물음에 소년은 덜덜 떨며 고갤 끄덕였다.
-숙여라.
레이큰 말에 소년은 덜덜 떨며 고갤 숙였다. 어쩔 수 없었다. 소년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레이큰은 피식 웃고는 말 머릴 돌리며 지시했다.
-가자.
레이큰은 이내 무뚝뚝하게 다시 용병들을 이끌었다.
-저 소년은 죽이지 않는 건가요?
부하의 물음에 레이큰은 대답했다.
-저 아이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방법을 택한 것뿐이다.
그 말에 부하와 용병들은 소리 내며 깔깔 웃었다. 그들은 그렇게 달리기 시작하였다.
***
데린은 자신의 앞에 가득 쌓여있는 총을 만지작거리는 중이었다. 어느새 이차원이 무기를 이세계에 가져다 놓았다.
-이게 뭐라고? 무기 맞아?
이차원이 고갤 끄덕이자 데린은 총을 분해해보고 곧장 그 원리를 파악하였다.
-이거 엄청난 무기였구나. 마법을 사용 못 하는 자들한테 주면 되겠는걸?
전기를 쏘고 불을 쏘고, 얼음 광선을 날리는 것들은 마법사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마법을 배우지 못한 일반인들에겐 그들을 대응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들이 싸울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신체 능력을 계속 올려 기사들을 흉내 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기사 흉내를 낸다 해도 그들은 무력만 쓰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들도 마법사들처럼 마나를 썼고 결국 일반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기사의 힘을 따라갈 수 없었다.
-어? 이거 근데-
-작동 안 돼요. 당신이 고쳐.
데린이 총을 만진 지 얼마 안 돼 고장 났다는 것까지 알아챈 것이다.
‘저 기술 볼수록 탐나는군.’
이차원은 데린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능력이 탐내었다. 하지만 데린이 가지고 있는 스킬을 갖기엔 아직 호감도가 한참 부족했다. 데린의 스킬을 가질 생각을 하는데 총을 만지작거리던 데린이 갑작스레 물었다.
-아까 탄환으로 에인 결정을 이용한댔지. 상급?
-하급이요.
-하급? 대체 왜 그런 쓰레기 에인 결정을 사용하지? 그쪽 세상이라면 좀 더 좋은 걸 쓸 줄 알았는데.
데린이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라면 다르게 사용할 거야. 적어도 이것보단 괜찮게.
이어서 데린은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몇 가지 마법을 사용하더니 순식간에 고장 났던 총을 고쳤다. 그 모습을 실제로 본 이차원은 굉장히 놀라워하였다. 그야 여긴 게임 속 세상이다. 이런 물건은 전혀 본 적 없을 텐데 이렇게 쉽게 고쳐내었으니 그럴 만했다.
-다 됐다.
이차원은 데린이 고쳐준 총으로 쏴보았다. 총은 원래의 위력보다 훨씬 강력해져 있었다. 심지어 이차원은 아직 [강화] 스킬도 사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리지를 맞설 준비가 점점 완벽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