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렌더는 코웰과 차원, 울프릭, 아르만이 리지의 행방을 찾는 동안 알을 지키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혼자는 아니고 레온처럼 토끼형 몬스터인 레빈 한 마리와 함께 지키기로 하였다.
트롤의 언어를 획득하고, 대개 모든 몬스터들이 비슷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까지 깨달은 렌더는 레빈과 소통할 수 있었다. 성을 지나간 리지의 냄새를 레빈이 기억하고 있어서, 성을 넘는 사람들 중에 비슷한 냄새가 나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준비는 다 되어 있죠?”
-최정예로 대기시켜 놨습니다.
이미 하칸의 알이 있는 곳, 차원의 거처에는 코웰이 이끄는 기사단이 지키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어째 코웰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이로써 폐하께서 깊은 세뇌 마법에 걸리신 것은 확실해졌군요.
하칸의 알을 가지러 왔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더군다나 확정적인 증거는, 그들이 타무즈의 국왕인 게렌 에티의 증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성을 수시로 들락날락거릴 수 있게 방법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왕의 증표까지 준비해 놓을 정도로 치밀할 줄은 몰랐습니다.
왕의 증표는 당연한 것이지만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기사단장 코웰의 얼굴도 모르는 놈들이 그것을 가졌다라는 것은 왕이 깊은 세뇌 마법에 걸려있다는 걸 더욱 잘 알려주었다.
하지만 이 점은 마법에서 풀려난 코웰에게 이차원이 미리 알려준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또 차원의 이야기대로 흘러가는 것에 신뢰를 더욱 가질 수밖에 없었다.
[ 코웰의 호감도가 증가했습니다. ]
‘이쯤이면 스킬 하나는 나올 법한데.’
NPC마다 호감도의 최대치가 다른 것을 알지만, 코웰은 몇 급수는 더 높아 보이는 것으로 보였다. 그럴 것이 이차원은 아직도 코웰의 스킬을 하나도 얻지 못하고 호감도만 쌓이는 중이었다. 이차원은 빨리 얻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조바심은 가지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일단 상황을 끝내기 위해 빨리 가시죠.”
***
어디선가 남자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맞지?
-지금쯤 대장간 탐방 중이라고 했으니 알만 가지고 빠져나가자고.
그들의 존재는 바로 리지가 보낸 용병단원들이었다. 그들은 마을 구조는 물론 이차원의 스케줄까지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귀빈의 일정은 보통 황실에서 관리했다. 그들의 동선에 따라 최고의 의전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스케쥴을 꿰고 있단 건 이미 황실 정보 대부분이 리지에게 넘어갔다 해도 무방하였다.
용병단원 두 명은 인기척을 죽이고 알이 있다는 숙소 문을 천천히 열었다. 그러나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뭐야!
자신들이 받은 정보에 의하면, 이 시간대에 이곳을 지키는 기사들까지 모두 빼놓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기사들은 자신들을 금방이라도 죽일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울프릭의 모습이 보였다.
-이봐, 너희. 계획이 뭐야?
그리고 그중 울프릭이 가장 무서운 눈빛을 내뿜고 있었다. 자신의 여동생이던 여자가 저지른 만행이었기 때문이리라. 울프릭이 빠르게 심판자의 검을 뽑아 들자 마찬가지로 용병단원들도 칼을 꺼내며 대치하였다.
그 둘은 숙소에 있는 기사들의 숫자를 파악하려는 듯 눈치를 보았다. 총 20명 남짓한 기사들이 그들 앞에 서 있었다. 용병단원 중 꽤 덩치가 있고 강해 보이는 남자가 허세를 부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로 되겠어?
충분히 싸울만하다 판단했는지 그 남자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섰다.
-그럼 이 정도면 되겠냐?
울프릭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칸의 알을 보관하고 있던 격실의 커텐이 확 열렸다, 코웰이 이끄는 기사들이 더 등장하였다. 그 수는 얼핏 세보아도 80명은 넘어보았다.
