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울프릭은 에렌 게티를 데리고 크라투반 정글에 들어갔다. 이내 울프릭은 자신들이 하칸의 알을 들고, 죽어라 달려본 기억이 있는 늪에 도착하였다. 울프릭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작전을 마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울프릭은 이차원에게 받고 남은 토사물을 꺼내며 왕에게 물었다.
-바를까요?
-영 내키지 않아.
울프릭과 게티 모두 샌드웍의 토사물을 보며 서로 표정을 찌푸렸다. 특히나 게티는 왕이었기에 이런 더럽고 냄새나는 것을 자신의 몸에 더욱 바르고 싶지 않았다. 울프릭은 자신의 의지로 이 토사물을 또다시 바르게 될지 몰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리지를 막기도 전에 모기한테 물려 죽을 순 없는 일이었다. 울프릭은 몸에 치장을 마치고 게티에게 한 번 더 물어보았다.
-바르지 않는 건 괜찮습니다만, 더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일이라니?
게티는 울프릭의 말이 무섭게 다가왔다. 편하게 지내며 살아왔던 게티에게 힘든 일이 일어나는 상황은 얼마없었다. 그렇기에 앞에 어떤 고난이 올지 예상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게티는 주저하며 토사물을 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지독한 냄새에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두 사람은 정글로 들어갔다.
‘이미 어딘가 잠복하고 있겠군.’
분명 리지가 에렌 게티의 시선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테니, 이곳에 용병단이나 사제단을 보냈을 것이 틀림없다. 당장은 정글의 기운이 너무 강해서, 용병단이나 사제단의 기운이 잘 느껴지지 않고 있지만, 아마 정글 어딘가에서 숨어있을 확률이 높았다. 울프릭은 더욱 조십히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알이 있는 곳에 갔을 때 습격할 생각인가?’
울프릭은 그들이 어딘가에 숨어있을지 예상을 해보았다. 그러다 알이 있는 곳을 알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가 습격을 할 확률이 높다는 걸 짐작하였다.
‘타이밍은 지금 일수도.’
당장 자신의 인벤토리에는 라지안 스크롤 20개가 들어있었다. 금괴로 치면 한 장당 4G가 넘는 고액의 스크롤인데, 이것들은 모두 데린이 챙겨준 것이다.
라지안은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달린, 고릴라와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이다, 실제 고릴라와는 다르게 나무를 매우 잘 타는 능력이 있다. 무엇보다 라지안은 속죄 모기에 내성이 있어 지금 상황에서 사용하기 딱 좋은 몬스터였다.
이 스크롤을 이용해서 정글 현장에 리지가 보낸 용병단과 싸우기 위한 준비를 했던 것이다.
인간이라면 크라투반 정글이라는 환경에 각종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라지안은 그런 환경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강함을 내뿜는 몬스터이니 최고의 어시스트였다. 한편 몸에 토사물을 바른 상태라 그런지 계속 이동하는 울프릭에게 지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멀었나? 여긴 아까 왔던 곳 같은데.
-죄송합니다. 길이 좀 헷갈리네요. 거의 다 왔습니다.
또한 게티는 계속해서 비슷한 곳을 도는 것 같은 느낌에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상함을 느끼는 건 울프릭도 마찬가지였다.
‘연락이 왜 안 오는 거야.’
울프릭도 마음속이 초조해졌다. 원래 정글의 앞에서 스크롤을 찢은 뒤에, 라지안에게 이 정글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을 할 생각이었다. 용병단이 잠복해 있을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스크롤을 찢는 순간 에렌 게티의 시선에 의해 리지에게 정보가 들어갈 것이 뻔하였기에,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좀 쉬었다 가지.
게티가 조금 지쳤는지 높게 솟은 나무에 기대며 바닥에 앉았다. 바로 그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에 흩날리는 풀소리들이 그들의 마음을 편안히 어루만져주는 듯하였다. 그 때문인지 울프릭도 잠시 긴장의 끈을 내려놓으려 할 때였다.
-아차!
울프릭이 순간 몸을 비틀었다. 어디선가 칼이 날아온 것이다. 울프릭은 시선을 따라갔다. 무려 열 한 명. 그들은 위세 좋게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알이 있는 곳을 말해라.
용병단들이 게티와 울프릭에게 칼을 겨누며 말했다. 이에 게티는 역정을 내질렀다.
-무엄하다! 어디 감히 일개 병사가 한 나라의 왕에게 칼을 겨누느냐!!
-왕은 빠지시고.
용병단들은 게티의 역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하게 다가올 뿐이었다. 울프릭은 당장이라도 스크롤을 빨리 찢어서 이들을 처리하고 싶었지만, 연락이 올 때까진 기다려야만 했었다. 결국 울프릭은 시간을 벌기 위해 유인 작전을 펼치기로 하였다.
-이쪽이다.
울프릭은 그들의 말에 따르는 척하며 앞장서 갔다.
-계속 길을 해매는 거 같던데, 알을 끝내 찾지 못하면 죽여버릴 거야.
용병단의 말처럼 안내한 곳의 끝에 알이 없다면 용병단이 자기를 죽이려 할 게 뻔하였다.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스크롤을 사용해야 되는데, 그럴시 게티를 통해 리지도 이 계획을 알게 되는 게 뻔하였다. 울프릭은 마음속으로 빌었다.
‘제발 그 전에 결단이 나길.’
***
‘뭐 하는 거야 대체.’
에렌 게티의 시선으로 울프릭의 행동이 수상함이 느껴졌다. 그의 행동은 애초에 목적지가 없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서 저기로 자주 길을 바꾸는데 결국 같은 곳을 맴돌고 있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나 버뮤다 삼각지대에 들어선 거 같았다.