용병단원들은 그 수에 아까와 달리 많이 놀란 모습이 보였다. 이에 울프릭은 기세를 이어가 물었다.
-계획이 뭐야.
울프릭의 물음에 덩치 옆에 있던 다른 용병단원이 대답했다.
-계획? 절대 그냥 죽지는 않는 거.
-충성도 하나는 남 부럽지 않네.
울프릭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무려 80이 넘는 숫자가 한꺼번에 달려들었음에도 용병단원들은 패기 있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전투는 생각보다 치열해졌다. 하지만 결과는 점점 드러나 보였다. 이 모습에 이차원은 창조 스킬을 곧장 사용하였다. 물론 현재의 병력이면 이 두 남자쯤은 차원이 나서지 않아도 되지만, 코웰의 호감도를 얻기 위함이었다.
[창조가 가능한 캐릭터의 타입만 창조할 수 있습니다.
루도브 왕국의 이름 모를 상인 / 이름 모를 대장장이 / 선택하십시오.]
‘무력이 필요한 상황이니 대장장이로.’
이차원이 선택을 마치자 순식간에 덩치 큰 거구의 남자의 몸이 생겨났다.
-저, 저게 뭐야?
-분명 아까까진 저런 상대가 없었는데!
지칠 대로 지친 용병단원들은 힘이 더 빠지는 듯했다.
이차원은 자신의 거처에 있는 심판의 검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얻은 스킬을 시전해 보였다.
[ (VR)대장장이.LV1 ]
[ 장비의 능력치를 한 층 더 강화할 수 있는 스킬입니다. 1분간 아이템 능력치 2배 강화. 단, 내구도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시, 강화 수치에 대한 내구도 효율이 상승합니다.) ]
‘뭐야. 생각보다 좋잖아.’
검에서 힘이 느껴지듯이, 검을 잡고 있는 이차원의 손을 통해서 그 힘이 전달되는 듯하였다. 기사단원들과 울프릭, 그리고 두 남자는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는데 이차원이 소리쳤다.
“다 나와.”
앞에 길이 터지자 이차원이 심판의 검을 거세게 휘둘렀다. 이내 십자가가 그려졌고, 그것이 두 남자를 향해 나아갔다. 다가갈수록 십자가는 더 거대해졌다.
“두 배 강해진 거 맞네.”
이차원은 확실한 스킬 효과에 만족스러워 하였다. 거처에 있던 기사단원을 비롯한 두 남자도 거대한 십자가에 깜짝 놀라 피하기 급급했다.
이차원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장 두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남자 둘도 칼을 꺼내어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이 정도면 항복할 법도 한데, 끈기가 아주 대단하다.
그렇게 칼을 몇 번 겨루었다. 이차원의 손 울림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남자 둘의 전투실력도 상당하였다. 물론 이차원의 공격이 더욱 강했지만 상대는 두 명. 공격할 틈을 찾기 힘들었다.
-한 명은 제 쪽에서 맡죠.
그 모습을 본 코웰이 단검을 들고 남자 하나를 상대하였다. 코웰의 단검은 남자가 가지고 있는 대검을 너무나 손쉽게 막아내었다. 이어서 재빠르게 남자의 몸 곳곳을 찔렀다. 왜 그를 밤에 만나면 더 무서운 기사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빨라서 보이지가 않아. 저 남자가 자객이었다면 순식간에 당하고 말겠어.’
코웰은 단검을 다루는 속도가 너무나 빨랐고 공격을 읽었다 하더라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도 끝내볼까.”
코웰의 싸움을 지켜보던 이차원도 심판자의 검을 휘두르며 남은 남자에게 다가갔고 싸움은 길게 가지 않았다.
결국 남자들은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허리춤에서 약물을 꺼내 마시려 하였다. 그것은 회복 물약이 아닌 정보 누설을 막기 위한 자결용 독이었다.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그걸 보고만 있을 이차원이 아니다. 이차원은 남자 둘이 먹으려는 약물을 빠르게 발로 차버렸다. 독이 들어있는 통은 바닥을 구르며 독을 바닥에 흩뿌렸다.
그때, 독을 꺼내던 허리춤에 있는 또 다른 징표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바로...
-이건, 디즌 왕국이잖아.
울프릭도 징표를 봤는지 덧붙였다.
디즌 왕국은 매우 평화로운 마을로, 대륙 전체에서 협약이 맺어져 있는 왕국의 중심이다.
전투와 전쟁이 없는 나라로. 평화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대륙을 지배하는 7성군의 힘이 작용한다고도 알려져 있는데, 정확한 건 차원도 알지 못한다.
차원이 게임을 하며 경험한 바에 의하면, 매우 화창한 날이 계속되고, 몬스터도 등장하지 않고 양아치들도 없는, 굉장히 조용한 마을이다. 그럴 것이 그 마을은 징표가 없으면 아예 외부인을 들여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 눈꽃, 코젠 왕국의 레온, 그리고 디즌왕국이라…….’
순간 머릿속에 리지의 계획이 그려졌다.
“모든 것이 정해졌습니다. 우리만의 계획을 만들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차원의 확신의 찬 말에 코웰이 또 한 번 큰 신뢰를 느꼈는지 호감도가 올라갔다.
[ 메인 NPC 코웰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 코웰의 스킬이 부여됩니다. ]
[ (R)은빛조각Lv1 : 보이지 않는 단검술, 빛에 비춘 칼의 단면이 번쩍이는데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조각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
리지의 행방을 안 것, 거기에 코웰의 스킬을 얻은 것까지. 입꼬리가 올라가는 차원이었다.
***
겨울눈꽃, 코젠 왕국, 디즌 왕국. 수없이도 많이 이 게임을 해본 차원에게는 리지의 생각이 똑같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리지는 대악마를 깨우면서 바칠 사람들. 즉, 재물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확신에 찼다.
‘그 재물을 디즌 왕국에서 찾겠단 거로군.’
겨울 눈꽃과 코젠 왕국으로 무력의 영약을 만들어, 전투가 없고, 평화로운 디즌왕국으로 가서 그 사람들에게 무력의 영약을 먹일 생각인 것이다. 무력의 영약의 효과는 사람들을 매우 고독하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특정한 어떤 사람의 말에 맹목적으로 의지하게 만드는 효능이 있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디즌 왕국의 사람들은 다른 왕국들보다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낮은 걸 이용하겠단 것 같은데 그렇게 안 될 거다.’
생각을 마친 이차원은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였다.
“레온을 잡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이곳 왕국 사람들에게 세뇌 마법을 걸어 시간을 번 것 같구요.”
리지의 머릿속에 들어간 듯이 생각의 과정을 읊어주자, 코웰은 또 한 번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울프릭은 이차원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네 계획은?
“타무즈 왕국 시민들은 다른 왕국들보다 전투력이 높잖아.”
-그래서? 그 여자가 노리는 건 디즌 왕국이잖아.
“디즌 왕국 구민이랑 타무즈 국민을 잠시 바꾸자.”
-네에?
렌더가 자신의 귀를 의심한 듯 믿지 못하였다.
“리지가 영약을 들고 왔을 때 타무즈 국민들이 리지의 군대와 싸우는 게 디즌 국민들보단 승산이 있잖아.”
이차원의 대안에 다들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차원의 계획이 상상도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이 가능할까요? 마을 사람들을 통으로 바꾸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렌더가 이차원에게 다가가 말리듯 권유했다. 허나 이차원은 너무 평온하게 답했다.
“주민들을 바꾸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아. 문제는 국왕도 모르게 국민을 이동시키는 방법인데 의견 있는 사람?”