-정확한 좌표 찍으라 해.
리지는 연락 구슬로 용병단에게 연락을 했다.
-거기 너, 정확한 위치를 말해.
연락을 받은 용병단은 곧장 울프릭에게 칼을 겨누며 알의 위치를 물었다.
-말하면 죽일 거면서 내가 왜?
울프릭은 그들을 비웃으며 말한다. 이미 그들의 머릿속 세상을 울프릭은 다 파악한 듯 보였다. 둘러대기 좋은 핑계였다.
‘핑계 좋네. 어디까지 댈 수 있나 보자고.’
울프릭의 핑계를 들은 리지는 영혼 없는 미소를 지으며 결단을 내렸다.
-두 시간 준다해. 두 시간 안에 못 찾으면 왕을 죽여라.
리지의 명령은 곧 울프릭에게도 들려왔다.
‘이제 완벽한 적이 됐구나, 리지.’
울프릭은 이제 자신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자신도 리지를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 리지는 모든 상황이 찝찝하다는 걸 눈치채었다.
‘목숨을 구걸하려고 시간을 끌 놈이 아니야. 그럼 왜?’
리지는 평소 울프릭을 잘 알기 때문에 그가 당장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란 것쯤은 단숨에 눈치채었다. 그녀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하였다.
‘설마?’
리지는 설마 이차원과 울프릭이 자신의 계획을 모두 알고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계획에 맞춰 너무 잘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심을 품자 곧장 타무스 마을에 병력을 출동시키기 위해 명령했다.
-타무스 마을에 수상한 점이 없는가 확인해. 세뇌 마법이 풀렸을 수도 있으니.
그러나 그녀에게 곧장 돌아온 답변은 이러했다.
-문제 없습니다. 그들은 예상대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용에 의하면 그 마을 사람들 모두 세뇌마법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리지라는 존재에 대해 아무도 모르고, 리지가 그들에게서 빼앗아간 재산이나 속죄의 매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물론 그들이 아는 사실과는 전혀 다르단 것까지는 눈치채지 못하였다.
-그래도 서두르는 게 좋겠어.
세뇌 마법이 잘 작동하고 있는 거면 아직까지 문제가 없는 거겠지. 히자만 리지는 서둘러 움직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을 내렸다.
-아무리 봐도 저 인간 숨기는 게 있거든.
리지는 울프릭의 행동이 평소 그답지 않다고 확신하며 더욱 예의주시하게 바라보았다.
***
그 시각 이차원은 잠시 게임에서 빠져나왔다. 바로 어제 박지원과 약속한 토벌 제의를 들어줘야 했기 때문이다.
이차원이 차에서 내리자 언제나처럼 게이트엔 헌터들이 모여있었다.
-와주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게이트에서 먼저 이차원을 기다리고 있던 박지원이 꾸벅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째 크게 안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귀중한 물건을 찾은 사람처럼.
“안 올 줄 알았어요?”
“예? 예...”
사실 이차원도 게이트에 올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당장 게임 속 일도 처리하기 바쁜데 얼떨결에 들어준 토벌 제의를 가야 되는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가 게이트에 온 것에는 다른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차원은 곧장 박지원을 지나쳐 게이트 주변을 통제하고 있는 군인 한 명에게 걸어갔다.
-병기번호! 330231.
차원이 총을 잡자, 군인이 병기번호를 외쳤다 국가 소속 헌터들은 최소 대령 이상의 대우를 받아 군인들의 직속상관도 되었기 때문이다.
“편하게 하세요. 괴롭힐 마음은 없으니까.”
그러나 군인은 도무지 편하지 않은지 진땀을 흘린다. 이미 인터넷으로 다 퍼져 유명인이 다 된 이차원이 자신의 앞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국가헌터다. 조그마한 실수를 하더라도 금방이라도 상관의 귀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궁금해서 묻는 건데 요즘 총들 뭐 써요?”
박지원은 갑작스러운 이차원의 돌발 행동에 아무말 없이 쳐다보았다. 헌터인 그가 총에 관심을 보이는 것에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총은 왜요? 총 필요하십니까?”
“선물하고 싶어서요.”
그는 바로 총을 타무즈 왕국 사람들에게 선물할 생각인 거였다.
‘전투력을 높일 필요가 있으니까.’
곧 전쟁이 시작되어 모든 인원이 싸워야 되는 상황이 올 것이다. 타무스 왕국의 전체 평균 전투력이 다른 왕국보다 높지만, 피해를 최소한 줄이기 위해 모두를 완벽히 무장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그게 더 효과적이기도 했다. 총이 있다면 마법이나 스킬이 없는 자들도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었고 자신을 방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차원의 호기심에 군인은 다시 병기번호를 외치며 총을 건네주었다.
“AZ-2 입니다! 에인 결정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압축시킨 탄환을 발사합니다! 반동이 적고 일반 탄약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도를 자랑합니다!”
군인은 이차원이 물어보지도 않은 총의 성능까지 세세하게 말해주었다.
“좋네요.”
총을 보던 이차원이 이내 박지원을 불렀다. AZ-2총기뿐만 아니라, 타무스 왕국의 일반 국민들을 무장시킬 무기들이 더 많을 것이 틀림없다.
“나 군인 신분이니까 여기 수도권에 있는 군부대 시찰할 수 있는 권한 있죠?”
“예, 있긴 있는데... 왜...?”
“수도방위사령부 탄약고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제대로 관리가 되고 있는지 시찰 좀 하려고.”
도대체 무슨 일로 이런 말을 꺼낸 건지 박지원은 의문이 들었다.
“이차원님이요?”
“네. 왜요? 이상해요?”
“아, 아닙니다.”
박지원은 차원이 갑자기 나라 걱정을 하는 것이 여간 의아한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